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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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서 극복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내 이름은> 정지영 감독

글 _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_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2026-04-20

쉬운 길은 가지 않는 편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희생된 이들에게 바쳐진 영화 <남부군>(1990). 월남전이 한국 사회에 새겨 놓은 상흔을 담은 <하얀 전쟁>(1992).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가혹했던 현실을 기록한 <남영동1985>(2012). 거대 자본의 탐욕 앞에 무너진 대한민국 금융 잔혹사를 그린 <블랙머니>(2019). 40여 년간의 이런 필모그래피가 말해주듯, 정지영 감독은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여러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영화로 만들었다. 입체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투지와 끈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제주 4·3이 극영화로 만들어지는 첫 시도를 다른 누구도 아닌 정지영 감독이 해냈다는 것은 그래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설득력이 있다.

영화 <내 이름은>은 제주4·3평화재단과 JDC가 2021년 3월 발표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 원작이다. 제주 오라리 방화 사건이 소재이고, 4·3 피해 생존자로서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온 79세 할머니와 평생 여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18세 손자가 함께 본래 이름을 찾는다는 이야기의 뼈대는 유지하면서 곳곳에 정지영 감독의 터치가 가미되었다. 제주에서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70대 정순(염혜란)과 여자 같은 이름이 콤플렉스인 고등학생 아들 영옥(신우빈)에게는 각자 헤쳐 나가야 할 아픔이 있다. 1949년의 봄이 어머니 정순에게 남긴 고통과 1998년의 봄이 아들 영옥에게 남긴 무력함은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 앞에서 우리가 지키고 극복해야 할 것들을 되묻는다. 그 이름이 여전히 ‘현역’인 정지영 감독은 제주 4·3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들, 가해자 겸 피해자이자 방관자였던 우리 모두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들을 영화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제주 4.3 사건 이야기를 정지영 감독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내 이름은>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Q 영화 <내 이름은>은 연출자로서 가져온 그간의 정치사회적 관심사에서 비켜가지 않는 작품이다. 제주 4·3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영화화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나?

영화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화 <남부군>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다 보면 전후 관계 사연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러면 자연히 여순(여수·순천)사건을 만나게 된다. 여순사건을 파고들다 보면 제주 4·3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주 4·3에 대한 공부는 그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순이 삼촌>(제주 4·3을 소재로 한 현기영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4·3 사건을 들여다보려면 남북 문제와 이데올로기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그건 내가 <남부군>에서 해봤고, <남영동1985>에서도 언급해봤으니, 그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지 않겠나. 나는 4·3의 영화화는 피하자고 생각했다. 이미 4·3을 영화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가 잘 안된다, 이유는 투자를 못 받는다는 것이었다. ‘참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누가 시나리오를 하나 가져왔다.

Q 그 시나리오가 제주4·3평화재단과 JDC가 2021년 3월 발표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선정작이라고 알고 있다.

읽어봤는데, 재미는 없었지만 아이디어 하나가 좋았다. 이름을 찾아간다는 아이디어. 내가 내용을 바꾸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고민을 잠깐 해보니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면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작비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제주 4·3을 본격적으로 다루려면 대작이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시나리오를 각색하게 됐고 2년 정도 고쳤다.

Q <내 이름은>이 제주 4·3의 올바른 이름을 찾기 위한 영화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제주 4·3의 상처만이 아니라 주인공 정순의 인생사를 통해서 베트남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까지 한국 현대사가 겪은 상처의 궤적을 연결했다는 의미도 커 보인다.

정순을 한국의 현대사를 직간접으로 겪은 인물로 그린 이유는 오늘의 시점에서 제주 4·3이 가져온 영향을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맞다. 정순 역 배우 염혜란 씨에게는 연기에 지장이 있을까 봐 얘기를 안 했지만 정순을 ‘우리의 어머니’ 같은 인물로 생각했다. 그런 정순의 삶 안에 한국의 폭력의 역사, 집단 폭력의 역사를 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작품들에 조금씩 다 담겨 있다.

Q 집단 폭력의 역사가 어머니 정순의 세대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에서 아들 영옥의 세대가 겪는 학교 폭력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제주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학교 폭력의 역사가 상당히 의미 있는 걸로 보일 것이다.

Q 아들 영옥의 학창 시절 배경이 1998년이라는 것도 눈여겨보게 된다. 제주 4·3에 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해인데.

그 설정은 원작 시나리오에는 없고, 내가 만들었다. 1998년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주 4·3에 대해 언급이 금기시되어 인구에 몰래 회자되다가 드디어 국가에서 공론화하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4·3 기념식을 하려고 했고, 특별법 제정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고, 교과서도 고쳐야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던 시기였다. 그래서 아들 영옥이 4·3에 대해서 소문으로만 듣고 있다가 조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러면서 4·3을 향해 가기까지 조금씩 정보를 흘려주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 이름은> 주인공 정순의 삶 속에
한국의 폭력의 역사, 집단 폭력의 역사를 담고 싶었다는 정지영 감독



Q 정순이라는 캐릭터가 비극적 역사의 상징이다. 정순의 남편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후 그 고통을 주변에게 전가한다. 그런데 정순은 고통을 무의식에 담아두고 주변을 돌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순도 실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말하자면 자신의 끔찍한 어린 시절을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 가해자다. 그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채 현재는 아들 영옥과 편하게 살고 있다. 정순이 ‘우리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측면이다. 우리들의 삶이 그래왔다.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한국인들이 그렇다. 아픈 과거를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낙천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가 그 과거를 환기 받을 때 가슴에서 무언가 올라오고, 광장에 나가려고 하는 거다. 정순을 통해서 그런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다.

