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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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Record

민족주의 자장 안에서, 일제강점기를 보다

한국영화가 그린 일제강점기의 풍경

강성률 광운대 동북아대학 문화산업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History Record는 인물, 배경, 상황 등 다양한 키워드를 주제로 한국영화를 다각도로 조망해 보는 코너다.


한국영화에 재현된 일제강점기는 그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부터 살펴야 한다. 이때는 현실 재현과 선전 정책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가 대부분이다. 근대화된 일본이 바라보는 조선의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며 친일 담론, 내선일체 등을 다룬다. 해방 이후에는 항일을 다루는 ‘광복영화’가 봇물을 이뤘다. 일제강점기 때와 같은 인물이 연출하고 출연했음에도 정반대의 내용을 그리고 있는 것이 당시 시대적 현실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대중들이 확실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면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방식이 근대 문명과 일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2010년 이후의 영화 중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초반에는 여성을 피해자로 그리는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직접 응징하고 복수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대까지도 이어진다.

여성을 철저히 수동적인 모습으로 묘사한 일제강점기 영화들.
왼쪽부터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 <어화>(안철영, 1938)<군용열차>(서광제, 1938)
철저히 수동적으로
- ‘조선영화’의 풍경

한국영화에 재현된 일제강점기에 대해 논하려면, 참으로 이상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영화를 먼저 거론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영화에는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는 풍경들이 박혀 있는데, 당시에는 현실을 영화로 재현하거나 선전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것이야말로 역사영화가 된다. 현재 필름으로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시기의 영화를 보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식민주의 지배자는 남성으로 흔히 알레고리화되고 식민주의 피지배자는 여성으로 알레고리화된다(이것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1934) <어화>(안철영, 1938) <군용열차>(서광제, 1938) <지원병>(1941) 등에 그려진 젊은 여성은 한복을 곱게 입고 있는, 철저히 수동적인 모습이다. 위기에 처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모습이 근대화된 일본이 바라보는 조선의 풍경이다.

이 영화들에서 아버지는 사악하거나 부재하다. 이렇게 부정적인 아버지 재현은 조선의 부정적인 면모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누가 위기에 처한 조선의 수동적인 여성을 구할 것인가? 제복을 입은 조선의 남성이다. 결국 친일 담론으로 연결되면서 이들은 지원병이 되고, 황군을 양육하고, 가미카제특공대에 지원한다. 그렇게 천황과 전쟁 동원을 찬양하는 영화는 내선일체의 완성을 주장한다. 이후 영화 속 일본과 조선은 하나로 묘사된다. <조선해협>(박기채, 1943)에서 아버지는 완벽한 일본인이 되었고, 아들은 전쟁에 지원하고 며느리는 ‘총후부인(총 뒤의 부인, 즉 당시의 조선 여성들에게 전쟁 시 후방 관리의 임무가 부여됐다는 인식으로 만들어진 용어)이 되어 충성을 다한다. 서부극 스타일로 재현된 <망루의 결사대>(이마이 다다시, 1943)에서 국경을 지키는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나가 되었고, 마적은 결코 이들을 이기지 못한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습이다.

해방 후 강조된 민족주의 - ‘항일영화’의 모순

해방이 되자 상황은 180도 바뀐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을 기념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의 ‘광복영화’ 제작이 봇물을 이룬다. 이것이 기이한 것은 이 영화들이 대부분 항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직전 일제강점기의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과 배우가 다시 연출하고 출연했음에도 정반대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 아군과 적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할까. 스타일은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영화 <자유만세>(최인규, 1946)는 1945년 8월의 서울을 배경으로 독립운동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독립을 위해 최후까지 싸우자고 말하며 실제로 싸우는데, 이때 아지트에서는 당당하게 태극기가 등장한다.

이렇게 영화 안팎에서 일제와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마침내 조선은 해방을 맞이한다. <안중근 사기>(이구영, 1946) <삼일혁명기>(윤봉춘, 1947) <해방된 내 고향>(전창근, 1947) <윤봉길 의사>(윤봉춘, 1947) <불멸의 밀사>(김영순,1947) <새로운 맹세>(신경균, 1947) <유관순>(윤봉춘, 1948) <독립전야>(최인규, 1948) 등의 영화들은 대동소이하지만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친 열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거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적 내용을 그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후 만들어진 거의 모든,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이러한 민족주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분단을 다룬 영화가 1990년대 전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반공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과 같다고 할까?

일제강점기 속 장르 유희
– ‘만주 웨스턴’
서부극 장르의 틀 안에 일제강점기를 재현한 ‘만주 웨스턴’ 영화들.
왼쪽부터 <무숙자>(신상옥, 1968)
<황야의 독수리>(임권택, 1969)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

1960년대가 되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장르가 하나 등장한다. 서부극 장르의 틀 안에 일제강점기를 재현한 영화인데, 당시 용어로는 대륙물이라고 칭하던 ‘만주 웨스턴’이다. 영화평론가 이영일의 말처럼 “압록강 너머의 광활한 만주 벌판과 중국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활극”이며, 영화평론가 허문영이 지적한 대로 “미국 서부극을 한국적으로 번안하면서 개척기 서부를 일제시대의 만주 벌판으로, 서부 사나이를 민족 영웅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만주는 욕망의 공간이다. 가난한 조선인이 부자를 꿈꾸며 만주로 건너갔고, 조선에서 독립운동을 할 수 없어 만주로 넘어갔으며, 먹고살기 힘들어 만주에서 마적질을 했다. 물론 관동군이 되고 싶어 넘어간 이도 있었다. 그런 욕망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만주를 미국의 서부로 대체한 것이다.

