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Quick Menu

SPECIAL ❶

한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2025년 하반기 개봉작과 한국영화 투자·제작 현황

글 _ 이우빈(씨네21 기자)

2025-07-01

올 여름 기대되는 대작인 <전지적 독자 시점>

한국영화의 투자·제작 시장이 얼어붙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매출, 관객 수 감소의 영향이 시장을 냉담하게 만든 지 오래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해 극장에 걸리고 있다. 투자·배급·제작사들은 중급 규모 영화 제작 등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판으로 해 다양한 개봉 예정작을 발표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등의 정책기관 등도 시장 변화에 맞추어 지원 사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다가오는 2025년 하반기 개봉 예정 영화들을 살피고, 현재 한국영화 산업의 투자·제작 현황을 점검해본다.

하반기 개봉 라인업은? 2025년 하반기에 개봉이 예정된 주요 투자·배급사(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상업영화는 20여 편이다. CJ ENM은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와 <엑시트> 이상근 감독의 신작인 <악마가 이사왔다>까지 단 두 편을 선보일 예정으로 주요작 개봉에 집중한다. 최근 <시민덕희> <파묘> 등으로 극장가 선방을 이어온 쇼박스는 <소리도 없이>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홍의정 감독의 <폭설>(김윤석, 구교환, 노윤서 주연)을 연말에 공개할 예정이다. 구교환, 문가영 주연의 멜로드라마 <만약에 우리>도 3분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6월에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를 선보인 NEW는 기세를 이어 7월 중 필감성 감독의 <좀비딸>을 개봉한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지난해 <파일럿>으로 흥행 보증수표로 올라선 조정석이 주연을 맡은 여름 대작이다.

여름의 또 다른 대작으로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전지적 독자 시점>이 있다. <신과 함께> 시리즈 등 여러 대규모 상업영화의 성공을 이끌었던 리얼라이즈픽처스가 제작을 맡았고 <더 테러 라이브> 등의 웰메이드 장르물을 만들었던 김병우 감독이 연출자로 나섰다. 이민호, 안효섭, 나나, 지수를 포함한 스타 배우가 대거 참여한 텐트폴 영화(영화사가 흥행을 예상하고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 영화를 일컬음)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어서 <부활남> <정가네 목장> 그리고 흔치 않은 국내 제작 장편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를 내놓을 예정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와 <서울의 봄> 등을 통해 근래 가장 좋은 행보를 보이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을 비롯해 김판수 감독의 하드보일드 장르물 <열대야>, <탈주> 이종필 감독의 멜로드라마 <파반느>, 한소희, 전종서 주연의 범죄 장르물 <프로젝트Y>, 정다원 감독의 <너와 나의 계절> 등 가장 많고 다양한 하반기 라인업을 선보인다. 지난해 여름, 추석 등 기존 극장가 대목으로 불렸던 시기의 개봉작들이 흥행 면에서 부진했던 만큼 과연 올해 여름 영화 시장의 결과는 어떨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좀비딸>도 7월 개봉 예정이다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촬영 현장

김판수 감독의 하드보일드 장르물
<열대야>

<탈주> 이종필 감독의 멜로드라마
<파반느>



시장의 틈을 노리는 영화들 주요 투자·배급사의 작품 외 2025년 하반기엔 또 어떤 영화들이 찾아올까. 최근 투자·배급사 중 단연 눈에 띄는 곳은 바이포엠스튜디오다. <소방관> <승부> 등을 흥행시킨 것처럼 알짜배기 중급 규모의 영화를 계속해 선보일 예정이다. <거인>과 <여교사>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신작이자 최우식 등이 출연하는 <넘버원>을 시작으로 <안아줘> <윗집 사람들> <하얀 차를 탄 여자> 등 다양한 중예산 규모 영화의 라인업을 준비 중이다. <30일> <달짝지근해: 7510> 등으로 근래 중급 규모 영화의 선전을 이끌었던 배급사 마인드마크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 <슬픈 열대>, 라희찬 감독의 코미디영화 <보스>, 오컬트 장르물 <도깨비: 신체강탈자> 등을 내년까지 제작·개봉한다. 위지윅스튜디오도 여러 작품의 제작에 열을 가하며 개봉을 준비 중이다. 2025년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수지, 이진욱, 유지태 주연의 멜로드라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을 비롯해 구교환 주연의 대작 SF 영화 <왕을 찾아서>, 조여정, 정성일 주연의 스릴러물 <인터뷰>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기생충> 등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해 온 바른손이앤에이는 <우리들> <우리집>으로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이끌었던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과 이용재 감독의 <수능, 출제의 비밀> 등을 배급한다.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는 정지소, 이수혁 주연의 스릴러 <시스터>, 전소민 주연의 <베란다>, <킬링타임>, <홈캠> 등의 장르물과 마동석이 기획·제작한 <단골식당>, 최지우 주연의 <슈가> 등 드라마 장르의 다양한 작품을 준비 중이다. 해외 장르영화와 한국 독립영화를 주로 배급해 온 트리플픽처스는 백승환 감독의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김향기 주연의 <한란>, <사람과 고기>, <너와 나의 5분> 등을 차례로 선보일 계획이다. <미쓰백>으로 이름을 알린 이지원 감독의 신작이자 류승룡, 하지원 배우가 주연으로 나선 <비광>은 콘텐츠지오가 배급한다.

