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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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 YES or NO

사랑과 욕망보다 인간애

<파과>

진행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이승재(한국경제매거진 기자)
대담 _ 최은영(영화평론가), 허희(문학평론가)

2025-05-16

독특한 소재를 통해 현실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구병모의 소설들은 늘 영화적이라는 인상을 남겨왔다. 그중 민규동 감독이 영화화한 스테디셀러 <파과>는 40년간 ‘세상의 벌레들을 방역한다’는 취지하에 냉혹한 청부 살인업자로 일해 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혜영)의 이야기다. 조직의 레전드였지만 이제는 허물어지는 육신. 에이스로 떠오른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의 도전. 폭력적인 세상에서 여성 킬러로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 온 조각에게도 늙어 가기에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은 당황스럽다. 어느 날 방역 작업을 하다가 다친 조각은 자신을 도와준 의사 강 선생(연우진)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 투우는 그런 조각을 혐오하면서 맹렬히 달려들고, 조각은 강 선생과 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맞선다. 아직은 살아 있고 싶고, 살리고 싶은 것들에 대해 느끼는 뜨겁고 시큼한 연민. 최은영 영화평론가, 허희 문학평론가가 애초에 한 편의 액션영화 같았던 원작의 영화화를 다각도로 이야기했다. 60대 여성 킬러의 직업적 고뇌, 뜻밖의 관계, 삶의 피로와 욕망에 대하여.

Q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는 한국 소설에서 강렬한 여성 서사를 지녔다고 평가 받는 작품 중 하나다. 이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 <파과>의 첫인상은 어땠나?

최은영 영화평론가

영화로서만 말하자면, 60대 여성 킬러라는 소재와 이혜영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존 카사베츠의 영화 <글로리아>(1980)를 떠올렸다. 그런데 완성된 <파과>는 오히려 클래식했다. ‘조각’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인 동시에 이혜영 배우와 잘 맞았다. 그런데 조각 이외의 인물들은 조금 전형적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다. 실은 구병모 작가와의 북토크 자리에서 <파과> 영화화 소식을 듣고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때 이혜영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고 하니 관객들이 “잘될 것 같다”, “너무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젊은 킬러인 ‘투우’는 소설에서는 마동석 배우 같은 거구의 남자였다. 그런데 김성철 배우 캐스팅 소식을 듣고 영화가 투우를 조금 달리 해석했겠구나 싶었다. 투우의 비중이 원작보다 훨씬 많아졌다. 영화는 조각과 투우, 두 사람의 복수극을 표방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이디푸스의 변주 같은 느낌이 많이 있다.

허희 문학평론가

Q언급한 것처럼 소설의 언어가 영화의 언어로 전환될 때 더 강조되거나 축약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효과적인 부분과 아쉽다고 느낀 부분은?

최은영 영화평론가

일부러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소설을 봤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 봐. 영화는 소설과 지향점은 같지만 방향성이 다르다. 노쇠함의 정서는 같은데, 표현 방식이 다르다. 영화 오프닝은 눈길을 걷던 젊은 조각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소설은 현재 조각의 지하철 살인 장면부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의 오프닝이 더 영화적이고, 영화의 오프닝은 더 설명적이었다. 그리고 한국영화에서 여성이 킬러이거나 사연 있는 주인공으로 나오면 항상 그를 감정에 휘둘리게 만드는 것이 가족, 유사 가족 혹은 연인이다. 인연, 연민 같은 것이 영화에서 훨씬 더 강하게 작동한다.

영화평론가 최은영

확실히 소설의 오프닝이 더 강렬하다. 지하철에서 현재의 조각이 여성 승객에게 무례하게 구는, 이미 암살 타깃이던 남자를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조각이 자신을 킬러로 만들어준 남자 류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서술한다. 어린 조각이 식모살이 하던 집에서 나오면서 류를 만나는 과정들을 묘사하다가 현재에 이르는데, 영화에서도 교차 편집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류(김무열)가 소환된다. 영화에서는 그 방식이 아무래도 설명적이어서 나 역시 아쉬웠다.

