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더 이상 타인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회에서
<간첩사냥>
글 _ 김철홍(영화평론가)
사진 제공 _ 마노엔터테인먼트
2026-03-09
<간첩사냥>은 첫인상이 좋은 영화는 아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첫인상을 심으려 노력한 것 같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다. 그게 이 사냥의 첫 번째 전략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관람 전후 감상의 차이가 큰 영화다. 그러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다. <간첩사냥>이 이렇게까지 하며 사냥하려 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것에 성공하였을까.
그전에, 누군가는 앞 문장에서 이상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영화 ‘관람 전’과 ‘관람 후’ 감상 간 비교가 유의미한 것인가에 대하여 말이다. 쉽게 말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의 감상, 혹은 ‘첫인상’이 영화를 말하는 데 있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따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엔 그런 불합리한 일들이 차고 넘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다. 아예 보지도 않은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자신이 본 것을 영화의 전부라 확신하는,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이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한 채 최종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길 바라는 소수의 -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는 - 영화 관람객들을 상정한 소통만을 지속하는 것은, 비록 안락할 순 있어도 그 끝은 고립뿐이다. 영화라는 예술은 지금 그런 위기에 처해 있다.
사실 영화보다 더 위기인 것은 공동체이다. 한국영화의 위기가 말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등장한 <간첩사냥>이라는 영화 또한, 영화보다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위기를 더 시급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위에 언급한 영화가 처한 상황, 그것과 정확히 똑같은 취급을 다름 아닌 사람이 받고 있는 장소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말하듯, 사람을 보지 않고 사람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의 일면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한다. 그렇게 서로를 헐뜯는다. 편이 갈린다. 점차 특정 진영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공통적인 특징이 생겨나고, 오직 그것만 확인되고 나면 더 이상의 소통이 진행되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갈등만이 문제가 아니다. 본격적인 소통이 시작되기 전에 눈에 보이는 한두 가지 특징만으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는 것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의도적인 첫인상 또는 선입견
<간첩사냥>은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노골적인 특징을 지닌 두 인물이 소개된다. 반중친미, 한미동맹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차를 타고 다니는 남성 노인 장수(민경진). 그리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며, 동네에 살고 있는 간첩 의심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여성 청년 민서(박세진)다.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이어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말들을 쏟아낸다. “국정원 111, 경찰 113, 군부대 1337. 옛날엔 상식이었는데 말이야.” “하여간 요즘 애들은 너무 편한 것만 찾는다니까.” “빨갱이 척결.” “요새 애들 문제다.” 누군가는 전형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말들. 혹은 곧바로 이 인물들의 ‘색’을 알 수 있는 말들. 너무 뻔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말들. 그래서 그들의 다음이 궁금해지지 않는 말들. <간첩사냥>은 그런 말들을 뱉는 인물들이 주인공이기에 누군가에겐 처음부터 벌써 그만 보고 싶은 영화다. 아니 사실은 제목에 있는 ’사냥’이라는 표현에서부터 보지 않기를 선택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만든 자신의 첫인상이다.
