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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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촬영실록’을 만든 유연한 태도

권혜림 쇼박스 커뮤니케이션팀 과장

글 _ 이우빈(씨네21 기자)
사진 _ 서범세(한경매거진앤북 기자)

2026-04-06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4월 1일 기준 1천578만 관객을 모으며 기록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이러한 메가 히트작의 탄생은 과거처럼 특정 스타 감독이나 배우의 몫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SNS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적극적 입소문과 바이럴 마케팅이 동반돼야만 지금 시대의 관객들을 극장에 부를 수 있다. 때론 관객들이 먼저 나서서 자체적인 팬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이른바 ‘심박수 챌린지’로 화제를 끌었던 <서울의 봄>(2023), 관객들과의 실시간 소통을 중요시했던 <파묘>(2024) 등의 사례가 있겠다.

<왕과 사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는 영화의 제작기와 비하인드 스토리, 다양한 제작진의 노고를 기록한 촬영실록이 고관여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영화 제작의 다양한 면모를 공유하면서 영화에 대한 호감도와 친밀감을 키운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 단종(박지훈)에게 활쏘기를 가르쳐 준 국궁 스승을 만난다거나, “요즘 영화치고 대사가 너무 잘 들린다”라는 관객들의 실시간 반응에 따라 현장 녹음 기사와 음향 감독을 인터뷰하는 등의 콘텐츠가 연재됐다. 근래 흥행작의 필수 코스이자 관객들과의 만남 장소인 무대 인사의 뒷얘기를 풀어내면서 즉각적인 소통을 유도하기도 했다.

촬영실록을 통해 작품과 제작진에 애정을 붙인 관객들은 스스로 영화를 알리기 시작했다. 권혜림 과장은 “촬영실록을 즐겨 본 관객은 1천500만 명의 극히 일부겠지만, 그분들께서 각자 수백 배의 관객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러한 촬영실록의 아이디어를 내고 실무를 맡은 인물은 권혜림 쇼박스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이다. 이에 ‘홍보 일꾼’이라는 이름으로 촬영실록을 연재하며 <왕과 사는 남자>와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했던 권혜림 과장을 만났다. 촬영실록의 기획 배경부터, 작금 영화 시장에서의 홍보 전략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촬영실록 등 <왕과 사는 남자> 홍보 일꾼으로 앞장선 권혜림 쇼박스 커뮤니케이션팀 과장



촬영실록이 보여준 친근함 촬영실록은 권혜림 과장의 아쉬움으로부터 시작됐다. 2019년 쇼박스에 입사한 뒤에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마주했던 권혜림 과장은 답답한 현재보다 과거로 눈을 돌려 할 거리를 찾았다. 그렇게 쇼박스가 보유하고 있는 과거의 자료들이 더 적극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의 미공개 스틸컷이나 촬영 비하인드가 너무 아까워서 외부에 공개하고 싶었지만” 여러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무산됐다.

대신 권혜림 과장은 “나중에 미공개 자료들이 남아서 아쉬워하지 않도록, 앞으로 개봉작 홍보 때 최대한 많은 자료를 공유”하고자 했다. 메이킹 필름, 영상 인터뷰, 제작진과의 서면 인터뷰 등에서 프레스킷에 미처 담지 못했거나 기사화되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관객에게 보여 주려 한 것이다.

내용은 충분히 가치 있으니 다음 단계는 ‘어떻게’였다. SNS는 텍스트 분량의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고 해 예전 영화 홍보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쓰이던 블로그를 재활용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결과적으로는 팀 동료들과 마케팅팀의 의견을 수렴해 ‘노션’ 플랫폼을 활용하기로 했다.

노션은 주로 조직 내의 업무 일정이나 정보, 자료 등을 공유하는 데 쓰이는 웹 플랫폼이다. X(구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보다 많은 글을 담을 수 있고, 다른 채널과의 시선 분산 없이 독자적인 웹페이지를 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NS만큼의 접근성과 개방성이 있지는 않지만, 일부 사용자들이 자기들만의 세계를 꾸리기엔 최적인 플랫폼인 셈이다. “다른 산업의 홍보 분야에서 가끔 쓰인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실제 홍보용으로 사용한 적은 없어 우려되고 낯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적의 선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서두에 쓴 것처럼 최근의 영화 흥행에는 충성도 높은 팬층의 존재가 필수로 여겨진다. 온·오프라인상의 각종 밈을 만들고 공유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입소문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촬영실록은 더 내밀하고 사적으로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창구가 된 것이다.

