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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멋짐'에 끝은 없다
<빅토리>

김서윤(텐아시아 기자)
사진출처
마인드마크

청춘, 낭만의 감성이 가득 담긴 영화다. <빅토리>는 9명의 여고생이 모여 ‘밀레니엄 걸즈’를 결성하고 힘찬 치어리딩으로 모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세기말 1999년으로 돌아가 그때를 지나온 이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10·20대는 유행인 Y2K 감성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물론, 청춘물의 클리셰는 다 등장한다. 시련을 결국 이겨내고 해피엔딩, 풋풋한 로맨스, 진한 우정. 아는 맛이지만 맛있는 맛이다. 보는 내내 웃음이 나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1980, 90년대 과거들이 드라마나 예능에서 희화되어서 소비되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도 멋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라는 박범수 감독의 마음은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밀레니엄 걸즈’의 시작

<빅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다. 1984년 거제고등학교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고 치어리딩 팀 새빛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기다. 이들의 사연이 신문에 작게 실렸고, 이 기사가 출발점이었다.

시간적 배경을 1984년에서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 멸망을 예언한 1999년도로 옮긴 <빅토리>는 오직 열정만큼은 충만한 생판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가 신나는 댄스와 가요로 모두를 응원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힙합을 사랑하는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댄스 연습실을 되찾기 위해 서울에서 전학 온 세현(조아람)을 앞세워 치어리딩 팀을 만들겠다고 한다. 실은 댄스 팀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일단 치어리딩 팀이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는 게 우선이기에 부원들을 모집하고 9명이 모이게 된다.

리더 격인 필선은 실제 1984년 거제고등학교 치어리딩 팀 리더의 이름이다. 박범수 감독은 영화 구상 단계부터 필선 역할에 이혜리를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박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이혜리의 당차고 밝은 에너지가 영화의 톤을 한 단계 더 밝혀준다. 얼핏 보면 <응답하라 1988>에서 맡았던 덕선의 해맑은 매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빅토리>의 필선은 9명 ‘밀레니엄 걸즈’의 리더에 어울리는 ‘멋짐’이 있다. 실제 필선과 시사회에서 만났다고 하는 이혜리는 “직접 와주셔서 봤는데 에너지가 엄청나게 넘치셨다. 그분을 상상하면서 연기했는데 제가 약하게 상상한 거였더라”고 전했다.

<빅토리>는 국내 최초 치어리딩을 소재로 한 청춘 영화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많은 댄스 장르 중 왜 치어리딩을 선택했을까? 박범수 감독은 “친구가 힘들 때마다 보는 영화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만약 치어리딩을 소재로 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기억하기로 1990년대는 멋지고 다양한 춤과 노래가 있었던 시기인 것 같아서 1999년도 치어리딩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치어리딩을 소재로 한 작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할리우드 영화 <브링 잇 온>(2000, 페이든 리드)이다. 실제로 박범수 감독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며 그의 친구가 힘들 때마다 보고 힘을 얻었다고 밝힌 작품이기도 하다. <빅토리>는 경쾌하고 밝게 한국식 정서와 문화를 담은 ‘한국판 <브링 잇 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등반과 열등반

치어리딩과 힙합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장르다. 이혜리, 박세완은 길쭉한 팔다리를 각 맞춰 펼치고 공중에서 묘기 같은 동작을 선보이는 치어리딩과 그루브가 필요한 힙합 댄스를 모두 소화했다. 특히 힙합은 필선과 미나가 좋아하고 잘하는 춤이기 때문에 제대로 춰 보여야 했다. 촬영 시작 3개월 전부터 연습에 돌입해 크랭크인 이후 3개월까지, 총 6개월간의 노력이 녹아 있는 댄스라고 할까. 힙합을 추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이혜리와 박세완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다. 잘 춰 보이기 위해서 의상에도 신경을 썼는데, 2XL 사이즈의 옷을 입었다. 이혜리가 예능 <혜미리예채파>를 할 때 만난 댄서 리정이 “춤은 옷이 95%”라고 해서 옷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세완은 “연기 칭찬보다 춤 칭찬이 더 듣기 좋았다”고 밝혔다.

