202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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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멜로, 액션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들
<휴민트>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이승재(한경매거진앤북 기자), NEW
대담 _ 강병진(영화 저널리스트), 송아름(영화평론가)
2026-02-23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박해준이 포진한 영화 <휴민트>가 지난 2월 11일 개봉했다. 사전 예매율 20만 장에 육박할 만큼 화제를 모으며 2026년 설 연휴를 맞은 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인 <베를린>(2013), <모가디슈>(2021)에 이어 ‘해외 로케 3부작의 완결편’ 혹은 ‘첩보전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불릴 만큼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제작비 200억 대의 대작인 만큼 한국영화가 어려운 시기에 극장가를 견인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뚜껑을 연 영화의 실체에 다양한 반응이 쏟아진다. ‘첩보멜로액션물’로 완성된 <휴민트>를 바라보는 매우 상반된 시선들이 등장하고 있어 흥미로운 상황이다.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와 송아름 영화평론가가 그 시선들을 대변할 만큼 극과 극의 논의를 펼쳤다.
Q기대작이었던 영화 <휴민트>가 공개되었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한, 사실상 첩보영화의 외피를 두른 ‘멜로액션영화’였다. 어떻게 받아들였나?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를린>의 구성을 거의 가져왔는데, 후반에 간결하게 몰아치는 액션이 효과적이었다. 대중 영화로서 좋은 결과물이다. 재미있게 봤다.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자신의 휴민트를 지켜야 한다는,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전 약혼자였던 채선화(신세경)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감정을 몰고 간다. 그 감정들과 멜로를 동기 삼은 액션이 설득력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효과적이었고. 북한 식당 아리랑에서 종업원 채선화가 무대에 올라 패티 김의 노래 ‘이별’을 부를 때, 박건과 채선화의 얼굴을 교차하면서 클로즈업하는 방식은 물론 고전적이다. 요즘 세대에게는 올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감정에 더 무게를 싣고자 했던 게 아닐까.
서사를 비롯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다. 첩보액션영화에는 기본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정보만 전달하고 전형적인 방식으로 흘러갔다. 박건은 북에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을 견제하러 왔고 그만큼 적대적인 관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황치성과 박건이 아리랑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채선화를 만났을 때, 박건과 채선화는 아는 사이라는 것이 티 날 만큼 서로를 쳐다본다. 그 장면은 잘못된 선택이다. 총영사가 이미 둘 사이를 눈치채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건 이 영화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박건과 채선화의 시선을 교차시키는 연출 방식은 확실히 올드하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박건이 채선화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장면이 또 있다.(웃음) 조 과장의 파트너인 임 대리(정유진)가 아리랑 식당 근처에서 박건과 채선화가 만나는 순간과 그때 박건을 감시하는 총영사관 직원까지 포착된 CCTV 영상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훈련 받은 요원이 저 상황에서 누군가 자기를 찍고 있는 것도 발견 못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고. 박건은 그런 인물인 거다.
박건에게 주어진 게 너무 없다. 박정민은 표정이 많은 배우인데 박건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하나같다.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였겠다고 생각한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왼쪽)와 송아름 영화평론가
Q앞서 언급되었지만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앞선 첩보영화 <베를린>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베를린>의 ‘표종성(하정우)’ 이야기도 극 중에 대사로 등장한다. 두 작품을 비교해본다면?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휴민트>와 <베를린>은 장르가 다른 영화 같다. <베를린>은 ‘제이슨 본’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 첩보물에 규격이 맞춰진 영화다. <휴민트>는 훨씬 축소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베를린>은 정치적인 욕망이 큰 동명수(류승범)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데, <휴민트>는 국제 인신매매라는 범죄를 다룬다. 그게 큰 차이다. 물론 첩보영화로서의 재미로 보자면 <베를린>에 비해 아쉽다.
