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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화의 흐름을 축약한

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이현동(영화평론가, CoAR 기자)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알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마주하는 빅 이벤트가 있다. 바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9월 5일부터 시작되는 토론토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IFF)다. 북미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국제적인 위상은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 다음으로 높다. 누군가는 4대 영화제로 묶기도 한다. 대부분 영화제가 업계와 미디어 관계자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과는 별개로 토론토국제영화제는 대중들로부터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대상 부문인 ‘관객상’이란 타이틀은 이 영화제의 특성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사명을 가진 토론토국제영화제가 올해로 49회를 맞이했다. 토론토가 매해 특정한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고 굳건하게 내세우는 영화적 경험이란 대중들에게 양질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유머와 공감 깃든 화제작 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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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복귀작 <넛 크래커스>,
폐막작 레벨 윌슨 감독의 데뷔작 <더 뎁>

올해 영화제 개막을 3주 앞두고 20편의 신작이 추가되면서 전체 상영작 수는 278편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신작이 중간에 발표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올해 토론토에 출품된 단편은 무려 5,300편이다. 여기서 선정된 48편의 단편은 픽션과 논픽션,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풍자와 공포, 혁신적인 스릴러는 물론이고 ‘미드나이트 매드니스’ 부문의 정신을 담은 대담한 장르 영화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 영화의 흐름을 축약해볼 수 있다. 이는 토론토국제영화제를 향한 국제적인 관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024년 토론토국제영화제는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복귀작 <넛 크래커스>로 개막하고 다이슨이 후원하는 레벨 윌슨 감독의 데뷔작 <더 뎁>으로 폐막한다. <넛 크래커스>는 일에만 집착하는 한 남성이 고아가 된 조카를 돌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뎁>은 호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무도회를 위해 춤을 연마하는 10대 사촌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뮤지컬이다. 수석 프로그래머 아니타 리는 “올해 영화제는 이 두 영화처럼 우리 주변 세계의 유머와 공감을 반영하는 기대작들로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는 행사가 될 것”이며 “신작으로 복귀하거나 데뷔하는 감독을 큰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그 관심도 때문에 매해 섹션이 늘어나고 있고 올해도 많은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 그중 몇 가지만을 다뤄보고자 한다.

홍상수의 <수유천> 센터피스 섹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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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피스 섹션에 초청된 홍상수 감독의 복귀작 <수유천>.
출처 (주)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2023년부터 컨템퍼러리 월드 시네마 섹션이 ‘센터피스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되었다. 센터피스 프로그램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가장 주요한 섹션 중 하나로 전 세계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캐나다 및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기대작, 그리고 영향력 있는 영화인들의 평을 반영한 부문으로 선정된다. 영화제 측은 주목할 만한 초연작으로 알제리 감독 메르작 알루아슈의 <프론트 로우>를 선정했다. <프론트 로우>는 혼란스러운 가족 드라마다. 불화 관계가 있는 두 모녀가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 정신 장애를 겪는 이야기다. 거리의 사물을 관찰하듯 내밀한 일상을 포착해 관객의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토론토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김준은 센터피스 섹션에서 동남아시아 영화를 추천했다. 그중 툼팔 탐푸볼론의 <크로커다일 티어스>가 눈에 띈다. 탐푸볼론은 <바다가 나를 부른다>로 2021년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 앵글 경쟁 부문 최우수 단편에 수여하는 선재상을 수상한 바 있다. <크로커다일 티어스>는 악어 농장에서 강압적인 어머니와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삶이 젊은 여성의 개입으로 변화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권위주의적 양육 방식을 스릴러로 변주해 탐구하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동시에 모자 관계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김민희가 최우수연기상의 영예를 안은 홍상수 감독의 신작 <수유천>도 센터피스 섹션에 초청되었다. 이야기는 예술적 창작을 위안으로 삼는 예술가 전임(김민희)과 연출가 추시언(권해효)의 스캔들로부터 출발해 외로움과 관계를 다룬다. 와인으로 시작해서 막걸리로 변주하는 미식의 변화를 보여주며, 식탁에 함께한 인물들의 관계를 재치 있게 풀어낸다(<탑>에서는 와인, <여행자의 필요>에서는 막걸리 한 종류만 등장했었다. <물 안에서>는 아예 술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며 음미하는 이들은 아마도 축복받은 관객임이 틀림없다.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브레드 앤 솔트>의 폴란드 감독 다미안 코쿠르는 두 번째 장편 <화산 아래>와 함께 토론토를 찾는다. 카나리아제도에서 휴가를 보내던 우크라이나 가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이 전면적인 침공으로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회적 갈등, 전쟁, 기후 문제와 직결된 이 영화는 현시대를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다이슨과 틱톡이 후원하는 갈라 및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은 63편의 풍성한 라인업으로 관객들과 함께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자크 오디아르, 에드워드 버거, 지아 코폴라, 마이크 리, 모건 네빌, 월터 살레스, 아디너 레이첼 창가리, 지아 장커의 영화들과 더불어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마티 디옵의 <다호메이>(2024),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션 베이커의 <아노라>(2024)가 이 프로그램에 포진되어 있다. 이외에도 올해 베를린과 칸에서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들이 각기 다른 섹션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를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요소다.

