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천만 영화 틈새로 다시 보는
OTT 오리지널 한국영화
<페르소나>에서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까지
- 글
- 김우정 OTT 미디어랩 수석 디렉터
Special
<페르소나>에서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까지
2017년 6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후 한국영화 플랫폼은 영화관에서 스트리밍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영화 관람의 중심은 극장에 있었다. 2019년만 해도 영화 <기생충><극한 직업><어벤져스: 엔드게임><겨울왕국2><알라딘> 등 총 5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고, 500만을 넘긴 영화도 <엑시트>를 비롯해 5편이었을 정도로 한국 영화관 최대의 풍년이었다. <봉오동 전투><82년생 김지영><사바하><증인> 등도 흥행에 성공하며 100만을 넘긴 영화는 무려 40편이나 등장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가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한국 극장은 2019년 2억 2667만 877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관객 수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 5952만 3967명으로 26% 수준까지 추락했다. 극장은 이전 같은 기세를 쉽사리 회복하지 못했고, 그 사이를 틈타 지난 5년 동안 OTT 플랫폼은 빠르게 작품 숫자를 늘려나갔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에선 34편의 OTT 오리지널 영화와 156편의 오리지널 시리즈가 공개됐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에 급성장하며 극장산업을 대신할 것만 같았던 OTT가 연일 위기설에 휩싸이고 있다.
반면 극장가는 점차 관객 수를 회복해 2023년 엔데믹 이후 첫 천만 영화인 <범죄도시3>를 시작으로 <서울의 봄>에 이어 2024년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넘기며, 2024년 3월 한국 극장 매출은 역대 가장 높았던 2019년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다. 극장 개봉작들로 관객들의 눈길이 쏠린 지금, OTT 오리지널 한국영화를 다시금 살펴본다.
OTT 오리지널 한국영화의최초의 OTT 오리지널 한국영화는 2019년 넷플릭스가 공개한 <페르소나>다. 배우 이지은(아이유)이 재능과 개성이 넘치는 감독 4명의 페르소나로 변신해 4편의 에피소드를 이끈다.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4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페르소나 이지은이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페르소나>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졌다면, 영화 <승리호>는 OTT 오리지널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제작비를 기록해 ‘최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승리호>는 영화 <늑대소년>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의 작품으로, 2092년 우주 위성궤도에 만들어진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 UTS에 대항하는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의 우주활극 SF 스릴러다. OTT에서 공개할 예정은 아니었지만 팬데믹으로 개봉이 2번이나 연기되며, 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가 넷플릭스 공개로 전략을 선회했고, 2021년 9월 1일 넷플릭스 독점으로 전 세계에 공개했다. <승리호>는 공개 당일 넷플릭스 월드와이드 1위에 랭크됐고, 공개 후 28일간 누적 5334만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승리호>는 공개 후 28일 동안 전 세계 2600만 유료 구독 가구 시청을 기록하며 기존 <스위트홈>이 세운 2200만 가구 기록을 경신했다. 또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오늘의 톱10’에 랭크됐다. 현재 <승리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 종합 시청 시간에서 <황야><카터><길복순>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리즈를 포함해 따지자면 OTT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의 시작은 김성훈 감독의 <킹덤 시즌 1>이라고 볼 수 있다. <킹덤 시즌1>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물로 시체가 살아나는 ‘기이한 역병’ 속에 몸부림치는 아포칼립스 사극이다. 넷플릭스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한국 콘텐츠였기에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대를 모았는데, <킹덤 시즌1>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기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적극적인 투자 행보가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019년 1월 공개된 <킹덤 시즌1>은 한국 넷플릭스 인기차트 1위에 올랐고, 연말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9년 최고의 인터내셔널 드라마(The Best International Shows of 2019)’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좀비물에서 익숙한 총포 등 대형화기가 아닌 활과 칼로 맞서 싸우는 ‘K-좀비’의 열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듬해 3월 <킹덤 시즌2>가 공개됐고 이전 시즌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면서 포브스 선정 2020년 베스트 한국 드라마로 선정됐다. 2021년에는 시리즈 프리퀄에 해당하는 <킹덤 : 아신전>까지 제작돼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 제작의 문을 열었다면, 2023년 디즈니+의 <무빙>은 ‘역대급’ 흥행을 달성했다. <무빙>은 대중에게 익숙한 웹툰 작가 강풀의 원작을 영상화한 작품으로 온 세상에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달리 초능력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신선한 소재에 5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해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디즈니+ TV쇼 부문 1위에 올랐으며, 그야말로 <무빙>을 보기 위해 디즈니+에 가입하는 시청자가 늘어났다. 국내 OTT 시장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190만 명대에 머물던 디즈니+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카지노>와 <무빙>의 연달은 흥행으로 394만 명(2023년 9월)까지 치솟았다.
