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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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아니라 전력으로

<약한 영웅 Class 1•2> 한준희 크리에이터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_ 넷플릭스

2025-05-16

한국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넘나들며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크리에이터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 이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황동혁, 연상호, 그리고 한준희. 그 자신이 글을 쓰는 작가이자 연출하는 감독이면서, 시리즈 전반을 총괄 운영하고, 아티스트의 감성과 엔지니어의 마인드를 동시에 발휘하는 창작자. 향유할 수 있는 세계를 한발 한발 넓혀 가는 데에 성공하는 이들이 늘 그렇듯이, 언급한 감독들 모두 작품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일관된 방향을 추구하고, 자신과 연대하는 이들을 꾸준히 늘려 가는 타입이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한준희 감독은 그런 크리에이터들 가운데 가장 젊고,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세대다.

20대 초반부터 한국영화계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10년 만에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 <차이나타운>(2015)을 내놓았다. 두 번째 영화 <뺑반>(2019)을 만든 이후 연출작인 시리즈 시즌 1•2(Netfilx, 2021~2023)와 크리에이터를 맡은 <약한영웅 Class 1>(Wavve, 2022)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자기만의 레이블과 팀을 만들면서 30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는 동시에 팬데믹의 여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영화 <파일럿>(2024)을 기획, 각색했다. 배우 고민시를 캐스팅해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폰 갤럭시S24를 주제로 만든 4편을 연출하고, 한 달 만에 조회수 5000만 뷰를 넘기기도 했다. 그간의 행보가 보여주듯이, 한준희 감독은 2024년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크리에이터이자 쇼 러너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제작사 쇼트케이크(대표 김명진) 또한 차기작이 늘 기다려지는 곳이다. 그리고 지난 4월 25일, 그 결과물 중의 하나인 <약한 영웅 Class 2>(Netfilx, 2025)가 공개되었다.

넷플릭스 <약한 영웅 Class 2>



친구, 그 시절 전부였던 가치 2022년 선보였던 <약한영웅 Class 1>은 웹툰 <약한 영웅>을 성공적으로 각색한 학원 액션물이다. 토종 OTT 플랫폼 웨이브(Wavve)가 보기 드물게 내놓은 아시아 전역의 히트 시리즈였다. 주먹 한 번 제대로 뻗지 못할 것처럼 약해 보이는 모범생 연시은(박지훈)이 뛰어난 두뇌 플레이와 분석력으로 학교 안팎의 폭력에 맞선다. 연시은은 위급한 상황에서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서 싸움의 승률을 높이고, 주변의 사물들을 무기화한다. 이 방법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전혀 다른 자세였다. 여기에 청소년기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내면, 정글 같은 남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서열 싸움, 십대들에 대한 착취가 학교 밖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 유일한 비상구 같은 친구의 존재와 상실감이 더해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와 <파수꾼>(2011)의 시기를 거치며 “대한민국 학교, 다 X 까라 그래”의 마음으로 세대를 관통해 온 에너지가 <약한 영웅> 시리즈를 통해 현재에 축약된 것이다.

후속편인 <약한영웅 Class 2>는 3년 만에 플랫폼을 옮겨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Netfilx)에서 공개되었다. 한준희 감독은 “연시은이라는 인물의 뒷이야기를 보고 싶어 했던 감독, 스태프, 플랫폼 관계자들 모두가 의기투합한 결과”라고 말한다. 전편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시은은 친구 오범석(홍경)을 잃고,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입원한 안수호(최현욱)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은장고에 전학을 간다. “시은이 2학년이 되면서, 오리지널의 정서가 어떤 방식으로 뻗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연출을 맡은 유수민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여름과 겨울을 거치며 봄이 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장르의 외연을 확장해서 더 많은 볼거리들을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을 함께 채워 나가려고 애썼다.”

크리에이터로서 유수민 감독과 함께 대본의 방향을 잡으면서 내내 그를 사로잡은 단어는 역시 ‘친구’다. “뻔하고 상투적일 수도 있는데, 10대 시절엔 친구가 ‘그 시절의 전부’였던 가치다. Class 1과 2를 관통하는 얘기는 결국 친구다. 부모나 형제자매 등 가족이 아니라 처음으로 학교라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친구’라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집중적으로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워할 수도 있고 지긋지긋할 수도 있는. 내게는 특히 그렇다.”



