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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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Record

아직은 한없이 가벼울 수 없는

한국형 첩보영화의 계보와 음모 이론의 내력

이상용(영화평론가)

History Record는 인물, 배경, 상황 등 다양한 키워드를 주제로 한국영화를 다각도로 조망해 보는 코너다.


첩보영화의 탄생에는 조건이 있다. 장르라는 외형을 넘어 현실적, 역사적 사실과 관련을 맺는 조건이다. 할리우드에서 첩보물이 득세한 배경에는 제1·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이 시기에 실질적인 첩보전이 전쟁 기간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이후 냉전 시대는 미국 사회의 내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 있는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이슈는 내부의 적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적과 아군의 구별이 거대한 공포임을 환기시켰다. 상원의원의 이름을 빌려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매카시즘의 광풍은 스크린 밖의 현실뿐만 아니라 영화 안으로 스며들어 다양한 형태의 첩보물(스파이물)을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첩보영화는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점 장르화되고, 복잡한 이야기의 형태를 띠면서 대중영화 전반을 장악했다. 이러한 다변화 양상의 손쉬운 예는 외계인 혹은 SF영화의 주요한 작품으로 언급되는 돈 시겔 감독의 <신체강탈자들의 침입>(1956)으로, 식물의 포자를 통해 인간의 신체에 고스란히 침투하는 외계인들을 묘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편이자 동일한 이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강탈한 외계인들이었다. 스파이가 이 정도로 내면화된 사례가 이미 1950년대 영화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스파이들의 활약상은 어느새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주요한 아이콘이 되었다.

첩보물 영웅 캐릭터의 효시가 된 007 시리즈 <007 살인면허>와 속류라고 할 수 있는
<오스틴 파워> <킹스맨> 시리즈
출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뉴라인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유한책임회사

미국식 영웅주의와 스파이의 결합은 이언 플래밍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007 시리즈의 인기와 관련을 맺는다.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된 007 시리즈는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첩보물의 영웅 캐릭터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시리즈의 제목 중 하나이기도 한 ‘살인면허’는 평화의 시기에도 가공할 만한 스파이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존속해야 한다는 대중적 신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007 시리즈는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새로운 배우로 바꿔 가며 명맥을 유지했고, <오스틴 파워> 시리즈나 <킹스맨> 시리즈와 같은 속류나 파생작을 낳으며 명성을 확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007 시리즈가 한국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1965년에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한 007 시리즈 <007 위기일발>은 5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오늘날로 환산해 보자면 500만 이상의 관객이라고 할 만한 숫자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산업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액션영화의 대가로 손꼽을 수 있는 정창화 감독은 1966년 <순간은 영원히>를 내놓는다. 이 작품에서 007 시리즈의 영향력을 찾기란 쉬운 일이다. 대표적인 예가 첩보원의 최첨단 장비다. 007의 전매특허인 특수 무기, 자동차의 모습 등이 장면마다 시야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이 정체성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무려 ‘Special Agent X-7’라는 제목이었다.

정창화 감독의 ‘007 시리즈’ 아류가 등장한 데에는 국내에 <위기일발>이 개봉한 것과 조금은 다른 맥락도 있다. 1960년대 중반은 최초의 한류가 시작된 시기였다. 정창화 감독은 홍콩의 대표적인 액션영화와 무협영화의 명가인 쇼브라더스와 손을 잡고 장중문, 왕호 등의 스타들을 등장시켜 한국, 홍콩, 대만, 일본 등에서 촬영했다. 소위 한·홍 합작영화가 제작되던 시기였고, 자연스럽게 국제적 장르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 흐름은 1970년대로 이어진다. <엑스포 칠십 동경작전>(1970)과 <황금 70 홍콩작전>(1970)을 선보인 최인현 감독은 이국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조총련, 중국, 북한의 간첩들을 등장시킨다. 선악의 이분법이 또렷한 장르영화의 단순함이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단의 내면이 아니라 볼거리의 제시였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 유행했던 국제적 스파이물은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 시기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사회적 엄격함이 영화 장르로서의 첩보물이나 스파이물에 손을 대기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제작 규모도 필요로 하다 보니 1980년대의 한국영화 제작 규모로는 역시 손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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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첩보물의 본격적 출발점이 된 영화 <쉬리>
출처 강제규필름