치어리딩은 9명 모두가 합을 맞춰야 한다. 이혜리가 “치어리딩은 댄스가 아닌 스포츠”라고 말할 정도로 배우들의 훈련 강도가 높았다. 우등반과 열등반으로 나뉘어서 연습했을 정도다. 열등반은 따로 불려가 추가 연습을 해야 했던 이들을 지칭한다. 유난히 안 되는 동작 때문에 눈물까지 날 뻔했다던 박세완은 열등반이었고, 걸그룹 출신인 이혜리도 치어리딩은 생소한 장르라 열등반에 속했다. 원래 치어리딩을 잘하는 세현을 연기해야 했던 조아람은 하루에 8시간을 연습하고도 개인 연습을 따로 할 만큼 애를 썼다. 손끝 발끝의 ‘칼각’을 살리기 위해 영상을 찍어 1초 단위로 모니터링을 했다.

쇼! 끝은 없는 거야

러닝 타임 내내 1999년 당시를 풍미했던 노래들이 극장에 웅장한 사운드로 울려 퍼진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듀스의 ‘나를 돌아봐’, 김원준의 ‘SHOW’, 디바의 ‘왜 불러’, 조성모의 ‘아시나요’, 터보의 ‘트위스트 킹’, NRG의 ‘할 수 있어’ 등. 관객도 박자를 맞추며 조용히 따라 부르게 된다.

영화 속 명곡들은 박범수 감독이 직접 선곡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의 저작권 허락을 받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으나 의외로 가장 먼저 해결되었다. <빅토리>의 제작사 안나푸르나필름의 이안나 대표가 745만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작 <써니>의 프로듀서였던 덕분이다. <써니> 역시 1986년을 배경으로 7명의 단짝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에 당시의 음악들이 녹아 있는 영화였고, 그때 쌓은 노하우를 발휘해 이번에도 무사히 저작권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빅토리>에 녹아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 복고풍 분위기 때문에 <써니>가 생각난다는 평도 많다.

명곡들에 맞춰 선보인 완성도 높은 안무들은 내로라하는 안무가들의 손을 거쳤다. <스윙키즈>의 퍼포먼스를 연출했던 이란영 뮤지컬 안무가가 총괄 안무 감독을 맡았다. 또한
<스트릿 맨 파이터>에 출연했던 킹키와 우태가 배우들의 개인 레슨을 도맡았다. 박세완은 작품 선택 이유로 “<스맨파>의 큰 팬이었는데 우태 쌤과 킹키 쌤의 수업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빅토리> 안무의 핵심은 힙합과 일반 춤, 치어리딩을 자연스럽게 섞는 것이었다. 배우들이 안무를 맞추는 데 가장 애를 먹은 노래는 NRG의 ‘할 수 있어’다. 박자가 너무 빨라서 먼저 느리게 연습을 시작해서 점점 제 박자의 속도로 연습한 끝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Y2K 감성을 입고

오버핏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 혹은 딱 붙는 티셔츠에 오버핏 바지. 조금은 화질이 안 좋은 옛 디카 감성. 이 모든 게 곧 Y2K 감성이다. 뉴진스의 ‘Ditto’ 이후 MZ 사이에서 유행한 Y2K 패션과 아이템을 1999년 배경의 영화 <빅토리>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카세트테이프, 다마고치, 플립형 휴대전화 등 다양한 소품으로 1990년대 당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신경 쓴 것도 돋보인다.

특히 이혜리와 박세완의 스타일링이 재밌다. 이혜리는 짧은 앞머리에 일명 사자 머리 레이어드 컷을 선보였다. 박세완은 깻잎 머리에 브리지 염색 피스를 했다(인터뷰하러 온 기자들에게 깻잎 머리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딱풀과 염색 머리 피스를 선물했다). 딱풀로 깻잎 머리 스타일링을 하는 장면은 박세완의 아이디어다. 평소 다니던 헤어숍의 원장이 그때 그 시절엔 딱풀로 머리를 만졌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고. 화장실에서 이혜리와 껄렁거리며 머리에 딱풀로 깻잎 머리를 만드는 장면에서 미나의 귀여운 허세를 엿볼 수 있다.

옷은 ‘무조건 크게’다. 반소매 티셔츠 안에 긴소매 티셔츠를 받쳐 입고 바지는 끌려야 제 맛이다. 박세완은 “옷을 크게 입어야 춤출 때 멋지다”라며 조금이라도 옷이 작아지면 바로 큰 사이즈를 요청했다.

