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질문하고 정리해야 돌파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박광수 이사장
- 글
-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임익순
Interview
부산국제영화제 박광수 이사장
올해 2월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의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박광수 이사장을 새로운 리더로 맞았다. ‘아시아영화의 중심’으로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 가운데, 박광수 이사장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여 현명하게 변화하는 부산영화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영화제의 중심이 영화와 관객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며, 하나부터 열까지 점검해보겠다는 마음이다. 관객과 국내외 영화인, 영화를 연결시켜줄 올해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윤곽도 전했다. 부산영화제 창립 멤버이며,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장을 지냈던 이력답게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제와 새로운 물결에 반응하는 마켓, 둘 사이의 균형 있는 발전도 바라고 있다. 영화인들이 추대한 박광수 이사장의 올해와 내년은 부산영화제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듯하다.
지난해 내홍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이사장 체제하에 정비되어 벌써 올해 영화제를 앞두고 있다. 이사장직을 맡을 때 여러 기대와 염려를 들었을 텐데.
염려만 들었지 기대는 못 들었다.(웃음) 이사장직을 제안받았을 때 신작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이빙 벨> 상영 이후 부산영화제 관련 일에서 손을 놓았다. 영화제에 잘 가지도 않을 만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연출부 출신인 성지혜 감독이 여러 사람과 함께 찾아와서 나를 설득했다. 영화제를 정상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해 왔는데 외면하면 되겠느냐고. 영화제의 창립 멤버였던 나도 책임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이 있는 정상적인 영화제로 돌려놔야 되겠다 싶었다. 이사장직을 맡고 보니 영화제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단기간에 정리하기는 어려워서 올해는 일단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본다는 기조다.
부산영화제 초기에는 국제영화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포함한 핵심 창립 멤버가 5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 아는 편이었다. 프로그래머였던 이용관, 전양준, 김지석의 담당 분야가 그때 확정이 되었다.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님은 정부 관계 일을 많이 하시고 스폰서를 책임지셨다. 그래서 영화제의 방향 설정이나 설계는 내가 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와보니 2010년대의 영화 현장과 지금 현장은 크게 변했는데 부산영화제는 변한 게 많지 않았다. 일단 상근직원 수가 다른 영화제와 비교할 때 2배 정도 많고, 프로그래머가 9명이고, 그중 상당수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50% 이상이 되고 사업비는 적었다. 그래서 의논을 하다 보면 예산이 없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영화제 초청 인원도 규모에 비해서 축소된 느낌이고 데일리도 끊어지고 셔틀버스를 안 돌리고 있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올해는 디테일한 부분들의 수정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제가 어떤 비전을 갖는 게 중요한데, 그게 당장 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부산영화제는 안팎에서 인적 구조, 조직 운영, 프로그래밍, 재정 등에 대해 전반 적인 변화를 요구받았다.
영화제의 현재 문제점들은 지금 영화제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만든 건 아니다. 가능하면 개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할 텐데, 이것이야말로 영화제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해외 영화제들을 보면 단기 스태프들은 여름에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가서 일하고 겨울엔 베를린국제영화제 가서 일하는 식으로 활동한다. 프로듀서나 영화 관련 해외 세일즈 회사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영화제 일을 많이 한다. 영화제를 통해서 해외 네트워킹도 갖추고 이해의 폭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영화제를 안정되게 운영하기 위해서 정규직원들을 많이 뽑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부분들이 다 협의의 대상이기 때문에 ‘영화제 협의체’를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협의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다. 정부와 관련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각각의 영화제의 방향성 같은 것도 협의하고, 각 영화제 운영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점도 대조해서 개선 방향도 찾아볼 수 있다. 각 영화제마다 특성이 있어서 인적 자원도 교류하고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한 고민도 함께할 수 있다. 부산영화제는 독립된 기구지만 어떤 영화제들은 시의 산하 단체인 경우도 있어서 성격이 다르기도 한데,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한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인공지능(AI) 등 패러다임 전환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 여러 국제영화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산은 어떤가?
