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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 4K 영상을 보고 있을까?
- 글
- 백준오(플레인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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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2024)를 무려 코엑스 돌비 시네마에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전체 7부작인 이 작품은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 2018)에 이은 박찬욱 감독의 두 번째 시리즈 연출작이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제작과 출연을 겸해 큰 주목을 받은 화제작으로, 지금 가장 힙하고 뜨거운 영화 제작사 A24의 참여 또한 프로젝트 초기부터 기대를 모았다.
<동조자>는 워너미디어가 운영하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HBO 맥스(HBO Max)를 통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2024년 6월 초 현재 전 7개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되었다. 이 작품의 대한민국 지역 스트리밍은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 쿠팡이 운영하는 쿠팡플레이를 통해 서비스되었는데, 운 좋게 1화와 2화뿐이긴 하지만 돌비 시네마에서 최적의 화질과 음질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의 패망 후 197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푸른 눈의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첩보물이자 역사물이다. 과연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정교한 미장센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디자인된 미술, 그리고 영상만큼이나 다층의 레이어로 쌓아올린 치밀한 사운드 효과가 압권이다.
모바일 감상에 최적화된 OTT 플랫폼에서 개봉된 작품이지만, 돌비 비전까지 지원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즈음이기에,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의 모든 프로덕션 퀄리티를 앞서 연출한 그의 첫 번째 시리즈물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 2019)과 마찬가지로 극장용 영화 기준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세공했다.
특히 1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비행장 탈출 장면은 어두운 밤중에 공습으로 인한 붉은 화염과 폭격이 몰아칠 때 대비되는 콘트라스트가 시각적으로 강렬할 뿐만 아니라, 깊은 저역으로 때려대는 묵직한 폭격음 진동과 전후좌우에서 쏟아지는 서라운드 음향 효과가 여느 극장용 블록버스터 못지않게 감탄스럽다. 주인공이 미국으로 건너가 초기 정착하는 이야기를 담은 2화는 1970년대 미국의 과시적인 상류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컬러풀한 색감들이 디테일하게 보인다.
한국의 모든 극장 중 자타공인 최상급의 레퍼런스 상영관에서 본 <동조자>의 감동과 인상을 선명하게 기억한 채로 집에 돌아와 쿠팡플레이에서 다시 1화와 2화를 재생했다. 우선,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경쟁 플랫폼과 비교해 쿠팡플레이는 4K 해상도를 지원하지 않기에 HD 해상도로만 제공되는 점부터 아쉬움을 자아낸다. 쿠팡플레이보다 가입자 수가 훨씬 적은 왓챠플레이는 <리틀 드러머 걸>을 독점 스트리밍하면서 4K 해상도를 지원한 바 있기에 더욱 아쉽다.
그럼에도 1080P의 HD 해상도는 가장 보편화된 표준 고해상도 규격이다. <동조자> 역시 기본적으로 공들여 찍고 후반 과정에서 세심히 만져진 최신작이기에, 조명이 충분히 확보된 자연광 위주의 밝은 야외 장면에서는 꽤 볼 만한 화질을 보여주는 편이다. 그러나 간접조명이 중심이 되는 실내 장면이나 밤 장면에서는 전형적인 비트레이트(Bitrate) 부족으로 발생되는 블록 노이즈와 암부 계조(그라데이션) 영역이 거칠게 등고선 모양으로 경계를 만드는 현상이 여지없이 목격된다. 영화의 촬영은 빛을 다루는 예술이며 결국 밝은 장면에서도 프레임 어딘가는 어둠이 자리하기에, 부족한 비트레이트 수치는 사실상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에서 그 정도만 다를 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극장에서 인상적이었던 1화 엔딩의 비행장 탈출 장면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이 극도로 심화되어, 150인치의 프로젝터로 투사한 필자의 스크린에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감상을 이어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정말 심각한 점은 따로 있다. 화질도 아쉽지만 음향마저 쿠팡플레이 플랫폼 자체의 한계로 돌비 애트모스는커녕 5.1채널의 돌비 디지털도 지원하지 않는 2채널 스테레오 포맷으로 제한된다는 것. 이는 영상 못지않게 정교한 서라운드 믹싱으로 제작되는 음향 효과를 원천적으로 100% 즐길 수 없게 만들기에 연출자와 제작진의 의도, 비전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화질에 집중하면 영상의 품질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초당 메가비트 수치(Mbps)는 극장용 DCP(Digital Cinema Package) 경우 250Mbps 정도인 데 반해, 쿠팡플레이에서 서비스되는 스트리밍 영상은 4Mbps 선에 불과하다. 이는 원활하게 영화를 감상하기에 얼마나 낮은 수치일까? 점점 시대에 뒤처진 레거시 미디어로 치부되고 있는 물리 디스크 매체와 비교해보자.
