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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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

<행복의 나라>
역사에 묻힌 개인을 품은 영화 vs.
무리한 논리와 감정의 과잉

이현경 영화평론가·임정식 영화평론가 대담

진행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임익순
사진출처
NEW

<행복의 나라>는 10·26이라는 시대적 배경,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역사를 새롭게 상상했던 추창민 감독의 연출, 조정석, 이선균의 캐스팅으로 제작 초기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영화다. 가수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에서 따온 페이소스 넘치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시대에 반하는 정서적 느낌도 더해진다. 안타깝게 떠나보낸 배우 이선균의 진정한 유작이기에, 영화가 품은 시대와 영화 밖 현실이 아프게 조우하기도 한다. 여러 시간을 견딘 후 지난 8월 14일 공개된 <행복의 나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다루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다양한 의견들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현경, 임정식 두 영화평론가가 <행복의 나라>를 두고 세밀하고 치열한 찬반 논의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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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 영화평론가와 이현경 영화평론가
Q

<행복의 나라>를 본 첫 느낌은 어땠나? 어떤 점이 가장 각인되었는지 궁금하다.

profile 이현경 영화평론가
이현경 영화평론가

10·26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에 ‘영화적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작품이 드디어 나왔구나, 이제 그 사건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간적 거리감이 확보되었구나. 그게 첫 느낌이었다.
 
 

profile 임정식 영화평론가
임정식 영화평론가

우리 한국 현대사에 아주 거대하고 중요한 사건을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재조명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근접한 시간대의 역사를 다룰 때는 대부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들도 있다. <행복의 나라>는 그래서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Q

<행복의 나라>는 1979년의 10·26부터 12·12의 시기를 다루는 팩션 시대극이다. 역사적 현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방식을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어떤 사건을 다루든 호불호는 갈리기 마련이다. 10·26이라는 근거리의 역사는 더욱 그럴 수 있다. <행복의 나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새로운 각색 방식을 시도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한국의 시대 현실을 다루는 흐름이 최근 한국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나타나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1970년대, 1980년대에 문학이 했던 역할들, 작가들이 시대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저항했던 모습이 있었다. 1990년대에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문학의 주제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로 옮겨 가면서 한국 문학계에 어떤 공백이 생겼다. 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그 공백을 메워 가고 있고, 이런 움직임이 하나의 장르처럼 정립되어 가는 방향에서 본다면 <행복의 나라>를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이 영화가 현실을 각색한 방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면 캐릭터야말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이다. 정인후(조정석)는 가상의 캐릭터다. 박태주 대령(이선균)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그 인물을 추창민식으로 바라본다. 둘 다 평면적이다. 정인후는 성장하지만 예견된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박태주는 올곧고 청렴한 이미지로만 등장하기 때문에.
정인후는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영달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던 아버지 때문에 고초를 치러서 이 땅의 역사에 신경 쓰지 않고 출세하려다가 박태주의 변호를 맡으면서 변해 간다. 상투적인 캐릭터다. 할리우드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한국영화에서도 <소수의견>이 이미 이런 캐릭터를 보여줬다. ‘극을 이끌어 가는 인물을 이렇게 ‘단순한 성장’을 하는 인물로 그려도 되는가‘라고 비판적으로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정인후라는 허구의 인물이야말로 대중서사를 지닌 영화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판단된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정인후가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은 대중서사의 측면에서는 장점일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단순하고 전형적인 캐릭터라는 측면에서 서사의 역동성에 한계를 만든다. 정인후는 일종의 돌아온 탕자다. 아버지가 추구하는 세계에 반발해서 떠나갔다가 다시 아버지의 세계로 돌아온다. 물론 돌아왔을 때는 다른 인물이 되긴 하지만, 한 세계에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만들고 있다.