9인 9색 밀레니엄 걸즈

이혜리, 박세완, 조아람 등을 제외한 치어리딩 동아리 부원 6명은 신인이거나 <빅토리>가 데뷔작인 배우들이다. 새롭고 신선한 조합이다. 최지수, 백하이, 권유나, 염지영, 이한주, 박효은은 개성을 뽐내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며 ‘밀레니엄 걸즈’를 완성했다. 박범수 감독은 ‘밀레니엄 걸즈’의 구성원을 꾸리는 데 매우 신경을 썼고 이혜리와 조아람 외엔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극 중 이들의 모습과 현실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신인인 만큼 열정이 넘쳤고 <빅토리>에 모든 힘을 쏟았다. “정말 고생하면서 찍었다고 느낀 게, 영화 보고 모두 울더라.” 박범수 감독의 말이다.

1994년생 동갑내기인 이혜리, 박세완과 밀레니엄 걸즈에 속한 막내 배우들과의 나이 차이는 일곱 살이다. 작품 속에서는 모두 같은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니 외형적으로 부담을 느낄 만하다. 박세완은 어려 보이기 위해 7kg을 증량했다. 평소 먹지도 않던 초코라테와 라면을 먹고 볼살을 찌우며 투혼(!)을 불태운 끝에, 스냅백을 쓴 미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확실히 고등학생다운 얼굴을 자랑한다.

10년 절친 순정남 VS 축구부 에이스 인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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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물에서 빠질 수 없는 풋풋한 로맨스는 <빅토리>에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필선(이혜리)은 거제상고 골키퍼 치형(이정하)과 서울에서 전학 온 동현(이찬형)에게 대시를 받는다. 통상 인기남과 이어지는 듯하다가 여주인공의 옆을 지킨 순정남과 이뤄지는 게 청춘물의 공식이긴 하다. <빅토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전개되지만 결말은 영화를 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필선과 치형, 동현의 삼각관계에서 은근히 웃음 포인트가 많다. 필선이 박력 넘치게 동현을 벽으로 밀어붙이며 “나, 남자 얼굴 봐”라고 하는 장면, 서울로 떠나는 고속버스에 타고 있던 필선을 향한 이정하의 <러브 액츄얼리> 스케치북 고백 패러디 장면은 실실 웃음이 나온다. 관객에게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삼각관계에 대해 이혜리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실제 학창 시절에 스트라이커와 교제했다. 10년 전이라면 인기남 동현을 선택했겠지만 현재라면 순정남 치형을 만나지 않을까.” 10년 동안 마음이 변치 않는 치형처럼 진국인 남자는 좀처럼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촌스러운 진심

영화는 전반적으로 클래식하다고 해도 좋을 촌스러움을 지향한다. 물론 진심이 가득 담겼다. 그러니 더욱 와 닿고 뭉클할 수밖에. 필선과 아버지(현봉식)와의 대화는 마냥 밝고 명랑한 영화에 묵직함을 안겨다준다. 딸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내놓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답답하다고 느끼는 딸. 멋대로 떠나고 다시 돌아온 딸을 보고 조용히 밥을 내주는 아버지. 그리고선 서로 진심을 내비치며 함께 우는 부녀의 모습이 그렇다.

여담이지만 부녀 호흡을 맞춘 이혜리와 현봉식의 실제 나이 차이는 열 살에 불과하다. 현봉식은 1984년생으로, 배우 이제훈, 손호준, 유연석과 동갑이다. 열 살 차이 나는 현봉식이 아빠 역을 맡은 데에는 ‘젊은 아빠’라는 디테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결혼을 빨리 해서 젊은 아빠들이 많았다고. 그래서인지 필선의 아빠는 아빠지만 친구 같은 면이 엿보인다.

밝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중공업 도시 거제의 이면을 담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치어리딩 멤버들의 아버지들도 조선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조선소 노동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1등이 아니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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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게 고등학교로 타임리프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
<빅토리> 촬영현장

이혜리는 제작발표회 때 “여고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다”라는 평에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이혜리는 “저희가 표현하려던 걸 완벽하게 느껴주셔서 울컥했다. 필선의 열정이 좋았고 순수함이 너무 예뻐 보였다. 보시는 관객 분들에게도 필선의 열정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의 제목 ‘빅토리’는 1등을 향한 승리만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뚜렷한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나를 응원해, 우리 모두를 응원해.”

<빅토리>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이 스스로 조연이라고 느낄 때 “너도 주인공이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내게도 있었지만 잊고 살았던 시절’을 다시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