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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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노동하는 세계,
죽음이 아닌 삶으로

<3학년 2학기>

글 _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2025-09-01

<3학년 2학기>. 제목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얼마 안 남겨 둔 수험생이겠네.’ 영화는 이 같은 무심한 생각을 뒤바꾸는 첫 장면으로 문을 연다. 철의 모서리를 다듬는 육중한 기계의 작동과 소음. 그 앞에서 익숙한 듯 조작 중인 사람의 손과 얼굴이 마냥 앳되다. 카메라가 공간 전체를 비추면 비슷하게 어린 얼굴 여럿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 보인다. 관객은 그제야 그곳이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실습실임을 인지한다.

(제공=작업장 봄)



예고된 불안으로부터 비켜나 칠판에 필기 내용이 빼곡한 교실이 아닌 기계를 만지는 현장. 진학 상담을 받는 교무실이 아닌 취업을 의논하는 지원센터. <3학년 2학기> 속 인물들은 청소년이 주인공인 여느 한국영화가 으레 보여주는 풍경과는 조금은 다른 공간 배경에 놓인다. 취업이 목표인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은 3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노동 시장에 편입한다. 학교라는 울타리 바깥, 청소년과 성인 사이 청년 노동자들로서의 일과가 이들에게 새롭게 주어진다.

이는 영화 속 주인공 창우(유이하)와 우재(양지운)의 상황이다. 둘은 각종 기계를 취급하는 중소기업에 현장실습생으로 나간다. 이후 취업까지 이어진다면 대학 입학 특전과 병역특례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창우에게는 취업 보조금의 가능성 역시 솔깃하다. 출근을 시작한 두 사람은 2학년부터 현장에서 도제 실습 중이었던 성민(김성국)과 다혜(김소완)를 만난다. 총무과인 다혜는 직군이 다르지만, 이미 직원들에게 ‘에이스’로 불리는 성민은 못내 신경이 쓰이는 상대다. 취업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며칠 못 가 일을 그만두고 아빠가 운영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우재와는 달리, 창우는 요령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출근을 지속한다.

이들이 처한 작업 환경은 영화를 보는 내내 지속적이고 은근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추락 방지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채로 방치된 2층 창고 난간이 등장하는 순간, 누군가의 추락을 상상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라인더를 놓치거나 작동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잘못 움직이다가 손을 다칠 듯한 불안도 피어오른다. 인물들의 대사로 여러 번 요구되는 가죽 앞치마와 팔토시는 끝내 갖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창우는 사고를 겪는다. 실수로 그라인더를 놓친 직후 팔을 꿰매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는 것이다. 노동의 통증을 이기기 위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팔을 엄마에게 보이지 않으려던 창우는, 이제 간단한 수술 후 착용하게 된 반깁스 장치마저 숨겨야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피어오르는 불안은 기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반응에 가까울지 모른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어린 청년 노동자들의 서사는 대부분 산업재해 뉴스로만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다. 사고의 피해자가 생길 때, 나아가 누군가 사망하는 등의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 우리는 그제야 노동의 현장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삶 대신 참혹한 사고의 양상을 낱낱이 본다. <3학년 2학기>의 성취는 예고된 불안으로부터 비켜나 인물들이 경험하는 일상성을 더 크게 주목하는 데 있다. 성실하게 노동하는 이들의 세계.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한 매일. 이 영화가 바라보는 쪽이다.

(제공=작업장 봄)



우리 모두처럼, 평범한 그들의 일상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휴가>(2021)는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5년째 천막 농성 중이던 노동자 재복(이봉하)의 며칠을 좇는다. 정리해고무효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짧은 휴가가 생긴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양육자 없는 집을 지켰던 어린 두 딸은 이제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과 중학생으로 자랐다. 다른 이들에게 휴가란 노동을 잠시 쉬는 것이지만, 재복의 휴가는 아직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큰딸의 대학 등록 예치금을 마련하고 작은딸의 점퍼를 사주기 위해 재복은 친구의 목공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다. 그곳에는 재복보다 한참 어린 노동자인 준영(김아석)이 있다.