Q

정인후 같은 성장형 캐릭터는 비슷한 결을 지닌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송강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둘은 무엇이 비슷하고 또 다를까?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행복의 나라>는 ‘사이의 영화’다. 그 고민의 지점이 ‘<서울의 봄>과 <변호인> 사이에 있는’ 영화다. 많은 이들이 <행복의 나라>를 <남산의 부장들>과 비교하는데 실은 시대만 겹칠 뿐이다. <행복의 나라>는 10·26이라는 시대적 사건 안에서 캐릭터들이 격렬하게 부딪친다. <변호인> 역시 군사독재 시대, 야만의 시대가 갖는 폭압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 명의 개인이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인후와 송우석은 거의 동일한 캐릭터다. 아니 똑같다. 세속적인 인물이었다가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시대 의식과 휴머니즘에 눈 뜨는 변호사 캐릭터라는 설정,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구조도 거의 같다. 송우석과 정인후의 주변에는 인권 변호사들이 있고 반대편에 검사나 변호사들이 있다. 피해자로서 설정된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와
<변호인>에서의 국밥집 아들(임시완)의 구도도 같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변호인>의 송우석은 명백히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송우석의 각성의 범위나 성격은 개인에서 사회, 역사 혹은 정의를 향해 점차 공명되어 간다. 정인후는 그렇지 않다. 자기 아버지의 그림자를 박태주에게서 봤을 뿐이다. 물론 권력자 전상두(유재명)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휴머니즘 차원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캐릭터다. “못 살릴 사람은 놔두고 살릴 사람은 살리자”고 하니까. 자기 아버지와 그림자가 겹쳐지는 박태주에 대해서 연민과 구원의 사명감을 갖는다. 정인후와 송우석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발전의 성격이나 범위가 다르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변호인>의 국밥집 아들과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가 거의 같은 성격의 인물이라고 얘기했던 것은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주인공을 변화시키는 측면에서 거의 같다는 의미였다. 개인적으로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훨씬 더 좋다. 좋다는 의미는 영화적 구현의 측면에서다. <변호인>을 볼 때는 송강호 배우가 연기했던 송우석 변호사에게 동조하고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배경이 있었다. 전반부에 송우석 변호사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자잘한 에피소드를 잘 쌓아서 관객을 설득했다. 그러니까 송우석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로 활동을 할 때, 법정에서 격렬하게 변론을 할 때 동조할 수 있었다. 그 감정이 원동력이 되어서 천만 영화가 되었다고 본다.
<행복의 나라>에서 ‘정인후 변호사가 이런 사람이야’라는 설명은 에피소드 한두 개에 불과하다. 극 초반에 법정에서 두 명의 의뢰인을 두고 쇼를 꾸미는 에피소드 하나, 그다음에 아버지와의 관계를 살짝 보여주는 정도다. 그러니까 정인후가 어떤 사람인지 머리로는 알 수 있지만 감정 이입까지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있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나 설명 과정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영화적인 캐릭터로서는 송우석이 더 힘과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정서적 측면에서 정인후는 더 감싸안고 위로해주고 싶은 느낌이다. <변호인>의 국밥집 아들이 그냥 평범한 청년이었던 것과 달리, <행복의 나라>의 박태주는 굉장히 신념 있는 군인이다. 대령이라서 직급도 높은 편이다. 송우석이 어느 정도 세속적으로 부를 성취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과 정인후가 그렇지 못한 데에서 출발하는 것 등 주변 상황 설정이 다르다. 그렇다 보니 변호사로서의 성장도 다르고 관계 설정도 다르다. <행복의 나라>에서 박태주나 정인후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단선적이라는 것이 단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두 인물이 극명하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 극장을 나와서 정인후와 박태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머릿속에 명확하게 각인시키는 캐릭터 설정과 플롯 설정은 추창민 감독답다.