개인이 구입할 수 있는 상업용 영상 매체 중 현존 최고 화질을 자랑하는 4K UHD 블루레이의 경우 낮게는 40~50Mbps에서 높게는 약 80~90Mbps의 평균 비트레이트 수치를 가진다. 쿠팡플레이 수치의 최소 10배에서 20배에 달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대형 사이즈의 가정용 직시형 디스플레이(TV나 모니터)는 물론 150인치 이상의 프로젝터 투사 영상에서도 극장용 DCP와 구분이 어려운 수준의 고화질로 영화 제작자가 의도한 시청각적 경험을 100%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HDR10, HDR10+, 돌비 비전 등의 하이 다이내믹 레인지 기술을 지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극장보다 체감적으로 좋은 영상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또한 평범한(?) 1080P HD급의 블루레이는 잘 만들어진 디스크의 경우 최소 20Mbps를 상회하며, 상당수의 레퍼런스급 타이틀은 30Mbps를 넘나든다. 이 정도 비트레이트가 보장된 블루레이 디스크의 영상은 HD 해상도임에도 4~5Mbps 수치의 4K 영상보다 재생 안정성과 체감 화질이 훨씬 아니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지금의 10대, 20대라면 사장된 매체라고 생각하거나 어쩌면 그 존재조차 모를 480P SD급 해상도의 DVD조차 (잘 만들어진 판매용 타이틀의 경우) 평균 비트레이트는 8Mbps의 수치를 충분히 보여준다. 수치만 놓고 표현하자면 쿠팡플레이의 <동조자>는 480P에 불과한 해상도를 지닌 DVD의 절반에 불과한 비트레이트만으로 4배 해상도의 HD 영상을 힘겹게 스트리밍하고 있는 셈이다.
HEVC, VP9 등 보다 낮은 비트레이트에서도 좋은 비디오 화질을 이끌어내는 고성능 압축 코덱이 꾸준히 소개되고 버전 업 되고 있지만, 5Mbps 이하에 불과한 평균 비디오 비트레이트 수치로는 애초에 그 어떤 최신 코덱을 가져와도 시청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화질 확보가 불가능하다.
다른 국내 OTT 플랫폼은 어떨까? 티빙은 운영사인 CJ ENM의 주요 한국영화 라이브러리 상당수를 구작부터 신작까지 4K 해상도로 제공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CJ ENM을 제외한 여타 배급사 작품이나 대다수의 외화는 HD 해상도에 그칠 뿐만 아니라, 4K 해상도의 콘텐츠임에도 대부분 평균 비트레이트는 4~5Mbps 선에 그치고 있다. 일례로 역시 박찬욱 감독의 작품 <헤어질 결심>은 티빙에서 4K 해상도를 지원하는데, 이 영화의 메인 투자 배급사인 CJ ENM이 운영하는 티빙보다 글로벌 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는 것을 오히려 추천한다. 넷플릭스의 <헤어질 결심>은 같은 4K 해상도이지만 평균 비트레이트 수치가 티빙보다 훨씬 높은 10Mbps 선을 훌쩍 상회하며, 티빙이 지원하지 않는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서래와 해준의 안타까운 엇갈림이 절정에 달해 감정을 휘젓는 엔딩에서 화면을 가득 메운 안개와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이는 비정형 패턴을 보이는 장면은 충분한 비트레이트가 확보되지 않으면 압축 알고리즘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상에 블록 노이즈와 프레임 떨림, 밴딩 노이즈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을 티빙과 넷플릭스로 번갈아 보면, 영상의 해상도, 비트레이트, HDR 지원 여부, 돌비 애트모스 등의 지원 여부가 결합되어 완전히 다른 몰입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티빙과 합병이 논의되고 있는 웨이브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등 극히 일부 작품이 4K 해상도를 지원하지만, 그 수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현저하게 적어 실질적으로 무의미한 수준에 가깝다. 평균 비트레이트 수치 역시 4~5Mbps 정도로, 4K라는 그릇을 담기에는 애당초 역부족이다.
