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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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C Story

포용의 스크린을 열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손잡은 ‘가치봄영화제’

글 _ 이락희(한국경제매거진 기자)

2025-05-16

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9일,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올해 영화제는 ‘독립·대안·예술 영화의 확장’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모두를 위한 영화제’라는 가치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영화제의 행보에 한층 설득력을 더했다. 특히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 영화제의 포용성과 공공성을 한층 강화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예년과 달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주최하고 (사)한국농아인협회가 주관하는 가치봄영화제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5월 7일과 8일을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의 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양일간 진행된 ‘특별상영: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 세션을 통해 ‘같이 봄’의 가치를 확대한다는 취지였다. 매년 개최되고 있는 가치봄영화제는 장애 소재 또는 장애인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작품 공모와 사전제작 지원을 통해 약 30여 편을 선정해 상영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쟁 장애인영화제다. ‘가치봄 영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영화를 ‘같이 본다’는 의미를 담아 한글 자막, 화면해설, 수어 영상이 포함된 영화로 영진위의 콘텐츠 브랜드 명칭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025년 5월 7일과 8일 양일간 진행된 ‘특별상영: 가치봄(배리어프리) 영화’



김주하 전주국제영화제 콘텐츠미디어실 한국영화팀장은 “2023년부터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과 특별상영을 진행해 왔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상영작과 관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가치봄영화제와 MOU를 체결해 상영작 수가 크게 늘어났다. 가치봄영화제와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영진위의 지원 덕분이었다. 상영관 대관을 포함해 행사 운영에 필요한 수어통역, 지원, 앰배서더 운영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영진위의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유관기관들과 연결될 수 있었고, 덕분에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시도 중 하나는 ‘가치봄 앰배서더’를 공동 선정했다는 점이다. 배우 김보라가 앰배서더로 선정되어 영화제 기간 중 관객과의 대화(GV) 모더레이터로 참여하며 배리어프리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김보라 배우는 오는 9월 개최 예정인 26회 가치봄영화제까지 활동을 이어가며 더 많은 관객에게 그 의미를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

가치봄 앰배서더 배우 김보라



또한 영화제 현장에는 영진위의 주도로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참여한 체험 부스도 마련되었다. ‘수어도장 부스’와 ‘폐쇄형 동시관람 장비체험’ 등 오픈 이벤트를 통해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모든 관객이 접근 가능한 현장을 구성했다. 특히 폐쇄형 동시관람 장비체험 부스에서는 관객들이 직접 증강현실(AR) 글라스, 이어폰 등을 착용해봄으로써 장애인 관객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배리어프리 환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으로 가치봄 영화를 위한 전용 안내 백월도 제작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주하 팀장은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가 함께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어 도장으로 수어 문자 쓰기를 체험 중인 관람객들



이번 특별상영 세션에서는 폐쇄형 화면해설 영화, 개방형 자막 영화, 수어 영화,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제작한 영화 등 다양한 버전을 선보이며 배리어프리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치봄 영화(WITHBOM version) 단편 10편 ▲배리어프리 영화(Barrier-free version) 장편 3편·단편 1편 ▲수어 영화+화면해설(Sign language Film + Audio Description) 장편 2편·단편 1편 등 총 17편이다. 이 중에는 영진위의 ‘가치봄 영화 제작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작품,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전년도 수상작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장편영화 〈농담〉과 단편영화 〈양림동 소녀〉는 장애인이 감독·배우로 직접 참여한 작품으로, 가치봄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농담>은 인권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와 영화제작사 반달(BANDAL Doc)이 공동제작을 한 작품이다. 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는데, 장애 여성 배우들이 생활력 넘치는 현실 연기로 실제로 느끼고 경험한 차별과 불편함을 표현해 관객에게 공감과 웃음을 선사했다. 극단 ‘춤추는 허리’의 대표이기도 한 이진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양림동 소녀〉는 노년에 장애를 얻은 어머니가 삐뚤빼뚤하게 그린 그림으로부터 시작해 어머니의 삶을 그린 영화다. 연출을 맡은 오재형 감독은 2021년 제작 단계부터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제작한 영화 <피아노 프리즘>으로 주목받아 왔다. <양림동 소녀>는 발달장애인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영화 도입부에 ‘사전해설’이 추가되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영화 상영 후 GV도 진행되었다. 〈농담〉 GV에는 이진희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양림동 소녀〉 GV에는 오재형 감독과 임영희 감독이 참여해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GV 현장에는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 장애인 관객들과도 직접 소통이 가능했으며 가치봄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김보라 배우가 모더레이터를 맡아 관객과 작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함으로써 가치봄의 감동을 더욱 진정성 있게 전했다.