올해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를 다녀왔다. 영화제가 위축된 분위기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디네극동영화제 때는 개막식에서 집행위원장이 “영화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했고, 칸은 오히려 더 활성화된 분위기였다. 올해 칸에는 AI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큰 부스를 차렸고, 칸국제영화제 스태프 직함 중에는 ‘미래 영화제 책임자’라는 직함도 있었다. AI는 이미 영화계에서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분들이고 영화제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때 AI 프로그램에 대한 부분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새로운 콘셉트였다. 우리도 준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부산영화제에 참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칸 마켓에서 “창작의 주체는 AI가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AI Is Not Creative, You Are”라는 메시지로 주목을 끌었는데, 부산영화제와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서는 아시아 최초로 부스를 개설한다. 영화의 전당 비프힐에서 관객들이 AI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라운지도 운영하고, ACFM 부스에서는 영화 전문가들에게 코파일럿 시연을 선보여 테크와 콘텐츠의 융합을 보여줄 거다.
자체 기획 콘퍼런스도 강화했다. AI 콘퍼런스 및 OTT 콘퍼런스를 통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시아의 지식재산권(IP) 및 영화 산업이 AI와 어떻게 결합하고 변화를 주도할지, 그리고 아시아 OTT 플랫폼의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논의해보는 장을 마련했다. AI 콘퍼런스는 기조연설로 시작해 한∙중∙일 콘텐츠 산업 주체의 로드맵을 확인하고, AI 업계를 선도하는 6개 업체가 시연하는 핵심 기술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AI로 인해 전통적인 영화 제작 프로세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살펴보고 콘텐츠 업계와의 상생 방안도 얘기하게 된다.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AI 관련 업체(이미지 개발사인 스터빌리티 AI와 블록체인 기술로 IP를 보호하는 기술을 가진 스토리 프로토콜)와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웹툰 글로벌플랫폼, 위지윅스튜디오, 아이치이, 리베트 AI, 덴츠 등이 참여한다. 아시아 OTT 콘퍼런스에서는 아시아 각국 OTT 플랫폼의 고유한 비즈니스 전략을 살펴보고, 시리즈, 숏폼 등 새로운 미디어의 스토리텔링 작법을 깊이 있게 다룰 것이다.
‘아시아영화의 허브’로 불려온 부산영화제의, 현재 시점의 국제적인 위상이나 역할도 점검해야 할 때다.
올해 내가 참석했던 해외 영화제들은 여전히 부산을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보고 있었다. 초창기 부산영화제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꼽혔던 홍콩영화제를 따라잡자는 것이 목표였다. 홍콩이 그때만 해도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규제나 심의가 없어서 작품 선정에서의 자유로움이 컸다. 첸카이거나 장이모 등 중국의 5세대 영화들이 홍콩영화제를 통해서 유럽으로 소개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홍콩은 곧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후 부산이 꽤 빠른 시간 내에 어느 정도 영화제로서의 위치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제 내부적으로는 왜 우리는 아시아인가, 무엇이 아시아인가를 확실히 정리하지는 못했었다.
아시아영화의 비전을 협의하는 공간으로서의 부산영화제를 만드는 받침대가 되어준 것이 프로젝트 파이낸싱 마켓인 PPP였다. 지금은 아시안 프로젝트 마켓(Asian Project Market, APM)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아시아영화 작가들의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제출하는 사람을 선정해 그 사람들이 영화를 할 수 있게끔 전 세계 투자·배급·제작자들을 연결시켜주고 그 안에서 아시아의 비전에 대해서 논의해 왔다. 부산영화제의 이런 모습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 재정의가 먼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 우리가 아시아를 그렇게 우선시하느냐, 부산영화제는 왜 계속 아시아를 얘기해야 하는가에 관해 질문해야 한다.
