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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의 재취업은 붕괴이자 공포
<어쩔수가없다>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CJ ENM
대담 _ 주성철(영화평론가, 씨네플레이 편집장), 김경수(영화평론가)
2025-10-15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9월 24일 개봉)가 개봉 2주 차에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관객들 사이에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공감하는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해석하는 이와 과잉이라 여기는 이들이 각자의 시선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풍경은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맞이하는 풍경이라 신선하기까지 하다. 영화라는 예술이 얼마나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취향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어쩔수가없다>의 열기. 주성철, 김경수 두 영화평론가가 <어쩔수가없다>를 들여다보며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박찬욱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직장에서 해고된 주인공 만수의 잔혹한 재취업기는 결국 우리가 아는 세상의 붕괴를 예견하고 있다는 이야기.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흥미진진하다.
Q<어쩔수가없다> 개봉 이후 반응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
주성철
영화평론가, 씨네플레이 편집장
(이하 주성철 평론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개봉하면 늘 그랬다.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는 건 박찬욱 감독이 변함없이 자기 세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별점을 주고 있는데, <어쩔수가없다>는 5개 만점에 4개 반이었다. 한 줄 평은 이렇게 썼다. ‘비스콘티부터 주성치까지.’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JTBC 영화 토크 프로그램 <방구석1열>에 박찬욱 감독이 출연했을 때 “나는 늘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흥행하는 영화를 꿈꾼다”라고 했다. 패널 한 명이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하자, 변영주 감독이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되면 이상한 나라 아니야?”라고 했다.(웃음) 그때 박찬욱 감독은 태생적으로 호불호를 부르는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의 팬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는 오랜만이다. 박찬욱 감독은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은연중에 다루면서 어느 순간 비극적이고 마술적인 영역으로 끌고 가다가 감정적으로 압도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미학적 구도는 잘 설계되었는데, 전작들에 비해 그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약했다. 전반부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보는 내내 무덤덤했다. 그래도 엔딩의 벌목 장면이 뭔가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수작보다는 괴작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경수 영화평론가(이하 김경수 평론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왼쪽)과 김경수 영화평론가
Q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부터 원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색해 왔다. <어쩔수가없다>도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원작 <액스>를 각색했는데, ‘박찬욱스러운’ 특징이나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나?
주성철 평론가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3), <박쥐>(2009), <아가씨>(2016)를 각색할 때 원작의 기본 설정만 남겨 두고 거의 바꾸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쩔수가없다>는 원작 <액스>의 흐름을 많이 가져왔다. 그게 가장 의외였다. 원작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만수(이병헌)의 아내 미리(손예진)가 남편의 살인을 눈치 채지 않나. 원작이나 이를 먼저 영화화한 코스타 가브라스의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6)는 가족이 주인공의 살인을 모른다. 이 변화가 ‘박찬욱스러운 특징’이다. 예전부터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지금 떠올리면 가장 아쉬운 대목이 미도(강혜정)가 진실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미도가 오대수(최민식)와 자신이 부녀 관계인 것을 모른 채 영화가 끝난 데 대한 마음의 부담이 컸다는 얘기였다. 미리가 만수의 행각을 눈치 챈 것은 박찬욱 감독이 줄곧 생각해 온 흐름에 닿아 있다.
배경을 2025년으로 옮겨 온 것도 재미있다. 원작에서는 1990년대 산업의 자동화와 밀레니엄에 대한 이야기, 자동화로 인해서 인간이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는 25년 동안 제지 업계에서 일했는데, 영화 속 현재가 2025년임을 미루어보면 2000년대에 일을 시작했을 거다. 즉, 박찬욱 감독이 <어쩔수가없다>를 통해서 원작 소설과 동일한 구조를 취하되, 소설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쓰려는 욕망 같은 게 느껴졌다.
