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inema
영화공간주안,
인천 아트영화들을 위한 큰 그릇
- 글
- 이락희(한국경제매거진 기자)
- 사진
- 영화공간주안
Art Cinema
예술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공간주안’이라고 부르는 대신 줄여서 이름도 예쁜 ‘영공주’라고 부른다. 2007년, 그 이름처럼 인천 주안 일대를 예술적 감성이 가득한 ‘영화공간’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개관한 영화공간주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국 최초 지차제가 설립,인천 미추홀구 주안1동에 자리 잡은 영화공간주안은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운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저예산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예술영화관이라는 표현보다 좀 더 포괄적인 ‘다양성 영화관’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2007년 미추홀구(당시 남구)가 설립해 ‘전국 최초의 지자체 설립 예술영화관’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해 올해로 개관 17주년을 맞았다. 대부분의 예술영화 상영관은 민간에서 운영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예술영화 상영관은 인천을 비롯해 전주, 부산 등 세 군데뿐이다. 전주와 부산은 시에서 운영하는 데 비해 영화공간주안은 미추홀‘구’에서 운영한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주안은 주안1동부터 8동까지 8개 동을 아우르는 행정동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인천 사람들이 주안역을 기준으로 그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2007년 인천에 최초의 예술영화관을 개관하면서도 화려한 이름 후보들을 포기하고 ‘주안’이라는 평범함을 선택한 이유도 지역적 상징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인천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자부심도 한몫 했다.
알고 보면, 영화공간주안은 주안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중 하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안역에서부터 영화관이 있는 시민회관사거리까지 이르는 400m 남짓한 거리는 ‘인천의 로데오’라 불리며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늘 젊은이들의 발걸음으로 활기가 넘쳤으나 2000년대 들어 인근에 신도시들이 생겨나면서 이 일대는 구도심으로 밀려났다. 젊은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유흥가들이 들어서고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미추홀구에서는 원도심의 문화적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 일대에 영상미디어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영상문화지대로 탈바꿈시켰다.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청소년미디어센터를 설립하면서 예술영화 전용관도 함께 개관한 것이다. 당시 폐관한 상업영화관(맥나인)을 구에서 매입해 예술영화관으로 재개관했으니 그것이 바로 현재의 영화공간주안이다.
2004년 개관한 맥나인은 9개 관을 갖춘 상업영화관으로 개관 당시 부산극장과 함께 THX 사운드 인증을 받은 극장으로 유명했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열혈 관객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인근에 대형 멀티플렉스 개봉관이 들어서면서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다가 결국 2006년 문을 닫았다. 구에서 맥나인을 매입하면서 설치된 첨단 영화 시설까지 그대로 물려받았다.
개관 당시만 해도 일각에서는 “인천에 예술영화관이 왜 필요하느냐”는 회의적 목소리도 존재했다. 박영우 관장은 “예술영화관은 공공의 성격이 강해서 영화계의 다양성에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영화 볼 권리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지자체나 기업, 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만약 예술영화관이 자생적으로 운영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였다면 이미 민간 기업이 뛰어들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한다.
현재 영화공간주안은 미추홀구 산하의 학산문화관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인건비를 비롯해 운영비를 100% 구에서 지원 받는 대신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전액 구로 귀속된다. 박영우 관장은 “구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서 영화 시장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화공간주안은 네 개의 상영관과 한 개의 다목적 소공연장(컬처팩토리)을 갖췄다. 1관 112석, 2관 136석, 3관 98석, 4관 150석으로 총 496석의 상영관 객석을 확보하고 있다. 다목적 공연장인 컬쳐팩토리는 영상과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고, 전동의자도 설치되어 있어서 다양한 영화의 상영 및 연극과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관을 하고 있다. 컬쳐팩토리 86석을 합하면 객석은 총 582석이다. 그동안 전국에서 70만여 명의 관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다.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를 회복할 틈도 없이 2021년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의 본격적인 시장 점유가 이뤄지면서 예술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우 관장은 “‘관객 발굴’이 위기 극복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말한다.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 등을 초청, 기획 의도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시네마 토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작품씩 선정해 유튜버 라이너와 함께 진행하는 ‘인생 영화’ 프로그램도 관객들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이끌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는 주한중국문화원과 함께 ‘시네마 차이나’도 진행 중이다.
스웨덴영화제도 올해로 13회째 개최하고 있다. 스웨덴영화제는 2012년 스웨덴 실비아 왕비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영화제로, 북유럽 영화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영화공간주안에서는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열렸다.
표현의 자유를 담는 큰 그릇영화공간주안은 많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3관, 4관은 인권영화제나 여성영화제 등에 대관해주기도 한다. 시민문화프로그램과 여성, 인권, 장애인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로 개방하고, 흔히 말하듯 상업영화가 담기 힘든 것들을 과감하게 담는 ‘큰 그릇’ 역할을 해 왔다.
