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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고통의 순간, 나를 건져낼 수 있는 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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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순간, 나를 건져낼 수 있는 힘에 대하여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_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2025-11-03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2016), <우리집>(2019)에 이어 6년 만에 찾아온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은 아름답고 용감한 영화다. 그의 영화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세계를 살아가는 마음’을 지녔다. 그런 마음으로, 그의 소녀들은 점차 나이 들고 성장하고 있다. <세계의 주인> 속 주인도 그렇다. 잘 모르면 단순해 보이는 삶 속에서, 결코 그렇지 않은 복잡한 감정들을 붙잡고 도망치지 않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폭력이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린다는 무지함에 정면으로 맞서서, 그런 일을 당해도 망가지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온전히 말할 수 있는 인간으로. 조용히 가슴을 문지르며 거대한 소음 속에서 소리 지를 때가 있더라도. 그래서 그 목소리는 울림이 크다. 샌드백을 힘껏 치는 주먹과 강력한 발차기보다 더. 21세기도 미투(Me Too)도 한참을 지난 시기, 우리는 왜 이제야 생존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까. 다시금 이 영화가 용감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우리들> <우리집>에서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담은
윤가은 감독이 <세계의 주인>에서 열여덟 고등학생의 세계를 조명했다(제공=바른손이앤에이)
Q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를 봤는데, 처음엔 <우리들>의 주인공 선(최수인)이 열여덟이 된 이야기인가 싶었다. 엄마 역이 장혜진 배우이고 남동생도 있다 보니. 금세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 사는 건 또 모르는 거니까. 선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 있겠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해석이다.
Q 청소년들의 연애, 성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화과 전문사 때부터였다고. 그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스스로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언제였나?
이 이야기는 ‘내가 쓸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만 감은 안 잡히는, 폴더에 묻어 놓은 사랑 이야기였다. 다시 꺼내든 건 두 번째 장편 <우리집> 이후다. 새로운 작품들을 준비하다가 막히는 것 같던 시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이었다. 그 해 후반쯤 내게 일련의 사건들이 생겼다. 어쩐 일인지 주변에 친한 친구들의 가족, 내 친구가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많았다. 나도 막 마흔이 되는 무렵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영화 산업은 저물어 가는 것 같고.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왔다. 뭔가 죽음에 딱 직면하고 내가 죽음 바로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도 잘 살고 싶고, 이런 세계 앞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어떤 강렬한 열망으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다가 이 소재가 탁 걸렸다. ‘일단 잡고 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Q ‘세계의 주인’이라는 제목이 힘 있고 아름답다. 이 제목이 처음부터 떠오른 것이었을까 궁금했는데, 방금 얘기한 ‘이런 세계’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제목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15년 전쯤 다른 이야기를 쓸 때 우연히 떠올린 제목이었다. 재난 블록버스터 아포칼립스물 아니면 전혀 세계의 주인일 것 같지 않은 아주 작은 아이의 이야기에 제목으로 붙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정말로 들여다보게 용기를 줬던 작품이 있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서 오랫동안 붙잡고 매달린 이금이 작가님의 <유진과 유진>이라는 소설이다. 그 이야기를 더 깊이 변주하고 확장해봤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언젠가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작고 평범한 우리 옆집의 내 친구, 아무 특징도 없을 수 있는 보통의 사람에게 붙어야만 마땅한 제목이라고 더욱더 생각해서, 그 제목을 가져온 것 같다.
Q 엘렌 베스, 로라 데이비스의 <아주 특별한 용기>라는 책도 있지만,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었겠다. 그럴 때 감독에게도 영화 속 ‘의문의 쪽지’ 같은 내면의 소리가 있었는지?
일단 그 책이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명제로 존재하진 않았지만 ‘나는 주인(서수빈)을 모른다.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라는 마음이 있었다. 여기서 모른다는 건 음흉하고 어두운 미스터리가 아니라 어떤 무한한 가능성의 차원을 말하는 거다. ‘나는 이 아이를 모른다. 끝까지 모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었다. 모르는 인물을 작업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나이도 40대 중반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내가 나를 모른다. 이 정도 살면 알 줄 알았는데.(웃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주인을 어떻게 알겠냐’ 하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하는 지점도 있었다.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영화 제목을 ‘세계의 주인’이라고 지은 윤가은 감독
Q 주인을 둘러싼 세계는 한 겹이 아니다. 하나씩 더 파고 들어가게 만들어진 세계다. 이야기, 캐릭터, 감정의 설계가 구조적이고 치밀한데, 그것을 스타일로 과시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윤가은 영화’답다. 주인과 주변의 세계를 묘사하는 지금의 구조로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과했나?
