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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함 대신 부산다운 선택이 필요하다
30회 부산국제영화제 돌아보기
안전함 대신 부산다운 선택이 필요하다
30회 부산국제영화제 돌아보기
글 _ 김은형(한겨레신문 기자)
사진 제공 _ 부산국제영화제
2025-10-15
올해로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9월 26일 열흘간의 여정을 마쳤다. 3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의 행사는 여느 해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 홍콩 배우 양조위, 일본 아이돌 출신 니노미야 카즈나리 등 아시아권 스타뿐 아니라 기예르모 델 토로, 마이클 만 같은 처음 내한하는 구미의 거장들도 대거 부산을 찾았다. 마스터클래스, 액터스 하우스 등 기존 행사들은 늘어났고 봉준호 감독, 배우 강동원 같은 스타 영화인뿐 아니라 언론인 손석희, 소설가 은희경 등 비영화인 유명인들이 무대에 오른 특별 프로그램 ‘까르뜨 블랑슈’가 새로 생겼으며 예산 문제로 사라졌던 포럼 비프가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등 30돌에 걸맞은 화려함과 무게감이 채워졌다.
9월 중순으로 행사가 당겨지면서 개천절 등 공휴일이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지난해보다 2만 명이 늘어난 17만 5천889명이 영화제의 공식·비공식 상영작 328편을 관람한 것으로 영화제는 밝혔다. 이 밖에도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픈토크’ 등 티켓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에 모인 영화제 참가자도 6만 3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가 정상화된 뒤에도 다소 썰렁했던 영화의전당 앞 광장이 모처럼 북적이며 달라진 열기는 영화제를 찾은 이들의 피부로 느껴졌다.
풍부하고 다채롭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빠진 게 있다면 이른바 한국영화 ‘3대 메이저’ 배급사, 즉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주관하는 행사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인 CJ ENM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각각 포럼, 라인업 공개 등을 하며 파티를 열었지만 올해는 없었다. 영화제 열기와는 반대로 얼어붙은 영화 산업의 극심한 온도 차가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축제의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던 상영관 주변과 달리 포럼 비프에서는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다. 도약하던 한국영화 산업과 함께 첫 삽을 떴던 부산국제영화제 30주년에 이렇게 명암이 갈리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프랑켄슈타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왼쪽).
미드나잇 패션 <프로텍터> 애드리언 그런버그 감독과 밀라 요보비치 배우
특별 프로그램 ‘까르뜨 블랑슈’에 참여한 봉준호 감독(왼쪽)과 손석희
부산이 지나온 30년
1990년대 중반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격변의 시절이었다. 홍대 앞에 인디밴드들이 쏟아져 나왔고 K-팝의 역사를 시작한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되었다. 씨네코아와 동숭아트센터 등 예술영화 극장에 관객이 북적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졸지 않고 영화를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농담이 돌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11만 관객을 돌파했다. 1995년 주간지 ‘씨네21’, 월간지 ‘키노’ 등이 창간되었으며 강우석(시네마서비스), 차승재(우노필름), 심재명(명필름) 등 새로운 세대의 제작자들은 이전 세대에서 ‘방화’라고 불리던 한국영화를 젊고 세련되게 바꾸기 시작했다.
<투캅스 2>(강우석 감독), <은행나무 침대>(강제규 감독), <꽃잎>(장선우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감독) 등 한국영화의 장르적, 소재적, 예술적 한계를 깨부순 영화들이 속속 도착한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출항했다. 영화제도 낯선데 서울도 아닌 부산이라니. 곱지 않은 시선 속에 9월 13일 수영만 야외상영관에서 열린 개막식은 우려와 냉소를 보기 좋게 뒤집었다. 6천 명이 넘는 관객 중 일부는 담을 넘으면서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개막작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을 비롯해 31개국에서 온 169편의 영화가 9일 동안 상영되었고 당시 영화제 주무대였던 남포동은 축제의 분위기로 흥청거렸다. 낮에는 극장이 북적거렸고 밤에는 해운대 앞 포장마차가 끓어올랐다. 다른 해외 영화제에서 보기 힘든 에너지와 격식 없는 열기에 해외 게스트들도 매료되었고 입소문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 이런 이력이 한 해 두 해 쌓이면서 해외 영화인들에게 “아시아 영화를 보려면 부산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새겨지며 불과 10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당시 한국영화 산업과 대중문화 전반의 지형 변화가 기반이 되었지만 핵심은 인적 역량에 있었다.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등 당시 부산 기반의 영화인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영화제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열띤 토론과 준비 과정을 거쳐 이들은 영화진흥공사 사장, 문화부 차관 등을 역임한 김동호 씨를 초대 집행위원장, <칠수와 만수>(198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을 만든 박광수 감독을 부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하며 아시아 중심의 비경쟁(일부 경쟁) 영화제로 틀을 갖춰 부산 앞바다에 돛을 올렸다.
