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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조작된 사건 속 청소부가 아닌,
진실을 찾는 이야기

영화 <설계자> 트리비아

이은지(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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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계자>는 홍콩영화 <엑시던트>를 원작으로 한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완벽하게 사건을 조작하던 그의 앞에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건은 절친한 동생 짝눈(이종석)의 사망 사건. 이로 인해 자신이 속한 삼광보안보다 더 큰 조직인, 일명 청소부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되고 이에 집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저한 계산과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사건은 음모론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보고 들은 사고 역시 조작된 사건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며 흥미를 유발한다. 이미 10년이 훌쩍 지난 홍콩영화를 원작으로 한 <설계자>의 이요섭 감독을 만났다. 원작에 매료됐고, 그래서 더욱 연출을 맡고 싶었던 작품인 <설계자>. 홍콩영화를 한국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는 이요섭 감독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계자>(The Plot)
개봉
2024.05.29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감독
이요섭
출연
강동원, 이무생, 이미숙, 김홍파, 김신록, 이현욱, 이동휘, 정은채, 탕준상
# <설계자>가 이요섭 감독에게
오기까지

<설계자>는 홍콩영화 <엑시던트>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2010년 개봉된 작품으로 이요섭 감독은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을 접하고 단숨에 매료됐다. 영화 <범죄의 여왕>을 끝낸 후 “이런 작품이 들어오면 할거야”라고 말했던 작품이 바로 <엑시던트>였는데, 이 작품의 리메이크 판권을 가지고 있던 영화사 집과 인연이 돼 연출을 맡게 됐다. “독특한 지점이 있는 장르물”이었던 이 작품은 이요섭 감독에게 5년의 세월이 지난 후 들어왔고, 그 후로 3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며 천천히 개봉을 준비했다.

# 원작

이요섭 감독이 원작에서 가장 가지고 오고 싶었던 것은 바로 분위기였다. 쓸쓸함과 믿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이다. 또 리메이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지리적 특성이다. “각색을 하기 전 다녀왔으면 좋았겠지만 끝나고 나서 홍콩을 가봤다”는 이요섭 감독에게 홍콩만이 가진 지리적 특성은 각색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보였다. 항상 정체되는 구간이나 밀도 높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 물론 서울도 밀도가 굉장히 높은 도시이긴 하지만 홍콩만큼은 아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은 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만큼 사람이 많은 거리에 몰아넣는 것이 힘들었다.” 특히 김홍파가 연기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검찰총장 후보 주성직이나 정은채가 연기한 그의 딸 주영선 같은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는 사람인데, 이들을 인파에 둘러싸이게 만드는 것은 여건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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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핑크,
그레이, 레인보우….
캐릭터에 색을 입히다

이요섭 감독은 <설계자>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간담회에서 영일 역의 강동원은 블랙, 짝눈 역의 이종석은 화이트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다른 주요 캐릭터는 어떤 색을 입혔을까. 이현욱이 연기한 월천은 핑크였고, 탕준상이 연기한 점만은 레인보우, 이미숙이 연기한 재키는 그레이였다고. 이요섭 감독은 이처럼 각각의 인물에 컬러를 부여함으로써 뚜렷한 개성과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무생이 연기한 이치현은 뭔가 있어 보이길 원해 와인색을 입혔고, 주성직과 주영선은 영일과 비슷한 블랙 계열로 만들어냈다.

# 이현욱

영화 속 월천은 트랜스젠더로 등장한다. 다양한 변장술이 가능한 그는 어쩌면 삼광보안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일 수도 있다. 원작에서는 여성 캐릭터였고, 브레인(편집자 주 <엑시던트>에서 영일의 캐릭터 이름)을 연모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다면 이요섭 감독은 왜 월천을 여성이 아닌 트랜스젠터 캐릭터로 재탄생 시켰을까. “삼광보안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여성 캐릭터 그대로 가져와도 됐겠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다. 사실 월천이야 말로 삼광보안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어떤 곳에도 숨어들 수 있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동시에 각기 다른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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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석

작품에 이종석이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캐릭터로 스크린을 채우는 이종석의 존재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가 연기한 짝눈은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아내가 그 역할을 하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저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아내를 잃은 뒤 주인공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짝눈 역시 강동원이 연기한 영일을 움직이게 만드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아내’라는 한마디로 설명되는 존재보다는 영일이 거대 조직인 청소부의 존재에 집착하게 만드는 이유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새롭게 세팅된 캐릭터다.

# 영일과 짝눈

극 중 영일과 짝눈은 서로 다른 캐릭터지만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블랙 컬러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영일과 화이트 컬러의 밝고 맑은 느낌을 주는 짝눈은 한배에서 나온 형제는 아니지만 같은 처지인 사람으로 서로를 공유할 수 있는 두 사람이다. 이요섭 감독은 “둘의 관계를 정의해보자면, 아무것도 없는 익명의 사람 둘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해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 전체가 청소부를 찾는 이야기로 포장이 돼 있지만, 결국엔 진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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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론

<설계자>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영화의 스토리가 이어지게 만드는 힘을 만들어간다. 원작 영화 <엑시던트>에 매료됐고, 각색한 후 <설계자>를 연출한 이요섭 감독은 과연 음모론을 믿고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 중 음모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간의 감정을 생각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어떤 사실을 보았을 때 문과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저 역시 제가 믿고 싶은 진실을 선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음모론자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