결말도 소설과 영화의 메시지가 갈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조각은 투우와의 결투를 끝내고, 네일 아트를 받으러 간다. 왼손을 잃은 채. 네일 아트 숍 원장이 “어머니”라고 하자 “나는 그쪽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 결말을 두고 소설 <파과>가 일종의 반가족주의 선언을 했다는 평이 있었다. 조각은 친가족에게 버림받았고, 류와 만들었던 유사 가족도 해체되어 버린 후 독자적으로 살아 왔다. 소설에서는 조각이 고독한 존재로 남았고, 영화는 사적 복수, 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강화했다. 소설의 결말이 조각이라는 캐릭터와 더 어울린다.

허희 문학평론가

최은영 영화평론가

영화는 가족 얘기를 많이 넣었다. 소설에 없던 캐릭터가 최무성 배우가 연기한 ‘장비’다. 타깃을 죽이려다가 자신의 죽은 딸의 환영을 보고 사고를 친다. 결국 업계 대모인 조각이 그를 정리한다. 극 중 장비가 대모님이라 불리는 조각과 나 사이엔 “세월의 무게가 있다”고 하는데, 조각과 오래된 관계의 인물들, 인연들을 장치로 많이 심어 놓고 있다. 조각이 길에서 데려온 유기견 ‘무용’도 마찬가지다. 무용은 조각을 굉장히 따른다. 소설에서 무용은 조각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시크한 강아지였는데, 영화에서는 조각의 결핍을 조금은 채워주는 관계다. 이런 설정이 조각과 어울리기보다는 약간 삐걱댄다.

소설에서의 조각은 어린 시절 식모살이를 하다가 쫓겨나는데 주인집의 장신구를 몸에 걸쳐보다가 들켜서다. 그래서 엔딩에 투우와 결투를 끝내고 네일 숍을 가는 것까지 연결되는 여성성의 자아가 있다. 영화에서는 이혜영 배우의 룩 때문에 조각이 60대의 할머니임에도 추레하기보다는 멋있고 클로즈업할 때마다 아름다웠지만, 배우를 통해서 드러나는 여성성 외에는 별다른 설정이 없다. 조각의 여성성을 죽여 버린 것이 아쉽다.

Q원작은 고독과 공허, 노쇠, 소멸에 이르는 정서들이 중요했다. 영화는 어떻게 다루었다고 보나?

영화를 보면서 ‘피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노화 때문이 아니라 킬러라는 직업 특성에 의한 피로다. 조각은 삶과 죽음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굉장히 피로하다. 민규동 감독은 넓고 차가운 공간 안에 계속 조각을 밀어 넣음으로써 존재의 피로감, 무력감을 드러낸다.

한편으론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원작과 영화에 모두 녹아 있다. 사실상 조각에게 이성애적 욕망의대상은 강 선생(소설에서는 강 박사)이다. 소설에서는 그 감정이 강력하다. 조각이 강 박사를 지키는 이유가 다친 자신을 도와줘서가 아니라 강 박사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거다. 나이 차이 때문에 어쩔 수는 없지만, 강 박사는 조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암시가 계속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강 선생이 조각의 손에 피가 났을 때 밴드를 감아주는 장면에서 살짝 엿보인다. 그 장면은 젊은 시절 조각의 손에 류가 밴드를 감아주는 장면으로 치환되는데, 조각이 강 선생에게 느끼는 감정이 실은 그때 류에게 느낀 감정이다. 그 감정이 단절되었다가 수십 년 만에 되살아난 셈이다. 소설에서는 사랑이자 욕망이던 감정이 영화에서는 인간애가 되어 버리니 캐릭터와 주제가 약화되었다. 소설의 정서를 가져왔더라면 조각이 훨씬 입체적이었을 것이다.

