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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영화 유통 ‘블랙홀’을 탈출해야 한다”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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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통 ‘블랙홀’을 탈출해야 한다”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
글 _ 이선필(오마이뉴스 영화전문기자)
사진_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2026-02-09
‘영화 흥행은 배급의 묘’라는 말이 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연간 극장을 찾는 누적 관객 2억 명 시대였던 지난 2013년부터 2019년, 그러니까 한국영화 산업의 르네상스 시기였던 그때엔 어떤 영화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통시키느냐에 따라 흥행의 명암이 왕왕 엇갈리곤 했다.
배급의 묘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힘을 잃었다. 절반 이상 줄어든 누적 관객 때문만은 아니다. 자구책으로 국내 3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팬데믹을 기점으로 세 차례 가격을 인상, 이젠 주말 영화표 1만 5천 원의 시대가 왔지만, 영화표 객단가(관객 1인이 극장을 한번 이용할 때 실제 지출한 평균 금액)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영화 산업의 불공정, 불균형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지난 2024년 7월 28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여성영화인모임 등 주요 영화 단체 18곳이 가칭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를 공식 발족시켰다. 이 연합은 지난 2년간 각종 포럼 및 토론회를 열며 정치권에 정책 제안을 하거나 업계 내 불공정 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등에 직접 고발하며 적극 대응 중이다.
영화인연대에 참여한 단체들 가운데 배급사들은 하나의 축으로 영화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짚는 데 기여해 왔다. 조합이나 모임으로 구성된 다른 단체들과 달리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던 차에 지난해 12월 12일 ‘배급사연대’가 출범했다. 쇼박스와 NEW 같은 소위 메이저 배급사를 비롯, 영화사 빅, 영화특별시SMC, 이화배컴퍼니, 트리플픽쳐스, SY코마드, 제이씨엔터웍스 등 강소 배급사들까지 총 8곳이 한데 뭉쳤다. 앞장서서 깃발을 들게 된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는 “배급사들이 개인적으로 연대해 오면서 수년째 결성체가 필요하단 얘길 나누던 차였다”며 “결국 유통과 분배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영화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연대의 취지부터 밝혔다.

배급사연대는 출범 이후 부금 정산, 객단가 문제, 홀드백 등 현안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배급사연대 로고
(제공=배급사연대)
오래된 문제, 함께 찾아야 하는 해결책
사실 배급사들의 이익 단체는 그 역사가 있다. 2001년 3월 출범한 한국영화 배급개선위원회, 2013년경 한국영상산업협회에서 배급협회로 명칭을 변경, 활동했던 단체들이다. 본래 1999년 출범했던 한국영상산업협회는 DVD 등 홈비디오 업체 중심의 단체로 배급 관계자들이 분과로 들어가서 몇 년간 활동했었고, 사실상 배급사 전체가 아닌 일부 극장 중심 배급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되었다는 게 이화배 대표의 설명이다.
초기 배급개선위원회가 극장과 배급사 간 수익 배분 문제를 개선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면 배급사연대는 보다 범주를 넓혀 영화 유통 방식에 따른 정산 문제, 특히 이동통신사와 극장 간 깜깜이 정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화배 대표는 “처음엔 마치 배급사들이 어려워지니까 영화 산업 안에서 각 사업자들끼리 파이 나눠 먹기 분쟁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연구하고 토론하다 보니 영화 산업 내부보단 애초에 이 산업과 제휴를 맺는 외부 산업과 거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수익 정산을 잘하자는 건 내부 이슈일 수 있지만 영화표 값이 결정되고 유통되는 과정에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이걸 개선하는 게 배급업자들의 과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영화가 재미없어졌다는 지적은 배급만의 영역은 아니지만, 극장의 가격 정책 자체가 관객들의 유입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면 그건 우리가 해결할 일이다. 영화표 가격이 적정한 수준인지, 수익 정산 문제가 영화 산업에 영향을 미쳐 영화의 질적 하락에까지 이르는지를 따져서 우리가 수정해낼 수 있는 건 하자는 생각이다. 이건 아주 광범위한 영역이다.”
