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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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IC Story

실험에서 실행으로, AI 미디어 지형이 요동친다

NAB Show 2026 참관기

글 _ 심예원(영화진흥위원회 정책본부 AI영화기술TF팀)

2026-05-26

NAB Show 2026 메인 스테이지

NAB Show 2026 메인 스테이지

NAB Show(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Show, 이하 ‘NAB’)는 매년 4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술 전시회다. 올해는 4월 18일부터 22일까지 5만 8천여 명이 참가했고, 1천100개 이상의 전시사가 축구장 8개에 해당하는 전시 공간을 채웠다. 그중 132개 사가 처음 참가한 기업이었다.

올해 NAB의 공식 키워드는 다섯 가지였다. AI, 클라우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스포츠 미디어, 스트리밍. 그러나 전시장을 걸으며 체감한 올해의 진짜 주제는 하나였다. ‘실험에서 실행으로(From Experimentation to Execution).’ AI는 더 이상 ‘이런 것도 가능하다’를 보여주는 단계가 아니었다. ‘어떻게 실제 워크플로에 녹이느냐’가 모든 대화의 중심이었다.

AI 이노베이션 파빌리온, NAB의 새로운 코어 올해 NAB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전시장 한가운데 들어선 ‘AI 이노베이션 파빌리온(AI Innovation Pavilion)’이었다. 웨스트 홀에 두 개의 전용 파빌리온이 새로 조성되었고, AI 전시사 수는 전년 대비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어도비(Adobe),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 AWS),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엔비디아(NVIDIA),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자이러스 AI(Gyrus AI), 트웰브랩스(TwelveLabs), 베리톤(Veritone) 같은 AI 전문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워크플로 자동화·사용자 분석 등 단순한 기술 데모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 현장의 구체적인 병목을 겨냥한 ‘실전 솔루션’을 선보이며 AI가 제작 과정의 어느 지점에 어떻게 투입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AI 이노베이션 파빌리온 전시장



흥미로운 것은 이 파빌리온의 분위기가 기존 방송 장비 전시장과 달랐다는 점이다. 카메라나 렌즈를 만져보러 온 방송 엔지니어들 사이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스타트업 대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뒤섞여 있었다. 이는 AI 기술이 전통적인 방송 장비 영역을 넘어 콘텐츠 기획·제작·유통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같은 기술 생태계 안에서 만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NAB가 방송 장비 전시회에서 ‘미디어 기술 생태계의 허브’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올해 콘텐츠 크리에이터 참가자는 전년 대비 140% 증가했고, 기업 미디어 전문가 참가자도 거의 두 배가 되었다.

AI 네이티브 영화 제작: 선택의 영역 AI가 영화 제작 현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 세션은 AI 영화 제작 플랫폼 마티니(Martini)의 창업자 코 테라이(Koh Terai)의 강연이었다. 전직 촬영감독이자 스탠퍼드 디자인공학 석사 출신인 그는 AI 영화 제작을 이해하기 위한 2×2 매트릭스를 제시했다.

<AI-Native Film and Video Production for Professionals> 세션에서
코 테라이(위)가 제시한 2X2 매트릭스



가로축은 전통적 미디어에서 순수 합성 미디어(생성형 AI)까지의 스펙트럼, 세로축은 인간의 수동 창작에서 AI의 완전 자율 창작까지의 스펙트럼이다. 이 두 축이 만드는 네 개의 사분면이 AI 영화 제작의 지형도였다. 그는 ‘장인적 AI(Artisanal AI)’, 즉 인간 창작자가 생성형 AI를 수동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현재 대부분의 AI 영화가 놓인 자리라고 설명했다. 틱톡(TikTok)에서 보는 AI 영화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AI에서 수십 번의 테이크를 돌려 하나를 건진다. “룰렛을 하는 것과 같다”는 코 테라이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건 새로운 영역이었다. 바로 하나의 고수준 프롬프트로 AI가 편집·컷까지 포함한 영상을 자율 생성하는 영역이다(매트릭스의 우상단 사분면). 그가 보여준 데모 영상은 스토리보드 없이, AI가 작성한 프롬프트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든 컷이 AI의 판단이었다. 객석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가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낙관도 비관도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한 스펙트럼이다. 고수준 프롬프트 작성에 올인할 필요가 없다.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에만 AI를 쓰고 실제 촬영은 현장에서 할 수도 있다. 픽업 촬영만 AI로 보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 자율 AI 영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텍스트는 AI에게 훨씬 쉬운 과제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AI가 쓴 소설이 있는가? 없다. 영상은 그보다 차수 단위로 복잡하다.”

