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이런 사랑도 가능하다는 위로
<파반느>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이승재(한경매거진앤북 기자), 넷플릭스
대담 _ 맹준혁(출판편집자), 홍수정(영화평론가)
2026-03-09
영화 <파반느>는 오래된 프로젝트다. 20만 부 이상이 팔린 박민규의 베스트셀러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영화화한 것으로, 2017년 이종필 감독이 연출을, 배우 고아성과 조현철이 주연을 맡기로 발표되었다가 무산된 바 있다. 이종필 감독과 고아성은 이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함께 하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2024년 촬영을 완료한 <파반느>는 극장 개봉을 타진하다가 지난 2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원작이 보여준 1980년대 중반의 시대를 과감히 각색하고, 세 주인공에게 각각 이름을 부여하며, 지금의 청춘이 바라볼 만한 현실적 낭만을 간직한 채로. 청춘의 자화상에 자기만의 리듬을 부여한 이 영화에 호평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근 10년의 표류 끝에 완성된 이야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맹준혁 출판편집자 겸 문화평론가와 홍수정 영화평론가가 <파반느>의 시대성에 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누었다.
Q영화 <파반느>는 무려 17년 전에 나온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어떤 기대 혹은 우려가 있었나.
홍수정 영화평론가
단순히 17년의 흐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사이 여성관의 격변이 있었다. 미투도 있었고. ‘못생긴 여자와의 연애’는 원작이 지금 출간됐더라면 논란이 있을 법한 소재다. 영화화했을 때 ‘못생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조금 우려했다. 영화에서는 ‘못생김’이라는 표현을 필사적으로 쓰지 않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만나면 압도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공룡’이라는 별명으로 지칭하면서 그런 주인공 미정(고아성)을 소외된 여자, 외로운 여자라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풀어낸다. 그 부분은 시대를 반영해서 유연함을 잘 발휘했다. ‘못생긴 여자’가 여전히 하나의 기호로 소비되는 측면이 있어서 아슬아슬한 면은 있지만. 어쨌든 기획 의도에 잘 맞는 괜찮은 작품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공개됐고 원작도 있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파반느>의 미덕이다. 원작과 큰 차별성을 끌어내려고 무리하게 변형하지 않고, 감성에 집중하면서, 어려울 수 있는 부분들은 우회해가는 시도가 적절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0년 전 군대에서 읽었고, 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우려했던 지점은 비슷하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는 것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다. 텍스트일 때는 독자가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채우니 크게 문제가 없지만, ‘못생김’을 영화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완성된 영화는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잘 풀어냈다. 원작과 비교하면 당연히 아쉬움이 있지만.
맹준혁 출판편집자

맹준혁 출판편집자 겸 문화평론가(왼쪽)와 홍수정 영화평론가
Q원작은 외모에 대한 문제, 약자에 대한 관심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통찰’ 등으로 이어진다고 평가받아왔다. 17년의 시간을 넘어서, 영화는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화했다고 보나?
원작의 핵심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라는 키워드로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를 물으면서, 결국 이런 사랑은 지금 체제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와 방향이 다르다. 영화 속 미정과 소설 속 왕녀에 대한 해석이 많이 다르다 보니, 자본주의 체제 비판에까지 다다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영화에서는 계층에 대한 요소를 넣으려고 미정이 근무하는 백화점의 다른 여성 직원들, ‘샤넬’, ‘구찌’로 불리는 명품 매장 직원들과 비교하면서 어떤 결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다만 그 시도가 단편적이어서 계급적인 문제나 전체 시스템을 깊이 건드리지는 못한다. 이종필 감독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에서도 그랬듯이 인물의 정서와 내면에 집중하는 연출을 잘하는데, 그럴 때의 분위기가 동화적이라고 할까. 사회적인 메시지를 넣는 부분에서는 조금 한계가 있다.

Q주요 무대가 백화점이다. 원작이 이 공간을 통해서 말하려던 것을 영화는 어떻게 ‘자기화’했을까? 그리고 이 장소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상징의 공간으로 느껴지는지?