이동통신사와 극장 간 깜깜이 정산 문제는 이미 국회 토론회 및 영화제 포럼에서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2019년에서 2022년까지 3년간 영화표는 주말 기준 1만 원 초반에서 1만 5천 원으로 급격하게 인상되었지만 객단가는 2020년 당시 8천574원에서 2025년 기준 9천869원으로 근소하게 올랐을 뿐이다. 영화인연대와 배급사연대는 통신사들이 임의로 할인 티켓을 남발하며 차액을 제대로 극장에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를테면 1만 5천 원짜리 주말 영화표를 통신사 포인트 차감 등 할인제도로 구매했을 때 전표에 찍히는 영수증 금액(7천 원)이 실제 고객이 지불한 금액(9천500원)과 차감 포인트(5천500점)의 합계와 다른 식이다. 수익 정산은 영수 금액 기준이기에 현금 2천500원과 포인트 5천500점이 중간에서 사라지는 셈. 이 금액을 통신사가 부당하게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덤핑 거래다. 이에 영화인연대는 지난해 국내 멀티플렉스 3사의 가격담합 문제와 불공정 정산 문제를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다.

이화배 대표는 수익 정산 문제 등 영화 산업의 여러 이슈를
개선하는 게
배급사연대의 과제라고 밝혔다
지난 1월 26일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정문 의원이 공동 주최한 ‘영화 티켓의 할인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반복 지적되었다. 이화배 대표는 “공정위의 판단이 나오면 결국 이런 정산 문제를 강제할 수 있는데 가장 간편한 방법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이고, 그다음이 극장과 배급사 간 표준계약서에 할인 판매에 대한 합의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라며 “현행 법령으로는 신용카드나 이동통신사의 제휴 할인 판매는 배급사나 제작사가 이견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단체 관람 등 극장 자체 할인 때는 배급사와 상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타 업계 제휴 또한 시행령 추가나 영비법 개정으로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화배 대표는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잘못했기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극장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일 텐데, 통신사는 회사 간 계약이라 비밀이라며 정보 공개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오랜 시간 누적된 선택이 지금에 이르렀다. 극장 또한 더 이상 속앓이 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라며 극장 측의 협조 또한 요청했다.
“통신사 쪽에선 이런 깜깜이 정산이 영화 산업에 피해라는 인식이 없어 보인다. 표를 판매해 주는데 왜 영화계에서 비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더라. 일각에선 그냥 고객이 직접 극장과 거래하면 안 되냐는 의견도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통신사를 거의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만큼 그 채널을 개선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영화 업계가 일방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24년 11월 OTT, 홀드백 등을 주제로 열린 ‘한국영화 활력충전 토크콘서트: 영화로운 합심!’에
참여해 배급사들의 입장을 전달했던 이화배 대표(오른쪽 세 번째)(제공=한경DB)
보다 유연한 홀드백의 필요
영화인연대는 공식 출범 직전인 2024년 5월에 열린 25회 전주국제영화제 포럼에서 통신사 정산 문제와 함께 홀드백 붕괴 현상을 짚은 바 있다. 극장 개봉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인터넷TV 등 타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 유예기간을 두는 홀드백은 통상 길게는 3개월 정도였고, 팬데믹을 지나며 45일로 줄어든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OTT 플랫폼에서 상당 금액을 받고 1개월 안에 풀거나 아예 극장 개봉이 아닌 OTT 공개로 전환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자산어보>(2021), <비상선언>(2022), <한산: 용의 출현>(2022) 등이 개봉 1개월 남짓 무렵 OTT 공개를 택했다. <사냥의 시간>(2020), <콜>(2020), <승리호>(2021) 등은 극장 개봉 계획을 접고, OTT 플랫폼 최초 공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났다.
