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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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C Story ❶

성평등한 콘텐츠가 만드는 즐거운 세상

미리 보는 벡델데이 2025

글 _ 이화정(영화 저널리스트, 벡델데이 프로그래머)

2025-09-01

‘벡델데이 2024’ 행사 현장(제공=DGK)

영화 산업의 위기론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는 때다. 그러나 외적 위기에 직면해 자칫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바로 영화의 질적 향상과 고민일 것이다. 영상 제작과 소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한 때다. 플랫폼의 다변화로 자극적인 요소와 일회성 소비에 그치는 영상물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클릭을 유도하는 화제성이 곧 영향력으로 직결되는 가운데, 균형 잡힌 시각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여과 없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콘텐츠에 재현된 성비 불균형, 성차별, 왜곡된 성 역할 이미지의 재생산도 그중 하나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인식이 개인의 사고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콘텐츠의 균형감과 책임감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영화·시리즈를 통해 양성평등 재현을 돌아보고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콘텐츠 페스티벌 ‘벡델데이 2025’의 존재 이유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올해로 6회째,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벡델데이 2025가 9월 6일부터 7일까지 KU시네마테크에서 열린다. ‘E롭게 GENDER E퀄리티’를 슬로건으로 하는 벡델데이는 성평등한 영화와 시리즈가 차별 없는 사회를 형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평등한 가치를 실현한 작품과 창작자들을 조명하는 행사다. 2020년 영화 분야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벡델데이는 2022년부터 영화뿐만 아니라 시리즈 부분까지 선정 영역을 확장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벡델데이 2025’ 공식 포스터(제공=DGK)



벡델 테스트로 점검하는 한국영화계 성평등 현황 벡델데이 2025는 그 해 가장 양성이 평등한 영화와 시리즈를 각 10편씩 선정하는 ‘벡델초이스10’과 양성평등에 기여한 영상 창작자들을 감독, 작가, 배우, 제작자 4개 부문으로 선정하는 ‘벡델리안’으로 나눈다. 영화 부문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개된 한국영화와 시리즈가 심사 대상으로 총 125편(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전국 10개 이상 스크린에서 개봉한 실질 개봉작 및 OTT 오리지널)이다. 시리즈 부문은 공중파 및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채널, OTT 오리지널 등에서 공개된 102편을 대상으로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했다. 영화 부문의 경우 올해는 처음으로 DGK 소속 감독 30인이 창작자의 시각에서 직접 대상작의 벡델 테스트 조항을 확인해보는 예비 심사 과정을 도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내부 검토를 거쳐 총 3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 최종 10편이 선정되었다.

선정의 기준이 되는 ‘벡델 테스트’ 조항 7개는 ①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 나올 것 ② 1번의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③ 이들의 대화 소재나 주제가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④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⑤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과 비중이 동등할 것 ⑥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⑦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등으로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분야 성평등 테스트’ 3개의 조항을 기본으로 충족하는 것 외에, 한국의 제작 환경에서 성평등한 콘텐츠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4가지 조항을 추가했다. 특히 제작진의 성비 균형을 점검하는 조항 ④는 한국의 콘텐츠 산업 안에서 제작 환경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테스트 지수다. 성평등하다는 것은 단지 어느 한쪽의 비중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구조적 불균형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다양한 정체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벡델데이는 그 가능성에 주목하고, 보다 정교하고 폭넓은 시선으로 영화와 시리즈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시도야말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고, 더 나은 이야기, 더 건강한 관객 문화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10’ 선정작 중 <검은 수녀들>(제공=NEW) <그녀에게>(제공=영화로운 형제) <딸에 대하여>(제공=찬란)
<럭키, 아파트>(제공=인디스토리) <리볼버>(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다양한 서사로 확보한 여성의 입체성 영화 부문 ‘벡델초이스10’에는 <검은 수녀들>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리볼버> <빅토리> <최소한의 선의> <파과> <하이파이브> <한국이 싫어서>(가나다 순)가 선정되었다. 또 영화 부문 벡델리안으로는 감독 부문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배우 부문 <파과> 이혜영 배우, 작가 부문 <최소한의 선의> 김수연 작가, 제작자 부문 <빅토리> <하이파이브> 이안나 안나푸르나필름 대표를 선정했다.

