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AI부터 파이낸싱까지,
영화산업은 재편되고 있다
2024년 칸 필름마켓 콘퍼런스 정리
- 글‧사진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팀 김경만 과장
Briefing
2024년 칸 필름마켓 콘퍼런스 정리
프랑스 칸 출장을 다녀왔다. 나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화정책연구팀 직원으로서 칸 영화제 마켓에서 열리는 콘퍼런스들에 참가했다. 현지에서 한국영화종합홍보관을 운영하고 한국영화의 밤 리셉션을 개최하기 위해 국제사업팀 직원들이 매년 출장을 가지만 정책연구팀 직원들에게는 칸은 물론이고 해외 출장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칸이나 베를린은 현지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의 양과 범위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영진위 직원이 참가하여 수많은 정보를 흡수할 기회는 그간 많이 없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하는 업무를 수행할수록 새로운 소재와 자극을 받아들이고,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출장이 나의 출장에서 끝나지 않도록 의미 있게 기록할 결심을 했다. 준비하면서부터 현지에 가서 볼 것, 들을 것, 그리고 배울 것들을 미리 챙겨두고 꼭 웹매거진 페이지에 생생히 옮겨서 공유하고 싶었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3편의 한국영화가 초청되었다. <베테랑2><영화 청년, 동호><메아리>. 경쟁부문 초청작은 없었다. 한국 상업영화들을 꾸준히 소개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베테랑2>), 고전 복원작 및 중요 영화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클래식’ 부문(<영화 청년, 동호>), ‘라 시네프’ 부문(<메아리>)까지 세 부문에 한 작품씩 소개됐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과 평자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경쟁부문 초청이 없다고 해서 꼭 실망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새롭고 젊은 감독의 장편 극영화를 단 한 편도 선보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말 초청받을 만한 장편영화를 단 한 편도 만들지 못한 걸까? 작년만 해도 김창훈 감독이 데뷔작 <화란>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것을 보면,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경쟁력을 잃고 취약해진 한국영화의 내적 동력이 결국 2024년 칸의 초청 결과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영진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한다.
이번 출장에서 목표한 것은 딱 하나였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미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찾아서 돌아오는 것. 그것들을 잘 정리해서 웹매거진 를 통해 독자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번 칸 영화제 필름마켓에서 보고 느낀 것들과 만난 사람들을 정리해 봤다.
올해 칸 필름마켓 전반을 이끈 가장 큰 화두는 역시 AI였다. AI가 창작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고, 동시에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지 모색하는 자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열렸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칸 필름마켓에 카페를 차린 것은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칸 해변 가장 요지에 위치한 마제스틱 비치에서 직원들이 직접 자사의 AI 플랫폼인 Copilot을 통해 AI가 영화를 만드는 데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시연했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서 매일 오전 한 시간가량의 포럼을 열어 다양한 구성의 영화인들이 AI에 대한 철학적, 실제적 논쟁을 벌이는 장이 열린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카페에서 마켓 첫날에 열린 포럼인
특히 작년 영화산업을 뜨겁게 달궜던 할리우드의 작가 파업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AI 역할의 확장이었던 것을 상기하며 산업은 돈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분명 효율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었다. 또 대기업의 경쟁으로 AI 기술 발전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고, 작년만 해도 낮은 수준으로 여겨졌던 Sora(OpenAI의 동영상 생성형 AI)가 실제로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을 보면 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영화산업에서도 AI의 도입은 이미 시작됐으며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법과 규제에 대해서는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술 속도가 인식 발전의 속도보다 빨라서 창작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마저 AI에 특화된 법률전문가가 없는 상황이라 여러 가지 문제 발생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AI가 영화 창작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건설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토론에서 유럽의 창작자들의 열린 태도가 느껴졌다. 아직은 업계에서 활용뿐 아니라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는 Copilot을 활용하여 시나리오 분석, 기획단계에서 도움을 얻는 방법을 시연했다. 