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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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❶

“오랫동안 꾸준히
존재하고 싶다”

로커스(LOCUS) 황수진 부사장

글 _ 허남웅(영화평론가)
사진 _ 서범세

2025-05-02

한국영화계가 침체라고 해도 우울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의 성과라고 할 만한 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퇴마록>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달리 성인 타깃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모험적인 시도를 하더라도 평가 면에서나 흥행 면에서 늘 외면받곤 했다. <퇴마록>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에 관한 편견을 모두 깨면서 나름대로 순항 중이다. 50만이라는 관객 수는 언뜻 작게 보일지 몰라도 그 의미는 크다. 블록버스터와 아카데미 시즌용 영화가 즐비한 2월 21일 개봉해 두 달 가까이 스크린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관객 점유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지 않은 영화 팬의 관심도와 그에 따른 시장의 경직성에도 <퇴마록>의 성과가 한국영화계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전에 없던 시도와 과감한 실행이 새로움을 원하는 관객의 니즈와 접점을 이룰 때 발생하는 팬덤과 영화 시장의 확장이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제작사 로커스(이하 LOCUS)와 이곳의 부사장 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Animation Studios) 본부장이자 <퇴마록>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황수진이다. 어려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갈망했던 황수진 부사장의 꿈이 이루어졌으면서도 현재 진행형인 것은 한국 성인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제 알을 깨고 나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보도블록 한 장을 까는 심정으로 <퇴마록>을 완성했다는 황수진 부사장은 이제 겨우 초석을 깐 것 같다며 그 위에 더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콘텐츠를 쌓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퇴마록>의 성과를 중간 평가하는 식으로 되돌아보고 거기서 얻은 대차대조표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성과로 얻은 결론은, 희망은 보이나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기에 할 일이 많다는 것. 약속한 시각에 맞춰 도착해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던 황수진 부사장은 응답을 마치자마자 점심이 한창인 시간에도 식사도 거른 채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Q제작자이자 작품을 총괄하는 이그제큐티브(Executive) 프로듀서로 참여한 <퇴마록>이 얼마 전 관객 수 50만을 돌파했다. 그에 관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개봉한 지 거의 두 달 가까이 되어 간다. 스코어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50만 관객을 돌파해 기쁘다. 한편으로 섭섭한 느낌도 있다. <퇴마록>이 개봉하고 2~3주 뒤에 상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3월 13일 개봉)이 75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퇴마록>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긴 했어도 한국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주 힘들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퇴마록>은 여전히 상영 중이다. 50만을 넘기기까지 코어 팬덤의 역할이 컸다. 너무 감사하다.

Q개봉 전 기자시사 후 언론의 평가도 좋았고 개봉 후 관객의 발길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 요인을 내부에서는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정량적으로는 50만이라는 숫자가 조금 서운하다. 아쉽다. 100만이 손익분기점(BEP)인데 회수가 안 되는 숫자다. 정서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퇴마록>을 보고 사업적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원작 소설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하는 게임이 지금 제작에 들어갔다. 굿즈 펀딩도 6억 원 가까이 달성했다. 국내 애니메이션으로는 역대급이라고 하더라. 작품을 정말로 사랑하는 분들이 생겨난 거다. 요즘 시장은 대규모로 대중이 몰리기보다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팬덤이 주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코어 팬덤이 생겨난 초석을 쌓았다고 자평한다.

황수진 부사장이 작품을 총괄하는 이그제큐티브(Executive) 프로듀서로 참여한 <퇴마록>이 얼마 전 관객 수 50만을 돌파했다



Q<퇴마록>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붐을 타고 1998년에 극영화가 만들어진 바 있다. 완성도 면에서 썩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퇴마록>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었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우리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콘텐츠에 뭐가 있을까가 시작이었다. 아동 애니메이션은 이미 너무 많은 분이 잘하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싸우기보다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가족 타깃의 장편 혹은 청년층 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해보자는 방향성을 애초에 가지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레드슈즈>(2019)였다. 그 뒤를 이어 웹툰 원작의 <유미의 세포들>(2021~ ),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2024) 같은 작품을 선보였다. <퇴마록>의 경우, ‘이게 시장에 나오면 굉장한 반향이 있을 거야’라는 기대보다는 ‘이런 좋은 지식재산권(IP)이 있는데 왜 아무도 애니메이션으로 시도하지 않았지?’라는 의문이 출발점이었다. <퇴마록>은 일종의 액션 히어로 테마물이다. 소재를 활용해 시대만 잘 바꿔서 만들면 10년 넘게 또는 30년도 갈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퇴마록>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기는 했어도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 원작 소설 <퇴마록>의 세대가 아닌 이들에게 이런 콘텐츠가 있다는 걸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레드슈즈>

<유미의 세포들>

<유미의 세포들 더 무비>



Q24부작 시리즈가 원래 기획이었다고 들었다. 워낙 원작 소설이 방대하기 때문일 텐데 극장용으로 바뀐 이유는?