영화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소설 안에서 왕녀가 있는 공간은 조금 더 비판적인 느낌이 강하다. 영화 속 백화점은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스쿨 카스트’를 연상시킨다. 학교 안에 계급이 존재해서 잘나가는 친구, 뒷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 모범생, 괴롭힘당하는 친구가 있는 식으로. <파반느>의 인물들도 마치 계급이 나뉘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실은 계급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 정도로 그려진다. 미정이 사라진 이후 경록(문상민)에게 미정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이도 미정을 괴롭혔던 백화점 여직원 가운데 한 명이다. 즉, 인물들은 체제의 대변자로서 비판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소설의 비판적 시선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백화점에서 미정이 있는 공간이 남루하면서도 비밀스러워서 동화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인공 조제가 있는 공간은 비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아기자기하게 묘사된다. 조제에게 끌리는 츠네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공간감을 주는데, 그와 비슷하다. 백화점 앞에 전시된 빛나는 공간과 미정이 있는 지하 공간, 경록과 요한(변요한)이 일하는 주차장의 대비가 잘 보이는 것은 좋았다. 최근 <레이디 두아>(2026, 넷플릭스)도 백화점 공간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는데, 그에 비하면 <파반느>의 백화점은 더 낭만화된 공간이다. 유효한 상징이지만 날카롭거나 뾰족하지는 않다.
나도 <파반느>를 보자마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재밌는 건, 그 영화의 원작 단편 소설 엔딩의 감성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감성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조제가 츠네오를 놔준다는 느낌이 있다. 영화 <파반느>에서도 미정이 경록을 놔준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대중영화의 화법인가 싶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백화점은 아름답고 주제와 맞는 공간이지만, 시대에 관한 유효한 상징이었는지 생각하면 애매하다. 우리가 이미 의미 과잉의 사회에 살기 때문에, ‘유효한 상징이라는 게 존재하나? 지금 대중 예술로 그런 상징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Q원작보다 영화가 더 강렬하게 살려냈거나 혹은 아쉽게 삭제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면?
홍수정 영화평론가
결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소설에서는 왕녀가 요한과 함께 떠난다. 소설로서는 좋은 결말이었지만 지금 감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영화가 소설의 결말을 취했다면 경록과 그렇게 절절한 사랑을 하던 미정이 러닝타임 1시간 반 만에 요한과 결혼하는 것을 관객이 납득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의 결말이 괜찮다고 본다. 한편 <파반느>의 첫 장면이 경록의 엄마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로 인해서 경록의 모성 결핍이 강조되고. 이 이야기를 경록이 미정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이 위로해주지 못했던 상처받은 엄마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서사로 받아들이게 한다. 경록이 미정과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은유적으로 보여진다는 점도 모성 결핍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와닿았다.

영화의 결말이 매우 아쉬운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나다.(웃음) 소설은 마지막 챕터 ‘Writer’s Cut’에서 요한이 왕녀와 결혼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 부분이 독자에게 주는 충격이 있었다. 그 챕터를 읽으면서 앞의 내용들이 재배치되는 느낌도 있었고. 소설의 결말을 영화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원래 이 이야기는 두 청년의 성장 서사이고, 박민규 작가가 건넨 충격을 좋아했던 원작 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Q이종필 감독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1990년대 복고 정서와 경쾌한 리듬감을, <탈주>(2024)에서는 속도감 넘치는 편집, 게임처럼 미션을 클리어하는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2023, Wavve)에서는 박하경의 내면을 편안하고 담백한 화면에 담아냈다. <파반느>에서는 그의 연출적 리듬과 편집이 어떤 특징을 보이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홍수정 영화평론가
이종필 감독의 작품은 특유의 동화적인 분위기가 있고, 사회 문제와 만나면 약간 나이브하다. 그런데 <파반느>가 집중하는 감성 자체가 남녀의 순수한 사랑이고 원작도 탄탄하다 보니 연출의 장점이 잘 드러났다. 이 영화가 지닌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의 색깔이 이야기와 잘 배합되어 세련되게 보이는 면이 있다. 다만, 미정과 경록이 한밤중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처럼 순간 너무 나간 장면이 있다고 느꼈다. 그에 비해 LP 상점에서 음반을 듣던 경록이 눈물을 흘리는 후반부 장면 연출은 절제미가 있어서 좋았다.