<휴민트>는 <베를린>의 데칼코마니다. 조인성이 연기한 조 과장은 <베를린>에서 한석규가 연기했던 국정원 요원 정진수이고, 박정민이 연기한 박건은 하정우가 맡았던 표종성이다. 신세경이 연기하는 채선화는 전지현이 연기했던 표종성의 아내 련정희, 박해준이 연기하는 총영사 황치성은 류승범의 동명수와 같다. 두 영화에서 인물들의 욕망은 다른데 인물들의 목표, 성격이 유사하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표종성이 아내 련정희를 의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북한의 비밀요원인데 아내가 망명을 시도하는 반역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다. 반면 <휴민트> 속 인물들은 누구도 큰 딜레마가 없다. 조 과장은 극 초반에 동남아시아 매음굴에서 상황에 개입하지 말라는 상사의 얘기를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정보원이었던 김수린(주보비)을 구해 나온다. 그렇게 결정한 조 과장에게 더는 큰 딜레마가 없는 것이다. <휴민트>는 이런 데칼코마니 식의 변주 안에서 인물들의 성격을 너무 단순화했다. 국제 인신매매 범죄, 마약 등을 다루면서, 지켜야 하는 여성을 도구화한다. <휴민트>가 <베를린>보다 더 보수적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정진수는 “저 빨갱이 새끼들…” 하다가 입체적으로 변화하면서 표종성과 련정희를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휴민트>의 조 과장은 감정적으로 자신의 정보원을 지키고 싶어 할 뿐이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베를린>은 국제적인 갈등과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이 함께 진행되는데, <휴민트>에서는 그런 갈등이 이미 과거 이야기다. 조 과장이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장면도 과거다. 박건은 과거에 채선화 부모의 잘못을 직접 수사해서, 채선화를 지금의 처지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있다. 그게 매우 쉽게 읽히지만 대중 영화로서는 효과적이다. <베를린>에서 정진수는 빨갱이라면 치를 떨면서 “우리는 로타리에서 좌회전도 안 한다”고 한다. <휴민트>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다. 필요 없는 것이다. ‘무조건 한 여자(채선화)를 지키는 액션’이라는 개념에 집중해 나아가니까. 간결하고 명확하게.




Q<휴민트>는 임무의 딜레마냐, 아니면 죄책감과 사랑이라는 단순하지만 뜨거운 감정이냐를 두고 후자를 선택한 셈이다. 류승완 감독이 전작들을 답습한다고 보는가, 아니면 고전적인 방식으로 쉽게 직진하는 연출을 펼쳤다고 보는가에 따라 이 선택의 평가가 달라지겠다.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휴민트>가 <베테랑2>(2024)의 반대급부로 나온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베테랑2>는 관객들이 갖는 어떤 기대를 배반했다. 분명 <베테랑>(2015) 같은 영화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전편의 액션을 반성하고 있으니까, 관객들은 ‘내가 이 영화를 즐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어색한 순간과 마주했던 것이다. <휴민트>는 완전히 다르다. ‘나쁜 놈들 죽이는 데 무슨 반성? 그냥 다 쓸어 버려야지’라는 태도로 간다. 류승완 감독이 관객의 기대를 채워주는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고 본다.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주는 방식이 진부하다. 러시아 마피아들에게 납치되어 있는 북한 여성들을 전시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 여성들을 하얀 끈 원피스 하나 입혀 놓고, 총알이 튀고 피도 튀는 상황에서 그 여성들 누구 하나 옷이 훼손된 사람이 없다. 액션을 보여주려면 정말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여성들이 갇혀서 전시되어 있던 유리상자도 방탄이었는데, 왜 굳이 밖으로 나와서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지. 여성들을 인신매매해서 어딘가로 넘긴다는 방식도 2010년대에 많이 나왔던 스릴러들의 내용이다. 마치 15년 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옛날 홍콩영화 느낌이 있긴 하다. 액션 자체도, 액션의 구성도. 비현실적인 액션과 함께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홍콩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두 남자가 서로 총을 겨누는 <첩혈쌍웅>(1989) 같은 액션들로 영화를 구성했다고 본다.

Q액션 이야기가 나왔으니, 도입부에 조 과장이 동남아시아에서 벌이는 첫 액션을 비롯해 중간 중간 배치된 ‘류승완 영화’ 특유의 액션 신들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나?