또 하나. 원작의 주인공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영화의 유만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약간 웃픈(우스우면서 슬프다) 면이 강조된다. 원작은 매우 건조한데 영화는 매우 웃기려 했구나 싶었다. <헤어질 결심>(2023)에서 ‘애널리스트’로 웃기려던 것처럼. 그리고 만수는 아버지가 남긴 총으로 고시조(차승원)를 죽이는데, 그때 흘린 탄피를 경찰이 발견하지 않나. 원작에서는 탄피가 안 드러나는데, 군대 갔다 온 한국인이라면 탄피를 당연히 찾는다. 군대에서 탄피 못 찾으면 엄청 혼나니까.(웃음) 우리만의 것들을 심어 놓은 게 재미 포인트이자 ‘박찬욱스러운 포인트’였다.
김경수 평론가
Q<어쩔수가없다>를 두고 국내외에서 현대사회, 특히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룬 봉준호의 <기생충>(2019)과 비교하는 시각들이 많다.
주성철 평론가
일단 두 영화 다 취업을 하는 얘기다. 박찬욱, 봉준호 두 감독은 계급성의 문제에서 취업을 한다는 것,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로 있는다는 것의 의미를 공통적으로 다룬다.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해 온 비교이고, 박찬욱 감독이 이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봉준호 영화와의 비교 요소를 유머로 사용한 것 같다. <어쩔수가없다>의 댄스파티 신은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하니까, ‘뭐 어때’ 하면서 밀고 나간 박찬욱 감독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유머다.
미리가 댄스파티 분장을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1995)의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로 한 설정은 ‘박찬욱스러운 특징’과도 연결된다. 애니메이션 엔딩에서 포카혼타스는 영국 남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게 <어쩔수가없다>의 복선 같았다. 결국 미리가 남편 만수의 행각을 알고 그냥 따라가지는 않겠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붕괴되겠구나를 눈치채게 하는 설정이었다.
댄스파티 장면에서 미리는 치과의사 역 유연석과 더 잘 어울렸다.(웃음) 딸 리원(최소율)이는 <기생충>의 부잣집 막내 다송(정현준)이 같았다.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박사장(이선균) 집의 공간을 명백히 훑는다. 지하는 나중에 드러나지만, 1층과 2층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어쩔수가없다>에서는 만수의 집 안에서 1층과 2층이 이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기생충>은 계급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데,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의 중산층을 만날 뿐 계급이 다른 이들을 만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사회적 구조에 집중하면서 거시적인 측면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박찬욱 감독은 개인의 무의식 속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그래서 두 감독이 경쟁하는 게 재미있다.
김경수 평론가
주성철 평론가
박찬욱과 봉준호, 두 감독이 실은 묘하게 누가 김기영 감독의 진짜 후계자인지 경쟁하는 듯하다. 나는 그래서 두 사람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에서 김옥빈, 김태리, 탕웨이의 캐릭터는 사실상 모두 하녀다. 세 영화가 박찬욱의 ‘<하녀> 3부작’ 같다. <기생충>에서는 가족 전체가 (하녀처럼) 부잣집에 취업한다.
<어쩔수가없다>와 <기생충> 모두 똑같이 이층집이 등장하는데, 역시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연결되고 변주된다. 봉준호 감독은 김기영 감독 영화에는 지하실이 없었으니 <기생충>에서 지하실을 만들면 어떨까, 상상한 것 같다. <어쩔수가없다>는 옥상으로 간다.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들 시원(김우승)에게 만수가 온실에서의 살인 행각을 들킬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층집 설정을 놓고 김기영의 두 후배가 경쟁하는 구도, 자신들이 좋아했던 선배 감독의 유산을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그림 자체가 아름답고 참 좋았다.
Q만수가 25년간 몸담아 온 제지업, 사양산업이 되어 가는 제지업은 극장과 영화에 대한 은유로도 읽을 수 있다. 미리가 만수에게 ‘식물인간’이라고 농담을 하는데, 기계,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식물인간화 되어 가는 사회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어떻게 느끼나?