과시할 스타일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아아! 정말 과시하고 싶다.(웃음)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들 때까지 내게 영화는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영화라는 것이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 그랬다. 아마 그게 영화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등바등하면서 기본을 익히는 과정을 지나왔는데, 어느새 ‘영화는 정말 이야기인가’ 하는 고민이 생겨났다. 내가 영화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강해졌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지금까지의 일관된 톤 앤 매너를 깨고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 영화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금 알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고.
주인은 너무 많은 면모를 지녔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하나로 규정되기 힘들다. 인간이 그렇다. 이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일관된 톤 앤 매너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면들이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는 프레임 안에 외 화면과 내 화면으로 주인을 보여주다가 완전히 새로운 프레이밍이 된다든가. 어떤 순간에 리얼리티를 확 벗어난다든가. 예를 들면 의문의 쪽지를 보여주는 장면도 주인이 쪽지를 받았을 때 느꼈을 공포, 불안, 호기심 등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그 쪽지의 문장을 제대로 직면하게 하는 식으로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일깨우게 한다든가. 이런 접근은 이 영화를 하면서 처음 해본 것 같다.
Q 성폭력 생존자들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게 쉽지 않다고 느꼈던 국면들도 있었나?
맨 처음 용기를 낼 때가 가장 힘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여성들 혹은 남성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일상에서의 성폭력들이 있다. 크든 작든 마주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있다면. 그와 동시에 이 ‘폭력의 역사’는 역사적으로 유구한 문제다. 특히 ‘친족 성폭력’은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지만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폭력이다. 많은 담론이 나오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현재까지 터부시되어 있고, 기본적으로는 잘 모르며, 그 잔혹함이나 고통을 정말로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 아주 사회적인 마음이 작동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회 안에 살고 있고, 생존자들은 매일 그 힘든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이 모두가 힘들어 하는 부분인 거다. ‘친족 성폭력’은 접근 과정도 힘들지만 들여다볼수록 그 고통과 상처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다양해서 평균치를 내기 힘들다. 개별적인 아픔들이 다 세세히 느껴지는 사례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더 많이 보편적으로 얘기되어야 한다.
내가 연구자도 활동가도 아닌데 어떡하지 싶으면서,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아픔을 관통하고 계신 생존자분들, 그리고 그 고통의 스펙트럼 안에 걸릴 수밖에 없는 모두를 내가 대표할 수 없는데, 라는 불안과 공포가 가장 컸다. 그것 때문에 이 소재를 쥐었다 놨다 한 것 같다. 저예산 영화부터 상업영화 버전까지 다 써봤는데 쉽지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냥 오만을 내려놨다. 관련된 이야기를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자.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생존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 정도의 마음을 품고 나니까 용기가 생기고 생존자분들 인터뷰하면서 그 용기가 더 커졌다.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Q 주인은 보는 이들에게 ‘인싸’ 같기도, ‘관종’ 같기도 하다. 그 수식으로 표현되는 주인의 일상 속 감정 표현 방식 자체가 이 영화의 용감함을 드러내는 중요 장치다. 주인 역 서수빈 배우와 이 부분을 중요하게 소통했을 듯하다.
맞다. 피해 생존자를 그릴 때 상처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그리거나 아니면 고결하고 완벽한 영웅으로 그리는 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싶었다. 실재하는 인물로. 실제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사람이지 않나. 어떤 부분에서는 주인이 조금 이상하고 못되게 느껴진다. 연애에 있어서는 서툴고 못된 면이 있다. 자기 마음대로인 면. 어떤 면에서는 속절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선한 측면도 있고. 한 인물 안에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데, 실제로 배우가 연기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서수빈 배우에게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오락가락해서 힘든 부분이 있냐고 물었더니, 매우 직관적으로 자신도 주인이 같다고 얘기해줬다. 그 부분이 아직도 고맙다. 주인이라는 인물이 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서수빈 배우가 걱정했던 장면들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수호(김정식)를 막 발로 차 버린다든가, 울컥함 때문에 어떤 행동이 확 나올 때 “혹시 제가 너무 폭력적이었나요” 하는 고민을 영화 완성 이후에도 얘기하곤 했다. 주인은 그냥 보통 사람이다. 엄청난 영웅도, 무력한 피해자도 아닌 너무 평범한 사람. 잘할 땐 잘하지만 실수할 땐 실수도 한다. 이 양쪽을 같이 다뤄야 했기에, 어떤 장면은 우리가 실수한 부분으로 남겨 두자는 얘기도 했다.