시나리오 PDF 파일을 Copilot에 넣고 “나는 캐릭터 분석에 초점을 맞춰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분석하고자 한다”, “시나리오를 기본요소로 분해하고, 메인 플롯 포인트를 뽑아내고 스토리와 관련된 심도 있는 요약을 한다”, “나는 한국영화에 익숙하다” 등 명령 프롬프트를 부여하면 시놉시스, 3막 구조 분석, 로그라인 등 기본 정보는 물론, 숏리스트를 만들고 등장인물들이 어떤 캐릭터를 갖고 있으며 대사가 몇 줄인 지, 분량에서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하고 적역이라고 생각되는 캐스팅도 추천한다. 사실상 프로듀서의 역할을 일부 대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능을 제공하는 AI 플랫폼이 Copilot만 있는 것은 아니고 영상물 제작에 특화된 플랫폼도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기업이 칸 필름마켓에서 본격적으로 업계 프로페셔널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고 있는 프로듀서 마이크 베이먼은 한국의 배우들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자칭 친한파(?)다. 이미 한국의 몇몇 제작사들에서 Copilot의 교육이 진행된 바 있고, 프리프로덕션 작업 등에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10월에 개최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칸에서와 유사한 공간과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유익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다수의 직원을 상시 고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기획개발 단계에서 1인 기업처럼 작업하는 제작자가 많은데 이들이 AI를 이용한다면 자질구레한 업무를 돕는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AI 플랫폼을 활용한 프로덕션을 경험하길 바란다.
마켓 개막 셋째 날 열린 포럼
mk2의 경우 전 세계에 영화를 세일즈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에 영화 홍보물을 제작할 때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야 했던 설명문, 내레이션을 이제는 AI로 번역한다고 한다. 특히 유럽 지역은 다양한 언어를 쓰는 이질적 문화권이 혼재되어 있어 번역에 많은 에너지를 썼는데, AI로 작업을 하면서 이런 부분이 크게 절약됐다고 밝혔다. AI의 독창성, 모방성에 있어 문제시될 만한 레퍼런스가 없는 상황이라면 마케팅과 홍보에 있어 AI의 활용은 적극 권장된다고 봤다.
이들도 역시 기업으로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늘리려면 AI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오히려 AI가 창의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봤다. AI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오고 극장 경험도 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제품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관심을 뒀기 때문에 성공했다. AI도 사람들의 느낌에 초점을 맞춰 계속 업데이트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mk2의 CEO 엘리샤 카미츠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창작에 있어 윤리와 책임에 대해서는 언제나 우리가 교육하고 배워야 하는 주제 중 하나다. 최근 스트리밍 숏폼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영화, 영상 작업이 공동작업이라는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 어떤 영상을 만들고 있든지 간에 이런 상황에서 AI를 도입해 활용하는 것에는 정도와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픈소스 활용에 있어서 저작권의 문제, 개인 정보, 공정성 등 고려해야 할 실무적인 화두들이 많은데, 이는 작은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문제이고 결국 시장을 주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적으로는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규제와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창작에 있어서는 창작력을 더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끌어가야 한다. 콘텐츠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있어야 AI 기술도 잘 쓸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신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건강하게 산업을 전환시켜 온 서방세계의 균형감각을 배울 수 있었다.
한편, 유럽의 연구 기관인 EAO(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를 만나 영화정책과 산업통계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이들이 매년 칸 마켓 기간에 발간하는
특히 이들이
EAO는 매년 칸 필름마켓 기간에 올해의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영화로의 제작 양극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미 지난해부터 감지된 영화산업의 세계적 흐름이다. 대규모 스튜디오에서는 딱히 필름마켓 참여나 활동의 필요를 못 느끼고(편집자 주 - 올해
자금조달은 제작자의 영원한 과제이지만 올해 칸에서 느낀 것은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더 절실한 과제가 됐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콘텐츠 파이낸싱 컨설팅 업체인 Winston Baker가 개최한
유럽도 현재는 자금조달과 동시에 비용 절감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며 콘텐츠 자체를 다시 검토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과정을 덜어내고 있다. 독립영화의 극장 상영에 대해서는 개봉에 워낙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플랫폼으로 가는 유연성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자금조달과 적절한 P&A 규모에 대해서도 프로듀서가 설계해야 하는 상황으로, 투자 부문에서도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결국 개별 프로듀서들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산업이 침체한 시기일수록 공적자금이 절실하다.