나는 광주 민주화운동 때 이미 성인이었다. 그런데 광주를 볼 때 두려워하고 외면했다. 그에 대한 죄의식이 남아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그런 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정순이 그것을 감추고 편하게 살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그것을 드러내서 극복하는 게 우리들의 임무다.

Q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제주도에는 지금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섞여서 살고 있다. 실제 사례나 살아남은 분들의 자손, 돌아가신 분들의 유족에 대한 인터뷰들을 참고했겠다.

그런 삶이 제주도에 많다. 극 중에서 소영이와 영옥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4·3 당시 소영이네 외할아버지가 친할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모르고 결혼한 소영의 엄마 아빠가 평소에는 다정하다가 4월 3일만 되면 싸운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4·3을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증언을 요구하면서 서서히 드러났지. 여전히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Q 영옥의 학교에서 전학생 경태(박지빈)가 주도해 학교 폭력이 심화되는 상황은 정순이 어릴 때 마을에 집단 학살이 벌어지던 장면, 나아가 서북청년단의 폭력까지 떠올리게 한다. 경태의 어머니가 정순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의사로 나온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고.

<내 이름은>을 보는 사람들은 많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들에게 ‘4·3을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찾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씩 찾아보다가 영화의 어떤 것들이 더 선명해지기를 바란다.

정지영 감독은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영옥이 겪는 학교 폭력 상황에 투영했으며
이를 통해 정순의 비극적인 과거도 연결시켰다(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Q 정순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지역, 지형들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찍는 로케이션마다 사연, 혹은 상징성이 있나?

실제 장소에서 찍은 건 아니지만 로케이션을 수없이 찾았다. 영화에 나오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다, 돌담길과 보리밭이다. 제주도의 지형을 생각하고 촬영했고, 정순을 헤매게 해서 찍은 것 가운데 선택했다.

Q 정순의 직업이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고통의 치유나 피해자들의 한을 위로하는 데에 있어서 춤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만든 설정인가?

그런 면도 있고, 또 다른 이유는 제주를 이야기하면서 제주 전통 굿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는 이미 신비의 섬이다. 온 마을마다 굿을 하는 장소가 있다. 정순도 어렸을 때 기억을 잃고 끙끙 앓고 있으니까 무당에게 보내지 않나. 그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냥 춤만으로는 이 영화가 보여줄 아픔을 승화시키기가 힘들다고 판단해서 전통 무용을 한다는 설정을 했다.

Q 정순이 영옥의 담임 선생을 만나러 학교에 간 장면에서 선생이 촌지를 바라는 시늉을 하자 그냥 나오는 장면이 있다. 실은 촌지를 준비해왔지만 선생이 재수 없다며 아들 영옥에게 “너나 써라”고 주는 모습이 재미있다. ‘정지영의 영화’에서는 늘 인물들의 자존심이 세다고 할까.

앞서 말했듯이 정순은 우리다. 우리 안에 그런 피가 있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말하자면 우리 국민이 이룬 ‘촛불 혁명’이나 ‘빛의 혁명’이 다 거기서 나오는 거다. 정순에게 그런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살짝 넣은 장면이다.

Q 정순 역 염혜란 배우와는 이미 <소년들>(2023)에서 함께한 경험이 있다. 그때 어떤 면들을 눈여겨보고 <내 이름은>도 함께 하게 되었나?

<소년들>에서는 잠깐 나오는 역할이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감칠맛 있게, 리얼하게 연기하나 싶었다. 캐릭터를 대략 설정만 하고 와서는 현장에서 그걸 순발력 있게 적용시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간단한 역할을 맡기기엔 너무 아까운 연기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내 이름은>을 만들게 됐을 때 연락이 와서 바로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내 이름은>에 캐스팅하고 나서 <폭싹 속았수다>(Netflix, 2025)를 하게 돼서 오히려 더 좋았다.

정지영 감독은 <소년들>에서 같이 작업한 염혜란을 ‘간단한 역할을 맡기기엔 너무 아까운
연기자’라고 평하며, <내 이름은>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Q 5·18 광주 민주화운동처럼 제주 4·3이 잃어버린 이름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 이름은>의 감독으로서 혹은 개인적으로도 제주 4·3이 어떤 이름으로 온전히 불리기를 희망하나?

나도 아직 그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다. 제주 4·3을 ‘항쟁’만으로 표현하면 분명 모순이 있다. 그러니까 극복과 화해와 평화, 이런 것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는 단어는 없을까, 그런 단어가 있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이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단어가 없다. 한강 작가에게 물어봐야 할까.(웃음)

Q 그러고 보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제주 4·3을 조명했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내 이름은>이 만들어지는 데에 힘이 된 부분도 있을까?