정창화의 <지평선>(1961) <대지의 지배자>(1963), 김묵의 <대륙의 밀사>(1964) <광야의 호랑이>(1965), 임권택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황야의 독수리>(1969) <애꾸눈 박>(1970), 이만희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 등과 <소만국경>(강범구, 1964)<불붙는 대륙>(이용호, 1965)<무숙자>(신상옥, 1968) 등이 대표적 작품들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독립군의 군자금과 연관되는데, 이를 둘러싸고 독립군과 일본군, 마적의 대결이 액션과 함께 펼쳐진다.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지만 시대적 재현에 충실하기보다는 장르적 유희에 치우친 것이 대부분인데, ‘마카로니 웨스턴’이 국내에서 붐을 이룬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민족주의라는 틀은 지속하면서 장르적 쾌감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이런 흐름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2008)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감독 가운데 일제강점기를 가장 많이 다룬 이는 임권택일 것이다. 앞에서 거론한 ‘만주 웨스턴’ 스타일로 일제강점기를 자주 다루었지만,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장군의 아들>(1990, 1991, 1992)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경성을 배경으로 조선의 깡패와 일본의 깡패가 대립하는 것을 독립운동의 축소판처럼 그린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을 했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물론 <족보>(1978)처럼 조선의 미와 전통에 대해 꽤나 깊은 성찰을 담은 영화도 존재한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예전 방식과는 조금은 다른 영화들이 등장한다. <모던 보이>(정지우, 2008)와 <라디오 데이즈>(하기호, 2008)는 근대 문명과 일제를 연결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을 그렸고(참으로 기이한 연결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정용기, 2008)은 독립운동을 코믹한 분위기로 그렸다. ‘흥행 전도사’ 강제규는 <마이 웨이>(2011)에서 인류애의 관점으로 일제강점기에 다가갔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일제를 근대화론의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코미디로 다루는 것을 대중은 허용하지 않았고, 일제를 민족주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담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조선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로
- ‘탈식민주의’ 영화
위안부의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한 영화
<귀향>(조정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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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간간이 만들어졌지만, 대중들이 현실에서 그 특정 시기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했을 때다.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1995, 1997, 1999) 시리즈는 다큐멘터리임에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변영주가 일본군 위안부를 처음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정창화, 1965)에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차림이 아니라, 당시 개념으로 익숙한 양공주식으로 전장에 끌려온 그녀들을 그렸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지영호, 1991)에서는 당시 많이 만들어졌던 에로 영화 코드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어 보기 민망했다. 논란이 되었던 <귀향>(조정래, 2016)은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2017)는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국제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최초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건으로 연결한다.

2010년 이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다수 등장했지만,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다. 앞서 논한 것처럼 제국주의는 지배자를 남성으로 알레고리화하고 피지배자를 여성으로 그리는데, 일제는 침략한 자신을 남성으로, 피해자인 조선을 여성으로 알레고리화한다. 이런 논리로 보면, 조선의 여성이 피해자의 직접적인 당사자이면서 상징적인 피해자가 되는데,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를 그린 영화들이다. <귀향> <눈길>(이나정, 2017) 같은 영화가 그러하고, 일본군 위안부의 스토리 구조를 지닌 <덕혜옹주>(허진호, 2016)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성이 주인공임에도 <동주>(이준익, 2016)가 피해자인 여성적 시선으로 전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영화에서 조선인은 일제의 강한 폭력에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그 폭력을 강조하는 것이 영화의 큰 동력이다.

일제강점기 나약한 여성을 다루면서도 황홀한 탈식민주의를 그린 영화 <아가씨>(박찬욱, 2016)

그러나 이런 틀을 벗어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아가씨>(박찬욱, 2016)다. 영화는 제국주의 폭력을 내재화한 조선 남성들의 폭력과 식민주의의 피해자인 여성의 대결을 그린다. 미스터리 형식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결국 아가씨와 하녀가 연대해 식민주의의 원류인 일본이나 그것을 내재화한 조선이 아니라 국제도시 상하이로 탈출해 그들만의 황홀한 섹스를 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고 그만큼 강한 통쾌함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가장 나약한 여성들을 그리면서도 가장 황홀한 탈식민주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 정점을 찍은 영화가 <암살>(최동훈, 2015)이다. 최동훈의 특기인 케이퍼 무비의 전통 안에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탈식민주의 입장을 명확히 한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자신의 피해를 호소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식민지를 탈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만주에서 경성으로 들어와 기어이 복수를 한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죽이고, 유모를 죽인 학살의 책임자를 암살한다. 더 나아가, 반민특위라는 뼈아픈 과거를 영화적 판타지로 충족시킨다. <암살>은 대중영화의 공식들을 인용하면서 역사적 교훈마저 주려는 영화다.

탈식민주의의 흐름을 보여준 영화들
<대호>(박훈정, 2015)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2019)
폭력을 기억하는 시대

탈식민주의의 흐름은 <밀정>(김지운, 2016)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2019) <영웅>(윤제균, 2022) 등으로 이어졌고, <대호>(박훈정, 2015)에서는 변주되었다. <대호>가 제국주의 지배자 일본과 제국주의 피지배자 조선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서구의 제국주의를 받아들인 일본은 자연을 개척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잡으려 하지만, 조선의 포수는 ‘산군’인 호랑이를 잡으면 안 된다고, 자연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의 근본적인 사상을 토대로 일제의 폭력을 재현한 것이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민족주의 사상 안에서 작동한다. 만약 대중영화가 그 시대의 집단무의식을 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인들은 일제의 폭력에 대해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를 여전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