영화보다 압도적인 시리즈의 인기국내 OTT 플랫폼은 영화보다 시리즈 제작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는 오리지널 경쟁이 대부분 드라마와 예능에서 벌어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는 총 20편으로 OTT 플랫폼 전체 공개 작품 중 70%에 육박한다. 토종 OTT 플랫폼 티빙, 웨이브, 왓챠 3사가 5년간 제작한 오리지널 한국영화는 총 10편이다. 이 중 티빙은 <서복><샤크: 더 비기닝><미드나이트><신비아파트 특별판: 빛의 뱀파이어와 어둠의 아이><해피 뉴 이어> 등 총 5편을 공개해 토종 OTT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웨이브는 <간호중><젠틀맨><용감한 시민> 3편을 제작했고, 왓챠는 <언프레임드><시맨틱 에러: 더 무비> 2편을 공개했다. 카카오TV는 <그녀의 버킷리스트>가 자체 제작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쿠팡플레이는 오리지널 한국영화를 제작하지 않았다. 디즈니+의 경우 오리지널 영화 3편은 모두 공연 실황이다.
반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는 5년간 156편이 제작됐다. 이 중에는 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든 작품들이 많다. 특히 이용자 수만 1164만 명에 달하는 넷플릭스에서 2021년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한국에서 제작된 시리즈물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흥행을 이뤘으며 넷플릭스 누적 시청 시간 최고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 중인 94개의 국가 모두에서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OTT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업체가 넷플릭스라면 최근 급격히 성장하는 곳은 쿠팡플레이다. 쿠팡플레이는 쿠팡 와우 회원과의 연계를 비롯해 스포츠와 해외 예능 등 독점 콘텐츠 수급을 통해 회원 수를 늘려 나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 김수현 주연의 <어느 날>, 배우 수지 주연의 <안나> 등 화제를 모으는 콘텐츠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외 토종 OTT인 티빙에서는 배우 진선규 주연의 <몸값>이 인기에 더해 작품성까지 잡아 2023년의 티빙을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몸값>은 2023년 한국 드라마 중 최초로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서 장편 부문 각본상을 수상해 명품 드라마임을 인정받았고, 같은 해 10월 글로벌 OTT인 파라마운트+에 공개되자 캐나다, 영국, 호주 등 26개국에서 1위(TV쇼)를 차지하며 인기를 모았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신드롬 이후 K-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또 <오징어게임>의 수혜를 받아 K-콘텐츠의 다양성과 퀄리티, 세계적 관심도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23년 역대 최다인 34개의 한국 작품을 플랫폼에 올려 방송한 뒤 “전체 사용자의 60%가 2022년 한국 콘텐츠를 시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중 <경성크리처><더 글로리 파트2><스위트홈 시즌2>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K-콘텐츠의 작품성도 나날이 높아져 <오징어게임>의 단발성 흥행이 아닌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생산국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의 <마스크걸>은 2023년 9월 공개된 뒤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며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72개국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외신 역시 ‘새로운 K-드라마의 탄생’이라 주목했는데, 미국 슬레이트(Slate) 매거진은 “<오징어게임>만큼 어두운 스릴과 사회 문화적 논평, 세계적 매력을 지닌 히트작을 찾았다”고 평했다.
