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뜨거웠던 상반기,
하반기 달굴 한국영화는?
- 글
- 손정빈(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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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만 명.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를 찾은 관객 수다(6월 13일 기준). <하이재킹><핸섬가이즈>가 6월 말 개봉하면 3,600만 명을 넉넉히 넘어설 거로 예상된다. 이 숫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반기 최고치다. 2020~2023년 1~6월 관객 수를 보면 2020년엔 1,999만 명, 2021년엔 381만 명, 2022년엔 2,245만 명, 2023년엔 2,104만 명이었다. 올해 이 기간 한국영화 관객 수는 지난해와 비교할 때 약 70% 급증했고, 재작년과 놓고 봐도 약 60% 상승했다. 한국영화 최전성기였던 2019년(5,687만 명)의 약 63% 수준이긴 하나 숫자만 보면 충분히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만한 성적이었다. 이런 흐름을 이끈 건 천만 영화 2편이었다. 지난 2월 말에 공개된 <파묘>가 1,191만 명, 4월 말에 나온 <범죄도시4>가 1,144만 명을 불러 모으며 한국영화 흥행 회복세를 주도했다. 상반기에 한국영화가 2편이 천만을 넘긴 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기도 했다.
드러난 수치로만 보면 한국영화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역대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 빠른 회복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반기 관객 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영화는 여전히 빈공(貧攻)에 허덕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례적으로 상반기에 천만 영화 2편이 나오면서 상황이 좋아졌다는 착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해당 영화 2편은 상반기 관객 수의 약 64%를 짊어졌다.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 올해 상반기에 누적 100만 명을 넘긴 한국영화는 <시민덕희>(171만 명)<외계+인 2부>(143만 명)<그녀가 죽었다>(116만 명) 세 편에 불과했다(<건국전쟁> 제외). 그리고 이 3편 중 200만 명을 넘긴 작품은 없었다. <교섭>(172만 명)<드림>(112만 명) 2편뿐이었던 지난해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녀 Part2. The Other One>(280만 명)<헤어질 결심>(189만 명)<해적: 도깨비 깃발>(133만 명)<브로커>(126만 명)<인생은 아름다워>(117만 명)까지 5편이 있었던 2022년보다는 오히려 적었다.
순위 | 영화명 | 개봉일 | 매출액 (단위: 원) | 관객수 (단위: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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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파묘 | 2024-02-22 | 115,138,971,258 | 11,912,377 |
2 | 범죄도시4 | 2024-04-24 | 109,503,720,282 | 11,446,561 |
3 | 시민덕희 | 2024-01-24 | 16,151,603,097 | 1,711,676 |
4 | 외계+인 2부 | 2024-01-10 | 13,792,326,337 | 1,430,121 |
5 | 그녀가 죽었다 | 2024-05-15 | 11,134,226,674 | 1,165,710 |
코로나19 이후 한국영화 흥행 경향은 이른바 ‘빈부 격차’로 요약된다. 극소수 영화가 이례적으로 이른바 대박이 나고 대부분의 영화가 소위 쪽박을 차는 양극화가 올해 더 심해진 것이다. 멀티플렉스 업체 관계자는 “상반기에 천만 영화가 2편 나왔다는 건 분명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두 작품 외에 흥행했다고 볼 만한 작품이 1편도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가 여전히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더 벌어진 흥행의 빈부 차는 개별 영화 흥행 추세에도 새로운 경향을 정착시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국영화 흥행 방식은 대체로 단기폭발형으로 수렴됐다. 공개 1~2주 차에 관객을 집중적으로 끌어 모아 성과를 내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흥행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범죄도시4>는 500만 명을 넘기는 데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파묘>도 같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데 열흘이면 충분했다. 이런 흥행세는 코로나19 사태 전에 1천만 명을 넘긴 영화와 비교할 때 빠르면 빨랐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 거의 모든 영화가 이런 식의 흥행 추이를 보였다면 코로나19 이후 5년 차에 접어든 올해는 장기지속형 흥행이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폭발적인 관객 동원은 하지 못하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오래 상영되며 일정 수준 이상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월 개봉한 <시민덕희>와 5월에 공개된 <그녀가 죽었다>가 그렇다. <시민덕희>는 100만 명을 넘기는 데 16일이 걸렸고, <그녀가 죽었다>는 22일째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후 보름을 넘겨서도 100만 명 선을 못 넘긴 상업영화가 그 이후에도 극장에 걸려 있는 건 코로나19 사태 이전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영화도 계속 극장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시민덕희>는 170만 명, <그녀가 죽었다>는 120만 명을 넘어섰다.