영화 관람을 위해 상영관 입구에서 대기 중인
영화 <농담> 출연 배우들



“우리, 진짜 웃긴 사람들이에요”, 〈농담〉 상영이 끝난 직후, 조명이 켜지자 상영관 안은 따뜻한 웃음과 박수로 가득 찼다. 무거운 침묵이나 눈물보다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정말 웃겼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이 많았다. 장면마다 터졌던 웃음이 여운으로 남아, 상영관 안은 잔잔한 활기로 물들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객석 앞으로 감독과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하자 관객석에서는 또 한 번 웃음 바이러스가 퍼졌다. GV는 말 그대로 ‘농담’처럼 유쾌하게 흘렀다.

“프레더윌리 장애를 가진 배우 조화영입니다. ‘장애로 유명해져보자’라는 감독님의 제안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상도 탐나고요. 장애인도 존중받는 자리를 꿈꾸며 영화제에 참여했습니다.”

“관객들이 얼마나 웃어줄지 긴장했는데 많이들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소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겠습니다.”


배우들의 자기소개만으로도 객석엔 웃음이 번졌다. 이들의 유머에는 계산된 연기가 아닌, 삶 그 자체에서 길어 올린 말맛이 있었다. 이진희 감독은 “우리는 스스로 웃긴 사람들이라 생각했고, 그 유머를 세상과 나누며 같이 웃고 싶었다. 늘 우당탕거리며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장애 여성들의 일상을 혼자 보기 아깝다며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한 반달의 김민경 PD님의 말에 힘을 얻어 도전했다. 관객들의 반응이 앞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배우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더 멀리 이동하고, 더 많이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개인사가 공적 가치로 전환되는 것 같아요”,
<양림동 소녀>
같은 날 상영된 또 다른 영화 〈양림동 소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어진 GV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덤덤한 목소리로 5·18 현장, 장애를 얻은 후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주인공 임영희 씨와, 목소리로만 등장했던 아들이자 감독 오재형 씨가 함께 무대 앞에 서 관객들과 마주했다.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관객들은 말을 아낀 채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오재형 감독은 “어머니가 실질적인 감독이었다”며 “5·18 영화라고 하면 현장의 비극성을 재현하는 영화를 많이 떠올린다. 그 현장에 있었던 어머니 역시 그런 기억이 없지 않겠지만 비극 속에서도 축제, 시민들의 환호했던 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광주 시민의 힘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그 부분을 좀 더 부각시키길 원했다”고 덧붙였다. 임영희 씨는 “내 개인사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관객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적 가치로 전환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특히 장애인이 된 후 겪었던 부당한 대우를 떠올리며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장애인이기도 하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의 직설적인 발언에 관객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그 메시지가 주는 무게와 깊이를 느끼는 듯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치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다. 올해 나란히 26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와 가치봄영화제는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포용의 스크린을 향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 두 영화제가 협력해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모두가 영화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대를 함께 열어 가기를 기대한다.

〈양림동 소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어진 GV



영화 <양림동 소녀>
임영희·오재형 감독

영화 <양림동 소녀> 임영희·오재형 감독



Q <양림동 소녀>는 처음부터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기획하고 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A 3~4년 전부터 배리어프리로 제작 방식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황장애를 겪었고,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장애를 앓게 되면서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배리어프리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은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해설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제작 단계부터 이를 고려하다 보면 새로운 미학적 전달방식이 더 많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21년에 제작한 <피아노 프리즘>에 이어 <양림동 소녀>도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배리어프리가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Q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본에는 ‘사전해설’이 추가되었는데, 어떻게 넣게 되었나요?

A <양림동 소녀>는 2023년부터 여러 영화제에 출품되어 배리어프리 영화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발달장애 단체에서 상영 후 영화가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5·18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등장인물과 화자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등을 제공하지만, 발달장애인이 느끼는 장벽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상영에서는 ‘미리 알아두면 좋은 정보’라는 형식으로 사전해설을 추가했습니다. 처음 시도한 방식이라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합니다.