AI는 단순 작업을 대체하려고 도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창작자의 정체성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촬영자와 편집자의 경계가 흐려지고, 프롬프트를 쓰려면 편집 문법을 알아야 하고, 편집을 하려면 프롬프트 기술을 알아야 한다. 코 테라이는 이런 ‘융합형 인재’를 ‘Gen AI DP’라고 부르는데, 그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공급은 극히 부족하다. “거의 모든 AI 영상 제작사가 이런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그의 말은, 뒤집어 보면 한국 영화 인재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마이크로 시리즈: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 NAB 2026에서 AI만큼이나 뜨거웠던 주제가 있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그중에서도 마이크로 시리즈1) 였다. 올해 NAB는 크리에이터 참가자가 전년 대비 140% 증가하면서, 센트럴 홀에 크리에이터 랩(Creator Lab)을 확장 이전시켰고, IP 소유권, 수익화, AI의 창작 과정 영향 등이 논의되었다.

편당 60~90초 에피소드로 구성된 버티컬 시리즈, 총 60~90분 분량의 모바일 네이티브 내러티브. 아시아에서 대중화된 이 포맷이 미국 시장에서 연간 11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패널에 오른 마이크로 시리즈 전문 스튜디오 에이-트위스트(A-Twist, 구 마이크로코(MicroCo)) 공동 설립자 재나 위노그레이드(Janna Winograde, 전 쇼타임(Showtime) 사장)와 수전 로브너(Susan Rovner, 전 워너브러더스 TV 사장)는 전통 할리우드 최고 경영진 출신이었다. 그들이 이 포맷에 매료된 이유는 한마디로 명확하게 요약된다. “쇼도 있고, 비즈니스도 있다”(You can’t have the business without the show, but you also can’t have the show without the business).



1) 마이크로 시리즈(Micro-Series): 1편당 60~90초 길이의 초단편 에피소드로 구성된 모바일 중심의 세로형(버티컬) 드라마 시리즈. 총 분량은 60~90분 정도이며, 틱톡, 유튜브 쇼츠 등 숏폼 플랫폼의 시청 습관에 최적화된 새로운 콘텐츠 포맷.

<Microdramas: The 60-Second Studio Surge> 세션



할리우드가 8천만 달러짜리 시리즈 하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시대에, 마이크로 시리즈는 3~4개월 만에 기획부터 공개까지 끝내고, 즉각적인 시청자 통계 데이터로 다음 작품을 설계한다. 소셜미디어 전문 숏폼 스크립티드 콘텐츠 스튜디오인 다르 만 스튜디오(Dhar Mann Studios)는 1억 6천만 구독자 기반 위에서 폭스 엔터테인먼트(Fox Entertainment)와 40편 규모의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크리에이티브 자율성과 전체 권리를 스튜디오가 보유하는 구조다. 크리에이터가 IP를 지키면서 전통 미디어와 협업하는 새로운 유통 모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스크립티드 콘텐츠 전문 제작사 세컨드 로데오 프로덕션스(Second Rodeo Productions)의 스콧 브라운(Scott Brown)은 이 포맷이 구독자 유치 실패로 서비스를 종료한 모바일 전용 스트리밍 플랫폼 퀴비(Quibi)와 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퀴비는 모바일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시청 습관을 훈련시키려 했다. 마이크로 시리즈는 틱톡이 이미 만들어 놓은 습관 위에 올라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넷플릭스 쇼를 세로 화면에 우겨 넣는 게 아니라, 훌륭한 버티컬(세로 화면)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다.” 스타일만이 아니라 창작의 방식을 새롭게 해야 하는 마이크로 시리즈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 변화 신호로 읽혔다.

소버린 AI: 신뢰를 설계하다 AI가 ‘실험’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순간, 반드시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 AI를 누가 통제하는가.” AI 기술을 실제 워크플로에 녹이려 할수록 데이터의 주권, 생성 콘텐츠의 저작권, 사용의 윤리적 기준이라는 과제가 더 날카로워진다.

소버린 AI(Sovereign AI)2)를 주제로 한 세션에서 이 질문이 정면으로 다뤄졌다. 유럽방송연합(European Broadcasting Union, EBU)의 기술혁신 부국장 한스 호프만(Hans Hofmann)은 공영방송이 AI를 도입하더라도, 방송을 보는 시청자에게 뉴스의 정확성과 투명성에 대한 신뢰는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그가 반복한 표현은 ‘가드레일 안에서의 혁신(Innovation within guardrails)’이었다. 델 테크놀러지스(Dell Technologies)의 그렉 시프(Greg Schiff)는 소버린 AI의 출발점을 ‘하드웨어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터가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지 않는지를 통제하려면 인프라부터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소버린 AI(Sovereign AI): AI 시스템의 데이터 주권, 인프라 통제권, 거버넌스 체계를 자국 또는 자체 조직이 직접 관리하는 개념. 외부 플랫폼에 AI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처리되는지를 주체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Sovereign AI, Public Trust, and the Future of Media> 세션