이벤트 시네마의 시대, 다시 말해 큰 시각효과와 사운드를 앞세운 대형 블록버스터 한두 편이 대세인 상황에서 문화를 보존할 뿐 아니라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작은 영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패널들이 의견을 모았다. 점점 광고비가 늘어나고 극장주들과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공적자금의 필요성이 강조된 자리였는데, 유럽연합의 시청각물 지원사업인 Creative Europe MEDIA는 유럽영화의 배급과 극장 상영 지원에 있어서 그동안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지원 제도와 커뮤니티 극장(소규모 극장)은 지역 문화의 기반이므로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당장 칸 영화제 상영작들이 영화제 이후 아트하우스 극장에서 개봉하는 것이 기존의 배급 흐름이었다면 지금은 큰 스트리밍 플랫폼에 팔리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다른 펀드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통해 유럽 영화제작자들의 생존을 위한 깊은 고민과 변화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홍콩과 사우디, 그리고홍콩과 사우디는 영화제 초청작품은 없었지만, 콘퍼런스에서 적극적인 자국 홍보를 펼쳤다. 먼저 홍콩은 1980년대 영화산업이 번성하면서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대 이후에도 <다크나이트><트랜스포머>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로케이션 촬영지로 각광받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비록 중국 본토로의 반환 이후 활력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수준 높은 스태프들과 누적된 경험으로 다양한 공동제작을 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칸 필름마켓에서 홍콩은 CreateHK라는 아시아지역 공동제작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홍콩을 베이스로 한 작품을 지원한다. 동시에 다른 아시아국가나 유럽국가와의 공동제작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특히 주요 스태프(감독, 제작자) 3명 중 1명이 홍콩인이고 전체 스태프 중 60% 이상인 홍콩인이며 제작비 30% 이상을 홍콩에서 지출하는 작품이라면 편당 1백만 유로가량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시아 지역과의 공동제작에 대한 수요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홍콩이 제시하는 공동제작 지원 프로그램은 세계 영화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동 영화시장의 중심이다. 사우디 영상위원회가 개최한 포럼
AI, OTT 스트리밍과 같은 최신 트렌드에 당당히 역행하고 있는 포럼도 있었다.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득세 이후 블루레이, DVD를 포함한 물리 매체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필름마켓 부스에는 화인컷, 엠라인디스트리뷰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판다, CJ ENM, 쇼박스, 롯데컬처웍스, 바른손이앤에이 등 한국영화사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편 배우 임윤아가 필름마켓을 찾아 개봉 예정인 본인의 출연작 <악마가 이사왔다> 뿐 아니라 초청작인 <베테랑2>를 인스타그램으로 알린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이 영화제에 초청되더라도 지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기 때문에 마켓을 찾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시간을 내어 부스를 찾아 본인의 작품이 어떻게 마케팅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배급사의 세일즈 담당자를 응원하는 배우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영화는 초청작 규모도 위축됐지만 영진위에서 매년 개최해 온 한국영화의 밤 리셉션이 열리지 않아 현지에서의 기세가 약화됐다는 것이 체감됐다. 마침 일본과 대만이 이례적인 대규모의 리셉션을 개최해 더욱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일본 지브리스튜디오의 공로상 수상, 상당수의 초청작이 있었다. 짬을 내서 본 대만영화
이번 출장 전 필자의 마지막 칸 출장은 2019년이었다. 바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해였다. 상영 전부터 술렁였던 영화제 전역의 들뜬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기생충>을 봤냐, 너무 기대된다, 올해 수상하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과 기대감이 한국영화종합홍보관을 찾은 해외 영화인들로부터 전해졌다. 그 기운은 한 편의 영화뿐 아니라 이미 칸에서 <아가씨><부산행><곡성><버닝> 등의 화제작들을 선보인 한국영화의 존재감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생충>이 보여준 대담한 시도가 한국 영화인들에게 전한 가능성은 그저 봉준호 한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가 어려운 시기에 칸을 찾아 얻은 실마리들을 이제 풀고 전할 때가 됐다.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된 임유리 감독의 단편 <메아리>는 조선시대라는 과거에 발을 딛고 있되, 시선은 바로 오늘 이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결기가 분명한 작품이다. 현실과 환상, 신비로운 숲과 영적 기운이 뒤엉켜 독보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마주해야 압도감과 해방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네마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지난했을 제작과정을 매듭짓고 국내의 영화제를 거쳐 끝내 프랑스 칸에 도달한 <메아리>의 여정은 영화 속 주인공인 옥연의 처절한 여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칸에서 만난 임유리 감독의 눈빛에서 옥연의 마지막 표정이 겹쳐 보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공유하고 싶은 칸에서의 경험과 젊은 창작자로서 영화진흥위원회를 향한 바람도 들어봤다.