수지, 이진욱, 유지태 주연의 멜로드라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오컬트 장르물 <도깨비: 신체강탈자>


마동석이 기획·제작한 <단골식당>



이처럼 오는 여름부터 연말까지 <전지적 독자 시점> <좀비딸>을 필두로 한 대규모 상업영화들과 다양한 장르의 중규모 상업영화가 개봉하지만,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다. 국내 영화 투자·제작 시장의 핵심적 지표라 할 수 있는 주요 투자·배급사의 2026년 상업영화 개봉 예정작이 14편 내외로 예년보다 현저히 적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지연되었던 일련의 ‘창고 영화’들은 2024년까지 대부분 개봉을 마쳤다. 즉, 이후 극장에 걸릴 영화의 투자·제작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내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자 조인성, 정호연, 마이클 패스밴더 등 국내외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한 <호프 HOPE>, 마동석 주연의 할리우드 합작 영화 <돼지골>을 선보일 예정이다. NEW는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전지현, 지창욱, 구교환 등이 출연하는 아포칼립스 장르물 <군체>를 비롯한 6~7편의 영화 라인업을 준비 중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3~4편, CJ ENM은 2편 내외의 상업영화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투자·제작·배급의 위축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영화는 크게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다수의 천만 영화를 만든 제작자 A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한국영화 위기론을 한 마디로 축약했다. 간단한 지표로만 살펴보아도 이와 같은 예측이 무리는 아니다. 한국영화의 매출 규모는 2019년 9708억에서 2020년 3504억, 2021년 1734억으로 지속적인 하향 추이를 기록했다. 2024년에도 6910억으로 해외 극장가에 비해 가시적으로 더딘 회복세를 보였다. 극장 상영료 인상을 고려해 관객 수로 따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2019년 한국영화의 관객 수는 1조 1562억 명이었고 2020년엔 4046억 명, 2021년엔 1822억 명, 2024년엔 7147억 명이었다. 2024년 기준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 개봉작 37편의 추정 수익률은 -16.4%였다. 마이너스 수익률은 한국영화 시장에 대한 투자 위축의 직관적인 요인이다.

창업투자사 출신으로 영화계에 20년 넘게 몸담아 온 제작자 B씨는 최근의 영화 투자·제작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체감 중이다. “과거에 비해 투자 실무자들, 특히 주요 투자·배급사들의 온도가 무척 낮아졌다. 예산 수립·관리에도 굉장히 예민해졌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의 투자·배급·상영을 일괄하는 주요 3사(CJ ENM,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의 운영 실적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2020년부터 계속해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며, 2024년엔 롯데컬처웍스가 -511억 원, 메가박스중앙이 -52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보였다. 이에 투자·배급사 관계자 C씨는 “지금 추이대로라면 주요 회사 중 한 곳은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후퇴하거나 파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같은 독과점 구도의 영화 시장은 더욱더 심한 독점 체제로 변해 부정적 효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C씨의 말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5월 8일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이 합병 양해각서 체결을 발표했다. 만성 적자에 빠진 두 회사가 힘을 합쳐 한국영화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영화 현장에 있는 제작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화 투자·제작 현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장이 축소하자 좋은 품질의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여실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 시장의 순기능인 ‘경쟁 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작자 D씨는 “투자·배급사의 움직임이 한껏 위축되고, 특히 대기업 기반의 투자·배급사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영화 기획·개발의 난점이 증폭되었다”고 지적했다. “규모의 경제가 보장되어 있을 땐 60점짜리 시나리오를 가지고도 여러 영화사가 경쟁하며 작품을 발주했고, 60점부터 100점이 될 때까지 함께 작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모든 투자·배급사가 손실을 두려워하니 90점 정도의 시나리오도 제작에 들어가기가 힘들고,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서 시나리오 개발이 아닌 스타 감독·배우의 캐스팅에만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와 비교되는 영화 투자·제작의 방식도 영화 시장 성장의 동결을 초래한다. OTT 시리즈는 1, 2부 정도의 시나리오와 배우 캐스팅 여부만으로도 투자·제작 계약이 가능하지만, 영화는 대개 완결된 시나리오가 필요하기에 “제작자와 창작자들이 영화 기획·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

