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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영화제’ 칸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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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록(스포티비뉴스 기자)

단 한 줄의 설명이면 족하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 올해로 77회를 맞이한 칸국제영화제(festival de cannes)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 축제다.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지만 그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매년 5월, 최고의 감독들과 최고의 스타들이 최신의 화제작을 선보이려 이곳으로 온다.

그 무대인 칸은 1년 내내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다시피 하는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의 소도시다. 지중해와 맞닿은 하늘이 모두 쪽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온화한 기후 덕에 유럽 부호들의 세컨드 하우스와 요트, 화려한 명품 부티크가 가득한 피서지로 명망이 높다. 인구 약 7만 명에 불과하지만 휴가철이 아니어도 1년 내내 축제로 북적인다. 영화제를 필두로 MIP-TV, MIPCOM 등 방송마켓이나 뮤직페어, 칸광고제 등 각종 행사와 전시가 시기를 달리해 열리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는 시리즈페스티벌까지 추가했다. 그럼에도 백미는 역시 영화제다.

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린 것은 1946년. 1932년 시작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에 비해 14년이 늦었으면서도 독보적 권위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라는 본질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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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당시 최고상의 이름이 '무솔리니 상'이었을 만큼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 1938년 심사 결과를 무시하고 나치 선전 다큐인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에 최고상을 안긴 사건은 칸국제영화제의 출범 계기가 됐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프랑스 예술부 소속 필립 에를랑제가 정부에 "예술이 정치적 목적에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며 새 영화제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베니스를 의식해 9월의 첫날 바닷가의 휴양도시 칸에서 1939년 첫 회를 준비했으나, 개막 당일 터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무기한 연기됐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야 축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다른 선구안으로 최고의 영화를 선보인 칸국제영화제는 빠르게 세계적 영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예산 문제로 휴지기를 가진 뒤 1951년 5월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칸의 5월은 영화제의 계절이 됐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선구자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페데리코 펠리니를 비롯해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 프랑수아 트리포와 장 뤽 고다르를 소개하는가 하면, 코엔 형제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의 개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와 이마무라 쇼헤이,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중국 첸카이거 등 아시아 영화의 힘이 이곳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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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출처 CJ ENM

돌이켜보면 K-콘텐츠의 힘을 먼저 주목한 게 칸국제영화제고, 한국영화 또한 이를 발판으로 세계로 나아갔다. 2004년 박찬욱 감독 <올드보이>가 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세계를 사로잡은 지 15년 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국영화의 저력을 세상에 재확인시켰다.

칸은 영화의 예술적 성취에 주목하는 동시에 산업적 영향력과도 절묘한 균형을 잡았다. 영화제 기간 중 열리는 칸 필름마켓 마르셰 뒤 필름((Marché du Film)은 완성된 영화는 물론 판권과 기획이 모두 거래되는 최대규모 필름마켓이다. 덕분에 칸국제영화제는 절정의 예술과 치열한 비즈니스가 만나는 독보적인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명망만큼 높은 게 칸의 콧대다. 칸국제영화제는 일반 관객이 아니라 전문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나 다름없다. 완화되는 추세지만, 주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의 메인 상영관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는 정장과 드레스, 구두 같은 드레스 코드도 엄격히 따진다. 공식 행사에 참여하려면 사전 비표 발급이나 초청장이 필수고,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프레스카드도 철저한 등급 관리와 그에 따른 차별적 대우가 카스트 제도에 비견될 정도다.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필름마켓 전경,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칸국제영화제와 한국영화의 인연이 본격 시작된 것은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면서부터다. 이후 임권택 감독이 2000년 <춘향뎐>으로 메인 섹션인 경쟁부문에 최초 초청됐고, 임 감독은 3년 뒤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칸 최초 수상 기록을 세웠다.

이후 한국영화는 칸의 단골손님이 됐다. 수상도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이듬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2009년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2010년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을 각각 수상했다. 2010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는데 1년 뒤엔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으로 같은 상을 받았다. 2013년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는 한국 단편영화 최초의 단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박찬욱 감독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 이창동 감독 <버닝>의 신점희 미술감독은 각각 2016년과 2018년 기술부문 최우수상인 벌칸상을 받았다.

2019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은 일대 사건이었다. 기세를 몰아 국내 천만 흥행을 달성한 이 작품은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비영어영화 최초의 작품상을 거머쥐며 세계 영화사를 새로 썼다. 2022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영화 <브로커>에 출연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오는 5월 14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처음 관객과 만난다. 2015년 1341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 속편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와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임유리 감독의 <메아리>가 전 세계의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단편 영화를 선보이는 경쟁 부문인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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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 출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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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출처 (주)인디스토리

<레이디버드><바비> 등을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이 심사위원장으로 나선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는 늘 그렇듯 원숙한 거장과 차세대 총아들의 신작이 자리했다. <대부>를 연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메갈로폴리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쉬로즈>,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버드> 등이 돋보인다. 아시아 영화로는 유일하게 지아장커 감독의 <카우트 바이 더 타이즈>가 포함됐다.

<매드맥스>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던 타이틀롤을 안야 테일러 조이 맡은 <퓨리오사>는 올해의 화제작.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세계 최초 공개된다.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4부작 시리즈 <호라이즌: 아메리칸 사가>도 같은 부문에서 선보인다.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개인이 아닌 단체 최초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