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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

<원더랜드> 의미 있는 김태용 월드,
BUT 아쉬운 세계관 구축

<원더랜드> 김형석 영화평론가·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대담

진행
이은지(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임익순,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 바이리와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를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해 행복한 일상을 나누는 정인, 그리고 ‘원더랜드’ 수석 플래너 해리와 신입 플래너 현수가 주요 인물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원더랜드’ 서비스를 시작했고, 또 다른 이유로 혼란을 겪으며 서비스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다. 김태용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과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보다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얻고자 했다. 그동안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러운 판타지를 풀어냈던 김태용 감독의 본격적인 판타지 SF인 <원더랜드>는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누구나 꿈꿔온 서비스인 ‘원더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평과 섬세하지 못한 세계관 구축에 대한 다소 아쉬운 평이 공존했다. 김형식 영화평론가,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와 함께 <원더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어떤 대담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현장으로 안내한다.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와 김형석 영화평론가
Q

전체적인 영화의 인상을 들려달라.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태용 감독의 첫 작품은 <여고괴담 2>였지만 그건 공동 연출작이었으니, <가족의 탄생>을 첫 작품으로 보자면, 끊임없이 하는 가족 이야기를 <원더랜드>에서도 하고 있다. <그녀의 연기>라는 단편도 있었는데 그 연장선상에 <원더랜드>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가족적인 이야기의 연결 지점도 있고, <꼭두 이야기>에 나타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AI 시대에 이르러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원더랜드>는 감독이 계속 관심을 가져왔던 소재지만,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관객에게 이해를 바라는 느낌도 들었다. 현실적인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해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원더랜드>는 판타지 SF 장르인데, 김태용 감독이 이번에 <원더랜드>로 처음 장르영화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족의 탄생><만추>로 좋은 평가를 얻은 김태용 감독이 이런 장르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역시 SF보다는 가족에 중점을 둔 영화를 만들었다. SF를 정교하게 만들려면 우리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만큼 세계관 설정에 힘을 쏟아야 한다. 마블 영화마저도 그 부분에 실패하면 엄청난 욕을 듣지 않나. <원더랜드>가 그 부분에 있어 정교하지 못했던 부분은 안타깝다. SF 장르를 기대하고 간 사람들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에 중심을 두고 본 사람들, 특히 부모라면 공감대를 강하게 형성할 수 있는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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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원더랜드>는 자기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감독의 전작들에서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태용 감독은 가족이 무너지고 붕괴하는 것에 대한 근심으로 결국 대체 가족을 형성하기도 하는 등 영화 속에서 부재한 가족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연기>가 그랬고 <가족의 탄생>이 그런 것처럼. <만추>도 남편을 죽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여주인공이 감옥에서 외출을 나오는 이유가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여기서도 끊임없이 원작에는 없는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원더랜드>도 SF보다는 가족 영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때 김태용 감독의 감성을 더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원더랜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공유하고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시아 문화권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죽음으로 가기 전의 유예기간을 그린다. 현실에서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절연되지만,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와 마지막을 함께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유예기간을 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 한국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이러한 림보, 연옥의 시간을 잘 다룬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원더랜드>의 출발이 이런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김태용 감독이 오랫동안 연구한 세계관이라는 생각이다. 김 감독이 2017년 국립국악원이 제작한 공연 <꼭두> 연출을 맡았는데 이 작품엔 돌아가신 할머니의 꽃신을 찾아 나선 아이들이 저승길에 떨어져서 벌이는 SF어드벤처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연을 다시 79분짜리 영화로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미래 기술을 결부해 장르적 성격을 더한 것이 <원더랜드> 세계관의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원더랜드> 세계관에서는 죽음도 존재의 한 방식이다. 기술적 도움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것은 한국영화 서사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김태용 감독만의 새로운 전제다. 그동안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을 떠도는 식의 판타지는 많았는데, <원더랜드>는 현실 세상의 기술을 결합해 어쩌면 이런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묘한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Q

그럼에도 <원더랜드>의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데는 그다지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1980년대 SF 영화들이 설정했던 미래가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미래가 도달한 상태로 SF가 리얼 베이스로 펼쳐지고 있다. 이제는 기술이 발전한 만큼 현실에서 실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SF적 상상력도 어떤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원더랜드>의 설정이 어떤 것인지, 어떤 식으로 실행되고 있는지 근거가 되는 장면이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이런 서비스가 있는 세상이야’라고 던져놓고 넘어간다. 영화를 보면서 생긴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할까. 사후 시스템을 관리할 정도의 회사 규모가 너무 작아 보여 의아하고, 시스템 안팎으로 이동 가능한 인물로 나오는 성준(공유)의 캐릭터도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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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물론 장르 영화로 어설픈 부분,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고 언뜻 감정적인 요소로 커버하려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황에 공감하게 만드는 힘은 있다. 만약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처음에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설명하는 박사가 나왔을 거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박사가 그를 추억하기 위해 원더랜드를 만들었고,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벌어지는 원더랜드 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데 영화 <원더랜드>는 현실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정서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은 충분히 있다. 사랑하는 가족, 반려동물과의 이별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진 보편적인 감정이니까. 하지만 영화적 설정으로 봤을 땐 아쉬움이 남는다. 개념이 약하다 보니 비주얼 구현도 뒤따라오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공항이나 사무실의 모습이 우리가 SF물에서 기대하는 비주얼 효과에 비해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Q