이는 극장 관객 수 급감에 따른 제작사의 고육지책이었지만 매출 대부분을 극장 수입으로 회수해 온 한국영화 산업계 입장에선 지지 기반인 극장을 흔들 수 있기에 영화 단체들이 나서서 홀드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극장 상영 종료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부터 비디오 또는 온라인 비디오물로 공급될 수 있다’는 신설 조항을 넣어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화배 대표는 “기본적으로 홀드백 문제는 영화계 내부 문제이기에 배급사연대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수익 구조 악화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임 의원의 개정안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또한 공존한다. 이화배 대표는 “만나는 사람마다 홀드백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주로 극장을 가지고 있는 배급사들(CJ ENM,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등)이 입장 정리를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오경 의원 안은 전문위원들이 검토한 결과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전한 걸로 안다. 사실 홀드백의 핵심은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극장의 독점 구조를 얼마나 줄여도 되는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고, 그렇다 해도 마냥 줄일 수만은 없는, 유연함이 필요한 정책이다. 극장의 독점 기간을 늘려 달라는 것도 시장 상황에 역행하는 건데, 6개월간 다른 플랫폼에 팔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업계의 상황과 의견들도 전했다.
더불어 “넷플릭스가 향후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게 된다면 극장 공급을 어떻게 할지가 관심사다. 넷플릭스는 17일간 극장 독점을 유지하게끔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미국에서 얼마나 적용될지 궁금하다. 한국에선 홀드백 규정이 없기에 극장이 원하는 만큼 상영할 순 있지만 통상 유통을 하다 보면 6주 정도가 나오더라. 미국은 배급사들끼리 45일로 합의를 했다. 견주면 우리나라 홀드백이 짧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해외 상황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덧붙였다.
이화배 대표는 “사실상 임오경 의원 안은 홀드백이 아닌 블랙아웃 도입”이라며 “유통 경로를 막는 것이기에 홀드백 법제화보단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개인 견해를 피력했다.

극장 개봉 예정이었지만 OTT로 향했던
(왼쪽부터) <사냥의 시간> <콜> <승리호>(제공=넷플릭스)
연대의 효능감을 나누자
이화배 대표가 지난해 9월 배급사연대 준비 모임을 하며 가입 제안을 타진한 곳이 약 100곳에 이른다. 사실상 국내 거의 모든 배급사에 소식을 알렸다. CJ ENM이나 롯데컬처웍스 등 대형 배급사도 문의는 있었으나 미가입한 상태다. 이화배 대표는 “항간엔 너무 회원사가 적은 것 아니냐고들 하시는데 오히려 전 많다고 생각한다”며 “단체 결성 소식이 알려진 뒤 여러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가입률보단 효능감이 중요하다는 게 이화배 대표의 입장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홀드백이나 정산 문제에 있어서 극장 보유 배급사들과 생각의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최대한 공통분모부터 찾아 급한 과제부터 해결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감독조합, 프로듀서조합 등을 보면 다 개인의 연대인데 우리는 회사의 연대라 성격이 좀 다르다. 우리 정관상 단체든 개인이든 모두 활동이 열려 있긴 하다. 아마 단체 활동을 해보신 분들은 개별 사업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해결된 효능감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래서 대형 배급사들도 꼭 오셨으면 한다. 직접 발언하기 어려운 현안을 우리 연대를 통해 말씀해주시면 반영하고 전달해 드릴 수 있다. 뜻이 안 맞으면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단하면 된다. 미국 직배사인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에도 우린 열려 있다. 설명은 드렸는데 본사 협의 문제로 주저하는 분위기이긴 하더라.”
“동의 안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배급사의 본질은 유통이라 생각한다. 시장이 호황일 땐 기획, 투자 등 다각도로 사업을 했지만, 결국 많은 배급사들이 유통의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기획력이 좋고 자금 수급력이 좋아도 유통력이 떨어지면 무슨 소용인가. 한국영화가 재미없어졌다는 것도 블랙홀이지만, 유통이 제 기능을 못해서 생기는 블랙홀도 있다. 각성하고 우리의 고유 기능을 잘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긴 시간 고생해서 만든 영화들이 제값을 못 받으니 말이다.”
끝으로 이화배 대표는 구조적으로 이윤 압착 상태인 배급업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원은 아니더라도 신용대출 사업 등 창업이나 사업 유지를 위한 자금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전했다. 더 어려워진 영화 산업 환경에서 배급만으로 독자 사업을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모처럼,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배급사들의 관점을 오롯이 대변하는 단체가 태동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