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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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C Story

저작권 분쟁, 제대로 살펴봅니다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 출범의 의미와 가능성

글, 사진 _ 박꽃(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5-07-15

영화계의 각종 분쟁을 중재하는 사단법인 영화인신문고에서 지난 3월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가 출범했다. 임금 체불, 직장 내 괴롭힘, 산업재해 및 부당해고 등 영화계 종사자의 전방위 고충이 모여들던 영화인신문고에 저작권 분쟁만을 다루는 위원회가 새롭게 마련되었다는 건 그만큼 다뤄야 할 유관 사건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표절 여부를 가리고, 정당한 크레디트를 부여했는지 확인하며, 각본료나 인센티브 등 창작과 흥행에 따르는 재산권이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등을 판단하는 게 주 임무다. 우리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비롯해 중재 담당자들이 갖춰야 할 전문성이 보다 요구되는 건 물론이다.

급증하는 저작권 분쟁 사건 영화인신문고에 따르면 매년 접수되는 사건 10건 중 8건이 ‘임금 체불’ 사건에 해당한다. 최근 3년(2022~2024)간 연평균 150건의 사건이 접수되었으니 그중 120건이 임금 체불 문제였다는 얘기다. 2001년 스태프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개설되어 지금에 이른 영화인신문고와 그 소속 중재위원회가 영화 현장의 ‘노동’ 특성을 잘 아는 이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영화산업노조 측, 제작자협회·PGK 추천 인물로 대변되는 사용자 측, 영진위와 법적 판단 준거를 제시하는 법률가 등이 기존 중재위원회에 포함된 배경이다.

상황이 바뀐 건 최근 들어 ‘저작권 분쟁’ 사건 접수가 급증하면서부터다. ‘임금 체불’의 뒤를 이어 저작권 분쟁 사건이 2위에 오른 것이다.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숫자 자체는 크지 않지만, 사건 특성상 표절 여부와 재산권 인정 등을 두고 당사자 간 첨예한 주장이 오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영화인신문고의 고민을 키웠다. 소요되는 시간과 요구되는 전문성이 모두 커지자 저작권 사건만을 전담할 중재위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홍태화 영화인신문고 사무국장은 “각자 영역에서 생업 중인 중재위원회 7명이 기존 노동 위주 사건에 더해 저작권 사건까지 함께 다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면서 “표절을 주장하는 사건이 접수되면 실질적으로 어떤 부분이 유사한지를 분석해야 하고 100페이지 넘는 시나리오의 초고와 탈고 버전을 다 봐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쟁 당사자 사이에 수차례 오간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 살펴야 할 근거 자료가 많다는 어려움도 짚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새롭게 구성된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는 감독, 작가 등 창작자 단체가 추천하는 2인이 포함된다는 점이 기존과 다르다. 제작사 대표 등 제협·PGK가 추천하는 2인, 영화진흥위원회 추천 변호사 등이 함께한다. 다만 중재위원은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사건 관계자가 중재위원에게 사건을 청탁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서 “사건 관계자와 중재위원의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구성된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



핵심 분쟁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가 대표적으로 다루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 저작권법이 주로 보장하는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저작재산권에는 연출료나 각본료, 인센티브 등 창작물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이 포함된다. 저작인격권은 창작자의 개성이 반영된 창작물에 당사자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권한 등을 의미하는데, 저작재산권과 달리 오직 당사자에게만 인정되며 양도하거나 물려줄 수 없는 고유한 권리다.