사제가 아닌 수녀를 퇴마의 주체로 설정한 <검은 수녀들>은 “신념과 직업정신으로 퇴마에만 열중하는 한국영화계에 귀한 여성 주인공의 출현”(구정아 영화제작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성 중심의 장르로 인식되던 범죄 누아르 액션물을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한 2편의 작품 <파과>와 <리볼버>에서 <파과>는 “여성 캐릭터에게 척박했던 장르의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인 토양 개선 프로젝트”(이화정 벡델데이 프로그래머)로, <리볼버>는 “남성 중심의 범죄 누아르를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한 작품”(민용근 감독)이라는 각각 평가의 지점을 얻었다. 10대 히어로, ‘야쿠르트 아줌마’로 슈퍼히어로물에 성별과 나이의 장벽을 허문 <하이파이브> 역시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여성 캐릭터의 입체성을 구현해 “평범한 이들의 연대 그 이상의 캐릭터를 구현한 작품”(성찬얼 씨네플레이 부편집장)으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여성 캐릭터의 입체성을 드러낸 <빅토리>(제공=마인드마크) <최소한의 선의>(제공=싸이더스)
<파과> <하이파이브>(이하 제공=NEW) <한국이 싫어서>(제공=디스테이션)



성평등한 서사와 캐릭터를 꾸준히 만들어 온 독립영화 진영은 더 다양한 캐릭터, 연령대, 관계성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어머니의 고충을 그린 <그녀에게>는 “단순히 좋은 어머니라는 인물을 넘어 경력단절의 문제까지 고민하는 입체적 캐릭터”(성찬얼)를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시각을 통해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의 공기를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와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혐오를 현실 스릴러로 만든 <럭키, 아파트> 등은 “사회 구조 안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저조할 경우 미치는 파장이 어떤 것인지 조망할 수 있게 해준 작품들”(이화정)이다.

사회가 가진 선입견을 재조명하는 데 있어 여성들 간의 연대, 관계를 묘사한 작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딸에 대하여>는 “여성과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대한민국 여성과 이를 에워싼 사회의 시선을 조망”(성찬얼) 했으며, 임신한 학생과 선생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와 입장의 차이를 극복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 <최소한의 선의>, 치어리딩이라는 단체 활동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찾도록 서로를 응원하는 여성들의 긍정적인 연대를 보여준 <빅토리>는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0대들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구정아)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모두는 남성 캐릭터 간의 이해와 소통이 주를 이루던 작품들과 달리, 여성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캐릭터들의 입체성을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올해 영화 부문 ‘벡델리안’으로 선정된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파과> 이혜영 배우, <빅토리> <하이파이브> 이안나 안나푸르나필름 대표(제공=DGK)



한국 콘텐츠 성비 불균형, 꾸준한 점검 필요 성비의 균형에 있어 한국영화는 지난 1년 동안 내적, 외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영화 성인지 결산’(핵심창작인력 성비는 2024년 개봉한 한국영화 개봉작 182편,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37편, OTT 오리지널 영화 6편을 대상으로 하며, 성인지 캐릭터 및 다양성 재현은 한국영화 흥행 순위 30위 영화 27편, OTT 오리지널 영화 6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한국영화 산업은 성비 불균형이 일부 개선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음을 수치로 입증하고 있다.

2024년 한국영화 실질개봉작의 여성 핵심창작인력은 ‘감독 48명(24.0%), 제작자 90명(25.6%), 프로듀서 85명(35.0%), 주연 91명(48.1%), 각본가 75명(34.7%), 촬영감독 20명(8.9%)으로 전년 대비 대부분의 직종에서 여성 인력의 빈도와 비율이 상승’한 결과로 나타났다. 특히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에서도 감독, 제작자, 각본가 직종에서 여성 인력의 빈도와 비율이 늘어난’ 결과를 보였다. 반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오리지널 영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여성 인력의 빈도가 감소’해 개봉작 시장과는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2024년의 상황과 2025년 상반기에 다다른 상황이 또 달라졌다는 점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성비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교섭> <파일럿> <시민덕희> <그녀가 죽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의 개봉으로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의 활약이 돋보인 2024년과 달리, 올해는 한국영화 개봉작의 급감과 함께 성비의 불균형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구정아 영화제작자, 민용근 감독, 성찬얼 씨네플레이 부편집장, 이화정 벡델데이 프로그래머가
올해 ‘벡델데이 2025’ 영화 부문 심사를 맡았다.(제공=DGK)



다른 한편 성인지 결산에 더해 2025년 상반기 작품까지 포함한 벡델데이 수상작들을 보면, 다소 유의미한 변화도 읽을 수 있다. 여성을 소재로 한 스토리와 주인공 캐릭터의 경우 여성 창작자가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면 올해는 남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작품이 부쩍 증가했다. 벡델초이스10 중 7편에 해당하는 <검은 수녀들>(권혁재 감독) <그녀에게>(이상철 감독) <리볼버>(오승욱 감독) <빅토리>(박범수 감독) <파과>(민규동 감독) <하이파이브>(강형철 감독) <한국이 싫어서>(장건재 감독)는 남성 감독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서사를 전개한 작품이다.

