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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촬영? 이제는 기본 옵션

한국영화 해외 촬영의 확장성

김동식(프로듀서, 스튜디오 플로)

근래 개봉한 <한국이 싫어서> <파일럿> <원더랜드> <파묘> <비공식작전> <1947 보스턴> <국제수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을 비롯해 2024년 하반기 이후 개봉 예정인
<아마존 활명수> <하얼빈> <열대야>까지, 이제는 꽤나 자주 한국영화 속에서 해외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해외 촬영을 한 작품 수를 1년에 한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던 때가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해외 촬영은 현재 한국영화 시장에서 두드러진 트렌드 중 하나다.

<베를린> | 라트비아 | CJ ENM  
<영웅> | 라트비아 | CJ ENM
<드림> | 헝가리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로기완> | 헝가리| NETFLIX
<비공식작전> | 모로코 | (주)쇼박스  
<모가디슈> | 모로코 | 롯데엔터테인먼트
<원더랜드> | 요르단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국제수사> | 필리핀 | (주)쇼박스
<범죄도시 4> | 필리핀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태국 | CJ ENM
<한국이 싫어서> | 뉴질랜드 | 스틸 출처 (주)디스테이션
글로벌 환경, 더 이상 이질감 없다

한국영화 및 드라마에서 해외 촬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네 가지 정도를 주요 요인으로 정리해봤다.

첫째,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시각 확장이다. 잦은 해외 방문과 (코로나19 유행 시기 이전 한국은 1년 2000만 해외여행 시대를 열었다. 2024년도 1~7월 누적 해외여행 국민 수 1653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치를 회복했다) 늘어난 해외 유학 기회, 너무도 익숙해진 해외 콘텐츠 소비,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크리에이터들의 세계관이 확대되면서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콘텐츠 소비자들 역시 그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해외에서 촬영된 국내 작품의 거듭된 관람과 시청으로 인해 한국 콘텐츠 내에서의 글로벌한 환경, 언어, 인종에 대한 이질감을 거의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외에서 촬영된 작품에 대해서는 또 다른 재미를 기대하기도 한다.

둘째, 타 산업과의 사업적 협업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의 국내 작품들의 해외 촬영 트렌드 시발점은 김은숙 작가의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라고 생각한다.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의 릴레이 성공으로 영상 콘텐츠가 여행 산업 등 타 산업과 글로벌 프로모션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한류로 아시아의 트렌드세터로서 자리매김한 한국 배우들과 고도로 성장한 동양의 구매력을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주목했고 이 요소들을 한데 모으기에 아주 유리한, 콘텐츠 시장에서 많은 제안이 쌍방으로 오갔다. 이 덕에 해외 촬영을 계획한 프로덕션은 예산의 부담을 일부 덜 수 있게 되면서 아무래도 고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해외 촬영의 진입 장벽을 일정 부분 낮출 수 있었다.

협업 방식은 기존 구성에 있는 해외 촬영 분량을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촬영하기 위해 작품의 어떠한 요소에 마케팅적 접점이 있는 대상과 콘택트 & 매칭의 과정을 거쳐 그 대상의 제품 또는 요청을 작품에 노출, 반영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에 없던 구성을 새로 추가하기도 하고 스폰서와의 건설적인 합의에 의해 기획을 설계하기도 한다.

LOOK, 인센티브, 제작 인력의 충족

셋째, 2001년 <반지의 제왕>이 촬영된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타국 작품을 자신들의 국가에서 촬영하는 것이 자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방자치단체 소비 증대에 기여하며, 해당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 배경이 외국에 소개되었을 때 관광업 분야에 수혜가 있다는 것을 여러 국가와 지자체들이 인식하면서부터다. 인센티브 제도(자국 내에서 제작비로 지출한 금액에 대해 일정 기준을 가지고 그중 일부를 환원해주는 제도. 국가에 따라 리베이트, 혹은 택스 크레디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를 많은 곳에서 시행했고 지금도 이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 및 지자체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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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서 인센티브 혜택을 받으며 현지 촬영을 한
이병헌 감독의 2023년 영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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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은 헝가리뿐 아니라 영화의 엔딩 촬영지인 인도네시아 발리 예산까지 인센티브 제도의 수혜을 받았다.