주성철 평론가
제지업은 원작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어쩔수가없다> 엔딩에 나무가 무분별하게 벌목되는 장면이 나온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말장난을 좋아한다. <헤어질 결심>의 “원전, 완전, 안전”과 <박쥐>의 ‘행복한복집’처럼 <어쩔수가없다>에서도 ‘문 제지, 문제지’ 같은 말장난을 포함해서 생각해보면 나무의 벌목 문제로 이어지는 연관성이 있다. 원작과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에는 없는데, <어쩔수가없다>의 리원이는 첼로를 연주한다. 첼로도 나무로 만든다. 고시조가 원작에서는 꽃가게 주인인데, <어쩔수가 없다>에서는 구두가게 점원이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 역시 아날로그한 물질이다. 식물, 나무, 종이, 첼로, 구두는 다 이어지는 하나의 세계다. 이렇게 나무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원작의 제지업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았을까.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이 지녀 온 모티프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 혼자 있고 아무것도 없는 허무주의의 풍경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가 바닷가에 묻히고 난 다음에 해준(박해일)이 바다를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없는 풍경이 그렇다. <어쩔수가없다>에서도 만수가 재취업에 성공해서 공장에 갔는데, 잘려서 쌓인 나무들만 있고 아무도 없다. 인간이 없는 풍경은 밀레니엄 이후 모든 것들이 자동화되는 사회 전체에 대한 불안으로 확장된다. 제지업은 물리적으로 만져지는 종이를 통해서 유지되는데, 2000년대 이후는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이지 않나. 언제든 소멸될 수 있는 전기 신호이자 비트 덩어리인 디지털. 그렇기 때문에 <어쩔수가없다>의 엔딩은 종이, 나무, 필름을 넘어서 이 세계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 그런 공포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이 감독으로서의 성숙기인 60대에 접어들어서 이런 공포를 서서히 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좋아해서 제지업에 꽂힌 것도 있겠고. 종이는 책의 기본 재료이고 책은 올드 미디어가 되어 가니까.
김경수 평론가
Q캐릭터 활용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유만수와 아내 이미리, 경쟁자 구범모(이성민)와 그의 아내 이아라(염혜란), 최선출(박희순), 구시조 등. 아내들 옆에 있는 젊은 남자들까지 구조적 연결성이 보인다.
주성철 평론가
유만수가 죽이는 인물이 원작에선 7명이었는데 3명으로 줄었다. 캐릭터에 집중하려는 의도라고 봤다. 그리고 <액스, 취업에 관한 안내서>는 18세 관람가인데, <어쩔수가없다>는 15세 관람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려는 안간힘이 15세 관람가 등급에 들어 있다.
유만수와 구범모는 서로의 말을 따라 하고 상황을 공유한다. “내가 25년 종이밥을 먹었고….”라는 말은 구범모 대사인데 유만수가 따라 한다. 또 유만수가 구범모에게 집 밖 계단에 있을 때 핸드폰이 제일 잘 터진다고 했더니 나중에 구범모가 친구와 통화하다가 “야, 여기가 제일 잘 터지는데 무슨 소리야”라면서 유만수의 말을 따라 한다. 두 사람이 적대관계 같지만 실은 같은 처지인 걸 공들여 보여주는 방식이라서 좋았다. 그리고 범모가 했던 말을 만수가 아내 미리에게 틀리게 옮기는 건 전형적인 개그콘서트식 유머다.(웃음)
<헤어질 결심> 초반에 해준이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숏이 있다. 그것은 맨 마지막에 바닷가에서 다시 서래가 아래 있고 해준이 위에 있는 구조로 반복된다. 박찬욱 감독은 자기 세계에 빠져 있어서 다른 세계를 짓누르는 남자 캐릭터를 계속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 <롤리타>의 험버트를 보는 듯하고 유만수 캐릭터도 약간 비슷하다.