하지원 배우가 주연으로 나선 <비광>



중급 규모 영화와 새로운 가능성들 그럼에도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계속해 한국영화 투자·제작에 힘쓸 것이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CJ 무비 포럼’에서 윤상현 CJ ENM 대표는 “과거의 영화 흥행 방정식이 유효하지 않아 여러 고민에 빠져 있긴 하지만, 좋은 스토리와 아이디어를 가진 영화인들과 협업하며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제작자 E씨는 “최근 CJ ENM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등이 차차 영화 제작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어 제작자들의 눈길을 끄는 중”이라고 밝혔다. 6월엔 KT그룹이 자회사 ‘KT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영화 투자·배급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을 타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제작사 E씨는 기성 투자·배급사의 복귀가 마냥 청신호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다시 영화에 눈을 돌린다고는 하지만, 영화사 내부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이 대개 기성 영화사의 인력”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판세라면 결국엔 일부 스타 감독과 배우의 ‘흥행 보장’이라는 과거의 전략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2019~2024 한국 상업영화 (추정) 수익률
(제공=영화진흥위원회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최근 영화 산업은 100억~300억 원 수준의 예산을 투입한 대규모 영화보다 100억 이하 중급 규모 영화의 투자·제작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2022년 이후 일련의 ‘텐트폴 영화’의 부진을 겪으면서 중급 규모 영화의 활약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3년 추석 시장에서 <30 일> <잠>과 같은 중급 규모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순제작비 60억 원, 손익분기점 160만 명으로 추정된 <30일>은 216만 관객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이 관객 수 80만 명으로 예측된 <잠> 역시 147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방했다. 2024년에도 <파일럿>(순제작비 60억 원, 관객 수 465만 명), <핸섬가이즈>(순제작비 49억 원, 관객 수 175만 명) 등이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제작자 B씨는 “최근 투자·배급사와 외부 투자자들 역시 순제작비 30억 원 내외의 중급 규모 영화를 주로 찾는 모양새”라며 “투자 대비 손실의 위험성을 최대한 줄이며 한국영화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워 안정성을 도모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진위도 지난해부터 중급 규모 영화의 제작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 5일엔 ‘2025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결과를 발표하면서 총예산 100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기성·신진 감독의 중급 규모 영화(순제작비 20억~80억 원의 장편 실사 극영화) 10편에 각 10억 원 내외의 제작 지원을 진행해 작품들의 개봉을 준비할 예정이다.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 변영주 감독의 <당신의 과녁>, 김선경 감독의 <안동> 등이 선정되었다. 더하여 올해엔 문체부 주도의 영화 계정을 통해 한국영화 메인 투자 펀드(조성 목표액 396억 원, 정부 출자액 198억 원), 중저예산 한국영화 펀드(조성 목표액 200억 원, 정부 출자액 100억 원)를 조성해 민관 협업의 투자·제작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제작자 B씨는 “정책 지원금은 외부 투자 유치를 비롯한 최종적인 영화 제작비 조달에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라는 말로 지원에 대한 체감을 전했다. 지난해 9월 열린 영진위 기자간담회에서 한상준 영진위 위원장은 “한국영화 산업의 투자 위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급 규모 영화의 활성화가 우선”이라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관련하여 영진위는 제작 지원 사업뿐 아니라 영화 기획·개발 지원 사업에도 2025년 기준 전년 대비 10억 원을 증액한 26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며 영화 시장의 장기적 지속을 도모하고 있다. 더하여 민관 협치의 차원에서도 한국의 영화 산업 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계 단체가 모여 설립한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는 지난 대선 기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직속 위원회인 ‘K문화강국위원회’와의 정책 토의를 통해서 중예산 영화 확대와 스크린 독과점, 홀드백 기간 정상화 등의 불공정 사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차후 이재명 정부의 영화 관련 정책 및 영진위 예산 운용, 수립이 어떻게 이어질지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한국의 영화 산업은 분명히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계는 중급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수익화 모델을 개발하고 있고, 영진위 등 관련 기관들도 시장의 변화에 맞춘 유동적 정책을 도입하려 애쓰는 중이다. 이후의 결과가 어떻게 다가오더라도, 이러한 위기일수록 각각의 해결 방안을 각자의 자리에서 차분히 수행해야 할 때다.

구교환 주연의 대작 SF 영화 <왕을 찾아서>



2025한국영화 한국영화투자제작 하반기개봉작 한국영화시장현황 영화산업위기 극장시장회복 2025개봉예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