촬영실록의 친밀함에는 ‘홍보 일꾼’(권혜림 과장)의 캐릭터도 크게 일조했다. 딱딱한 기사의 문체가 아니라 당장 SNS에서 쓰일 법한 온라인 말투와 솔직한 심정의 전달은, 실제로 존재하는 한 사람이 관객들과 함께 <왕과 사는 남자>를 ‘덕질’한다는 인상을 남긴 것이다. “평소에 쓰거나 읽는 글과는 아예 다른 말투인데, 관객들이 읽기에 가장 편할 법한 형태를 찾게 됐다.”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개봉 시기부터 차곡차곡 콘텐츠를 쌓아 나가려 자료를 모아 왔으나, 예상치 못한 대흥행에 권혜림 과장은 대부분의 무대 인사나 홍보 일정에 참여하며 비하인드 자료를 더 많이 긁어모아야 했다. 전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모두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자연스러운 사진이 오히려 촬영실록 독자들에겐 친밀함을 안겨 줬다.

(제공=쇼박스 촬영실록)



촬영실록 엿보기 1 촬영실록 - 왕을 살린 밥상, 인물이 된 시간…LOOK의 모든 것
비어 있는 뗏목. 멀리 보이는 배소.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리는 느낌이에요. <왕과 사는 남자>의 프로덕션을 책임진 박윤호 프로듀서의 휴대폰 사진첩에서 발견한 사진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 현장의 밤 공기,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촬영 현장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영화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왕과 사는 남자> 촬영실록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프로덕션 실록을 준비했어요.




작품마다 다른 전략으로 하지만 노션을 활용한 촬영실록의 형태가 모든 작품에 통용되는 만능 전략은 아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이야기부터가 몇 줄 되지 않는 실록의 기록으로부터 출발한 상상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좋아해 주실 법한 관객이라면, 글로 같이 마음을 나누는 것에 관심을 가지실 것 같았다”라는 권혜림 과장의 말처럼 각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당연히 홍보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시나리오가 줬던 밀도 있는 감상이 촬영실록의 형식과 결이 맞았지만, 오락성이 강한 장르물이나 코미디만 있는 작품이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해 권혜림 과장은 “이미지나 영상 중심의 강렬한 소통은 마케팅팀 등 다른 부서에서 이미 충분히 수행해 주고 있으니, 이번에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도 들려준다.

물론 <왕과 사는 남자>를 좋아하는 관객들을 단순한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서 <만약에 우리>라면 멜로를 좋아할 것 같은 관객층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고, <살목지>라면 호러 장르를 선호하는 특정 관객층이 좁혀진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각본 단계부터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기에 특정 관객층을 상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권혜림 과장이 촬영실록을 통해 먼저 공략한 관객층은 장항준 감독, 박지훈, 유해진 배우에 대한 개별적인 호감이나 신뢰감을 지닌 이들이었다. 노션 플랫폼을 활용하는 데 익숙한 청년층 중 배우의 팬 활동 경험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할 만한 관객층을 먼저 고려했다.

영화가 어떤 세대, 종류의 관객층을 노려야 하는지는 작품과 상황마다 천차만별이다. 이에 가장 중요한 홍보의 첫 단계는 “시나리오 단계, 내부·블라인드·모니터링 시사 등을 통해 작품마다의 메인 타깃을 빠르게 설정하고 가장 먼저 설득하고 현혹해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포착”하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종 변수가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프로젝트마다의 유동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제공=쇼박스 촬영실록)



촬영실록 엿보기 2 촬영실록 - 무인 비하인드(다들이러시는이유가있을거아니에요)
<왕과 사는 남자> 무대 인사 현장에서 일꾼들의 손발은 쉴 틈이 없습니다. 귀한 일정을 내어 영화를 보러 와 주신, 그리고 ‘왕사남즈’를 만나러 와 주신 관객 여러분과의 시간을 최대한 매끄럽게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모두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는 경호팀을 따라 동선을 소화하고, 관객분들을 위해 준비한 굿즈 선물도 챙기고, 실시간으로 극장과 커뮤니케이션도 병행하고, 감독과 배우들의 열정 넘치는 팬서비스도 포착하고, 때로는 여러분께서 애정을 가득 담아 재치 있게 안겨 주시는 플래카드나 선물들 역시 소중하게 촬영해 널리 알리기도 해요. 관별 상영 시간에 맞춰 일정을 무리 없이 마치고 이동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죠.