당연히 큰 힘을 받았다. 제주에서는 애초부터 4·3에 관한 대중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다. 그간 기록 영화도 많이 나왔고,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2013) 같은 예술영화도 나왔지만 대부분 소수의 인원이 보는 것에 그쳤다. 그래서 안타까워했는데, 4·3을 알리려면 대중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소원을 내가 풀어준 셈이다.(웃음) 과연 관객이 이 영화를 많이 볼 것이냐가 문제인데, 때가 되긴 했다. 마침 지금 정부도 이런 과거사의 조명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있는 정부이기도 하고. 그런데 젊은 세대가 4·3을 정말 많이 모른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이제 대부분 안다. 그런데 4·3은 그보다 더 끔찍한 국가폭력임에도 불구하고 모른다. 그만큼 많이 감춰져 왔던 것이다.

Q <내 이름은>은 크라우드 펀딩만 4억여 원으로, 원래 목표치 4천만 원을 초과 달성해 한국 극영화 크라우드 펀딩 최고 기록을 세웠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또 이런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몇 작품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니.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작품을 만들다가 어려울 때 국민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 후배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상업영화에 대한 투자를 할 때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매뉴얼이 있다. 이래야 관객이 든다는 식의. 그런데 거기에 속하지 않아도 흥행이 된 작품들이 꽤 있다. 기존 투자 매뉴얼에서 벗어나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 돈을 못 모으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런 시도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Q <내 이름은>은 지난해 시작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서도 지원금을 받았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작 가운데 가장 빨리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은 마케팅 비용까지 합해서 총제작비가 40억 원이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4억 원을 마련하고 그게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시드 머니가 되었다. 이후 기술 보증 등에서 10억 원을 빌리는 등 제작비를 마련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그것을 보고 결국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작으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성공시켜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내이름은제작위원회는 2024년 12월부터 <내 이름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마감까지 단 두 달 만에 4억 원 이상을 모았다(제공=텀블벅 홈페이지 캡처)





Q 한국전쟁(<남부군>)부터 론스타 사건(<블랙머니>)까지, 오직 극영화로서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그 때문에 ‘사회파 감독’으로 불리는데 그런 평가에 동의하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일부 평론가들이 나를 ‘한국의 켄 로치’로 부르는데 과분한 호칭이다. 켄 로치는 예술가이고 나는 대중영화 감독일 뿐이다. 다만 켄 로치의 화두와 내 화두가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공통점은 있는데, 켄 로치의 작품 성향이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서 따뜻한 시선을 가져가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조금 다르다. <내 이름은>은 조금 예외지만, 나는 기득권자들이 해온 행위의 이면을 파고들어 문제를 캐내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치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를 ‘한국의 켄 로치’로 부르면 안 된다.

Q 앞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매 작품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채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대중영화 화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성향, 이런 스타일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중고등학교 때 문학 소년이었다. 특히 심취했던 것이 전후 문학이다. 12권짜리 전후 문학 전집을 탐독했다. 전후 문학은 전쟁으로 인해 인간과 사회가 얼마나 파괴됐는가를 다루면서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소설들이지 않나. 그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된 셈이다. 또 하나, 추리소설도 좋아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성향은 거기서 비롯된 것 같다. 이후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게 반했고, 그런 성향들이 합쳐져서 내 영화의 스타일이 된 것 같다.

Q 차기작 <블랙 타이거>에도 일관된 관심사가 반영돼 있다. 김구 암살 사건이 소재라고?

시대극이면서 대작이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서는 1940년대 후반 남과 북의 대척점에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헤매는 광복군 출신의 인물이 중간에 김구 암살 사건을 만나면서 사건에 휘말려 간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에서 이 인물을 쫓는 건 좋은데, 중간에 김구 암살 사건이 벌어진다. 나는 김구 암살 사건으로 영화가 끝나는 쪽으로 각색을 제안했다. 작가와 끊임없이 토론을 거쳤고, 이 작품도 각색하는 데 2년 걸렸다. 지금 프리 프로덕션 중이고 크랭크 인은 내년을 계획 중이다.

Q 1983년 장편 데뷔 이후 계속 영화를 만들어온 44년 차 감독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을 하면서도 현장 연출을 놓지 않았다.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싶다는 것은 모든 감독의 꿈이지만 그 꿈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이어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이 영화를 많이 못 하고 있다. 나는 어쩌다가 계속 감독으로서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나처럼 어렵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드문데. 투자도 잘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이 지속됐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한편으로 나는 투자자들에게 묻고 싶다. 왜 우리 세대 영화감독들의 감각이 낡았다고 생각하는지. 왜 선택을 안 하는지. 과거에 좋은 영화를 만들었던 능력 있는 감독들이 꽤 있지 않나. 그들을 너무 외면하는 것 같다. 동료들이 다시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 물론 솔직히 나이가 들면 감각은 떨어질 수 있다. 공부를 안 하면 그렇다. 그런데 내 동료들은 아니다. 다들 공부를 한다.



내이름은 정지영감독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 유준상 오지호 김규리 제주4·3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