Q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 등 배우들의 연기는 <행복한 나라>를 보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들의 연기가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했다고 보나?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변호인>은 송우석 캐릭터가 끌고 가는 그 힘에 쫙 빨려들어 따라가게 되는데, <행복의 나라>의 정인후는 지켜보면서 ‘잘 해야 될 텐데’ 하는 종류의 느낌이 있다.(웃음) 조정석 배우가 그동안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류의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박태주 역을 맡은 이선균 배우의 경우 이 작품이 유작이 되었는데 영화 속 캐릭터가 비장하고 현실에서의 일도 있다 보니, 캐릭터와 배우가 묘하게 조응이 되어서 안타깝고 슬프다. 영화를 만들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일 텐데 말이다. 유재명 배우가 맡은 전상두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의 봄>의 황정민 배우가 맡은 전두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의 봄>은 12·12가 중심이 된 이야기고, <행복의 나라>는 10·26이 배경이니, 전상두는 아무래도 보조적인 역할, 밑그림 역할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전상두를 정인후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렸기 때문에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은 전두광보다 약해 보일 수밖에 없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1970년대든 1980년대든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룰 때 전두환을 모티프로 하는 역할은 고정 불변의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룬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앞으로도 ‘고정된 상수’의 개념으로 자리할 것 같다. 그래서 더 정인후나 박태주의 캐릭터가 중요해진다. 박태주 캐릭터도 이선균 배우의 개인적인 비극을 걷어내고 보면 실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너무 평면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오히려 그런 점들이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접근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다. 물론 이선균 배우의 개인적인 비극을 걷어내고 이 영화를 본다는 게 관객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조정석 배우의 연기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오히려 연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조정석 배우의 코믹한 이미지를 계속 활용하려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게 과연 이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 톤이 맞는가, 적절한 선택이었는가는 의문이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배우의 변신이라는 측면에서도 영화 서사 전개의 측면에서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 건 아닐까. 무거운 시대극이고 시간적 배경도 기존의 다른 영화들이 이미 크고 세게 다뤘으니까 결이 다른 접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캐스팅을 하고 연기 연출을 했을 거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 톤 다운을 하면 어땠을까 싶다.

Q

비슷한 시기를 다룬 한국 근현대사 영화들과 <행복의 나라>를 비교하면서 본다는 의견도 많다. <행복의 나라>가 <서울의 봄>이나 <남산의 부장들>과 달리 한국 근현대사를 영화적 표현력으로 채워준 면이 있다면?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지금까지 10·26을 다룬 한국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행복의 나라>다. 임상수 감독의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10·26이 일어나는 그날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은 실존 인물 김재규 부장을 중심으로, 10·26이 일어나기 40일 전부터 그날까지의 40일을 다뤘다. <행복의 나라>는 10·26이 일어난 후 관련 인물들이 재판을 받는 과정의 몇 달을 그렸다. 세 편 모두 성격이 다르다. 감독의 연출적 특성도 다르고, 각각 특징이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다큐멘터리적인 무거움과 사실감을 강조했다. 추창민 감독은 대중서사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감동과 웃음을 섞어 놓았다. 어쨌든 시간 순으로 놓고 보면 이 세 편을 일종의 연작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인물로 봤을 때도 세 영화에서 다른 부분들은 조금씩 어긋나 있지만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과 박태주의 실존 인물인 박흥주 비서실장, 그리고 박선호 의전과장까지 세 사람의 그날 상황은 같다. 김재규 부장이 “오늘 한다”라고 할 때 “그러면 각하까지 포함되는 겁니까”라고 하고 각자 자기 임무를 하는 데까지는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때 그 사람들>의 주인공은 박선호 의전과장이다. 극 중에선 주 과장으로 나오는데, 한석규 배우가 연기한다. 즉, 이야기를 박선호의 입장에서 끌고 간다.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 부장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고, <행복의 나라>는 박태주 그러니까 실존 인물인 박흥주 대령의 입장을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의 나라>가 그저 <행복의 나라> 한 편으로만 보이지가 않는다. 10·26에 중점적으로 가담한 세 사람이 세 영화에서 각각의 주인공 내지는 화자로 한 번씩 등장하는 데다가 시간 구성도 세 영화를 합치면 하나로 맞춰진다. <행복의 나라>가 지닌 단일 작품으로서의 성과도 있겠지만 드디어 우리가 10·26을 전후좌우로 볼 수 있게 퍼즐을 맞춰주는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2005년 <그때 그 사람들>이 나왔을 때 ‘드디어 10·26이 이야기의 모티프로 한국영화 안에 들어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행복의 나라>를 보면서 ‘그간 10·26의 시간에서 빠졌던 부분이 드디어 한국영화 안에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했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다루지 못했던 인물과 사건을 조명하는 측면에서 <행복의 나라>가 지닌 의미가 분명히 존재하고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들은 일단 <남산의 부장들>까지는 떠올릴 텐데, <그때 그 사람들>까지 같은 연장선상에 두고 파악하는 관객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초반에 얘기했지만, 그 사건을 법정 드라마라는 방식으로 조명한 점에 있어서도 <행복의 나라>가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행복의 나라>가 원래 계획대로 2023년에 개봉했으면 호불호의 측면에서, 그리고 스토리 기시감의 측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한남동 공관 전투 신은 이미 <서울의 봄>을 통해서 천만 이상의 관객이 더 리얼하게 본 장면 아닌가. <행복의 나라>가 시기적으로 다소 불운한 측면이 있다. 편집 과정에서 한남동 공관 납치 시퀀스를 더 줄였으면 어땠을까? <행복의 나라>는 한 시대 안에서 희생당하는 인물들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거기에 액션의 요소가 강렬하게 들어가고 코미디 코드까지 들어가다 보니, 물론 대중서사를 의식했겠지만, 장르의 혼종성이 아쉬움을 남긴다. 굳이 한남동 공관에서의 총격 액션을 강조하지 않았어도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 같다.