이제 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객들에게 <메아리>를 선보인 소감이 어떤가요?
완성한 지 꽤 된 작품이라 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과연 다른 문화권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을까 상영 내내 조마조마했어요. 이후 몇몇 관객분들과 라 시네프에 초청된 동료 감독 등이 제게 와서 화면이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외에도, ‘그래서 옥연이는 바다에 간 거지? 간 거라고 말해줘!’ 같은 말을 해줘서 한숨 돌렸습니다. 관객들이 집에 가면서 옥연의 행방과 행복을 궁금해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 그게 제가 하고 싶었던 거 한 가지였어요. 더 많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다니 안심이 됐습니다.
라 시네프 섹션은 영화학교 학생들의 영화를 선정하는 부문입니다. 함께 초청된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배웠던 점이 있을까요?
이 작품들이 이 영화제에 어떻게 오게 됐을까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봤어요. 모두 똑같이 느낀 건 초청된 열여덟 작품의 감독 그 누구도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냈어요. 전쟁 속 소시민의 일상, 인종 갈등, 이주민의 사랑, 죽음을 맞이하는 하루 등 시의성을 가진 주제를 다루지만 그 어느 것도 프로파간다적이지 않았어요. 그저 그 시대를 살며 자신이 느낀 걸 이야기로 풀어냈을 뿐. 오리지널리티와 동시대성이 이번 라 시네프 섹션의 키워드였다고 생각해요. 기록 매체로의 영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이번 칸은 단편 <메아리>를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임유리라는 감독의 현재와 미래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칸 오기 전에 준비했던 것들과 칸 현장에 와서 이건 조금 더 준비할 걸 그랬다. 느끼셨던 것들이 있나요?
막연히 한국에서의 영화제들 기억을 떠올리며 ‘좋은 영화 많이 보고 즐기고 와야지~’였는데 칸 영화제의 핵심은 네트워킹이더라고요. 후반에는 영화 예매를 취소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려고 했어요. 명함과 엽서를 더 넉넉히 준비해 올 걸 후회했네요.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열린 마음과 영어 실력도요(웃음).
이번 칸에서의 경험이 앞으로 준비할 작업에 있어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했어요. 안 팔리면 어떡하지? 예산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구나, 진심은 언제나 통하니까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단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마지막으로 단편을 작업했고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젊은 영화인으로서 영진위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새로 유입되는 창작자들과 조금 더 쉽게 소통해줬으면 해요. 서류와 모집공고, 문의창구가 아닌 다른 쉽고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직접 소매 걷어붙이고 사이트를 뒤져보아야 나오는 지원정책이 대다수에요. 또 그렇게 지원받은 이들은 어떻게 운영했는지, 어떤 장단이 있었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방도가 없어서, 새로 지원하려는 사람은 영진위에서 시행하는 지원사업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이로운지 감을 잡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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