윤가은 감독은 누구나 슬플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는
보통 사람으로 주인을 그리고자 했다(제공=바른손이앤에이)
Q 주인을 둘러싼 주변 또래 캐릭터들도 세심하게 배치했다. 가람고등학교 친구들의 캐스팅은 일종의 그루핑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공을 들였을 텐데, 어떤 중요한 목표가 있었나?
주인이의 가까운 친구들부터 반 전체 친구들까지 그룹으로 앙상블 캐스팅을 해야 되는 목표가 있었다. 중요한 건 주인 역을 누가 할 것이냐에 따라서 주변 배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극중 주인의 친구들은 오디션으로 주인을 뽑는 과정에서 다 같이 즉흥 연기 워크숍을 했던 친구들이기도 하다. 주인 역에 서수빈 배우를 결정했을 때 서수빈 배우는 사실상 완전 신인이었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도 같이 신인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즉흥 연기 워크숍에 있었던 친구들이 단편영화 경험이 아주 많은 친구부터 전혀 없는 친구들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는데, 그들이 어울리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루핑을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모든 배우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했다. 연기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크고 너무 진심인 친구들이었다. 즉흥극을 할 때 그 친구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배워 온 것들을 내놓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건 배우가 자기 밑천을 다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무척 힘든 작업이다. 그게 스스럼없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똘똘 뭉쳐서 자기들끼리 굴러가는 지점이 저절로 마련되었다.
Q 그 외에도 주인이 함께 하는 봉사 모임과 주인의 주변 어른들 역시 그루핑이 되어 있다.
봉사 모임의 경우는 대장 격인 인주 언니, 즉 백현주 선배님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한다.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 대장으로 무조건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백현주 선배님의 연기를 너무너무 좋아할 뿐 아니라 그룹장이 되어 그룹 캐스팅도 같이 도와주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봉사 모임은 그야말로 앙상블 연기가 중요하다. 모임의 멤버들은 마냥 밝고 명랑하기만 한 언니들이 아니라 어떤 식의 룰이 깨지면 위태위태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발작하면서 화를 낸다든가, 누군가 좀 삐뚤게 나가는 순간에 그 인물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했다. 서로에게 지지대 역할을 하지만, 화가 났을 때는 확 돌아서는 모습도 과감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도 필요했고. 그런 캐스팅을 위해 백현주 선배님이 배우들을 추천해주시고 도와주셨다. 그래서 봉사 모임은 주인이라는 인물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때 또 다른 새로운 조명이 되어줄 수 있는 그룹이 되었다. 미도(고민시)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통해서 주인이 지금까지 어떤 고난을 거쳐 왔는지 과거가 환기되기도 하고, 주인이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나아가게 될지 조명해줄 수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사실 인주 언니의 이름도 ‘주인’을 거꾸로 한 이름이다.
주인의 주변에 포진한 어른들은 대중에게 더 친숙한 얼굴들을 캐스팅하려고 노력했다. 중심이 신인 배우들이다 보니 관객들에게 친숙한 얼굴들이 주인의 주변을 꽉 메꿔주고 있으면 주인의 세계로 들어가기가 수월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이 때로는 실수하기도 하지만 어떻든 주인의 주변에 있으려고 하는 어른으로서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윤가은 감독은 주인의 친구들은 주인과 합이 잘 맞는,
어른들은 어른의 역할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배우들을 캐스팅했다(제공=바른손이앤에이)
Q 주인의 엄마 역 장혜진 배우의 연기가 새삼 대단하다. 이미 어떤 과정을 통과하고 지금에 이르렀을 엄마의 심정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보여준다. 억세지 않고 다정하게.
고민이 많으셨다. 장혜진 언니가 잘하시는 연기라고 생각했고, 편하게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이 어떤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아이의 지지대로서 버텨주고 계속 지켜봐 준다는 것, 그 안에는 자신의 너무나 큰 잘못도 있다는 것, 앞으로도 이런 과정이 영원히 반복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엄마의 매우 다층적인 레이어들을 장혜진 배우님이 항상 마음에 품고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중에 편집실에서 이렇게 세심한 부분들을 품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해서 너무 죄송했다. 세차장 장면은 엄마가 백미러로만 보이고, 주인에게 휴지를 건네는 뒷모습만 나온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영화 촬영 중에 유일하게 장혜진 배우님과 부딪쳤다. 함께 영화 찍으면서 그렇게 부딪친 적이 없는데. 서로 ‘혹시 앞으로 나를 안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결국 중간 지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Q 주인의 남동생 해인(이재희)이 물건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하게 만든 설정도 눈길이 간다. 마술이 실패해서 사라지게 한 것들이 보일 때, 결국 빠져나오는 아픔이 있지만 계속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연습하듯이 어딘가 넣어 놓은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듯한 설정이다.