좀비와 SF의 활약,글로벌 시청자가 타국의 낯선 언어로 만든 영화에 스며들기 위해선 보편적인 소재와 장르를 활용하는 게 용이하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100년 넘게 고착된 관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액션, 공포, SF 등의 장르와 좀비, 킬러, 복수 등의 범용적인 소재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특히 SF 장르는 한국적인 문법을 찾아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애플TV는 지난 2021년 첫 한국 드라마로 SF 서스펜스 장르인 <닥터브레인>을 방영했다. <밀정><인랑> 등 사극, 누아르, 공포, 코미디 등을 연출해 감독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불리는 김지운 감독이 제작을 맡았으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죽은 사람의 뇌에 접속한다는 참신한 설정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넷플릭스도 한국형 SF 장르에 도전해 세계적인 배우 배두나 주연의 <고요의 바다>를 공개했다. 그간 국내 영화계에서 잘 시도하지 않던 SF 장르에 도전하여 10여 일간 탑 5위권을 유지했지만, 이후 우주 고증과 스토리 전개 부분에 호불호가 갈리며 장기간 흥행하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학원·청춘물에 좀비, SF, 괴생명체 등을 접목한 결합형 작품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청춘의 성장과 풋풋한 로맨스에서 벗어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의 사투를 그린 넷플릭스의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22년 1월 공개와 동시에 월드 랭킹 1위를 차지했고, <오징어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한국 작품 시청 시간 순위 드라마 부문 3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2024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만한 <기생수 : 더 그레이> 역시 4월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월드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괴생물체와 이에 대응하는 공권력 간 갈등을 다룬 SF물로 크게 흥행하며, SF 장르를 향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OTT를 통한 콘텐츠 보급이 활발해지자 장르적 다양성이 늘어 그동안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주제의 작품들도 OTT에 공개되고 있다. 항상 극의 조연으로만 등장하던 국선변호사의 서사를 다룬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실제 간호사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정신병동에서 생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일제강점기 조선인 이민자의 삶을 다룬 미국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 등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던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던 콘텐츠가 주목받으며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까지 끌어내고 있다.
영화감독들의 OTT 플랫폼 진출지난 2016년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로 형성되기 시작한 대한민국 OTT 시장은 토종 플랫폼이 가세하며 2023년까지 급속한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디즈니+ 등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대표 스트리밍 플랫폼의 2023년 월평균 순 이용자 수는 2930만 명에 달한다. 이는 2022년의 2488만 명보다 18% 증가한 수치로, 향후 OTT 시장 규모 또한 2023년 5조 6천억 원에서 2027년 7조 2천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욘더><수리남><카지노><택배기사>와 같은 드라마들은 OTT에서 공개된 드라마라는 공통점과 함께 영화만 연출해 온 감독이 제작한 드라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이돌이 노래와 함께 연기를 하고 유튜버가 공중파에 출연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듯 영화라는 장르 또한 발전적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영화의 개념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와 기술,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따라 얼마든지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영화계는 이미 영화계 흐름의 한 축이 스트리밍에 맞춰 진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성공한 작품만 해도 <킹덤: 아신전><수리남><박하경 여행기> 그리고 <마스크걸> 등 적지 않은 사례가 쌓여나가고 있다. <킹덤: 아신전>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프리퀄 영화로 영화 <비공식 작전><끝까지 간다><터널>로 대표되는 김성훈 감독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를 허물고 성공한 첫 사례이기에, 향후 시리즈와 영화의 적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을 만드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수리남>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총 6부작으로 제작돼 러닝타임은 371분 26초에 달해 2시간 분량의 영화로 환산하면 세 편 분량의 시간이 된다. 수리남은 영화감독이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데도 큰 강점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영화적 연출이 스트리밍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제21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감독상을 수상했다. <박하경 여행기>는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제작한 이종필 감독의 작품이다. 총 8부작으로 제작됐고 회당 25분 내외의 짤막한 에피소드를 산뜻하게 제시해 신선하게 구성했다. 기존의 도파민 가득한 OTT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따뜻한 감성으로 포브스 2023 베스트 한국 드라마에 선정됐다. <마스크걸>은 2023년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이 연출했다. <마스크걸>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물을 바꾸며 변주하기에 7부작 드라마에 극장과도 같은 몰입감을 불어넣으며 OTT 시리즈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본 작품을 통해 김용훈 감독은 제22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배급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영화만 연출하던 감독들이 시리즈물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23년 10월, 넷플릭스에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라는 한 편의 오리지널 한국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작품은 1990년대 초 봉준호 감독, 최종태 감독 등이 활동했던 영화 동아리 ‘노란문 영화연구소’를 다룬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봉준호 감독의 첫 단편
함께 읽으면 좋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