장수와 민서 둘은 한 사람을 간첩으로 단정 짓고 있다. 탈북자 출신 군인인 영훈(허준석)이다. 둘이 영훈을 간첩이라 굳게 믿고 있는 주요한 이유는 영훈이 탈북자라는 사실이다. 이건 동어반복이 아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과거를 가진 사람의 미래를 진심으로 단 1분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장수와 민서는 ‘영훈’이라는 영화의 뒷이야기를 보지 않은 채 판단을 끝내버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간첩사냥>은 극의 초반부를 관객들에게 두 인물의 이러한 전형성을 주지시키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동시에 영훈이 정말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간첩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단서들을 흘린다. ‘위대한 수령님과 인민의 안녕을 위하여’라는 문자를 주고받는 제3의 인물 홍단(고도하)의 활동 모습까지 교차 편집하여 혼란을 가중시킨다. 허나 극이 진행되며 영훈의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것이 영화의 트릭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러니까 단지 서사 속 비밀뿐만이 아닌 감독의 숨은 의도가 드러날 때, 우리는 그동안 선입견에 갇혀 타인을 특정 색깔로 단정 지은 채 평가하고 있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왜 안 물어보십니까? 이미 알고 계셨던 것처럼
영화가 그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은 영훈이 장수에게, 아니 어쩌면 우리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때다. 지금까지 코믹스러운 분위기로 흘러가던 영화는 이때 잠깐 스릴러 영화가 되어 서스펜스를 생성하기도 한다. 장수가 어느 날 게이트볼 보충 훈련을 하기 위해 훈련장을 찾는다. 그러나 훈련장은 불이 꺼져 있고 아무도 없다. 그때 저 멀리 어두운 곳에서 군복을 입은 영훈이 등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그런데 선생님. 왜 안 물어보십니까? 이미 알고 계셨던 것처럼.” 이 질문이 긴장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사상으로 파악이 어렵지 않다. 장수는 영훈이 간첩이라는 확실한 물증을 찾기 위해 영훈에게 접근한 상태고, 그래서 탈북민으로 위장해 영훈이 운영하는 게이트볼 클럽에 가입을 했다. 그런데 영훈의 입장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군복에 대해 질문하기 마련인데, 장수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의심쩍었던 것이다. 영훈도 합법적이지 않은 루트로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던 터라 외부인인 장수를 특히 경계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훈의 이 질문은 장수뿐만이 아닌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자세를 고쳐 잡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영화 속 인물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왜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물어보지 않았던 것일까. 익숙한 대사를 뱉고 뻔한 행동을 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 다음에 장수의 “왜 안 물어보십니까?”라는 질문이 붙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영화의 부정적인 첫인상이 의도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시퀀스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연출은 영훈이 게이트볼 스틱을 마치 골프 스윙을 하듯 강하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주로 고령층이 즐기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스포츠로 알려진 게이트볼에서 이러한 파워가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단박에 보여주는 장면으로, 여기서 관객이 느낀 당혹감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이렇듯 <간첩사냥>은 극 전체가 관객에게 선입견을 심은 다음, 그것을 다시 강하게 깨부수는 장면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간첩’을 비롯한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장르 영화들에서 자주 보이는 것으로, 그 자체로 강조해야 할 무언가는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는 배경이 지금의 한국처럼 다른 진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헐뜯는 그 강도가 극으로 치닫는 곳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더 이상 타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라면, <간첩사냥>의 연출 전략과 그 서사 배경 선택이 아주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힘주어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인 민서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짚을 점이 있다. 민서는 등장할 때부터 이른바 ‘극우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기에 지금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또 동시에 20대 여성이라는 점에서 도식을 비껴가는 지점이 있다. 또 한 장면에선 권총 사용법 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폭력과 가까운 인물인 듯한 인상을 주지만, 곧이어 말을 하지 못하는 척하는 홍단과 마주쳤을 때 그를 장애인이라 인식하며 순식간에 톤을 바꾸어 배려하는 모습에서 그녀를 단순한 인물로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기에 민서가 간첩을 좇는 이유가 밝혀졌을 때 우리는 민서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의 ‘간첩 사냥꾼’들에게 각자만의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보게 된다.

함께 늙을 날을 바라며
그런 민서가 극 후반에 장수에게 말한다. 장수가 다른 간첩을 좇는 노인들과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민서는 이제 장수에게 질문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민서는 장수에게 왜 다른 노인들과 어울렸는지를 묻고, 장수는 그들이 없었다면 혼자 늙어 죽었을 거라고 답한다. 그 답을 들은 민서가 말한다.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이 대화엔 한국영화의 위기를 불러온 영화들에서 메아리치듯 반복되는 뻔한 대사나 억지 감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누군가가 타인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행위 그 자체만이 장면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 영화의 에필로그 전 마지막 쇼트는 민서와 장수가 모든 소동이 끝난 뒤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전혀 연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가까운 거리에서 흡연하는 모습이 투숏으로 잡힌다. 영화를 본 우리는 이제 그들의 사정을 잘 알기에 여기서 따뜻한 연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과연 아무것도 모르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둘을 보며 무슨 말을 내뱉을까. 사람들이, 아니 우리들이 부디 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함께 늙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