Q

극 중에서 정인후 변호사가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는 변론 기조가 있다. 극 중에서 내란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대사 “육본으로 가자”와 군인은 명령에 복종한다는 ‘상명하복’의 논리다. 이 논리들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보나?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김재규 부장, 그러니까 영화 속 김영일 부장이 차 안에서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박태주 대령이 “육본으로 가시죠”라고 대답한다.
<행복의 나라>에서의 매우 중요한 대사이자 극 중 변론의 포인트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그런 대사가 없고,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그 순간을 아예 영화에 담지 않았다. 세 작품이 다 다르게 처리되어 있다. 진실은 모른다. “육본으로 가자”라는 대사를 갖고 만든 논리의 흐름은 사실 무리수 같다. 정인후가 박태주라는 사람을 존중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느껴서 구해주려고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본다면 문제가 되는 지점이 그 지점일 것이다. 상명하복과 관련해서는, 사실 나치 전범 재판에서도 ‘명령 받은 대로 했다’는 것이 지금껏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명령을 받아서 한 행동이라면 괜찮은가? 과연 어디까지 괜찮은가? <행복의 나라>가 비판을 받는다면 그 부분을 가장 비판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영화 초반 정인후는 “재판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을 가리는 것”이라고 한다. 정인후가 변화하면서 영화는 결국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과정이 된다. 그런데 군사독재 시대에 상명하복 조직 문화 안에서 명령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라는 논리로 계속 가면 논리의 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화 내내 군인은 명령에 따를 뿐이라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박태주를 강직한 원칙주의자로 설정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런데 오히려 박태주가 군인으로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시대의 희생양임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정인후의 아버지도 시대의 희생양이기 때문에 정인후가 박태주의 변호를 맡는 징검다리가 되었을 테니, 그 점을 더 부각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또 하나, 박태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금 더 부각하는 장면들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소소한 가족의 행복을 중시하는 가장이 명령 하나 때문에 시대에 희생당하는 설정이었으면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정인후의 변화도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영화가 다룬 역사를 역사 그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는 역사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장이 될 수도 있지만, 역사의 재현에 대해서 강제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실수가 될 수 있다. <행복의 나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팩션이다. 현실의 역사를 그대로 투영해서 이 영화를 보면 비판적인 지점이 많을 수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서 본다면 박태주 같은 인물 설정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 역시 역사의 희생양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영화의 설정에 대해 시각을 열어놓고 볼 필요는 있다.