허희 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허희

최은영 영화평론가

영화에서는 투우가 강 선생을 질투하는 것도 조각이 나보다 강 선생을 더 아들처럼 아낀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질투 같았다. 그 차이가 아쉽다. 유사 아들, 지나간 인연, 반려견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은 어떻게 보면 익숙하고 안전한 키워드다. 이혜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해 놓고 왜 이런 안전한 선택을 했을까. 이혜영은 충분히 노년의 욕망,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소설 <파과>는 2013년에 발표되었다. 그때 ‘여성 서사’라는 레테르가 붙여지면서 구병모 작가가 꽤 많은 비난을 들었다. ‘여성 서사라면서 왜 남자에게 기대냐’, ‘왜 결말에서 네일 아트를 하고 손톱을 붙이냐’, ‘왜 여성성을 다시 강조하는 형태로 귀환해 버리냐’라는 식의 비판이었다. 그래서 구병모 작가가 <파쇄>라는 단편을 썼다. <파과>의 프리퀄인데, 이 단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파과>가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났고, 어떤 불꽃 같은 흐름 속에서 <파과>도 소환되었던 것 같다. 민규동 감독이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조각의 감정의 결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허희 문학평론가

Q확실히 60대 여성 킬러 ‘조각’과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이혜영이 지닌 상징성이 있다. 배우 개인으로서도,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의 장르적 궤적에 있어서도 이야기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최은영 영화평론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도 순종적인 여성의 반대 급부에서 이런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다뤄졌다. 여성 주인공이 자식 때문에, 연인 때문에 혹은 전 연인 때문에 3단 콤보로 무너지고 휘둘리는 이야기가 많았다. 여성 킬러가 등장해도 한동안 가족과 연인에게 휘둘리는 시기가 있었다. <악녀>나 <미옥>(2017)이 그렇다. 자기 욕망은 늘 둘째 문제였다.

조금 다르다고 느낀 영화가 <길복순>(2023)이었다. 길복순 역시 엄마이고 딸을 사랑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성 정체성을 밝히는 딸과 함께 그 자신도 성장한다. 길복순은 가족에게 완전히 휘둘리기보다는 확실히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킬러였다. 살인에 대한 자세도 달랐다. <파과>의 조각도 그런 지점에서는 진일보한 면이 있다.

푸근한 어머니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은 많지 않나. 조각은 전혀 다르게 자기만의 길을 걷는 캐릭터이기에 이혜영 배우 본인이 지닌 아우라와 딱 맞는 역할을 연기했다. 원래 뮤지컬로 데뷔하셨고, 한창 활동하던 1980년대 출연작 가운데 조선시대 ‘간성’(남성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스캔들을 다룬 영화 <사방지>(1988) 같은 작품도 있었다. 그 자체가 이혜영의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한다. <남부군>(1990)의 빨치산 역할이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2021)를 보면 그의 여성성을 협소한 범위로만 규정할 수 없다.

배우의 아우라를 조각이라는 캐릭터와 일치시키기 위해서 민규동 감독이 애쓴 것 같다. 조각이 걸어가는 뒷모습, 조각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이혜영 배우가 지닌 아우라가 느껴진다. 극 중에서 조각이 냉장고 채소칸에 상한 채 굳어 있는, ‘파과’된 복숭아를 손가락으로 긁어내는 장면이 있다.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그 장면을 잘 찍어냈다. 이혜영 배우의 상징성, 그녀가 지닌 독특하고 스펙트럼 넓은 여성성 자체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허희 문학평론가

Q<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부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무서운 이야기>(2012), <간신>(2015), <허스토리>(2018) 등 민규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다채로운 성격을 띤다.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지만 작품마다 내보였던 그의 연출적 특징이 <파과>에서는 어떻게 발휘되었을까?

최은영 영화평론가

민규동 감독은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후 줄곧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관심과 호의, 애정을 갖고 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동성애적 관계인 두 소녀 이야기는 당시 굉장한 파격이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도 임수정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이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여성 캐릭터와는 결이 달랐다. <허스토리>도 중년 여성의 걸크러시 느낌이 있었다. 가부장적인 틀에 갇히지 않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이어져서 <파과>까지 왔다. 다른 길을 가려는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깔려 있다. 데뷔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후로는 상업영화 틀에 맞춘 영화들을 훨씬 많이 만들어 왔고, <파과>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혜영이라는 배우의 특성이 기존 상업영화와의 거리를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그게 양날의 검 같은 느낌도 있다.

민규동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도 드라마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또한 <허스토리>나 <내 아내의 모든 것>처럼 욕구를 지닌 여성들이 주인공인 작품을 찍을 때의 뉘앙스, 태도의 윤리가 있다. <파과>도 그렇다. 캐릭터를 소비한다는 느낌은 안 든다. 조각을 더 피 흘리게 만들고, 더 가혹한 형태로 내몰 수 있었는데 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감독의 연출적 특징이고, <파과>에서도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허희 문학평론가

Q영화 <파과>가 지닌 공기는 요즘의 ‘디지털 스릴러’와는 다르다. 필름 누아르에 가깝다고 할까.