현재 유럽 내에서 전통적 콘텐츠 제작 강국인 영국의 런던 다음으로 가장 활발하게 촬영이 이루어지는 곳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다. 헝가리는 자국 내 지출은 물론, 해당 작품 건으로 헝가리 외 국가에서 지출된 제작비의 일부까지 인센티브에 적용해주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한다. 이 때문에 실제 로케이션 촬영뿐 아니라 실내 세트장 촬영만을 위해서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다수의 작품들은 매해 헝가리를 찾고 있다. 최근 헝가리에서 인센티브 혜택을 받은 한국영화는 이병헌 감독의 2023년 영화 <드림>과 김희진 감독의 2024년 영화
<로기완>이 있다. <로기완>의 경우 헝가리뿐 아니라 영화의 엔딩 촬영지인 인도네시아 발리 예산까지 이 인센티브 제도의 수혜을 받았다. 헝가리 외에 그리스도 파격적인 우대 조건을 내세우는 해외 촬영지로 꼽힌다. 인센티브 환원 요율이 40%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럽에서의 촬영지는 특정한 선호도보다는 한국영화와 드라마가 각본상에서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 라트비아와 루마니아가 최근 한국영화의 촬영지로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베를린 2>로 불리며 오는 10월 크랭크인을 하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자 조인성, 박정민 주연의 <휴민트>(2025)도 라트비아에서 촬영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무대로 하는 첩보전이지만, 러시아가 전쟁 중인 상황에서 물류 수송이 어렵고, 특히 자금 송금이 막혀 있는 상태라서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촬영은 무리였다. 대안으로 러시아와 국경이 닿아 있으면서 우크라이나 옆에 위치한 라트비아에서 촬영하게 되었다. 제작사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는 “라트비아를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화에 필요한 룩(Look)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체코 같은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이미 많이 개발되어서 예전의 모습과 달라진 데 반해 라트비아는 과거(근대 유럽 및 옛 러시아의 풍광)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한 곳이 많았다. 과거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하정우, 전지현 주연의 <베를린>(2013)을 라트비아에서 찍었던 인연도 있어서 선택했다”고 밝혔다. 라트비아, 특히 수도 리가는 19세기 중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700년이 넘는 중세 북유럽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뮤지컬 영화 <영웅>과 12월 개봉 예정인 우민호 연출, 현빈 주연의 ‘안중근’ 영화 <하얼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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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19세기 중반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촬영했다. CJ ENM

루마니아도 라트비아처럼 구소련의 느낌이 많이 남아 있고 동유럽의 여러 국가에 비해 역시 물가가 저렴해서 해외 촬영지로 거론되는 국가다. 루마니아 정부가 해외 촬영팀에게도 현지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을 적극 강조하는 편이다. 인센티브 제도 역시 시행하는 국가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 제도가 발효되는 여부는 다르다. 여러 한국영화 팀이 해외 로케이션을 고려했던 국가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 의 일부 장면을 루마니아에서 촬영했다.

아시아 내에서는 태국이 한국영화 해외 촬영지로 가장 선호되고 있다. 서구 영화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동양적인 룩을 보여주는 풍경은 일본과 태국을 꼽는다. 그래서 수년간 할리우드 제작진이 태국을 찾기도 했던 터. 그 덕분에 장비와 인력을 부족함 없이 잘 쓸 수 있는 곳이다(2025년 개봉 예정인 장동건, 이혜리 주연의 <열대야>도 태국 올 로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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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역시 그곳에만 있는 풍광 때문에 한국영화와 드라마 팀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긴장감이 서려 있는 중동 지역의 불확실성 때문에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동 관련 소재의 영화나 시리즈가 기획되면 해외 촬영은 불가피하다. 최근에 이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최근 중동 올 로케를 준비 중인 한 작품의 촬영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로코를 염두에 두고 조율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해외 국가들의 촬영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 촬영팀을 지원해주는 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헌 감독이 연출을 맡은 김은숙 작가의 신작 <다 이루어질지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촬영했다. 두바이는 중동 지역에서도 해외 촬영팀의 접근성이 가장 용이한 국가이기도 하다. 여행사를 끼고 협찬이 많이 들어오기도 해서, 한국 드라마 팀에게는 멋진 풍광을 촬영하고 예산을 합리적으로 운용하기에 편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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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에서 촬영한 <베를린>(㈜CJ ENM)과