서사 진행 방식을 보면 AI를 접목한 <가족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는 김태용 감독의 전작
<가족의 탄생>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가족의 탄생>도 찬사를 받았지만 <원더랜드>에 비하면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결혼한 후 부모가 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연스레 한층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가족의 탄생>이 유사 가족의 물리적인 부딪힘을 그렸다면, <원더랜드>에서는 물리적인 접촉이 없는 AI 시대 상황 속에서 변화한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가족의 탄생>이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을 열거하고 그들이 어떻게 조합되는지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도 옴니버스 구성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루먼 쇼>처럼 가상 공간의 세계관 같은 것도 있고, AI와의 소통을 그린 영화로 입지전적인 <그녀>(Her)의 모티프도 있고, 최근작 중에 가상의 게임 세계를 구현한 <프리 가이>도 떠올랐다. 또 세팅한 공간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나타나는 갈등은 <이터널 선샤인>을 생각나게 한다. SF 휴먼 멜로 장르에서 우리가 한 번쯤 매혹됐던 요소들을 <원더랜드>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Q

인물의 감정과 장르적 특성이 잘 드러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 영화에 100% 설득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다. 단선적인 감정을 애매한 지점에서 마무리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족의 탄생>은 설정부터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오는 임팩트가 컸다. 반면 <원더랜드>는 캐릭터들의 감정을 끌고 가는 태도가 미온적이었다고 본다. 영화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원더랜드>가 결국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로 나아가서 결국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다. 이 갈등이나 공포에 직면한 캐릭터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장르의 특성을 살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가상 세계가 무너지는 그림은 더욱 스펙터클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 상황에서 <원더랜드> 안의 모습을 이곳저곳 다양하게 보여줬으면 했는데 거기에서 끝나버리는 느낌이 아쉬웠다. 특히 SF나 액션 장르의 경우, 클라이맥스에서 충분히 장르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스펙터클을 주지 않으면 감정을 해소하기 어렵다. 서사적인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풀어가는 방식에서 좀 더 강한 쾌감을 주었으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김태용 감독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판타지 요소를 효과적으로, 맛깔스럽게 구사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완벽하게 판타지를 베이스로 깔고 가는 <원더랜드>에서는 그런 장점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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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 스토리는 세 가지다. 멀티 스토리와 멀티캐스팅은 결과적으로 효율적이었나.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스토리 라인 여러 개를 엮어서 마지막에 만나는 구성으로 전개하는 이상, 멀티캐스팅은 당연한 건데 애초에 이게 효율적인 방식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연인이든 부모 자식이든 하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원더랜드>의 세계를 깊이 있게 확장했다면 더 흥미로웠을 거라는 의견이다. <원더랜드>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으나 각 관계가 서로 엮이지 않고 나열식으로 배치돼 구조가 납작해졌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다양한 관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선 캐릭터에 좀 더 현실성을 부여했어야 한다고 본다. 한 마디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너무 아름답다. 감독 전작의 캐릭터들이 가진 거칠고 리얼한 질감에 사포질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또 김태용 감독은 호러, 비극, 멜로 모두를 아울러 표현하는 감독인데 이야기들을 각각 다른 감성으로 대비되게 그렸다면 더 풍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더랜드>에서는 감정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어 다중 스토리 라인과 멀티캐스팅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한 것 같다.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배우들 자체가 그런 느낌을 준다. 탕웨이와 박보검, 수지 등 배우들이 하나 같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가졌다. 질감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말하자면 이들은 같은 질감을 가졌다. 만약 박보검과 수지가 연기한 캐릭터를 최우식과 정유미가 했다면 전혀 다른 인상을 줬을 거다.

Q

<원더랜드>는 AI와 영상통화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이야기한다. 독특한 소재에서 영화의 의미를 찾는다면.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몰입했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에 대한 것은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죽음 이후의 그리움을 해소하려는 장치들은 많은 영화에 등장했지만 <원더랜드>는 좀 더 현실에 맞닿아 있으면서 이전엔 없던 새로운 설정이다. 물론 세계관의 허술함, 불친절한 설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소재 자체는 관객으로 하여금 기대 섞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외국에서 판권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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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우리는 이전에는 생각도 못 했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원더랜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우리 가까이에 있는 상상이라고 느꼈다. 앞으로 한국영화에서 AI나 각종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소재는 계속 나올 것이 분명하고, 그 시작에 <원더랜드>가 있는 것 같다. 또 실제 현실에서는 발전된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도 많은데 김태용 감독이 긍정적이면서 감성적인 사례로 잘 구현했다.

Q

마지막으로 의견을 종합해 <원더랜드>에 대해 YES 혹은 NO로 평가를 해보자.

profile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51% YES.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따라 YES로 조금 기울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내 가족에게 저런 서비스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장례식에서 조문객을 맞는 장면을 보며 솔깃했다.

profile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그렇다면 나는 51%의 NO(웃음). 설정에는 공감하지만 설정의 기반이 약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