이 가운데에서도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헌신적인 노력에 바탕을 둔 아시아 영화의 발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리매김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1회부터 참여했으며 30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비롯해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 등 훗날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시아 거장들은 신인 시절부터 부산에 초청받으며 성장했다. 1998년 데뷔작으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중국의 지아장커도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200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출석 도장을 찍듯 부산을 자주 찾은 지아장커는 지난해 “제 영화 인생이 부산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은 늘 그리운 곳”이라고 부산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순탄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2014년 부산시가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취소 압력을 넣었지만, 영화제는 상영을 강행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압과 내홍이라는 격랑에 휘말렸다. 당시 부산시는 보조금 삭감과 함께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겨냥해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고, 이는 영화제의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적 논란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대대적 조직 개편이 이뤄졌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에 불거졌던 갈등의 불씨가 202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2023~2024년 영화제는 집행위원장 공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또 부산국제영화제의 내실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2017년 칸국제영화제 출장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국내외 영화인들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줬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사후 그의 헌신과 역량을 대신할 만한 인물의 부재와 이로 인한 아시아 신인 발굴 역량의 약화는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한 부산국제영화제의 과제 중 하나다.
1990년대 초반 국내 첫 국제영화제로서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과 운영을 논의한 인력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 이용관, 전양준, 김동호, 故 김지석
아쉬움 교차한 ‘경쟁 부문’ 도입
박광수 이사장과 정한석 집행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새 틀을 갖춘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영화제 역사의 분기점이 될 만한 변화를 시도했다. 본격적인 경쟁 영화제로의 변신이다. 알려졌다시피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는 모두 경쟁 영화제다. 영화제가 관심을 끌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쟁 부문의 수상 결과다. 부산은 뉴커런츠와 지석상 등으로 일부 경쟁이 도입되었지만 젊은 재능의 발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목을 끌 만한 이른바 ‘네임드’는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박광수 이사장은 경쟁 부문 도입에 대한 이유에 대해 “경쟁 부문을 신설하는 것이 아시아 영화를 부각하는 데 있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제 개막 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경쟁 부문 도입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내보이기도 했다. 경쟁 부문이 의미와 파워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게감 있는 감독의 초청과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는 ‘프리미어’가 중요하다. 3대 영화제가 닦아 놓은 권위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신작을 들고 올 거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이에 대해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를 원칙으로 하나, 아시아 프리미어(아시아 최초 상영)도 대상이 될 것”이라고 현실적 제약을 인정하는 답변을 내놨다.
올해 초청된 부산의 경쟁작 14편 가운데 4편을 제외한 10편이 월드 프리미어였다.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대상)을 수상한 미야케 쇼 감독, 심은경 주연의 <여행과 나날>, 서기의 감독 데뷔작으로 베니스 경쟁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뒤 부산에 온 <소녀>, <아노라>(2024)로 칸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휩쓴 션 베이커가 각본, 제작을 담당한 쩌우스칭 감독의 <왼손잡이 소녀>, 올해 칸 경쟁 부문에 막차를 탔던 중국 비간 감독의 <광야 시대>가 월드 프리미어가 아닌 작품들이었다. 이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 경쟁 부문으로 온 것에 고개를 갸우뚱 한 이들도 있지만 면면에서 보듯 경쟁 부문 관심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임을 알 수 있다. 전체 14편 가운데 한국 작품은 4편으로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 등 신인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과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이제한 감독의 <다른 이름으로> 등 연출 경력이 풍부한 감독들의 작품이 절반을 차지했다.
<여행의 나날>로 부산을 찾은 심은경 배우, 다카다 만사쿠 배우와 미야케 쇼 감독(왼쪽).