“입소문이 오히려 느리게 퍼지는 듯하다.” 국내 배급사 관계자는 <시민덕희>와 <그녀가 죽었다>의 장기 상영 추세를 이렇게 평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폭발적인 흥행력을 갖고 있거나 슈퍼스타가 대거 출연하는 대형 작품이 아닌 이상 영화를 향한 관심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했다. 보는 사람이 적으니 특정 작품에 대한 평가가 온라인에서 펴져나가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그녀가 죽었다>는 개봉 8일 차에 박스오피스 순위가 4위까지 떨어졌으나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신작 공세 속에서도 3위를 꾸준히 지켰다. <범죄도시4><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설계자><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원더랜드> 등 대작 사이에서 유지한 순위였다.
“톱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장점이 뚜렷하거나 완성도가 있다면 당장에 큰 흥행이 안 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영화 홍보 담당자들은 최근 흥행 트렌드를 이렇게 짚는다. <그녀가 죽었다>와 유사한 사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꾸준히 나오면서 이젠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달짝지근해: 7510>(138만 명)는 100만 명을 넘기는 데 19일이 걸렸고, <30일>(216만 명)은 12일이었다. 2022년의 <육사오>(198만 명)도 12일이 걸렸다. 국내 제작사 관계자는 “상영관을 다소 적게 가져가더라도 극장에 최대한 오래 걸어두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전략이 될 수도 있다”며 “물론 조금씩이라도 입소문을 탈 수 있는 재미와 완성도를 갖추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영화, 8천만 명 선 회복할까?이제 문제는 하반기다. 현재 추세로만 보면 올해 한국영화가 누적 관객 수 7천만 명을 채우는 건 무난해 보인다. 하반기에는 연중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여름 방학이 있고, 추석 연휴와 연말도 있어서 통상 상반기보다 관객이 많다. 최근 3년 간 하반기 관객 수만 보더라도 2021년 1,502만 명(상반기 381만 명), 2022년 4,484만 명(상반기 2,245만 명), 2023년 3971만 명(상반기 2,104만 명)으로 각각 상반기보다 2배가량 많았다. 2022년 하반기의 <한산: 용의 출현>(726만 명)<공조 2: 인터내셔날>(698만 명)<헌트>(435만 명)<올빼미>(322만 명) 만큼만 선전해준다면 2024년 누적 관객 8천만 명을 동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서울의 봄>(1,185만 명)<밀수>(514만 명)<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 명)<노량: 죽음의 바다>(343만 명)가 있었던 2023년 수준만 되더라도 8천만 명이라는 숫자를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흥행 성수기가 점점 힘을 잃고 있다는 건 불안 요소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두 기점인 여름방학 시즌과 추석 연휴 성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말 ~ 8월 초에 공개된 영화는 <밀수>(514만 명)<콘크리트 유토피아>(384만 명)<비공식작전>(105만 명)<더 문>(51만 명) 4편이었다. 이 중 손해를 보지 않은 작품은 <밀수><콘크리트 유토피아> 뿐이며, 이마저도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수준이었다. 최악은 추석 연휴였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191만 명)<1947 보스톤>(102만 명)<거미집>(31만 명)이 같은 날인 9월 27일 개봉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작품도 없었다. 여름 시장이 부진하긴 했지만, 잘 되는 영화가 으레 1편 정도는 나오는 게 상식으로 여겨졌던 추석 시장까지 붕괴된 건 영화계에 큰 충격을 줬다. 업계에선 “배급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2023년의 학습 효과로 올해 여름영화 시장은 한결 가벼워진 인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여름은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하고 각 배급사가 사활을 건 작품들이 맞부딪쳐 긴장감마저 감도는 시기였다면, 올 여름엔 누구도 작정하고 달려든다는 인상이 없다. 일단 개봉 시기가 완전히 분산됐다. 앞서 언급한 2023년의 여름영화 빅4가 7월 말부터 8월 초의 3주간 모두 공개된 것과 달리, 올해 여름 시장에 나서는 <하이재킹>(6월 21일)<탈주>(7월 3일)<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7월 12일)<파일럿>(7월 31일)<행복의 나라>(8월 중)는 개봉일이 서로 물려 있지 않고, 크게는 한 달 이상 차이가 난다. 국내 배급사 관계자는 “천만 영화인 <파묘>는 올해 2월에 나왔다. <서울의 봄>도 2023년 11월에 개봉했다. 2월과 11월은 전통적인 개봉 비성수기였다. 이제 최성수기 개봉은 전처럼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작비도 한층 내려갔다. 2023년 여름영화 4편의 제작비 총 합계는 적게 잡아도 약 870억 원이었다. 