만수는 구범모를 통해서 자신의 불안을 보고, 고시조를 통해서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미래를 보고, 최선출을 통해서 아내가 떠난 후의 자신을 발견한다. 유만수를 셋으로 찢어놓은 듯한 캐릭터설정이다. <올드보이>에서는 오대수가 휴대전화 소리를 들려주고, <헤어질 결심>에서는 기도수가 유튜브를 찍은 것처럼 <어쩔수가없다>에서 최선출이 릴스를 찍는 식으로 현실 남자들의 모습을 넣은 것도 발견된다. 특히 최선출은 요즘 비난받는 ‘영포티’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웃음)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남성들에 대한 캐릭터 구성이 돋보였다. 박찬욱 감독이 반 농담으로 <아즈망가 대왕> <멋지다 마사루> 같은 1990년대 일본 개그만화를 영화화하고 싶다고 했는데, 세 남자도 일본 개그만화 캐릭터들의 영화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만수의 딸 리원도 흥미롭다. 리원은 지금까지 박찬욱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다.
김경수 평론가
Q유머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어쩔수가없다>의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았던 관객들 중에는 이 영화의 유머가 관객을 소외시킨다는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어쩔수가없다>의 유머가 불편했다. 인물들에게 덧씌워진 편견을 뒤집는 게 아니라 편견을 그대로 끌고 가면서 구사하는 유머이기 때문에 올드하게 다가왔다. 파티 후 만수와 미리가 싸우며 나누는 대화에서 불륜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중년 남자의 심정이 드러나는데, 너무 알려져 있는 방식대로 욕망이 표층에 머무른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욕망들이 뒤집혀야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런 방식의 풍자를 우리는 숏폼 코미디에서 이미 많이 보고 있다.
김경수 평론가
주성철 평론가
댄스파티 신을 다시 얘기하면 유연석과 손예진이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있으니까 바람의 증거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병헌에게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인 너와 내가 커플”이라는 손예진의 말을 들으면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오독하는 사람들에게 코멘트를 하는 느낌도 든다. 이걸 보면 안 되고 저걸 봐야지 하는 식으로.
‘고추잠자리 신’은 주성치 영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비슷한 장면이 <홍콩 레옹>(1996)에 나온다. 사실 만수와 범모는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모를 거다. 관객만 안다. 자막이 있으니까. 이 또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에 관람법이 바뀐 당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여주겠다는, 달라진 영화 관람법을 역이용하는 장면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고추잠자리 신’이 너무 클라이맥스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첫 번째 살인인데. 박찬욱 영화는 촘촘히 쌓아 올려서 마지막에 쾅 때리는 게 있다. <올드보이>는 물론이고 <헤어질 결심>도 엔딩에서 해준이 바닷가를 헤맬 때 받는 고양감이 있었다. ‘고추잠자리 신’은 감독 자신이 너무 좋아서 만든 장면이고, 너무 마음에 들지만, 어쩔 수가 없이(웃음) 너무 클라이맥스 같다. 굳이 이 영화의 패착을 꼽는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Q앞서 언급된 것처럼 <어쩔수가없다>는 그 제목의 뉘앙스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영화 내내 ‘어쩔수가없다’의 희비극적 뉘앙스가 잘 살아 있다고 보는지?
주성철 평론가
그렇다. 박찬욱 감독은 <액스>라는 제목을 <어쩔수가없다>로 바꾸면서 주인공의 비겁함을 담고 싶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원작 소설이나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는 주인공의 자기 합리화가 엄청나다. 원작에서 아내가 주인공에게 “상담받으러 가자”고 계속 얘기한다. 코스타 가브라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상담사에게 자신이 왜 재취업을 해야 하는지 강변한다. 나중에는 살인을 하면서 “내가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궤변도 한다. 원작을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남성 주인공의 이런 자기 합리화가 불편할 수 있다.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영화 초반 만수의 회사 외국계 최고경영자(CEO)가 황급히 도망치면서 이 말을 흘린다. 만수가 “어쩔 수가 없다”라고 할 때도 그냥 스쳐 가듯 한다. 옛날이었다면 만수가 카메라를 보면서 혹은 누군가에게 “어쩔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을 것 같은데.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좋아한 원작을 각색하면서 만수의 궤변을 줄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관객의 취향에 따라 <어쩔수가없다>에 대해 호불호가 생기는 건 이해하지만 해고나 재취업 등 현재의 문제를 너무 희화화했다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감독이 애쓴 지점이 많다.