홍콩, 마카오와 부산을 오가며 촬영한 <도둑들>(㈜쇼박스)을 기점으로 해외로케 문화가 전환기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해외 촬영 노하우가 축적된 제작 인력 풀의 구축이다. 과거 해외 촬영이라고 하면 막막하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선배 세대들이 해외 촬영을 다녀오면 촬영 중 촬영지에서 쫓겨난 일화나 해외 현지 프로덕션과의 불화설은 빠지지 않는 단골 해프닝이었으니까. 하지만 2012년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2013년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을 기점으로 한국영화 업계가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해외 촬영을 경험하면서, 해당 국가의 문화와 노동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반영해 촬영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한국을 촬영지로 선정하고 방문하는 해외 작품들의 수도 늘어나면서 글로벌 영상 산업 내에서 통용되는 협업 방식에 익숙해진 현재의 인력 풀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외국어 교육에 오래 노출된 젊은 제작진의 유입 또한 지금의 인력 풀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해외 로케 프로토콜 - 현지 파트너가 중요

이렇게 다양한 요인들로 늘어난 해외 촬영작들을 통해, 각 작품과 프로덕션의 특성 때문에 정형화된 매뉴얼까진 아니지만 나름 일반적인 해외 촬영 제작 프로토콜을 산업 내에서 공유하게 되었다. 각본의 일부 또는 전체가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제작이 결정되면 그 준비 과정이 어떤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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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2021년 영화 <모가디슈>.

1990년대 초 소말리아 환경과 가장 흡사한 모로코 서부의 해안 도시 에사우이라에서 촬영했다.

가장 먼저 촬영 국가와 그 국가에서 픽업할 수 있는 주요 로케이션을 확정한다. 로케이션 국가 선정에는 각본의 배경이 어디냐 하는 것 외에도 많은 것이 고려된다. 류승완 감독의 2021년 영화 <모가디슈>의 경우, 각본의 내용은 1990년대 초 아프리카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치안 문제 등으로 여행금지국가인 소말리아 대신 소말리아를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찾기 위해 치안, 날씨, 물가, 인종, 종교, 촬영 인프라, 인센티브 유무 등이 고려되었고 그 결과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로코 중 모로코를 택했다. 그리고 해변과 구 시가지의 이슬람 사원, 회랑 등 1990년대 초 소말리아의 당시 영상과 비교했을 때 가장 흡사한 요소를 가지고 있던 모로코 서부의 해안 도시 에사우이라가 주 촬영지로 선정되었다.

촬영 국가를 선택하고 나면 다음 과제는 우리 작품의 현지 파트너(社)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역시 많은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현지 파트너(社)의 재정 건전성 확인을 시작으로 해당 국가 산업 내에서 해당 현지 파트너(社)가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위치를 기반으로 지자체, 현지 배우 및 크루들과는 어떠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을 대하는 현지 파트너(社)의 모토를 통해서 작품과의 궁합도 따져봐야 한다. 현지 파트너(社)는 글로벌 제작 환경에서 PSC(Production Service Company)로 통용되는데,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서비스 제공사이기 때문에 촬영 종료 후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는 소위 국내 제작진과 현지 파트너(社)의 케미에 따라 극명히 다를 수 있다. 그 때문에 현지 파트너(社)는 오래 고민하고 심혈을 기울여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 파트너(社)가 정해지면 그 이후엔 실무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종종 국가 차원에서 각본을 검열하고 그에 따라 필름 퍼밋(촬영 허가서)을 받아야 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현지 파트너(社)를 통해 촬영 허가 신청을 시작으로 우리 스태프를 적절히 서포트할 수 있는 현지 크루들을 고용하고 세부 로케이션을 헌팅 및 확정하고 거기에 따른 행정 절차에 착수한다. 이와 더불어 해당 지역의 노동 조건과 일반적인 제작 환경을 고려해 프로덕션 스케줄을 짜고 거기에 맞춰 해당 촬영 국가 및 도시로 이동을 해야 하는 배우 및 크루들의 비자 발급, 항공권 구입, 숙박 및 차량을 준비한다.

해외 로케 프로토콜 – 전문성, 숙련도 갖춘 분업화

촬영 준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촬영에 돌입하면 국내 촬영 현장과 또 다른 시스템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큰 차이로는 분업화를 들 수 있다. 작품과 프로덕션의 환경에 따라 상이할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 작품의 제작 팀이 제반 마련, 로케이션 헌팅 및 관리, 회계, 차량, 각 팀의 코디네이션까지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한다면, 글로벌 제작 환경에서는 위의 제작 팀 업무가 모두 다른 팀으로 나뉜다. 이에 따라 사안별로 소통을 해야 하는 주체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장르적으로 전쟁이나 군사 관련 장면이 등장한다면 총기 자문과 군사 자문이 필요하고, 시대적인 룩을 보완해줄 시대 고증 어드바이저나 자동차 등 메커닉 부분에 대해 소통해야 할 팀이 필요하다.