올해는 <하이재킹>(140억 원)<탈주>(100억 원)<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180억 원)<파일럿>(100억 원)<행복의 나라>(100억 원)까지 5편의 총 제작비가 약 620억 원이다. 편수로 따지면 지난해보다 1편 더 늘어났는데도 제작비 총액은 지난해의 70% 수준이다. 이 중 가장 먼저 공개되는 <하이재킹>을 빼고 4편만 비교하면, 올해 여름영화 제작비는 지난해의 딱 절반 정도다. 멀티플렉스 업체 관계자는 “영화계가 여름영화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했다. 출연진 면면을 봐도 이번 여름은 한층 가뿐한 인상이다. 지난해엔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이병헌, 하정우, 주지훈, 설경구 등이 있었다면 올해는 하정우, 이제훈, 구교환, 이선균, 조정석이 있다.
<베테랑2>와 <하얼빈>현재 발표된 라인업만 보면 올해만큼은 여름보다 추석부터 연말까지의 관객 집중도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석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가 공개될 예정이고, 연말께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이 개봉을 계획 중이다. <베테랑2>는 한 마디로 올해 최고 기대작이다. 2015년에 나온 전작 <베테랑>은 1,341만 명을 불러 모으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에 올라 있다. 선악이 분명한 명쾌한 스토리와 류승완 감독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연출, 개성 있는 캐릭터가 조합되어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형 형사물로 불리며 오랜 시간 속편에 대한 요구도 있어 왔다. 10년 만에 나오는 속편이긴 하지만 류 감독이 다시 연출을 맡았고, 황정민, 진경, 오대환, 장윤주 등 기존 배우들에 더해 정해인이 새로 합류했다는 점에서 업계는 <베테랑2>에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을 기대한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된 것도 전망을 밝게 하는 부분이다.
다만 <베테랑2>가 전작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라는 점은 흥행을 무조건 낙관할 수 없게 한다. 칸국제영화제 기간 진행된 류 감독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베테랑2>는 전작이 보여준 이른바 ‘권선징악형 사이다 스토리’에서 벗어나 좀 더 복잡한 대결 구도를 펼쳐놓고, 관객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진짜 정의란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베테랑>보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어서 <범죄도시> 류의 쾌감을 원하는 관객에겐 선택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영화계 관계자는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처럼 밝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면서, <부당거래>처럼 어둡고 재밌게도 잘 만든다”며 “<베테랑2>가 전작과 다른 톤 앤드 매너를 갖고 있다고 해도 기대감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하얼빈>은 제작비 약 3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키운다. 현빈, 박정민, 전여빈, 조우진, 유재명, 박훈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건 역시 소재다. <하얼빈>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투사 이야기를 그린다. 안중근 의사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폭발력을 갖고 있다. 국내 제작사 관계자는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 이후 충성 팬을 갖고 있고, 독립운동은 익숙한 소재이긴 해도 쉽게 외면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제작비에 걸맞은 흥행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하반기 관전 포인트는 CJ ENM의 명예 회복이다. CJ ENM은 2019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을 합작하며 한국영화 최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최악의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공조2: 인터내셔날> 같은 흥행작이 있긴 했지만 약 700억 원을 쏟아 부은 <외계+인> 1, 2부와 약 290억 원을 투입한 <더 문>의 참패로 입은 타격이 웬만한 성공으론 만회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두 작품뿐만 아니라 이후 내놓은 <도그데이즈> 등의 영화들도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체면을 구겼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서울의 봄>으로, 쇼박스가 <파묘>로 천만 영화를 내놓는 것과도 대조된다. 공교롭게도 <베테랑2>와 <하얼빈> 모두 CJ ENM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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