현장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살아 있는 거버넌스 프레임워크’였다. 한스 호프만은 “AI 거버넌스를 한 번 만들어 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사용자의 기대가 변할 때마다 함께 진화하는 체계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 시장에서 AI 솔루션 업체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equest for Proposal, RFP)에 ‘소버런티(Sovereignty, 주권)’라는 단어가 표준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버린 AI와 AI 생성 콘텐츠의 저작권·윤리 문제는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로그북’(AI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을 단계별로 기록하는 문서) 작성이 필수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 조건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다. 이는 AI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AI가 관리하는 미디어 자산 흥미롭게도 전시장에서 눈에 크게 띄지 않지만 가장 실질적인 변화는 미디어 자산 관리(MAM)3)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들인 아이코닉(Iconik)과 루시드링크(LucidLink)의 통합 워크플로 시연이 대표적이었다. AI를 콘텐츠 ‘생성’ 도구가 아닌 콘텐츠 ‘관리’ 레이어에 배치한 것이다.

아이코닉은 AI 기반 메타데이터 자동 생성, 얼굴 인식, 객체 감지, 자막 생성으로 대규모 라이브러리의 검색성을 혁신적으로 높였다.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이 기존 콘텍스트에 기반해 메타데이터를 제안하고, 자동화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분류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루시드링크는 원본 고해상도 파일을 복제 없이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두 솔루션이 결합하면 ‘다운로드도, 복제도, 마찰도 없는’ 단일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조용한 혁명은 지식재산권(IP) 권리·로열티 관리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 비스텍스(Vistex)가 보여준 콘텐츠의 권리·로열티 관리의 AI 전환과도 맥이 닿는다. AI 콘텐츠 스튜디오 라이브러리에만 5천억 달러 이상의 미수익화 가치가 잠들어 있고, 완성된 AI 콘텐츠 권리의 60% 이상이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아카이브에 방치되어 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었다. 비스텍스는 23페이지짜리 계약서를 LLM이 자동 파싱하는 기능, 자연어 질의로 대시보드를 즉시 생성하는 셀프서비스 분석, 그리고 콘텐츠 유통 업계가 ‘이 작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이 작품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질문을 전환하는 스마트 어베일즈4)를 시연했다.

소버린 AI 세션에서 한스 호프만이 “에이전틱 워크플로5)로 아카이브를 진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이 드디어 왔다”고 말한 것과 정확히 맞닿는 현장이었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찾고, 관리하고, 자동으로 수익화하는 인프라가 중요해지고 있다.



3) MAM(Media Asset Management): 방송·영상 조직이 보유한 대규모 미디어 자산(영상, 이미지, 오디오 등)을 체계적으로 저장·검색·관리·배포하기 위한 시스템.
4) 스마트 어베일즈(Smart Avails): 콘텐츠의 유통 가능 권리(avails)를 AI가 자동으로 분석하여, ‘이 작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넘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까지 추천하는 지능형 권리 관리 시스템.
5) 에이전틱 워크플로(Agentic Workflow): AI가 단순 보조를 넘어 스스로 판단·실행·수정하는 자율적 작업 흐름. 인간이 고수준 목표만 설정하면 AI 에이전트가 세부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한국영화에 던지는 질문들 5일간의 NAB를 돌아보면,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융합형 인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마티니 창업자 코 테라이가 말한 AI 기술과 영화 문법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재(‘Gen AI DP’)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앞서도 언급했듯이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공급은 전 세계적으로 극히 부족하다. KAFA를 포함한 검증된 교육 프로그램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 프로덕션 워크플로, 생성형 AI 도구 실습을 포함한 융합 교육 과정을 서둘러야 한다.

둘째, 마이크로 시리즈라는 새로운 창구를 한국 콘텐츠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 웹드라마·숏폼 제작 경험, 강력한 팬덤 문화를 고려하면, 버티컬 시리즈 시장 진출의 잠재력은 높다.

셋째, 소버린 AI 프레임워크를 한국 영화산업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유럽은 EBU를 중심으로 산업 전체가 AI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 AI가 스며드는 국내 영화·영상 산업에서도 데이터의 주권, 투명성, 편향 검증을 포함한 자체 거버넌스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콘텐츠 아카이브의 가치를 AI로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비스텍스와 아이코닉이 보여준 것처럼 AI 기반 권리 분석·자연어 질의·스마트 추천 시스템은 이미 실용화 단계다. 한국영화 아카이브에도 수면 아래 잠든 가치가 있을 것이다.

NAB 2026의 전시장을 나서며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AI는 이제 ‘무엇이 가능한가’를 증명하는 시기를 지났다. 5일간 목격한 것들(AI 네이티브 영화 제작, 마이크로 시리즈 비즈니스, 소버린 AI의 거버넌스 설계, AI 기반 미디어 자산 관리 등)은 모두 같은 선상에 있었다. 실험에서 실행으로. 한국 영화산업에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AI를 도입할지 말지 고민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어떤 거버넌스 위에서, 어떤 인재와 함께, 어떤 워크플로 안에서 AI를 실행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설계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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