본격적인 한국형 첩보물의 등장에는 다른 시대상과 새로운 자본이 필요했다. 진정한 출발점은 새로운 세기를 목전에 둔 해에 개봉해 흥행을 이끈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다. 하지만 과거 첩보영화처럼 제 무대를 누비는 이야기의 제작은 조금 더 뒤로 미뤄져야 했는데,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 그리고 이정재 감독의
<헌트>(2022)가 여기에 해당된다. <헌트>는 일본, 태국 등의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한반도를 벗어난 국제적 첩보물의 산업적 흐름을 이어 간 동시에 사실성과 화려함을 강조했다.
<베를린>에서 주인공들이 집을 탈출하는 장면은 할리우드의 <본 아이덴티티> 못지않은 액션의 밀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화려함과 국제적 규모가 한국형 첩보영화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산업적 요청과 시대의 욕망이 만들어낼 수 있는 크기였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보다 내밀한 역사적 조건과 현실에 있다. 한때 레드 콤플렉스의 대명사였던 간첩이라는 이름을 영화 속 ‘스파이’로 각색해 소환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동력은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분단을 동력 삼고

8·15 광복 이후 신탁 통치와 함께 시작된 분단의 경험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반도를 그 어느 국가보다 강력한 냉전 시대 아래 놓이게 했다. ‘반공’은 강력한 통치 이념이자 교육의 논리였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첩보물 대다수가 ‘반공’을 강조하는 첩보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첩보물은 군부독재 시절에 잠잠하다가 민주화의 물결과 새로운 시대상을 맞이하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지칭할 수 있는, 새로운 첩보영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쉬리>는 첩보물이라는 장르적 조건을 내세우는 것과 동시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출발점이 된다. 제작 규모나 스펙터클의 측면에서 블록버스터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점들이 있었지만 이야기의 규모가 커 보였다는 점에서, 국가적 갈등과 위기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전의 한국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형 첩보영화에 요구되는 현실적 조건(분단 혹은 냉전)과 스펙터클(구경거리)로서의 영화가 융합되어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나아간 셈이다.

이야기의 내용도 달라졌다. <쉬리>의 진정한 새로움은 과거 영화들처럼 북한을 적으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적과의 동침’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연인의 구도를 깔아 놓는 데 있다. 한석규가 연기하는 특수비밀요원 유중원은 북한 최고의 저격수 이방희를 찾는 한편 자신들의 작전이 매번 노출되자 내부 배신자를 색출하느라 고민한다. 김윤진이 연기하는 명현과의 결혼을 한 달 앞에 두고 그는 이방희의 정체가 명현임을 알게 된다. 남과 북이 대립적 관계가 아닐 수 있다는 설정은 강제규 감독의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이어진다.

한국 첩보영화는 분단을 동력 삼아 작동했다. 사실, 장르영화사에서 ‘분단 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단이 소재인 한국영화가 지속성을 갖고 등장한 배경은 ‘한국의 로컬리티’로 명명할 수 있는 특수성이 지속적으로 작동했고, 지금까지도 중요한 사회적 현실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분단은 모든 대립과 갈등을 넘어 여전히 가장 큰 정치사회적 갈등이자 이데올로기이며, 가족과 개인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기 쉬웠다. 분단이 일어난 직접적인 현실을 다루는 영화이든 분단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영화이든 모두 ‘분단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분단’은 하나의 장르로 부를 수 있을 만큼 가장 주요하게 다뤄진 한국영화의 영역이다.

정체성 질문으로 나아간 첩보영화

한국영화의 분단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분단 상황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분단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 상황이 초래한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첩보영화’다. 장르영화의 기준으로 분단영화는 전쟁과 스릴러 혹은 첩보와 스릴러가 된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분단영화는 강제규 이후의 길을 모색하는 셈이며, 전쟁보다는 첩보와 스릴러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강제규 이전의 분단영화들도 전쟁과 첩보 스릴러라는 두 가지 장르의 전략 속에 놓여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를 대표하는 이만희 감독의 영화 두 편을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1963년에 선보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 전쟁영화의 영원한 클래식 중 하나다. 서울 수복 후 북진하면서 벌어지는 남한 해병대의 내부 상황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내부의 갈등과 중국군과의 최후 격돌에서 드러나는 전우애와 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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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을 거듭하는 <헌트>의 결말은 <암살자> 같은 1960년대 한국 분단영화들과 결을 같이 한다.
출처 <헌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암살자> KMDB