부산영화제가 한국영화, 한국영화인, 한국 콘텐츠를 알리는 기능을 더 강화하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영화제 초창기에는 많은 정보를 영화제가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영화 제작사들이 더 좋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배급 회사들도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현지에 파견도 하고 있다. 영화사, 배급사들의 역량도 좋아지면서 정보도 많아졌다. 해외에서는 이미 1년 전부터 한국에서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지는지 대략적인 정보들을 안다. 영화만 괜찮으면 재빨리 와서 선정하려고 한다. 그들과 달리 부산이 보는 새로운 비전은 무엇인지를 찾아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지난 28회 영화제는 내홍이 컸지만 영화제 기간 내내 화제의 게스트들과 프로그래밍으로 영화팬들을 즐겁게 했다. 올해는 어떤 준비들을 했는지?
지난해 209편을 상영했는데, 올해는 228편을 상영한다. 국고보조금은 줄었지만 자체 재원을 조달해서 영화제의 규모를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시사실을 추가 상영관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올해도 많은 아시아영화와 함께한다.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과 그 외에도 올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아시아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란 다큐멘터리 <나의 도둑맞은 우주>, 핫독스 다큐멘터리영화제의 화제작 <그녀의 이름 씨씨>, 인도영화 <산토시 순경>, 베트남 영화 <비엣과 남>, 일본영화 <마이 선샤인>,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색>, 2016년 AFA 졸업생인 두옹 디에 린 감독의 <돈 크라이 버터플라이>, 이가라시 고헤이의
<슈퍼 해피 포에버>, 쟝샤오쉐엔의 <몽골말 죽이기> 등이다.
대중성을 고려해서 관객들이 환호할 만한 일본, 프랑스, 미국, 인도의 흥행작, 화제작들도 다양하게 초대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원작인 <알사탕>, A24의 최고 흥행작 <시빌 워>와 프랑스 박스오피스를 흔든 <나이트 콜>, 안시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휩쓴 <플로우>, 2024년 상반기 인도에서 가장 뜨거웠던 영화인 <칼키 AD 2898년> 등이다.
올해 한국영화는 부산이 발굴한 영화 작가들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작품이 월드프리미어로 포진해 있다.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박송현 감독의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박이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 이종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인서트> 등이 있다. 이외에도 <전, 란>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청설> 등 한국 주류 상업영화들의 프리미어를 확정했고, 와이드 앵글 섹션의 다큐멘터리들은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되었다.
거장들의 영화도 풍성하다. 지아장커, 라브 디아즈, 왕빙, 모함마드 라술로프, 모흐센 마흐말바프, 리티 판, 브리얀테 맨도사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칸과 베를린의 화제작이자 수상작들도 대거 부산에 모인다. 션 베이커의 <아노라>(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브루노 뒤몽의 <엠파이어>(올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 자크 오디아르, 알랭 기로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들도 가져왔다. 레오 카락스의 <잇츠 낫 미>,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더 룸 넥스트 도어> 외에도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작으로 지금 세계영화계에서 뜨겁게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2편의 신작을 볼 수 있으며,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올해 칸에서 <그랜드투어>로 감독상을 받은 미겔 고메스의 영화 전작 8편을 만날 수 있는 ‘미겔 고메스–명랑한 시네아스트’와 고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는 ‘고운 사람, 이선균’, 아시아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모은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다. 다큐멘터리 장르의 확장을 위해서 다큐멘터리 관객상도 새롭게 만들었다. 와이드 앵글 섹션의 한국과 아시아 다큐멘터리 경쟁작 10편 중에서 선정한다. 각종 포럼과 담론을 형성해줄 프로그램도 많다. 이를 위해 주요 업체들,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 CJ ENM, 넷플릭스, The E&M, DMP Studio, ‘영화인연대’가 참여하고, 글렌 S 게이너(아마존 영화 부문 총괄책임자), TJ 폴스
(루카스 필름 VFX 부사장) 등이 패널로 참석해서 심도 깊은 논의의 장을 열어줄 거다.