개인적으로 그리스의 여성 감독이자 독창적인 제작자로 유명한 아디너 레이첼 창가리가 <슈발리에> 다음으로 9년 만에 내놓은 장편 <하베스트>가 눈에 띈다. 7일 동안 이름도 없는 마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간과 장소로 사라지면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근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농부와 영주의 모습을 다룬다. 독특한 이미지와 내용을 주로 다뤄 왔던 그녀의 작품이 관객들을 어떻게 매료시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베테랑2><대도시의 사랑법><하얼빈> 초청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의
<베테랑2> <대도시의 사랑법>과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의 <하얼빈>.

출처 tiff 홈페이지

올해 한국영화도 갈라와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모습을 보인다. <베테랑2><하얼빈><대도시의 사랑법>이 그 작품들이다. <베테랑2>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메가 히트작 <베테랑>의 속편이다. 류승완 감독은 전작이 호탕한 액션과 동료애, 인과응보를 명확하게 표현했던 영화라면 <베테랑2>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 속에 빌런의 존재를 다층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황정민이 다시 한번 강력계 형사 서도철을 연기하고 정해인이 막내 형사로 활약하며 연쇄 살인범을 검거하는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이동욱 등이 열연을 펼친다.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2015)과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시대와 캐릭터를 맵핑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듯이 이번 작품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아 보인다.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에피소드 중 첫 번째 ‘재희’ 파트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김고은과 노상현이 주연을 맡아 대도시 서울에서 청춘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사랑을 탐구한다. <...ing>(2003)로 한국 로맨스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이언희 감독은 그간 서스펜스, 범죄, 코미디와 같은 다채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호평을 받았다. 다시 로맨스로 돌아온 <대도시의 사랑법>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영화를 꾸준히 환대해 온 영화제

현재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유일하게 수상을 거둔 한국영화는 2019년에 관객상 3위를 기록한 <기생충>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한국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2000년대 이후로 50편이 넘는 한국 작품을 선보였다. 김기덕, 임권택, 박찬욱, 이창동 등이 초청되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알렸다. 봉준호 감독은 2017년에 영화제가 끝난 후 특별전을 열고 <설국열차><살인의 추억> 등을 상영해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2년에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열어 박찬욱, 이창동, 봉준호 및 여성 영화인들의 작품을 소개했고 캐나다 관객들의 환대를 받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은 초청되는 영화 편수를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에는 한 작품도 출품하지 못했지만, 2021년 2편, 2022년 6편, 2023년 7편, 2024년 4편 등 평균적으로 증가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메론 베일리는 “한국영화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한국 작품의 우수성과 잠재력에 주목해 온 것이 토론토국제영화제였음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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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컨버세이션 위드(In Conversation With, ICW)’에
참여 예정인 배우 현빈, 이동욱. 출처 tiff 홈페이지

지난해에 이어 영화계의 유능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인 컨버세이션 위드(In Conversation With, ICW)’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섹션은 관객과 영화 애호가들이 아티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창작 과정과 경험을 탐색할 기회를 제공한다. 2023년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병헌과 박서준이 참여해 이 자리를 풍성하게 해주었다면 올해는 <하얼빈>의 현빈과 이동욱이 자신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해줄 예정이다. 한국 영화인의 세계적인 위상은 물론, 그들의 아이디어가 글로벌 관객들과 어떻게 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와 세계를 연결하는 자신감

토론토국제영화제는 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아카데미 시상식과 직결되는 경향성 때문에 기업과 할리우드에 영화를 팔아넘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영화평론가 피터 데브루지는 “수백 편의 신작을 쏟아내는 덤핑장이 되었고, 큐레이션에 대한 감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혹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논평에도 불구하고 토론토국제영화제가 가진 고유의 가치는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배급하고 판매하는 네트워킹이다. 2026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새로운 공식 콘텐츠 마켓을 출범할 것을 발표한 카메론 베일리는 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등장하는 흥미로운 재능, 아이디어, 자원을 연결하겠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으로도 영화와 세계를 연결하는 촉매제가 될 토론토국제영화제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며 존립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