어쩌면 만수의 1인칭 내레이션을 넣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내레이션을 일부러 배제함으로써 인물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고 그게 좋았다. <어쩔수가없다>의 만수에게서 시대 착오적인 느낌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은 분명히 했다. 다만 ‘어쩔수가없다’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희비극성을 ‘고추잠자리 신’에서 다 쏟아내는 바람에 후반에는 그 힘을 잃은 것 같다.
김경수 평론가
Q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이 절제와 여백이 많은 ‘미니멀리즘’의 영화였다면 <어쩔수가없다>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맥시멀리즘의 영화’라고 밝혔다. 실제로 스크린에서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나?
주성철 평론가
<어쩔수가없다>에서 영혼의 단짝이라 할 조영욱 음악감독과의 협업은, 아…. 다른 표현을 찾고 싶지만 할 수 없이 ‘종합선물세트’다.(웃음) 그리고 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은 오프닝과 엔딩의 음악이 처음으로 똑같았다는 거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를 처음과 끝에 배치했는데 무척 아름다웠다. 박찬욱 감독이 평소에 좋아한 플레이 리스트를 다 쏟아낸 느낌이었다.
음악 선곡은 무척 좋았다. 리원이의 첼로 연주가 처음엔 끊기다가 온전히 한 곡을 다 연주할 때의 감동도 있었다. 그리고 박찬욱의 세계라는 TV 애니메이션이 존재한다면, <어쩔수가없다>는 극장판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어쩔수가없다>의 제지공장은 <복수는 나의 것>(2002)의 세계와 같다. 만수가 시조가 죽일 때 카메라가 풀숏을 찍으면 반쪽은 파도 치는 해안가를, 반쪽은 만수와 시조를 잡는다. <헤어질 결심>의 세계가 보이는 거다. 박찬욱의 모티프 가운데 하나인 벌레가 들끓는 장면은 <어쩔수가없다>에 두 번 나온다. 고시조의 눈빛에서 보이는 변태적 감각도 ‘박찬욱 월드’를 이루는 요소다. 즉,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의 총합이자 지금껏 숨겨 온 취향의 총합이다. 그런데 약간 불균질하다. 이 불균질함이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김경수 평론가
Q결국 <어쩔수가없다>는 YES인가, NO인가?
주성철 평론가
YES.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덧붙여 얘기하고 싶다. 핵심은 ‘결국 만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이다. 아내와의 관계는 달라질 것이고, 만수의 재취업 목적 중 하나가 퇴근하고 동료들과 한잔하는 재미였는데, 재취업을 하니 현실은 완전 혼자다. 딸의 첼로 레슨 비용도 감당하려면 지금 급여 수준으로는 어려울 게 뻔하다. 직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한 급여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직장에 다녀야 신용대출이 가능하고, 계속 대출을 일으켜야 유지될 수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 기계가 원청 업체로 보이고 만수가 그 기계가 다니는 길목에서 이리저리 걸림돌이 되는 모습도 등장한다. 그래서 엔딩이 무척 공포스러웠고, 굉장히 좋았다.
NO.
엔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엔딩으로 가기까지 전반적으로 불균질했고, 중간 과정에서 비약이 있었다. 어쩌면 엔딩의 가족 관계는 만수가 새로 취직한 공장의 쓸쓸한 공간에 남겨져서 꾸는 꿈이 아닌가 싶을 만큼 비관적이었다. NO이지만 그래서 다시 되짚어볼 괴작이기는 하다.
김경수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