Q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가치봄 영화 세션이 운영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어 오셨으니 특별한 감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주요 영화제마다 배리어프리 상영 세션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배리어프리 관객들의 눈높이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배리어프리’라는 시도 자체만으로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여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뭐 이따위로 만들었어”라는 냉정한 평가가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배리어프리 영화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만큼 미학적 완성도와 작품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Q 크레디트에서 감독으로 어머니의 이름을 먼저 올린 이유가 있나요?

A 영화화를 제안한 것은 저이지만, 실질적으로 제작의 90%는 어머니가 담당하셨습니다. 그림도 모두 어머니의 작품이고, 영화를 이끈 주체도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프로듀서일 뿐, 어머니가 감독이었습니다.

Q 아들의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A 처음에는 “그게 되겠냐.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고”라고 하셨지만, “내가 잘나가는 독립영화 감독이다. 아들 한번 믿어보라”고 했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영화가 나오자마자 광주여성독립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놀랐습니다.

Q <양림동 소녀>가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5·18을 다루는 시각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5·18 당시 시민군 중 한 명이었는데, 짧았지만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고 늘 말씀하세요. 시민들의 항거로 계엄군이 일시 물러난 후 쟁취했던 승리의 감동이 있었고, 그 난리 속에서도 사람들은 질서 정연하게 행동했고, 물건을 훔치거나 은행을 터는 일은 없었다면서요. “지금 생각해도 인류 역사에 그처럼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었을까 싶다”라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십니다. 요즘의 20대들이 시위를 축제처럼 벌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농담>의 진성선·고나영 배우

영화 <농담>의 이진희 감독



Q 이진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습니다. 관객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A 많이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습니다. 관객들이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하나의 영상이 다양한 사람들의 감각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저마다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객들 사이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든 작품을 사람들에게 내놓는 것을 좀 덜 두려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GV에서 영화의 목표가 “장애로 유명해져보자”였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그 유쾌한 발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A 장애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유머와 몸 개그, 눈치 개그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서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GV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일상은 생각보다 정말 웃기고 황당하고 우당탕하는 사건들이 많아요. 소수자들의 유머로 많은 사람들과 유쾌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Q 영화 속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배우들의 식사 장면이 쿠키 영상으로 나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밥 먹는 장면 하나로 보여주잖아요. 음식을 먹는 방식과 몸을 사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샤르코마리투스 장애를 앓고 있는 은선은 “숟가락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신 고무줄에 숟가락을 걸어요”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숟가락을 힘으로만 드시나요?”라고 당당히 반문하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장애가 이해되는 거죠.

Q 영화 속에 비장애인 두 명이 등장합니다. 장애인들의 일상 속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지는데, 이들의 역할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하늘은 장애인과의 관계를 책으로 배운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장애인과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부딪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보여줍니다. 주희는 장애인을 만나면 너무 긴장하는 캐릭터입니다. 소수자들을 만날 때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하늘과 주희는 장애인과 소수자들을 만날 때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연기라고는 하지만, 장애인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A 연기할 때는 오히려 장애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장애인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사실 장애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웃기고 재미있는 상황들이 정말 많습니다. 장애인으로서 겪는 일들이 더 재미있기도 하죠. 이런 일상적인 유머를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Q 영화 속 대사들 중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요?

A 진은선 배우가 말한 “장애 여성들, 사과 좀 적당히”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다 보니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 대사는 장애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주체성을 일깨워준 대사였습니다. <농담>은 장애 여성이 가진 장애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영화입니다. 단순히 타인의 시선에 의해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여줄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Q 앞으로도 장애 여성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인가요?

A 저희에게 영화와 연극 활동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닙니다. 서로 기대고 돌보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곧 창작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장애 여성들의 ‘눈치’와 ‘돌봄’ 속에 깃든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유머를 담은 ‘돌봄 추리극’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한 번은 웃겼으니, 다음에는 웃음 속에 묘한 서늘함을 담아보려 합니다. 소수자들이 서로를 돌보며 버텨내는 삶, 그 치열하고도 웃긴 이야기, 우리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장르가 되었든, 우리는 관객을 웃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가 정말 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농담> GV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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