류승완 감독의 액션은 리얼리티를 중시해 왔다고 생각한다. 전작들에서는 때리는 장면들도 많았지만 맞는 사람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도 많았다. 정말 살이 맞닿아 아프게 느껴지는 액션을 열심히 찍어 왔다. 그런데 <휴민트>에서는 ‘멋있게 보이려는’ 액션을 지향한 것 같다. 박건이 국정원의 블라디보스토크 안전가옥에 찾아와서 임 대리와 혈투를 벌이다가 나선형 계단에서 떨어진다. 두 사람이 계단이나 난간에 무릎이나 허리를 정말 아프게 부딪치는 클로즈업을 계속 보여주는데, 인물들이 일어나서 멀쩡하게 뛰어나간다. 액션을 멋있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 텐데, 극이 진행되는 방식과 안 맞는다. <휴민트>는 영화 내내 계속 몇 명만 액션을 하는 것 같다. 러시아 마피아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떼신’은 위험하고 멋있는 게 아니라 한정적이고 답답하게 연출되었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휴민트>의 초반 ‘조 과장’ 조인성이 정보원 김수린을 구하는 액션은 <밀수>(2023)에서 ‘권 상사’ 조인성의 호텔 결투 액션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그림이 되는 배우를 통해서 멋있게 구성된 액션이었다. <베를린> 정진수와 <휴민트> 조 과장의 차이는 결국 의상이다. 정진수는 야상, 조 과장은 롱 코트. 그런데 러시아 마피아와 싸우려고 철책을 넘어갈 때 누가 롱 코트를 입고 가겠나. 입었다고 해도 벗을 것 같은데.(웃음) 그건 멋진 액션을 연출하겠다는 의도다. 확실히 멋은 있었다.
남북한 요원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볼 때 관객들이 가장 재미있게 보는 장면은, 알고 보면 의외의 능력이 있는 ‘힘숨찐’ 캐릭터가 나올 때다. <휴민트> 초반 조 과장의 액션은 그런 재미가 있다. 동남아시아 매음굴로 설정된 공간이 좁은데, 공간 활용도 좋았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는 일부러 총을 안 쏘는 게 더 흥미롭다. 조 과장이 “거기서 발포하면 진짜 큰일 나” 하는 상관의 말에 총구를 돌려 총 손잡이로 동남아시아 범죄자들을 때려눕힌다. 후반부 러시아 마피아들과 싸울 때 그런 액션이 반복되어서 재미있었다. 박건은 인신매매 브로커의 집에서 다짜고짜 다트를 던지면서 등장하는데, 그건 액션이라기보다는 위협적인 기운의 발산이다. 초반부 조 과장의 총술과 격투 장면이 액션 히어로로서 확실한 모습이었다.
Q주요 인물들의 설계, 남북한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베를린>의 표종성은 처음엔 아내의 미국 망명을 의심했다가 진실을 알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휴민트>는 캐릭터들이 솔직히 흔들릴 게 별로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북한 쪽 인물이 나오는 한국영화들을 떠올려보게 되고, 그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형제>(2010), <강철비>(2017), <공조>(2017) 같은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들에서 북한 쪽 인물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남한에 온 게 아니라 자기 임무를 하러 왔기 때문이다. 북한 요원들이 흔들리는 걸 보여준다는 건 체제 문제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서 일부러 다루지 않는 게 아닐까.

남북한을 다룬 한국영화들을 보면, <쉬리>(1999)까지는 어쨌든 남북이 적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때부터는 친해질 수도 있었는데 북한군이 사망을 했다. 북한 쪽 인물이 죽지 않고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던 게 <의형제>부터다. 이후 <강철비>나 <공조>까지 보면 남한 쪽 인물들이 나이가 더 많고 국정원 요원이거나 경찰이면서 북한 쪽 인물을 품어주는 설정이다. 북쪽 인물들은 더 젊거나 꽃미남 요원들이다. 이런 배치에서는 남북한 인물들이 친해져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합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휴민트>에서는 양쪽의 역할을 조 과장 혼자 한다. ‘내가 저들을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서도 평면적인 인물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사실상 뭔가 크게 하는 게 없다. <휴민트>가 보수적이라고 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남한 지향’적인 작품들은 ‘북한이 사고를 쳐도 우리가 품어준다’는 태도를 보이고,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식의 내용이나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다. <휴민트>에서도 북한 총영사 황치성이 “어차피 다 굶어 죽을 거…”라는 대사를 한다. 조 과장이 젊은 박건과 채선화를 도와주고. 이런 장면들로 보면 류승완 감독은 본인이, 혹은 그의 세대가 봤던 어떤 세계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 <광장>(2026)을 보면 북한을 다루는 방식에서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광장>에서는 북한이 폐쇄적인 감시사회라는 설정만 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감정을 잘 다룬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Q류승완 감독은 <베를린> <모가디슈>를 통해서 ‘로케이션과 프로덕션의 승리’라고 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 왔다. <휴민트>는 극 중 블라디보스토크를 라트비아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주는 로케이션이었을까?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그 부분은 조금 안타깝다. <베를린>은 첫 시퀀스부터 표종성이 건물 위로 뛰어다니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광장이 첩보전의 무대로 다뤄진다. <모가디슈>는 백주 대낮에 총격전과 차량 추격전을 보여줄 때 이국적인 풍광이 그 기능을 한다. 그런데 <휴민트>는 웬만하면 밤 장면이고, 세트 안에서 액션이 벌어진다. 냉혹하고 차가운 느낌이 잘 보이지 않아서, 로케이션 촬영이 빛을 발했다고 하기는 다소 어렵다. 특별한 효과를 주는 것은 로케이션보다 채선화 역의 신세경이다.(웃음) 신세경의 클로즈업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훨씬 많고, 정말 많은 클로즈업이 사용되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련정희가 잡혀 갈 때 표종성이 새벽의 텅 빈 시내를 달려간다. 그때의 로케이션은 이야기에 너무 적합했다. <휴민트>는 그런 지점들이 약하다. 결과적으로 총을 쏘면서 액션을 할 수 있는 배경이 필요했던 것 같다. <베를린>에서 표종성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는 설정으로 끝났으니 그걸 이용해서 블라디보스토크가 배경이 된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그런 부분이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이유는 아니다. 배우들, 액션과 멜로가 있는 플롯을 장르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으니까.