앞으로의 삶이 낭만이라면 친구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약한영웅 Class 2>의 출발점이 되지만, ‘약한 소년의 강한 성장기’는 또 다른 친구들의 출현을 통해 이어진다. 연시은에게 다가오는 세 친구 박후민(려운), 서준태(최민영), 고현탁(이민재)이 그를 다시 웃게 만들고 우정의 빛남을 확인시킨다. “Class 1과 Class 2의 차이는 연시은이 이타적인 마음으로 손을 뻗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있다. 그 자체가 낭만이고 성장이라고 믿었다”는 크리에이터 한준희 감독의 말에는 한발 먼저 걸어가본 선배의 마음이 담겨 있다. 폐소공포를 느낄 만큼 절망적이고,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학창 시절을 기어코 살아내는 치열한 2학년의 생존기는, 그래서인지 확실히 전편보다 낭만적이다.

낭만에 대한 한준희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나도 남자 고등학교를 나오긴 했는데, 요즘에는 덜 그럴 수도 있고 더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동물의 왕국 같은 세계다. 시리즈가 군대 안에 있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약한영웅 Class 2>에서는 남자 고등학교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다만 조금 낭만적이라고 느꼈다면, 아마 이건 10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바뀔 수 있는 여지나 성장하고 변할 수 있는 정서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수민 감독도 비슷한 의중이어서 그렇게 묘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리즈가 ‘아직’ 보여주진 않지만 아마도 시은과 친구들은 고3이 될 것이다. <약한영웅 Class 2>에서 의식불명이던 안수호가 깨어났고, 일진 연합의 1인자로 군림하던 나백진(배나라)이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으며, 나백진을 부리던 최 사장(조정석)이 연합 2인자였던 금성제(이준영)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시은과 친구들이 이 고교 생존기를 통과하게 된다면 대학을 가거나 군대에 가고, 사회에 진출할 것이다. 새 시즌을 위한 포석이긴 하겠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라고, 또 다른 굴곡이 있더라도 우리 모두 ‘앞으로의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해주는 마음이 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이 시리즈를 더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의도치 않지만 가만히 있지 않는 <약한영웅> 시리즈가 또 다른 한 축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준희라는 크리에이터의 작업에 ‘연령대별 집단의 기억’이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에 대한 얘기를 흥미로워한다. 시리즈의 안준호(정해인)나 <약한영웅> 시리즈의 연시은은 다들 조금 갑갑한 부분이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의 한호열(구교환)이나 <약한영웅>의 안수호를 판타지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안준호와 연시은이 더 그렇다고 본다. 모두가 가만히 있을 때 가만히 있지 않는 인물 자체가 더 판타지 아닌가. 현실에서 그런 인물들이야말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는 아니지만.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집단 안팎의 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야 한다. 나는 그 과정들을 보는 걸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개인이 의도하지 않은 변화를 조금씩 일으킬 때 비로소 집단에 좋은 의미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고, 그 믿음에 그야말로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 그러니까, 한준희 감독은 겉으로는 조용한 모범생처럼 일하면서 빠른 두뇌 회전으로 다양한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본다는 면에서 연시은을, 쉴 틈 없이 일하느라 답답해 보일지언정 자신의 믿음에 반하지 않는 쪽으로 성실히 걸어가고 있다는 면에서 안준호를 닮았다. 그의 향후 프로젝트들이 그 증거다.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를 맡아, 5월 12일 ENA 채널에 공개된 또 다른 시리즈 <당신의 맛>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차린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지역 주민이라는 집단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하는가를 즐겁게 상상한 셈이다. <당신의 맛>은 한준희 감독이 전주에서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던 시절의 경험을 녹인 장편 시나리오를 원안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크리에이터를 맡아 최근 확정된 넷플릭스 시리즈 <꿀알바>는 시급 50배부터 시작하는 고수익 알바만을 소개하는 수상한 인력사무소를 배경으로, 청년 혁준(이재욱)이 미스터리한 노동 현장에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호러 판타지다. 차기작이자 직접 연출을 맡는 새 시리즈의 대본도 쓰는 중이다. 턱없이 모자란 24시간을 성실히 쪼개어 쓰면서.

한준희 감독이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시즌 1•2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를 맡은 ENA <당신의 맛>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를 맡은 넷플릭스 <꿀알바>



백업 스태핑, 배반하는 캐스팅 “어느새 10년이다. 2015년 장편영화 데뷔작 <차이나타운>을 개봉했고, 계속 작품을 만들어 왔다. 호평과 혹평 속에서 즐거울 때도 있었고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10년간 계속 사람들을 만나 왔다. 지금의 내가 뭔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나 혼자 해낸 게 아니다. 함께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준희 감독의 말처럼 그에겐 창작의 생존기를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다. 영화 <뺑반>을 거쳐 시리즈를 함께해 오고 <당신의 맛>에도 참여한 조감독은 제작사 쇼트케이크에서 연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약한영웅 Class 1> <약한영웅 Class2>의 유수민 감독도 한준희 감독이 영화제 심사를 하다가 만나서 ‘아는 형동생’ 사이로 발전하고, 결국 함께 일을 하게 된 케이스다. <약한영웅 Class 1>의 B 연출을 맡았던 박단희 감독은 <당신의 맛>으로 연출 데뷔를 했다. <당신의 맛> 한수정 프로듀서는 시즌 2의 제작실장 출신이다.