분업화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가장 생소한 개념을 예로 들어보자면 차량, 정확히 말해 바퀴 달린 것들을 준비하는 팀이 두 팀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화면상에 나오는 바퀴 달린 것들을 준비하는 P.V(Picture Vehicle) 팀과 화면이 아니라 프로덕션 운영 자체를 위해 바퀴 달린 것들을 준비하는 T.R(Transportation) 팀으로 나뉜다. 분업화로 인한 고용 인력의 증가, 정보가 한곳으로 매번 모이는 국내 시스템(주로 제작실장 및 제작부장 취합)과는 다르다는 측면에서 비싸고 더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전문성과 숙련도의 관점에서 한국영화 산업도 작품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필요하다면 고민해볼 만한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큰 차이는 촬영 용도로 공도를 포함한 공유지를 일정 시간만큼 점유(Buyout)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현행법상 촬영을 위해 도로를 점유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많은 서양권 국가들은 기준에 따른 금액을 납부하면 촬영을 목적으로 일정 구역을 지자체에서 점유 및 촬영을 승인해주는 제도가 있다. 이럴 경우 합법적으로 해당 구역을 통제하고 자유로이 촬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행정 절차에 따른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점유 허가이기 때문에 스케줄 변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는 단점도 있다(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해외 국가들과 노동 시간의 차이가 가장 큰 차이점이었는데, 주 최대 52시간 근무가 의무화되면서 노동 시간 차이는 포함하지 않았다).

꾸준히 해외 촬영 작품을 늘려 가던 때에 글로벌 이동 자체에 제약을 가져온 전례 없는 팬데믹 시기를 맞아 한국 콘텐츠의 해외 촬영 방식은 또 한 번 변화의 시간을 가진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진 시기, 광고계를 선두로 유행한 원격 촬영 방식(Remote Shoot)이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촬영장 내의 실행은 해외 국가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맡기고 촬영에 대한 디렉션 전달과 결과의 확인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한국에서 원격으로 이원화해 진행하는 방식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송중기 배우가 출연한 2021년 드라마
<빈센조>(극본 박재범, 연출 김희원)가 이탈리아 촬영을 이러한 방식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디즈니+ 시리즈 <만달로리안>을 시작으로, 그린이나 블루 매트 대신 스크린을 활용해 배경 없이 촬영하고 이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소스나 선 촬영한 소스를 스크린에 띄워놓고 촬영하는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의 진화가 굳이 모든 배우와 크루가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해외 촬영 프로덕션의 다운사이징을 가능하게 했다. 도입부에 열거한 한국영화 중에서는 <원더랜드>의 일부 장면이 버추얼 프로덕션 방식으로 팬데믹 시기 해외 촬영을 진행했다.

해외 촬영 환영 받는 한국영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또 하나 두드러진 변화는 글로벌 산업 내에서 한국 콘텐츠가 가지는 위상의 변화다. 한국영화는 이미 2000년대 이후 유수의 영화제 등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부각해 왔는데, 2020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코로나19 대유행의 한복판에 있었던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황동혁 감독의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증폭되었다. 그 결과 해외 촬영 시 해당 국가에서 한국 프로덕션을 맞이하는 온도에 변화가 생겼다. 필름 퍼밋(촬영 허가서) 획득을 비롯한 각종 행정 절차가 과거에 비해 수월해졌고 현지 프로덕션 및 스태프, 배우와의 협상에서도 이전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임할 수 있게 되면서 낯선 땅에서 프로덕션을 준비하는 데 큰 이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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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에서 촬영한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은 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 촬영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처럼 한국 영상 콘텐츠 업계는 지난 20여 년간 해외 로케이션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다다랐다. 우리 작품들의 위상도 높아지고 해외 프로덕션과의 협업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국내 촬영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높은 비용이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협업 등 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 프로덕션과 비교하면 변수에 대응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고, 해결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서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 모로코에서 촬영한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과 레바논을 선택한 김성제 감독의 <보고타>는 촬영 직전, 그리고 촬영 중에 코로나19 여파로 안타깝게 촬영을 잠정 보류, 중단하면서 큰 예산 손실을 안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해외 촬영이 늘어난 주요 요인들로 언급했던 크리에이터들의 세계관 확장과 관객 및 시청자 기대치, 해외 자본의 유입으로 한국 콘텐츠의 해외 촬영은 분명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화된 인력의 섭외, 마케팅적 접근과 적극적인 해외 지역 인센티브를 활용한다면 여전히 해외 촬영이 비싸고 어렵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배경에 구애 받지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든 우리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