영화공간주안은 세월호를 다룬 첫 다큐멘터리인 <다이빙벨>을 상영한 유일한 영화관이기도 하다. 당시 지원이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전국 각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몰려들어 연일 매진 사례였다. <다이빙벨> 상영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지만 세월호 사건을 현장에서 겪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아픔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는 자존심만은 지켰다. 이후 2022년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피해 회복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표현의 자유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상영작 리스트에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한 <다이빙벨>도 포함시켰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영화공간주안은 2004년 개관한 맥나인의 공간과 시설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후로 제대로 된 리모델링을 하지 못했다. 시설들이 점점 노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에둘러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모습’이라고 포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2022년 박영우 관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개관 이래 한 번도 내부 리모델링을 하지 못하다가 2023년 게시판 구역부터 산뜻하게 바꾸었다. 코로나19 이후 사라졌던 카페도 새로 오픈해 관객들이 영화 관람 전후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노후된 채로 쓰던 상영관 출입 방음 방화문도 새로 교체했다. 20년 된 낡은 사무실 집기교체 등 근무 환경도 개선하고 처우도 나아지면서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이렇게 시나브로 좋아지면서 관객들도 변화를 느끼고 있다. “영화관 분위기가 밝아지고 예전보다 훨씬 더 깨끗해졌다”는 입소문이 커지면서 대관도 많아졌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을 받아 영화관 홍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버스 광고 등을 통해 예술영화 전용관의 존재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박영우 관장은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연평균 3만 명 내외의 관객이 찾았으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관객 수가 크게 줄었다가 2023년을 기점으로 회복되는 추세이다”라고 한다.
9, 10월 상영되는 예술영화들
현재 영화공간주안에서는 예술성 짙고 우수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9월에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7월 4일~9월 25일),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
(8월 29일~9월 25일), 오정민 감독의 <장손>(9월 12~25일), 이상철 감독의 <그녀에게>(9월 12~25일),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9월 18~25일), 모니아 쇼크리 감독의
<사랑의 탐구>(9월 19~25일) 등이 상영 중이다. 9월 24일에는 9월 시네마차이나 상영작으로 <타이페이에 눈이 온다면>이 상영을 앞두고 있다.
10월 시네마차이나 상영작은 허우용 감독의 <모리화>(10월 1~8일), 황홍 감독의 <무너진 도시>(10월 15~22일) 등 두 작품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2004년 작 <모리화>는 외할머니, 어머니, 손녀의 3대에 걸쳐 근대 중국의 질곡 어린 여인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다. 장쯔이가 1인 3역을 해 화제가 되었으나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정식 개봉을 한 적이 없는 귀한 영화다. 10월 말에는 <하와이 연가>도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1900년대 초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하와이로 실려 간 선조들의 아픈 이민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인 만큼 인천 시민들의 관심도 큰 작품이다.
영화공간주안은 어떤 영화관인지 소개해주세요
4개의 상영관과 멀티관이 있어 우스갯소리로 ‘예술영화관계의 멀티플렉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예술영화관으로는 드물게 해마다 관객들이 늘어나 코로나19 직전이던 2018년에는 한 해 4만 명의 관객이 찾았던 곳입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관객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2022년 1만2,000명, 2023년 2만4,000명이던 것이 올해는 8월 말 기준으로 이미 2만5,000명을 넘었습니다.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멤버십 회원 수도 1만9,000명에 이릅니다.
예술영화관의 관장으로서 가장 큰 숙제는 무엇입니까?
홍보입니다. 올해로 17년째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영화공간주안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관장직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영화관은 ‘돈 먹는 하마’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만 실제 업무를 수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영화공간주안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예술 공간이라는 사명감으로 행정기관을 찾아다니며 홍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비를 받아 공공기관 게시판, 버스 광고도 하고 있고 굿즈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만나는 예술영화가 누군가의 인생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영화공간주안에서는 예술영화 비평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화 관련 전문가와 함께 예술영화에 대한 소양과 영화평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영화평론을 직접 써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평학교 워크숍에서 쓴 참가자들의 글을 담은 비평집을 발간해 교육 참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어 시민들의 참여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예술영화 비평학교는 영화공간주안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참가비는 무료이며 올해 상반기에도 70명의 시민을 선정해 비평학교를 진행했습니다. 해마다 상반기에 진행하고 있으므로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청소년들 대상으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진로체험처로 등록되어 진로 탐색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화공간주안을 인천이라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전국적인 문화 공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화공간주안을 이용하는 꿀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수요일에 관람하면 가장 저렴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영화관은 요일마다 요금을 차별 적용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7000원이고 금·토·일요일에는 9000원인 데 비해 수요일에는 6000원입니다. 이날은 6000원만 내면 여러 번 관람이 가능합니다. 멤버십 카드를 발급하면 영화관람료의 무려 10%를 적립해 드리고 있고 적립금은 영화관람료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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