그건 복잡한 계산을 했다기보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는 해인이 태어난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집안에 짙게 깔린 비극의 냄새를 맡으면서 자랐을 거다. 동시에 가족들이, 특히 누나와 엄마가 어떤 방식으로 그 비극을 끝없이 마주하고 계속 경신하면서 넘어서는지 그 모습을 봤을 거다. 그런데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한 각인은 되어 있고. 아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뭔가 사라지게 할 만한 어떤 신비로운 능력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시에 아이로서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다. 마술쇼 정도는 해줘야 가족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매우 아이다운 마음, 무의식적인 이끌림도 있었을 것 같다. 열심히 사는 아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없이 애쓰는 아이의 씩씩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 해인이는 계속 마술을 연습할 거다.
Q 후반부, 주인이 동생 해인이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 숨겨 둔 편지더미들과 해인이 쓴 편지를 발견했을 때, 그 자리에서 막 오열하거나 거기 깊게 머무는 게 아니라 금방 일어나서 동생과 놀아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가 그 순간을 오래 붙들지 않고 심플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에 대한 고민이 진짜 많았다. 주인이 그 편지들을 보고 오열하면서 동생이나 엄마와 “왜 그랬어” 하면서 감정을 막 나누는 게 아니라, 이런 것조차 이 집안에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어떤 것이리라 생각했고, 주인의 매일의 노력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는 있다. 고통 속으로. 고통은 존재하니까. 아마도 주인에게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로 계속 빠져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 순간 자기를 건져내는 힘을 계속 사용하고 훈련해 온 친구라는 정도로 시나리오에 묘사했었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찍을 것인가 고민할 때 촬영감독님께서 조언해주셨다. 콘티를 짤 때 인물이 화면에 꼭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물 그림자의 뉘앙스가 존재할 때의 느낌을 끝없이 얘기해주셨다. 그게 엔딩 샷이기도 했고. 그런 엔딩 샷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그런 이미지들을 콘티 때 가져오면서 작업했던 터라 그 장면도 잘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촬영감독님께 가장 감사한 부분이기도 하다.
주인의 엄마와 남동생은 주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존재들이다(제공=바른손이앤에이)
Q 무엇보다 주인이 겪은 과거의 고통을 재현하지 않고, 그것을 사과에 담는 방식이 놀라웠다. 주인이 사과를 보면서 힘들어하다가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니까. 고통을 사과에 몰아줬다고 할까.
정확히 내가 생각했던 거다.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그건 과거의 고통을 그냥 빈칸으로 남겨 두는 방식이었다. 너무 흔한, 나도 오늘 먹었던 사과라는 ‘보통의 것’을 통해 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것과 계속 씨름하면서 심지어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볼까요”라고까지 말하는 주인의 노력을 담는다고 생각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 한국 관객분들 가운데 극 중에 나오는 사과가 혹시 ‘사과하다’ 할 때의 사과를 은유하면서 결국 주인이 사과를 거부하는 것 아니냐고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게 큰 충격이었다. 촬영 때는 아무도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얘기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지만,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은유한 건 전혀 아니었다. 너무 일상적이고, 아주 흔한 어떤 것에 모든 고통을 다 놓아보려고 했다.
Q 인간의 양면성이나 복잡함을 비릿하고 잔혹하고 적나라하게 다루는 영화가 있고, 어떤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국에는 다정하게 다루는 영화가 있다. ‘윤가은 영화’는 후자다. ‘윤가은 영화’가 매번 걸어가게 되는 이런 방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진실이고 사실이고 현실이라서. 그런데 나는 영화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영화는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긴 하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은 아닌 것 같다. 현실이 물이라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이 매번 다른 모양으로 담기는 거니까. 내 삶이 퍽퍽하고 괴롭고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를 때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했고, 그것이 나의 인생을 10만 분의 1 정도 구원해주었다. 적어도 그 2시간만큼은. 그런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기에,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 영화들을 계속 떠올린다. 사람들이 힘들고 비참한 것은 많이 조명하고, 다정한 것은 잘 조명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양면이 똑같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다. 조금 더 현실에 있는 기적들을 조명하면 좋겠다. 그것 또한 리얼리티라고 믿는다. 있을 수 없는 판타지가 아니라 존재하는 기적, 너무 흔해서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고 마는 것들을 더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