그런데 신탁통치 시대의 스파이를 소재로 삼는 이만희 감독의 <암살자>(1969)는 전쟁영화의 이분법을 비켜나 공산당 내부의 갈등을 다룬다.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 장동휘가 연기하는 암살자는 임무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당원 1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당원 1호마저도 최후를 맞이하는 ‘허무의 끝’을 보여준다. <헌트>를 본 관객이라면 영화 속 허무한 결말이 분단을 다룬 1960년대의 작가영화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서로를 향한 불신은 영원한 우정을 가능케 하지 않는다. 끝없는 배신만이 난무하는 한국 첩보영화의 결말은 분단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오늘날에도 이 점은 분단영화의 중요한 얼굴이 된다. <베를린>, <공작>,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2: 정상회담>(2020), 그리고 <헌트>의 배경에 이르기까지 분단영화라는 거대한 틀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층 탐구는 스파이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전쟁과 첩보물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분단을 둘러싼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 선 ‘인간’의 문제는 정의와 분노를 오가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헌트>에서 김정도(정우성)의 분노의 화살은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군부독재를 향하고, 스파이를 색출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대통령을 시해하는 인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가짜 공동체’에 분노하는 개인의 출현이다. 간첩 박평호(이정재)도 상부의 명령에 충실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혼란을 틈탄 적화통일보다는 남과 북의 평화적인 화해를 열망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 또한 개인의 열망을 드러낸다. 두 인물은 국가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적 명령에 호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개인의 분노와 열망의 가치를 드러내면서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간다. 더 이상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열망이 정의롭다는 판단을 향해서 달린다. 2010년대 이후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북한에 속한 요원이든 남한의 요원이든 자유의지를 피력하는 개인들을 앞세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노력을 보여준다. <공작>에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주인공 박성영(황정민)이 상부의 명령에 저항하는 모습은 스파이가 아니라 정말 남북의 화해를 꿈꾸는 인물이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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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의 개인이 분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인물들이었다면
<베를린> 속 표종성은 저항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흔드는 인물이다.
출처 ㈜CJ ENM, ㈜쇼박스

또한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서 자신을 파멸시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동명수(류승범)를 향해 무자비한 반격을 시도하는 표종성(하정우)의 모습은 더 이상 희생당하는 개인이 아니다. 그는 아내(전지현)를 구하기 위해 첩보원으로서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다.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개인이 분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인물들이었다면, 이렇듯 새로운 분단영화의 유형은 저항하는 개인을 통해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흔들어 버린다. 장르의 틀로서는 첩보 스릴러에 해당되지만 표종성은 <이중간첩>(2003)의 림병호(한석규)처럼 미약한 저항을 하며 은둔을 선택하다가 끝내 사라지는 인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첩보 장르는 ‘본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스파이물이 선취했듯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기 유리한 장르이고, 한국의 ‘첩보영화’들 또한 이 점을 십분 활용한다. 코미디 장르의 첩보물도 종종 있지만, ‘분단의 현실’이 앞에 놓여 있는 만큼 진중해질 수밖에 없는 무게감을 지니고, 개인을 말살하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상상과 갈등은 더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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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밀도 높은 긴장감과 대립을
펼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출처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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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의 장르성을 표방하지만 동시에 분단영화이기도 한 영화 <백두산>(2019)
출처 ㈜CJ ENM, ㈜덱스터스튜디오

첩보영화가 점점 더 정체성의 문제에 다가가고 있다면, 영화의 전체적 틀이라 할 수 있는 분단의 갈등은 보다 다양해진 영화의 ‘장르’로 이어진다. 최근 웹툰과 스크린을 오간 ‘강철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 핵의 공포가 더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진다. 더군다나 1편 <강철비>(2017)의 결말은 북한의 핵 절반을 남한이 받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 핵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힘의 균형과 분배의 정의가 된다. <강철비> 시리즈를 전쟁영화의 한 축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강철비2: 정상회담>의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밀도 높은 긴장감과 대립을 펼치는 일련의 장면들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보인다. 그것은 분단의 압축판이자 상상적 갈등의 긴장을 최대치로 올리는 영화 장르의 전략이기도 하다. <헌트>의 실화적 소재들이 일부 각색되거나 <공작>의 현실들이 일부 변형되면서, 가상과 현실이 뒤엉켜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재난영화의 장르성을 표방하지만 동시에 분단영화이기도 한 <백두산>(2019)의 상상력은 백두산의 화산 폭발을 북핵으로 막는다는 것이다. 북핵은 재난의 해결책으로 등장하며, 구원의 모티브가 된다. 최근 분단영화 속에서 ‘핵’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된다. 단순한 영화적 상상력의 발칙함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중영화에서 핵은 공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내거나 화해할 수 있는 도화선으로 작동한다.