<모가디슈>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공기, 번들번들 땀이 나는 사람들의 피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유발되는 짜증이 잘 느껴졌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드넓은 공간이고, 인물의 고독함, 외로움 혹은 공포가 춥고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외경과 합쳐지면 더 배가될 텐데, 그런 기운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왜 라트비아 로케이션을 했는지 증명하지 못한 듯하다. 한국 관객들이 정말 눈이 높은데 지금 한국영화는 그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비판을 받아도 흥행을 못하지는 않았다. <휴민트> 역시 그럴 수 있겠지만, 배우들에게 너무 올인하고 있다. 한 여자를 구하는 데에 모든 공력이 투여되는데, 그게 지금의 관객들이 보기에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Q영화가 끝난 뒤에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나 질문들이 있나?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눈길이 갔다. 첫 장면은 풀샷으로 느리게 보여준다. 조 과장이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더니 책상 위에 그의 소지품들이 놓여 있다. 마지막 장면은 반대로 책상에 놓여 있는 것들을 차례로 다시 보여주고 조 과장이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눕는다. 책상 위에는 비행기표도 놓여 있다. 어떤 의미일까. 조 과장에게서 일종의 피곤함, 피로감이 느껴졌다. 휴민트 채선화가 다른 삶을 살게 했으니, 또 다른 휴민트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 과장은 늘 이 일을 해 왔는데, 박건과 채선화의 이야기도 반복된 업무에 속한 일임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유추해본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해소되지 않는 건 개연성이다. 장면 장면 걸리는 게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채선화와 러시아 마피아들이 탄 차를 조 과장이 뒤쫓는데, 조 과장의 차가 크고 마피아들 차와 평행하게 달린다. 마피아들은 그 차를 왜 보지 못할까. 그리고 조 과장과 임 대리는 채선화와 몰래 접선하는 호텔 CCTV에 잡혀서 총영사 황치성에게 너무 쉽게 들킨다. 하나 더. 류승완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잘 그리는 편은 아니다. 후반부 러시아 마피아들과의 총격전 때 임 대리가 차를 몰고 등장하는 방식이 특히 작위적이다. 여성 캐릭터인 임 대리가 이 정도쯤에 나와주면 되겠다는 식으로 배치한 것 같다. 지금 많은 이들이 박정민의 멜로를 좋아하는데, 그 멜로의 과정에서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게 큰 아쉬움이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Q이미 의견이 선명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휴민트>는 YES인가, NO인가?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YES
<휴민트>에는 류승완다운 액션 장면이 많고, 그 액션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감정이 있다. <베테랑2>가 기대를 배반했다고 여겼던 관객이라면 이번에는 마음 놓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봐 왔던 액션 명작들처럼 시원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테이큰>(2008)이나 <아저씨>(2010)는 지금도 TV에서 방영하면 계속 보게 되지 않나. 그런 전개와 액션은 힘이 세다. <휴민트>는 그런 힘이 있다.
NO
<테이큰>이나 <아저씨>는 나온 지 거의 20년 정도 되는 작품들이다. 남성들의 어마어마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은 이미 10여 년 전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26년인데도 그런 작품이 나왔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지 않아도 좋은 액션 멜로를 만들 수 있지 않나? 첩보와 액션, 멜로를 한꺼번에 넣고 싶어 하다가 시대착오적인 장면이 나왔다고 본다. 지금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괜찮지가 않다.
송아름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