<휴가>와 <3학년 2학기>는 노동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나란히 마주하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비슷한 공간에서 이란희 감독의 시선이 인물을 따라 움직이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경우라 해도 좋을 것이다. <휴가> 속 준영을 연기한 배우 김아석이 <3학년 2학기>에서 주인공의 현장 사수인 송대리를 연기한다는 사소한 연결점을 제외하더라도,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봤을 때 준영은 현장실습 나온 아이들의 가까운 미래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재복이 이미 지나온 젊은 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버티고 버티던 청년들은 어느 날 재복처럼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받은 뒤 동료들과 천막을 세우고 긴 농성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의 오늘을 조명하는 이란희 감독의 영화는 파괴된 미래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사람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여전한 상황이 지속되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어떤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휴가>는 ‘밥’에서 긍정을 발견한다. 두 딸과 함께 하는 식사를 위해 짓는 밥, 동료를 위해 건네는 도시락 등 재복의 상황과 마음은 밥을 타고 흐른다. 이 영화에서는 먹는 일, 나아가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는 일이 하나의 중요한 노동처럼 보인다. 노동의 본질, 즉 먹고사는 행위에 집중하는 이 같은 화법은 인간의 기본적 존엄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해고노동자를 향한 막연한 인상을 바꿔놓는다. 2007년부터 복직 투쟁을 시작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느슨하게 연기하게 한 단편영화 <천막>을 장편 극영화로 발전시킨 이 영화에서, 이란희 감독은 치열한 투쟁 양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상으로 카메라를 튼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건, 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당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이다.

<3학년 2학기> 역시 마찬가지다. 창우의 일상에는 평범하지만 작은 기쁨과 긍정으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우리 모두의 날들이 그렇듯 말이다. 첫 월급으로 실습 급여 60만 원을 받은 창우는 막냇동생이 소원하던 브랜드 치킨을 사주고, 고장 난 이어폰으로 온라인 강의를 듣던 동생에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한다. 자신도 아직 보호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가족의 이사 같은 집안일에 관여하는 상황이 편치만은 않지만, 홀로 일하며 세 자녀를 키우고 살림을 꾸려 가는 엄마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창우를 뿌듯하게 한다. 영화는 종종 공장에서 벗어나 인물이 조금은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퇴근길 버스정류장, 우재가 일하는 편의점, 홀로 조용히 기타 멜로디를 연주하는 방 안은 노동하지 않는 존재로서 창우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다.

(제공=작업장 봄)



소박한 처음의 가치 <3학년 2학기>에도 안타까운 순간은 찾아온다. 성민의 학교 선배이자 다른 공장의 청년 노동자이던 수호(유명근)의 죽음이다. 그러나 이란희 감독은 산업재해 당사자였을 노동자의 부고를 구체적 묘사를 통한 하이라이트로 대하지 않는다. 대신 이 일이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태도를 취한다. “사람이 일하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생각도 못 했어.” 장례 예절을 채 익히기도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온 아이들은 또래의 죽음을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곤 막연히 두려워하는 대신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최소한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민은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나온 교육청 노무사에게 필요한 장비와 개선점을 건의한다. 이후 공장을 그만두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그의 선택이다. 창우는 그러지 못한다. 모든 일에 미숙하기만 했던 창우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새롭게 용접 일을 배우고 회사에 끝까지 남아 취업에 성공한다. 이 역시 창우의 선택이다.

현장실습생을 둘러싼 구조를 고발하고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변화를 분연히 촉구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3학년 2학기>는 먼저 이들의 ‘삶’을 한번 공들여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부러 악당의 역할을 만들어 두지도 않는다. 실습생들을 받아주는 공장은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현장이긴 하지만, 말투가 조금 투박할 뿐 상식적인 수준의 직원들이 모인 공간이기도 하다. 실은 여느 평범한 직장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할 만해?”라는 짐짓 무심한 질문만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곧 아이들을 도울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영웅적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 대신 느리고 평범하게 자신의 걸음을 지속하는 창우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3학년 2학기>의 중요한 선택이다. 타고난 재능도,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인간적 매력도, 부유한 집안 배경도 없는 인물의 소박한 처음이라 해서 그 가치가 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전국의 수험생들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 길거리 현수막이 응원하는 ‘미래’의 대상에서 제외된 아이들 역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발을 힘껏 내딛는다. 가려진 곳에 더 많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 시선을 돌려 그곳을 인지하기만 해도 어쩌면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는 것. <3학년 2학기>의 부드러운 제언이다.

영화에는 창우가 이름을 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실습 보고서에도, 장례식 방명록에도, 근로계약서에도 창우는 직접 이름을 새겨 넣어야 한다. 카메라는 “아직 사인이 없는데 이름을 대신 써도 되냐”는 질문을 먼저 한 뒤, 창우가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글자를 쓰는 장면을 찬찬히 시간을 들여 포착한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약속에 처음 스스로의 존재를 기록하는 주인공에게 그에 걸맞은 신뢰를 보내는 인상이다. <3학년 2학기>는 그처럼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분명한 이름을 지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임을 분명히 알린다. 영화의 그 의지가 내내 미덥다.

3학년2학기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 이란희감독 노동자 청년노동자 현장실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