말하려는 바를 잘 드러내는 연출이었다. 이야기의 메시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원작과 다른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건 확실히 장점이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Q요즘 관객, 굳이 좁혀서 지칭한다면 10·20·30세대의 공감을 일으킬 만한 장면이 있을까?
‘취향저격’이라고 할 만한 장면을 꼽기는 어렵다. 다만 후반부에 요한(변요한)이 미정과 통화하며 내 소설이 솔직히 어땠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미정이 “끝이 너무 해피엔딩이더라”고 하자 요한이 “그렇게 한 번 써보고 싶었어”라고 답한다. 사실상 그 대사가 10·20·30대의 감성이 아닐까 한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막차를 탔던 경록이 버스에서 내려서 미정에게 다시 달려오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많이 언급되는 장면이다. 별건 아닌데, 경록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뛰어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새는 연애나 결혼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서 계산하는 문화가 당연한 듯 자리 잡았다. <나는 SOLO>(ENA, SBS Plus) 같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마지막 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달려오는 그 모습이 뭔가 큰 희생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Q세 주인공 미정, 경록, 요한 역의 고아성, 문상민, 변요한의 캐스팅은 캐릭터의 특성이나 매력과 잘 부합하나?
홍수정 영화평론가
캐스팅이 다 했다고 할 정도다. 고아성은 “어떻게 소설의 왕녀가 고아성일 수 있냐, 저렇게 사랑스러운데!”라는 반응이 많은데(웃음), 비현실적인 설정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아우라가 특별하다. 미정이라는 캐릭터를 수긍하게 만드는 많은 부분이 고아성의 연기로부터 온다. 문상민은 영화가 요구하는 ‘청춘의 얼굴’을 잘 드러냈다. 명품 매장 직원 세라(이이담)가 대시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설득력 있었다. 변요한은 장난스러우면서도 현자 같은 요한 캐릭터의 우수를 잘 살렸다.
캐스팅이 다 했다는 것을 넘어서 고아성이 거의 다 했다.(웃음) 고아성이 미정이라는 캐릭터를 원작 소설의 왕녀보다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 같은 캐릭터에 더 가깝게 해석했다는 생각이다. 소설에서 왕녀는 남자 주인공에게 동정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그와의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도망치는 것에 가깝다. 영화에서 미정은 복합적인 감정이 있지만 경록을 놓아준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원작의 왕녀와 영화의 미정은 아예 다른 캐릭터이고, 고아성의 해석이 왕녀의 분위기를 흡수하면서 미정이라는 캐릭터를 대중적으로 확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문상민이 연기한 경록은 청춘의 대변자처럼 느껴지지만 소설에서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것에 비하면 평면적이다. 청춘영화에 당연히 어울리는 캐스팅이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납작함도 있다. 변요한은 요한 캐릭터에 딱 맞는데, 이전작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익숙한 면도 있었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Q<파반느>의 설정에는 기억상실, 교통사고 같은 여러 클리셰가 있다. 그것들이 영화의 완성도를 방해했나? 아니면 완성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충분히 받아들일 만했나?
영화와 소설이 클리셰를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박민규 작가가 클리셰를 쓰는 것은 의도적으로 읽힌다. 클리셰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인물들의 감정이나 사랑에 관한 고민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해서 클리셰들을 뻔하지 않게 만든다. 영화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클리셰를 잘 소화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하는 차원에 머무른 것 같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클리셰로 치자면 이 영화 전체가 클리셰인 것 같다.(웃음) 익숙한 설정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것을 돌파하려고 무리하지 않아서 좋았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법하다는 정도로 잔잔하게 연출됐다. 영화 안에서 쓰인 소품들을 예리하게 리뷰하는 이들도 많던데 그런 디테일을 잘 살렸다. 다만 소설에 없던 신인데, 미정이 보육원에서 피아노를 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굳이?(웃음) ‘나는 이렇게 밝은 세계에 왔다’는 느낌을 보여주려는 그 장면은 이해하려고 해도 너무 클리셰였다.