관객을 따라가야 한다 “관객들을 따라가야 한다. 그들의 반응을 설령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권혜림 과장은 지금 시대의 관객을 극장에 부르기 위해선 관객 중심의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파묘> 때도 비슷했는데, 700만~800만 관객쯤을 넘기다 보면 관객들이 어느 면을 좋아하고 비판하는지 그 반응을 예측하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작품을 마치고 복기하면 대중과 관객의 반응을 미리 예단하고 어떤 법칙을 찾으려 했던 게 굉장히 오만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피드백을 나누게 된다.”

예를 들어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호랑이 CGI는 온라인상에서 다소 조악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왕과 사는 남자>의 ‘인간미’를 키우는 요소로 작동했다. “관객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게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긴 하다. 다만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못했다고 느껴 그것을 파헤치고 분석하려는 일에 매몰되기보단, 그냥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관객의 속도는 그만큼 너무나 빠르다.

“예상치 못한 포인트를 짚고 리뷰를 남기는 천재 관객”들이 여기저기에서 속속들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다른 부서와 함께 이러한 관객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마케팅팀과 배급팀 등에선 각종 굿즈 마케팅이나 오프라인 상영회 등을 기획”하게 된다. 이를 통해 <왕과 사는 남자>는 ‘통곡 상영회’, ‘광천골 정(情) 상영회’, ‘단종 패키지(손수건, 소분쌀, 티슈, 세뱃돈 봉투) 상영회’ 등을 이어가며 핵심 관객들과의 접점을 키웠다. 최근 많은 영화가 실행하는 특별 상영회를 조금이나마 더 관객 친화적으로 운영하려 골몰한 것이다.

콘셉트가 다양했던 <왕과 사는 남자> 오프라인 상영회(제공=쇼박스)



빠르게, 유연하게 시시각각 변하는 관객들의 변화와 반응에 대처하기 위해선 조직의 빠른 움직임이 필수다. 권혜림 과장은 “쇼박스 커뮤니케이션팀, 마케팅팀과 배급팀 등 다양한 부서가 ‘무엇이든 가능하면 얼른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편”이라고 전했다. “수평적이고 경쾌한 분위기에서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쇼박스는 영화 산업의 불황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다. <시민덕희>(2024), <파묘>, <사랑의 하츄핑>(2024), <만약에 우리>에 이어 <왕과 사는 남자>까지 중예산 규모의 영화를 흥행시키는 중이다.

작년 쇼박스 홍보팀의 명칭이 커뮤니케이션팀으로 변화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최대한 많은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 산업의 각종 소식을 부서 내외에 즉각 공유하는 문화를 정착시킨 것이다. 권혜림 과장은 “각종 국제영화제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산업 포럼이나 콘퍼런스에 최대한 참여하고, 그곳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서로에게 최대한 나눠주려 했다”고도 덧붙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산업의 시간이 멈추거나 개봉작 사이에 잠시 시간이 날 때도 이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한 노력과 동기부여가 이어졌다.

권혜림 과장은 최근 시장 상황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선 “자신의 취향이 어떻든 여러 모양의 콘텐츠를 독해할 줄 아는 능력과 유연한 태도”가 가장 중요한 듯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대중영화, 아트하우스 영화 등 개인의 지향성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취향과 반대되는 영역의 영화도 자기 나름의 눈으로 비평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관객에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기 위한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영화 산업처럼 특정한 규칙보다 변수에 대한 대응능력이 중요해진 시점에 특히나 유효해 보이는 이야기다.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영화 산업에 일궈낸 활력은 우연만은 아니었다. ‘홍보 일꾼’들의 유연하고 빠른 고사리손이 1천578만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받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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