물론 장르영화나 대중영화의 문법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재난의 상황이든 전쟁의 전야든 결국에는 안전한 결말로 끝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대중영화 속에서 분단의 갈등은 심각하게 내면화되는 것보다는 피상적인 요소로 던져진다. 분단의 상황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긴장감을 즐기는 2시간짜리 오락거리의 한계에 머문다.

우리에겐 너무 가벼운 스파이들

하지만 분단영화는 제아무리 새로운 장르의 외피를 둘러도 무겁다는 인상을 피할 수가 없다. 분단을 벗어나면 장르로서의 한국 첩보영화는 한없이 가벼워질 기회를 얻는다.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처럼 첩보물의 외관을 갖고는 있지만 코미디 장르를 밀고 가는 영화나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2014)처럼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는 아버지를 둘러싼 부자간의 갈등을 다룬 코미디 영화도 있다.

<쉬리>와 같은 해에 코미디 감각을 내장하고 개봉한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처럼 북한의 간첩(스파이)을 향한 적대적 시선을 비트는 작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리철진의 선택처럼 인민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슈퍼 돼지(리철진은 슈퍼 돼지 유전자를 훔쳐서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임을 표명한 지 오래다.

외형은 첩보물이지만 분단의 무거움을 드러낸 코미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출처 쇼박스
외형은 첩보물이지만 분단의 무거움을 드러낸 코미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출처 쇼박스
북한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영화 <공조 : 인터내셔널>과 <오케이! 마담>
출처 ㈜CJ ENM,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북한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영화 <공조 : 인터내셔널>과 <오케이! 마담>
출처 ㈜CJ ENM,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16년에 시작된 <공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형사(유해진)와 북한의 경찰(스파이, 현빈)이 공조한다는 기조 아래 전개되는 이 시리즈는 분단이 가져온 심각함 이상으로 북한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엄정화 주연의 <오케이! 마담>(2020)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요원들이 비행기 납치를 시도하는데, 평범한 가족들처럼 보이는 승객 중에는 북한의 최정예 요원이었던 ‘목련화’(현재 이름은 이미영)와 전직 국정원 직원이었던 미영의 남편 오석환(박성웅)이 타고 있다. 분단의 코미디화, 분단으로부터 파생된 첩보물의 상상력이 홍콩영화 <오케이 마담> 식의 이야기를 앞세워 어디까지 가벼워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던 이 사례는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폭발력을 갖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것은 코미디 장르로서 첩보영화의 한계이기보다는, 제아무리 가볍게 희화하려고 해도 여전히 무거운 우리의 현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등장하는, 동네 바보처럼 보이는 간첩이라고 해도, 무의식적 공포를 완전히 떨칠 수는 없는 존재다.

이 점이 한국 첩보영화의 영원한 특수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영화들이 분단을 망각하고, 이제 스파이의 신분을 잊고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오케이 마담> 속 주인공들의 현실을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20세기의 갈등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은 그 어떤 영화도 손쉽게 ‘화해’의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영화는 인간적 마음이 이데올로기의 공포를 넘어서는 결말을 종종 제시해 왔지만, 관객들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기원의 문제다.

이러한 갈등과 공포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우리는 분단의 현실에 살고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비록 한국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은(종종 해외 영화제에 있을 때 미사일 뉴스가 등장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라고 진지하게 묻는 외국인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최대한 망각한 채 뉴스를 지나치지만, 자연재해처럼 부지불식간에 도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원을 해결할 때, 분단을 해결할 때 비로소 사라질 공포일 것이다. 그 순간 한국의 첩보물은 한없이 가벼운 모습으로 관객을 유혹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