이처럼 굴지의 대기업들이 막대한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 중임에도 국내 토종 OTT 플랫폼들이 글로벌 기준에 못 미치는 낮은 퀄리티의 화질과 음질로 실망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집중적으로 대량의 데이터 사용이 요구되는 고화질 영상 스트리밍은 필연적으로 망 사용료 이슈와 연결된다. 운영사들은 망 사용료 부과 기준이 다른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구글) 등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제도적, 규제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항변한다. 상대적으로 고품질 영상에 대한 요구도가 낮은 예능이나 기타 방송물은 지금 수준의 비트레이트와 2채널 오디오를 유지하더라도, 체험의 집중도와 영상의 디테일, 밀도감이 높은 고예산의 영화, 시리즈물은 선별적으로나마 최소 15Mbps 이상의 평균 비디오 비트레이트-멀티채널 사운드를 제공하도록 관련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스트리밍에 특화된 인코딩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시대에 맞는 OTT 플랫폼이라고 해서 무조건 레거시 미디어를 보이콧하지 말고, OTT 오리지널 시리즈를 블루레이 디스크 매체로도 발매해 캐주얼한 시청자층과 AV 퀄리티를 중시하는 마니아층을 아울러 양쪽에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힐 하우스의 유령> (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어셔가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2023) 등 히트한 호러 시리즈를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으로 선보인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최근 특정 플랫폼에서만 독점으로 서비스되는 OTT 작품이 어떤 이유로든 의도적인 콘텐츠 삭제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아카이브의 공공성 차원에서 물리 매체에 지나치게 적대적인 넷플릭스의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단순히 보존의 측면을 떠나서도 사정이 훨씬 낫다는 글로벌 OTT 플랫폼들, 즉 넷플릭스, 디즈니+ 심지어는 블루레이에 준하는 화질로 OTT 업계 최고의 AV 퀄리티를 자랑하는 애플TV+조차 재생 난이도가 높은 장면에서는 디스크 매체와 비교할 때 어두운 장면에서 계조 디테일과 암부의 다층적 심도가 무너지고 단순해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 공개된 애플TV+의 대작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은 OTT 오리지널 영화의 스트리밍 화질로는 현존 최고 사양임에도 불구하고,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가 담아낸 깊고도 깊은 어둠과 상반되는 빛의 아름다움을 모두 표현해내기에는 2%, 아니 20% 부족해 영화를 보는 내내 4K UHD 블루레이 발매를 간절히 염원하기도 했다.
아마존 프라임을 운영하는 아마존의 경우는 넷플릭스와는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준다. 제한적이나마 극장 개봉과 물리 디스크 매체의 사후 발매를 전제로 한 오리지널 영화를 다수 제작해 짐 자무쉬, 제임스 그레이, 니콜라스 윈딩 레픈 등 저명한 감독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마존 스튜디오 투자/배급의 이들 작품은 모두 극장 개봉과 아마존 프라임을 통한 독점 스트리밍 서비스 이후 협업사인 라이언스게이트(Lionsgate)를 통해 북미 지역에서 블루레이로도 출시되었고, 해외 배급권을 분리해 판매한다.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Paterson, 2018)의 경우 국내에 정식으로 블루레이가 발매되기도 했다.
HBO 맥스도 독점 공개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 2023) 같은 화제작을 추후 워너 홈 비디오 레이블로 4K UHD 블루레이까지 발매해 디스크 수집가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은 사례가 있다. HBO 맥스는 한국에서 서비스되지 않기에 쿠팡플레이가 수입할 수 있었던 <동조자> 역시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해 추후 4K UHD 블루레이를 한국어 자막과 함께 국내 출시할 수 있다면, 박찬욱 감독이 그렇게도 공들여 만든 <동조자>를 현존 최고의 화질과 음질로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도 오직 한국에서만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정식 출시된 <리틀 드러머 걸>의 4K UHD 블루레이(돌비 비전 대응)가 여기에 딱 맞는 사례로, 이 작품을 최고의 화질과 음질로 담아냄으로써 반영구적인 아카이브를 안정적으로 완수한 셈이다.
몰입해서 영화를 보는 중에 부족한 비트레이트 수치로 인해 암부가 계단처럼 층지는 밴딩 노이즈와 블록 노이즈가 빈발한다면 내가 지금 예술로서의 영화가 아닌 패킷, 그것도 완성도에 결함이 있는 미완의 디지털 데이터를 ‘전송’받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몰입이 깨진다. 심지어 수십억에서 백억이 넘는 자본을 투입해 만든 OTT 플랫폼의 간판 오리지널 작품이라면, 그렇게 애써 만든 작품을 적어도 평균 이상의 화질과 음질로 볼 만한 수준의 시청각적 체험을 보장하는 것이 플랫폼의 흥행과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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