이 같은 창작자 성별의 변화는 상업영화, 독립영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변화로 여성 캐릭터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매력적인 서사의 중심으로 인정받았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노년 여성의 활약을 액션 누아르로 풀어낸 <파과>나 섬마을 치어리더로 여성 캐릭터가 대거 등장해 휴머니즘 가득한 스토리를 완성한 <빅토리>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상업영화의 영역에서 자칫 시도하기 어려운 여성 캐릭터들을 발굴함으로써 스코어의 저조함을 선회하는 의미와 호응을 불러온 작품으로 성평등한 콘텐츠의 출현에 있어 두고두고 회자될 전례를 남겨주었다. 물론 산업의 위기로 신인 감독의 진입이 유독 저조한 시장 상황에서, 여성 감독의 상업영화 진입은 더 많이 가로막혀 있다는 점은 한국영화계가 여전히 풀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요소는 벡델초이스 선정작 외의 작품에서 보이는 캐릭터 성별의 불균형이다. 벡델초이스10에 선정된 작품의 여성 주연 영화의 캐릭터가 괄목할 만한 입체성을 보여준 것과 달리, 상업영화 안에서 ‘서브 주연’인 여성 캐릭터의 구현은 아직 풀어야 할 부분이 많은 영역이다. 특히 대작 영화에서 남-남(男-男) 주연 구도가 많아지는 가운데, 여성 캐릭터는 단순히 구색 맞추기 용도로 입체성을 얻지 못한 채 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균형 잡힌 성별의 재현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전히 한국영화가 풀어야 할 캐릭터 구현의 숙제로 보인다.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벡델데이’가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사진은 ‘벡델데이 2024’ 행사 현장(제공=DGK)



무료 상영부터 토크까지, 다양한 부대 행사 벡델데이는 영화·시리즈 부문에서 성평등한 가치를 실현한 ‘벡델초이스10’과 성평등에 앞장선 인물 벡델리안을 선정하고 매년 9월 첫째 주인 ‘양성평등주간’에 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해 대중과 성평등한 콘텐츠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왔다. 올해도 벡델초이스10으로 선정된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는 ‘무료 상영’을 비롯해 다채로운 토크 행사로 의견의 장을 열어 두었다.

먼저 9월 6일에는 영화·시리즈 부문에 선정된 벡델리안을 초청해 나누는 ‘벡델리안과의 만남’이 마련되어 있다. 올해는 ‘장르와 서사에서 지분을 확보한 여성 캐릭터’라는 주제로 그간 마이너하고 평면적이었던 여성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쉴 수 있게 한 창작자들의 노력과 고충을 들어본다. 벡델리안 배우상 수상자 이혜영 배우를 직접 만나는 자리도 마련된다. ‘원앤온리! 배우 이혜영. 여성 배우의 경계를 확장하다’라는 주제로 액션 누아르 캐릭터의 전형을 깬 <파과>를 중심으로 배우의 도전의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이다. <파과>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도 함께한다.

9월 7일에는 스페셜 토크 ‘승부욕의 성평등’이 진행된다. 그간 남성 중심으로 진행되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최근 여성 출연자들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고, 진취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생산해 호응을 얻고 있다. 벡델데이가 프로그램의 주역들과 만나 변화의 지점을 짚어본다. 토크 프로그램 외에도 벡델초이스10으로 선정된 작품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료는 모두 무료다. 벡델데이 2025 행사와 관련된 자세한 소식은 벡델데이 SNS 공식 계정(www.instagram.com/bechdel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벡델데이 2025 ‘벡델초이스10’
& ‘벡델리안’ 전체 리스트

벡델초이스10 영화 부문 <검은 수녀들>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리볼버> <빅토리>
<최소한의 선의>
<파과> <하이파이브>
<한국이 싫어서>

벡델초이스10 시리즈 부문 <굿파트너>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미지의 서울>
<선의의 경쟁> <옥씨부인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정년이>
<정숙한 세일즈> <폭싹 속았수다>
<하이퍼나이프>

벡델리안 영화 부문 감독 부문 <딸에 대하여> 이미랑 감독
배우 부문 <파과> 이혜영 배우
작가 부문 <최소한의 선의> 김수연 작가
제작자 부문 <빅토리> <하이파이브>
이안나 안나푸르나필름 대표

벡델리안 시리즈 부문 감독 부문 <정년이> 정지인 감독
배우 부문 <미지의 서울> 박보영 배우
작가 부문 <옥씨부인전> 박지숙 작가
제작자 부문 <정숙한 세일즈> 하이지음스튜디오·221b 신혜미, 한석원, 황기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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