최은영 영화평론가

<파과>는 프렌치 누아르에 더 가까운 정서가 있다. 장 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1973)처럼 차갑고 냉정한 누아르 말이다. 그런데 프렌치 누아르가 멋진 것은 그 정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화면과 배우들의 몸짓, 연기가 스타일리시하다. <파과>가 이를 의도한 것 같긴 한데, 조각이나 투우는 어느 정도 개성이 있지만, 강 선생이나 방역 조직 수장인 손 실장 같은 인물들은 생명력이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 특유의 룩이 없다. 후반부 해피랜드에서 보여주는 조각의 액션도 아쉽다. 그런데 편집도 클래식해서, 몰입되는 순간 없이 흘러간다.

그림자의 깊이나 윤리적 회색 지대를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필름 누아르의 색채가 녹아 있다. 기존의 필름 누아르는 남성들의 허무 같은 것들이 강조된다. <파과>는 필름 누아르가 지녔던 공고한 남성성의 세계를 변주한다. 조각이 아침에 체력 단련을 위해 달리기를 하는데 엄청 숨이 차고 손을 떨지 않나. 뇌신경 쪽 문제를 의사가 진단하기도 했고. 주인공이 여성이기에 갖는, 그리고 존재론적 피로를 강조하면서, 기존 필름 누아르와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는 생각한다.

허희 문학평론가

Q 가장 인상적이라고 느낀 장면이 있다면?

최은영 영화평론가

아까 허희 문학평론가께서 언급하신, 물러서 냉장고 채소칸에 눌어붙은 복숭아 조각을 손톱으로 긁는 장면이다. 조각이 복숭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느낌을 너무 처량하지 않게 잘 살렸다. 품위 있는 절망감이랄까. 조각을 연기한 이혜영 배우가 영화 내내 보여준 느낌이기도 하고.

그 장면을 묘사한 소설의 문장을 적어 왔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렇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중략)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 안에 핀 성에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게 <파과>를 읽을 때 가장 백미라고 하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명장면과 거의 동급으로 여겨지는 묘사다. 영화에서 그 부분을 포착한 게 인상적이었다.

한 장면을 더 꼽고 싶다. 강 선생 딸이 납치된 후 강 선생이 조각에게 “내가 살리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살려서 그런 거죠. 근데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시 그럴 거예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라고 하자 조각이 저 멀리서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조각은 강 선생을 너무 좋아하고, 이 남자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런데 강 선생이 의사로서 할 일을 했다는 윤리적인 말로 벽을 쳤을 때, 저 멀리 남겨진 조각의 태도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걸 공손한 인사로 표현했고 많은 함의들이 있다고 느껴서 좋았다.

허희 문학평론가

Q<파과>는 결국 YES 인가, NO 인가?

최은영 영화평론가

이혜영과 김성철, 두 배우만 YES다.

김성철 배우가 연기한 투우가 좋았다. 조각과 매우 대조적으로 느껴지면서 감성을 잘 살린 캐릭터였다. 그런데 영화 전체적인 정서나 스타일은 배우들의 매력에 못 미쳤다. 기본 설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영화 <파과>는 여러 타협의 결과물이다. 대단히 상업적이지는 않고, 예술영화의 면모로 승부를 보기에는 장르적 특성이 크다. 미묘하게 결합된 요소들이 영화 안에서 충돌한다. 그러나 원작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감독이 고민을 담아 소설과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나름의 역량을 발휘했기에 YES다.

영화 <파과>는 여러 타협의 결과물이다. 대단히 상업적이지는 않고, 예술영화의 면모로 승부를 보기에는 장르적 특성이 크다. 미묘하게 결합된 요소들이 영화 안에서 충돌한다. 그러나 원작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감독이 고민을 담아 소설과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나름의 역량을 발휘했기에 YES다.

허희 문학평론가

파과 구병모소설 영화파과 민규동감독 이혜영 김성철 여성킬러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