라인 프로듀서였던 친구를 프로듀서로, 아트디렉터를 미술감독으로 성장시키며 백업하고 총괄하는 방식의 스태핑이 크리에이터 한준희와 제작사 쇼트케이크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런 선택은 한준희 감독이 설명하듯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인재들을 데뷔시켜보자는 의지의 문제”이면서 “산업 구조에서 분명한 필요”를 창출해낸다. 한국영화계, 나아가 콘텐츠 업계의 젊은 세대와 교감하는 중추 역할로서 한준희라는 크리에이터와 제작사 쇼트케이크의 가치가 크다.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보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을 충족하는 동시에 그 기대를 배반하는 재미의 캐스팅. 꿈꿀 수 있지만 실현하기 힘든 일인데,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 때, 많은 작품을 한 배우이건, 신인이건 그가 해 본 적 없지만 흥미를 가질 매력 있는 모습의 캐릭터를 쥐어주려고 한다. 결국 그게 장르나 작품을 떠나서 영화나 시리즈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준희 감독의 이 말에, 데뷔작인 <차이나타운>에서 ‘엄마’ 김혜수의 쓸모를 새롭게 정의했고, 시리즈로 로맨틱 코미디에 강해 보였던 정해인이라는 배우의 묵직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던 선택이 새삼 떠오른다. 이외에도 쇼트케이크가 선택한 박지훈, 홍경, 최현욱, 려욱, 고민시 등 젊은 배우들과 많은 작품을 해 오면서 캐스팅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를 쌓아 나가고 있다.



약한 영웅의 강한 생존기 지난 10년, 함께하는 이들과 뜨겁게 성장하는 동안에도 영화에 대한 갈망은 식지 않았다. “다시 영화로 돌아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준희 감독의 대답은 단호하다. “나는 영화감독이고, 시리즈를 연출하는 연출자다. 하지만 결코 영화를 떠난 적이 없다.” 여전히 많은 차기작 가운데 영화도 준비하고 있으며, 혼자가 아닌 다른 이들과 영화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도 강하다. 한국영화계의 40대이자 허리 세대인 엄태화•윤가은•이옥섭•이상근•장재현•조성희 감독과 의기투합해 미쟝센단편영화제(이하 미쟝센영화제)를 다시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영화감독으로서의 초기에 미쟝센영화제로 대변되는 산업의 수혜를 받았다는 공통의식이 있다. 무엇보다 함께할 동료, 후배들을 위해서 영화제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OTT 시리즈, 유튜브 숏폼과 영화는 뭐가 달라? 고전적인 의미의 영화가 그렇게 너무도 중요한 가치인 거야?’라는 질문까지 하게 된 시대다.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고, 우리 세대의 연출자, 감독, 프로듀서들이 계속 고민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미쟝센영화제도 그런 돌파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크리에이터의 삶에서, 한준희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약한영웅 Class 2>를 보면 어렴풋이 짐작 가능하다. 나를 일으켜 세워줄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끌어 모으기. 냉철하게 꾸린 팀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협력하고 응원하며 성장하기. “그냥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을 해 나가는” 하루를 보내기. 그렇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다. “2000년대 초반 충무로에서 조수 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도, 지금도 한국영화는 늘 쉽지 않은 시간들을 통과해 왔다. 내가 감독이 되고 겪었던 어려움과 기획자가 되어 다른 이들의 작품을 도울 때 겪는 어려움의 온도 또한 다를 수 있지만 매번 어렵다. 어차피 어마어마한 재능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열심히는 했다고 생각하는데, ‘열심히’가 빠지면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공포가 들 때가 있다.”

관여한 작품들의 공개 일정이나 홍보, 행사 스케줄이 있는 날을 빼고는 무조건 대본을 쓰는 일로하루를 채운다. 부족한 걸 더 한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는 늘 고요히 분투 중이다. ‘약한영웅의 강한 생존기’는 어쩌면 한준희라는 크리에이터가 지난 20여 년간 한결같이 살아온 오랜 일상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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