시스템적으로는 무엇보다 올해 부산의 전체적인 균형을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마켓과 영화제가 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가게 하려고 한다. 마켓위원장이 필요한 사람을 뽑도록 내부 행정 시스템을 정리했다. 아시아 쪽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빠른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올해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sian Contents & Film Market, ACFM)에서는 ‘프로듀서 허브’도 신설했다. 글로벌 프로듀서들이 영화 투자·제작·촬영·지원사업 등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네트워킹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공동 제작 케이스스터디, 프로듀서 토크와 세미나, 네트워킹 등 여러 행사가 열린다. 첫 ‘올해의 국가’로는 한국을 선정했다. 국제 공동 제작을 위한 한국, 스페인, 홍콩 등 각국의 지원 정책을 비롯해 현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신진 영화인들에게 네트워킹의 기회와 함께 유용한 노하우와 경험을 서로 교류하게 할 생각이다.
공간적 문제도 고려했다. 영화의 전당이 영화제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영화인들이 ID 카드를 만들고 난 뒤에는 별로 올 일이 없는 공간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 점을 놓쳤던 게 아닌가 싶다. 해외 게스트들이 부산에 와서 호텔에만 있다가 가는 상황이 되지 않게, 벡스코(BEXCO)와 영화의 전당, 일반 숙소인 호텔과의 관계들을 정리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어려움 때문에 세심한 배려가 줄어든 것도 있겠다.
실무 직원들은 영화인의 입장까지 고려하며 동선을 설계하지 못한다. 리더들이 외부의 일이 많아서 놓쳤을 수 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예로 들자면 리셉션장과 마켓, 영화제 메인 상영관이 그냥 바로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데, 셔틀을 5분 단위로 계속 돌린다. 영화제에 오는 주요 게스트들은 다 바쁘기 때문에 동선을 줄여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프로그램은 내가 간섭할 수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우리가 질문을 던졌을 때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선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점검한다. 영화계와 영화에 관심 많은 마니아층,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관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뭔가 얻어가려고 하는 글로벌 영화인들이 ‘올해 부산에 출품을 해볼까’ 이런 생각을 갖게끔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영화감독으로서, 부산영화제의 창립 멤버로서,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발족에 함께하고, 부산영화제의 출발과 변화, 성장, 환희, 어려움의 과정을 줄곧 봐 왔다. 30여 년의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처음엔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사장을 맡으면서 생각해보니 의미가 없지 않았다. 창작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왜 내가 이것을 해야 되는지 끊임없이 정리를 하는 일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계속 정리하는 것은 5년도 걸리고 10년도 걸린다. 그래도 명분이 명확하면 힘들어도 돌파해 나간다. 영화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년이 부산영화제 30주년이다. 내가 몸담았던 한국예술종합대학교도 개교 30주년이 된다. CJ ENM도 30주년이 되는 것으로 안다. 즉, 한국영화계가 30년 전부터 변화를 위해 움직였던 결과들이 지금 보인다. 그것이 헛되지 않도록 정치적인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영화제, 내부의 논리가 정연해서 비전을 잘 찾아가는 영화제가 되도록 잘 정리하려고 한다.
올해 영화제를 치르면서 30주년 준비도 병행하는 것으로 안다. 부산영화제의 서른 살,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은 한국영화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크다. 한국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고.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만 하는 건지 남들도 하는 건지. 어떤 디테일들을 해서는 안 되고 해도 되는지. 아직 답을 구한 건 아니지만, 내년 예산을 부산시에 신청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윤곽은 잡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제가 지금 집행위원장이 없다. 정관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 좋은 집행위원장을 데려오는 데 장애가 되는 규정을 조정하려고 한다. 영화제 내부에 유능한 실무 직원들도 많아서 의견을 물어 가며 함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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