Q

전상두와 정인후의 골프장 장면, 정인후가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정진우(이원종)의 증인 출석을 설득하는 장면 등이 영화 공개 후 많이 언급된다. 시대의 권력자들을 대하는 정인후 변호사의 모습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판타지’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사실 그 장면들은 당시의 상황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영화를 치열한 논리를 지닌 법정 공방 영화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당시의 재판은 공방이 오가기 힘든 일방적인 재판이었을 테니. 그러다 보니, 추창민 감독은 정인후가 골프장에 있는 전상두를 찾아가 골프공을 주워 오는 등의 장면을 만드는 무리수를 둔다. 그것이 현실성, 개연성이 떨어지는 결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판을 맡고 있는 변호사가 너무 할 게 없는 상황 때문에 그런 장면을 넣지 않았을까. 추창민 감독은 골프장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정인후의 입을 통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대개 직설적으로 주제를 설파하는 방식을 높이 사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관객이 그런 걸 원할 때가 있다는 걸 종종 목격한다. 그러니 골프장 장면이 너무 현실성이 없다든가 너무 직설적으로 주제를 설파했다고 폄하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그 장면들은 시대극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얘기할 수 있다. 정인후 변호사가 육군참모총장인 정진우를 만나고 전상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두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등장을 하니 관객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생긴다. 정인후가 육두문자까지 동원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추창민 감독이 영화의 대중성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건 느꼈다. 절대 권력자를 향한 변호사 한 명의 직설적인 항의와 비판으로 카타르시스를 주고자 했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상상력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골프장 장면의 문제점은 다른 데 있다. 정인후는 ‘이기고 짐’의 세계에 있다가 나중에 ‘옳고 그름’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가 박태주를 변호하는 이유는 이미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된 상태다. 그런 변화를 거쳐 온 인물이 전상두에게 가는 행위 자체는 이전 세계로 돌아가는 퇴행적 행동이다. 결국 사자후를 토해내긴 하지만, 골프공을 주워 가면서 무릎 꿇고 애원하는 방식으로 박태주를 구하려고 생각했다니. 인간적으로 정말 답답하니까 그랬겠지만, 그런 사고 방식을 다시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던 점이 오히려 더 문제였다.

profile 이현경 평론가
이현경 평론가

정인후는 관객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임정식 평론가 말씀처럼 다소 퇴행적이고 유아적인 면이 있다.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관객이 용납할 수 있는데, 역사라는 프리즘을 놓고 보면 정인후의 그런 행동들이 껄끄럽게 느껴지는 감정이 그 장면에서 발생할 수 있겠다. <행복의 나라>는 역사를 품기에는 그릇이 조금 작은 영화다. 하지만 역사 속에 묻혀 있는 개인을 품는다는 면에서는 장점이 있는 영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비슷하지 않나. <행복의 나라>는 추창민 감독이 만들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스타일의 영화다.

profile 임정식 평론가
임정식 평론가

정인후가 눈물을 쏟는 마지막 변론 장면들은 감정의 과잉이랄까. 전체적으로 톤 다운이 되었다면, 조금 더 법정 드라마에 충실하게 갔었다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서울의 봄>은 에너지가 넘치고 스케일이 큰 영화였다. <남산의 부장>도 비슷한 맥락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 목록들이 쌓여 가면서 앞으로는 <행복의 나라>처럼 더 많은 ‘장삼이사’들의 삶에 역사적인 사건들이 어떻게 스며들어 영향을 미쳤는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있고.

Q

결국 <행복의 나라>는 YES인가, NO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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