저작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사건을 접수하는 당사자는 주로 감독이나 작가인 경우가 많다. 창작에 직접 관여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주체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최근 3년간 감독이나 메인 작가급이 신청한 저작재산권 침해 사건만 전체의 43%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지 못해 제작사 대표가 사건을 접수한 사례도 있다. “제작사 대표나 프로듀서가 사건을 접수하는 건도 전체의 10%에 해당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가 신설되기 전까지 영화인신문고에 접수된 이 같은 저작재산권 분쟁은 저작권 사건이 아닌 ‘임금 체불’ 사건으로 분류되었다. ‘저작권 사건’이라는 범주를 새롭게 마련하면서 사건 분류를 보다 정확히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임금 체불 사건으로 분류하던 저작재산권 사건을 저작권 사건으로 통합해 새롭게 통계를 낸다면 그 비율이 전체 사건 대비 3.7%만을 차지한다는 현재 수치보다 훨씬 높게 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저작인격권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는 크레디트 분쟁이다. 영화에서 크레디트는 일종의 신원 보증 역할을 하는 만큼, 작품 참여자가 제 역할과 격에 맞는 크레디트를 작품에 새기는 건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의 중재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실제로 올해 상반기 개봉한 영화 중에서도 ‘내 이름이 빠졌다’며 문제를 제기해 사건을 접수한 스태프가 있었다. 자기 직군의 감독급과 갈등을 빚고 작품이 완성되기 한 달 전에 일을 그만두면서 생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인신문고 담당자가 해당 작품의 총괄프로듀서와 통화한 뒤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가 제기된 크레디트를 총괄프로듀서에게 제출한 해당 직군의 감독급과 사실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중재 과정이 이루어졌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그 과정에서 스태프와 감독급 사이에 감정 문제가 작용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어찌되었든 제 할 일을 다하고 인수인계까지 마치고 나갔다면 정당하게 이름을 표기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약 일주일 만에 크레디트가 제대로 수정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인신문고의 담당자들이 영화 제작과 배급 과정에서 크레디트 수정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시점이 언제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중재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요건이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앞선 사례처럼 개봉 전에 크레디트를 수정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크레디트를 정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인터넷TV(IPTV)에 작품을 넘기기 직전이 크레디트를 수정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극장과 달리 작은 화면으로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 OTT와 IPTV의 경우 영화 팀은 크레디트를 기존보다 크게 수정해서 납품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자연히 잘못된 크레디트를 고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시점마저 놓친 뒤라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포털사이트 등 온라인으로 영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성명권을 보장하는 방식의 중재안을 추가로 제안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중재에 법적인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의 크레디트 오기를 바로잡아 달라며 지난해 4월 제작실장급 스태프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게 된 배경이다. 해당 사건은 영화인신문고에 접수되었고 “제작실장으로 크레디트를 부여해야 한다”는 중재 의견이 나왔음에도, 사안이 원만히 조정되지 않아 법의 판단을 구하게 된 경우다. 그럼에도 업계의 상황 사정을 정확히 꿰고 있는 중재 단체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불필요한 법적 비용과 감정 소모를 줄이고 상황을 원만히 조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인신문고 노동파트 중재위원회+저작권파트 중재위원 운영 프로세스(제공=영화인신문고 홈페이지)




‘크레디트 등재 기준’과 ‘표기법 통일’ 필요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는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크레디트 등재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 사업도 검토중이다. ‘성명표시권 연구 사업(가칭)’으로 불리는 이번 연구는 노사정 합의를 거쳐 크레디트에 올라가는 이름의 분명한 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누가 ‘작가1’이고 누가 ‘작가2’인지, 원안과 각색·윤색 등 정확히 어디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했는지 등 크레디트 중에서도 판단 기준이 애매모호한 직군의 문제를 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의 경우 그 판단 기준이 이미 명확히 마련된 편이다. 미국프로듀서조합(PGA)으로부터 <기생충>의 제작자 크레디트를 인정받은 곽신애 당시 바른손이엔에이(바른손E&A) 대표는 2020년 매체 인터뷰1에서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전에 PGA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 매우 까다롭게 질문한다”면서 “캐스팅 기여도, 예산 결정권, 현장에 있었는지 여부 등을 묻고 종합하는 빡빡한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곽신애 대표가 제작자로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자로 호명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는 영진위와 함께 크레디트 표기법을 통일할 수 있도록 관련 매뉴얼도 준비중이다. 이른바 ‘표준 크레디트 연구 사업(가칭)’이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영화 시작부에 등장하는 오픈 크레디트는 제작사 대표, 투자사 대표 등이 모두 올라가는데 정해진 기준 없이 영화마다 지저분하게 기재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화 끝에 등장하는 엔딩크레디트 역시 ‘촬영감독’, ‘촬영 1st’, ‘촬영팀’ 등 그 표기법이 표준화되지 않고 직군별 순서도 뒤죽박죽”이라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크레디트 등재 기준이 명료해지고 표기법도 통일되면 그에 따라 저작권파트 중재위원회가 크레디트 분쟁 사건을 보다 명료하게 중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미를 짚었다.




1[인터뷰] 역사를 쓰고 돌아오다, 바른손이엔에이 곽신애 대표(2020/02/06)
https://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30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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