<왼손잡이 소녀>의 각본과 제작을 맡은 션 베이커 감독
경쟁 부문 초청작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포토콜 현장
경쟁 부문 시상인 ‘부산 어워드’의 첫 대상 수상자는 <루오무의 황혼>을 공개한 장률 감독이었다. 2005년 <망종>으로 뉴커런츠상을 받고 2016년에는 <춘몽>이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장률이 부산 어워드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된 건 자연스러워 보였다. 씨네21 송경원 편집장은 “장르나 국가, 신인과 유명 감독의 안배가 적당히 이뤄진 공들인 라인업으로 현재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져올 수 있는 아시아 영화 중 최상의 목록을 만들었다”고 이번 경쟁 부문 라인업을 호평했다. 그러면서 “작품들의 퀄리티에서 크게 빠지는 작품이 없었고, 경쟁 부문의 지향점도 어느 정도 보여주면서 경쟁 부문에 대한 인지도를 관객들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개막식에서 경쟁 부문과 심사위원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실수는 ‘옥에 티’였다. 심사 기준을 묻는 사회자 이병헌의 질문에 “개막작 <어쩔수가없다>를 보여준다고 해서 왔다”는 심사위원장 나홍진의 말은 농담이었겠지만 부적절했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경쟁 부문 초청 감독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한 영화인은 “농담이라고 하기엔 경쟁작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유감스러웠다”면서 “비단 심사위원장의 실수뿐 아니라 올해 영화제의 핵심인 경쟁 부문에 힘을 싣지 않고 스타성이 강한 개막작에 더 포커스를 맞춘 개막식 연출도 납득하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경쟁 부문 심사위원 나홍진 감독, 한효주 배우, 율리아 에비나 바하라 프로듀서,
양가휘 배우, 난디타 다스 배우 겸 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코고나다 감독
경쟁 부문 ‘부산 어워드’ 수상자들. 왼쪽부터 대상 <루오무의 황혼> 장률 감독,
감독상 <소녀> 서기 감독, 심사위원 특별상 <충충충> 한창록 감독,
배우상 <지우러 가는 길> 이지원 배우,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하야시 유타 배우
ACFM, 아시아 공동제작 허브로 성장
올해 부산의 또 다른 성과는 마켓에 있었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은 54개국 1천222개사 3천24명이 등록하며 지난해보다 15% 가까이 성장했다. 올해 영화제가 개최 일정을 당기면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와 일정이 겹쳐 일부 국가나 회사가 참여를 포기했음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셈이다. 총 방문자 수도 3만 명을 넘겨서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ACFM은 올해 프로그램 3개를 새롭게 론칭했는데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을 다루는 ‘이노아시아(InnoAsia)’, 정보 공유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 협력의 새로운 기반을 제공하는 ‘The A’, 그리고 다큐멘터리 생태계의 국제적 허브 역할을 하는 ‘독스퀘어(Doc Square)’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콘텐츠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번 마켓은 국제 공동제작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아시아 영화 산업의 허브로서 부산이 자리매김하는 데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는 “올해는 예년보다 마켓 부스에 일본 기업들을 비롯해 국외 회사들도 많이 들어오고 세일즈보다 공동제작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이뤄졌다”면서 “배지 발급자의 수도 도쿄나 홍콩영화제보다 훨씬 많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 교류와 공동제작의 허브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 산업이 활황일 때는 공동제작의 필요성을 못 느껴 한국 제작자들이 적극적이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데, 국내 제작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해결책 중 하나로 유럽처럼 공동제작이 늘어나면 다양한 영화를 깊게 보는 관객층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책임을 맡아 2년 만에 가파른 성장을 이끈 김영덕 마켓위원장은 올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3개나 론칭한 이유에 대해 “프로그램이 다양하면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예측을 뛰어넘는 논의와 성과들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콘텐츠 산업을 하려면 무조건 부산에 직접 와서 보고 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츠 기업뿐 아니라 테크 기업들을 모으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마켓의 흐름에 대해 “만들어진 작품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원천 지식재산권(IP)을 선점하려는 걸음들이 빨라졌다”면서 “초기 기획개발 과정부터 공동제작자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이에 따라 스토리 마켓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맨 위부터 ACFM의 ‘이노아시아 부트캠프 Ⅱ: 미니스튜디오 AI’와
‘The A 서밋 Ⅱ: 아시아 필름마켓 리더스 서밋’, ‘독스퀘어: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토크’ 현장
서른 이후, 영화제의 방향은?
지난해까지의 어수선한 운영에 틀이 잡히며 30돌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지만 성과만큼 풀어야 할 숙제들도 남았다. 올해는 30회라는 특별한 타이틀 때문에 가능했지만 경쟁 영화제로의 영향력과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라인업을 계속 병행하기는 쉽지 않다. 칸, 베니스 등 유수 영화제의 화제작들을 상영작으로 가져오면 대중들의 호응은 뜨겁지만, 경쟁 부문이 받는 주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 신진 영화인의 ‘발굴’이라는 부산이 오랫동안 해 왔던 역할을 경쟁 부문 강화와 함께 가져갈 수 있을지도 고민해볼 문제다. 경쟁 부문이 신설되면서 지석상은 없어졌지만, 뉴커런츠상과 여러 후원자의 타이틀이 들어간 상들은 유지되고 있는데 ‘부산 어워드’ 5개 부문 상에 가려져 다른 상들이 들러리처럼 보이는 것도 장기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경쟁 부문이 생기면서 폐막작은 자연스럽게 그해의 경쟁 대상 수상작으로 정리되었지만, 영화의 문을 여는 개막작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 영화 <전,란>을 개막작으로 선정해 잡음이 일었는데, 올해는 영화제 기간 중인 9월 24일 개봉한 <어쩔수가없다>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두 작품은 거장 박찬욱이 각각 제작, 감독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화제성 있는 개막작으로 관심을 모으려는 영화제 쪽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부산 정도의 명성을 가진 영화제라면 안전한 선택보다는 좀 더 스스로를 믿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더불어 고질적 문제인 티켓 예매의 어려움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의 모든 티켓 예매 방식은 온라인 예매로 전환되었다. 평일 오후 2시 예매가 시작되면 말 그대로 ‘순삭’ 되는데 이 시간과 예매 방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관객들은 한정되어 있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더라도 해결책을 찾기 위한 영화제 쪽의 구체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제공=박경희 한경매거진앤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