Q2025년 말 개봉한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이하 ‘오세이사’)와 <만약에 우리>가 한국 청춘멜로영화로서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모두 해외 원작의 리메이크작이다. 공교롭게 원작 IP가 있는 <파반느>가 첫사랑 감성을 공략한 <오세이사>, 취업난 같은 현실에 부딪힌 연인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낸 <만약에 우리>와 달리 열어놓을 수 있는 세 번째 길이 있을까?
홍수정 영화평론가
지난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가수 화사의 ‘Good Goodbye’ 무대에 대한 열광도 일종의 멜로에 대한 열광이 아닐까 할 정도로, 청춘멜로에 대한 관심이 돌아오고 있다. 제작이 아직 활발하지 않고 리메이크 형태로 많이 공급되지만 흐름은 확실히 있다. 그런데 최근 멜로들은 로맨틱 코미디나 밝고 발칙한 작품보다는 약간 비틀린, 다소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이면서 위로가 되고 잔잔한 멜로들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파반느>도 그런 결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멜로들과 달리 소외된 사람들의 연결이라는 코드를 제시했고, 사랑의 순수성도 많이 강조됐다.
10대에서 30대까지 청춘멜로를 보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연애를 하지 않는 세대로서 연애를 콘텐츠로만 소비한다는 것이다. 요한이 “그렇게 써보고 싶었어”라고 하듯이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연애를 소비하는 대신 내가 보고 싶은 연애를 소비한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나 <파반느> 같은 작품도 결말의 서사와 무관하게 일단 예뻐야 한다. 그건 <환승연애>(TVING)나 <나는 SOLO> 같은 리얼리티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파반느>나 <만약에 우리>가 관객에게 선택됐다면 OTT 연애 콘텐츠들과 함께 볼 수 있겠다는 차원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싶다. 원작은 ‘이런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영화는 ‘이런 사랑도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듯한데, <파반느>가 세 번째 길을 열고자 한다면 원작의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런 면에서 <만약에 우리>가 <파반느>보다 장점이 더 많은 작품이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홍수정 영화평론가
일면 동의하지만 연애를 하지 않는 세대가 소비하는 장르라면 로맨틱코미디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지만 로맨틱코미디는 확실히 최근 트렌드가 아니다. 관객은 위로가 되는 작품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작품들은 멜로에 한정해서만 해석되지는 않으니까. <파반느> 역시 개인의 성장 서사이면서 위로의 감성에 다가가는 면이 있다.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아마 <파반느>를 보고 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울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비약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보고 운 사람들의 감정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연애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해소해야 하는 감정들이 있고, 그 감정들을 콘텐츠를 통해서 계속 해소하는 것이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Q결국, <파반느>는 YES인가, NO인가
홍수정 영화평론가
결론은 YES다.
극장 개봉을 했다면 또 달랐을 수 있다. <파반느>의 훌륭한 점은 적정선을 잘 지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적정선의 미학이 스크린에서 본다면 오히려 결핍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돼서 굉장히 대중적이고 색이 강하진 않지만 불편한 점도 없을 만큼 여러모로 밸런스를 갖췄다. 그 점이 장점으로 발현되었다.
조건부 YES다.
원작과 비교하지 않는 선에서 YES이고, 원작 팬 입장에서는 많은 부분이 NO다. 사실 영화가 원작의 주제 의식과 어떤 지점에서는 반대되고, 원작의 주제 의식을 해치는 면도 있다. 너무 아름답고 예쁘게 포장하다 보니까. 영화 <파반느>와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는 의도한 바를 잘 수행한 콘텐츠라는 측면에서 YES다.
맹준혁 출판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