24부작 얘기도 있었고, 8부작 아이디어도 나왔고 여러 가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극장용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플랫폼 때문이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회사에서도 관심을 보여 미국 본사까지 가서 피칭도 했지만, 한국 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분야가 드라마와 예능이어서 K-애니메이션은 통과해야 할 많은 허들과 관문이 있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정면 승부를 겨루자고 결정했다. 지금 기록하고 있는 스코어와 별개로 우리 의지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건 놓칠 수 없는 상황적 이슈였다. 사실 100만이 넘었다면 글로벌 시리즈도 만들고 더 도전적인 시도가 가능했을 텐데 지금의 성과로는 극장판으로 한 편 더 갈 수 있을 것 같다. 1편의 제작비 대비 비슷하거나 그보다 작은 규모로 서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쪽으로 목표를 정해 2편에 착수하고 있다.

Q<퇴마록>의 애니메이션은 침체된 한국영화계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만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안전한 선택으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사업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모험을 감행한 배경은 무엇인가?

의지와 비슷할 것 같다. 우리 회사에는 애니메이션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 장르에 관한 애정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게 없으면 중도에 그만둬도 될 만한 상황이 너무 많았다. 우리 세대는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할리우드와 일본의 최고 결과물들을 보면서 자랐다. 지금도 그렇기는 한데 아동의 경우, 한국 애니메이션을 정말 많이 보고 성장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롱런하는 오리지널 한국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시점이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퇴마록>을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는 양질의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성공해 더 좋은 환경에서 돈도 많이 벌기를 희망한다.

Q애니메이션에 미쳐 있고 애정이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LOCUS 설립 때부터 있었고 전에도 꾸준하게 애니메이션을 위해 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키운 건 8할이 애니메이션이다. (웃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랐다. 그게 전부 일본 거 아니면 미국 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안’ 만들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 업계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안 만든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구나. 그래서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다음 세대에게 유년 시절을 각인시켜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더라. 자연스럽게 프로듀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프로듀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도 해봤는데 능력이 없었다. 대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사람을 서포트하고 적재적소에 능력 있는 사람을 모아 작품이 완성될 수 있도록 돕는 게 프로듀서의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원 재학 당시 교수님이 애니메이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졸업 후 프로듀서로 그 회사에 취업을 한 게 경력의 출발이다. 그때가 2007년인가, 2008년이었으니, 벌써 일한 지 17년이다. 첫 회사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하고 없어졌다. 너무나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가 그런 운명을 겪는다. LOCUS에서는 지금껏 10년째 버티고 있다.

QLOCUS의 현(現) 대표 홍성호 감독이 연출한 <레드슈즈>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지금은 부사장이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본부장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부사장과 본부장은 그냥 타이틀로 붙은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LOCUS에는 여러 개의 사업 분야가 있다. 컴퓨터그래픽(CG)을 다루는 VFX STUDIOS, 실감 콘텐츠, 전시 등 특수 영상을 다루는 eX STUDIOS, 그리고 LOCUS ANIMATION이다. 그중 애니메이션이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전략 사업이다. 사업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본부장과 부사장의 타이틀을 주신 거 같다. 그 때문에 업무적으로 변한 건 없다. 늘 하던 대로 하고 있다. 다만, 프로듀서와 본부장의 업무는 좀 구분되어 있다. 본부장의 업무는 포괄적이다. 프로듀서는 한 작품을 제작하고 그걸 온전히 진행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프로듀서로서 한 작품에 집중할 때는 하루하루가 전투 같은데 사람끼리 부대끼고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작업이 피부로 와 닿아서인지 재미있다. 프로듀서와 다르게 본부장은 멀리 떨어져 흥미롭게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율하는 느낌이라 필드에서 동떨어진 것만 같아 서운할 때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회사 내 부서들이 한 프로젝트만 굴리는 게 아니어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이나 세일즈 같은 부분까지 살펴야 해서 과제가 훨씬 많고 걱정거리가 더 많은 게 프로듀서와의 차이다.

Q작업의 특성상 LOCUS에는 젊은 세대가 다수를 이룬다. 이들이 한국 애니메이션 창작에 갖는 인식은 이전 세대와는 다를 듯하다. 단편의 경우만 하더라도 양질의 한국 애니메이션이 꾸준하게 만들어지고 있고,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자신감이라고 할까. LOCUS의 젊은 사원들이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입사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퇴마록>을 비롯해 여러 작업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겨난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2000년대생들이 들어온다면 그들은 지금 LOCUS의 젊은 사원들과는 또 다른 자신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본다. 애니메이션 관련한 대학교가 많고 또 굉장히 잘하는 곳도 있다. 특히 단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가 좋다. 단편이나 3차원(3D) 애니메이션과 같은 작업을 학생 때부터 해 나가면서 해외에서 상을 받고 진출도 하는 경험을 꾸준하게 쌓아 가고 있다. 이들이 LOCUS과 같은 필드에 들어와 더 큰 작업을 이어 나가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거나 OTT 같은 플랫폼에서 작품을 론칭하며 경험을 쌓아 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한다는 인식을 하고 한국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거라고 본다. <퇴마록>을 개봉하면서 팬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에 고무된 직원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그래서 LOCUS가 더더욱 오랫동안 존재하면서 좋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게 중요하다.

Q<퇴마록> 이후 LOCUS가 차기작으로 선보일 작품은 무엇인가? 웹툰 원작의 <호랑이 형님>과 <덴마>를 기획하고 있고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의 애니메이션 판권도 소유하고 있다.

<전자오락수호대>다.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고 캐릭터와 콘셉트 아트 이미지는 이미 공개했다. 팬들이 많이 기다리고 계셔서 개봉은 올해라고 얘기했는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전자오락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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