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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스토리두잉

김신엽((주)DS연구소 소장)

개봉 4주 차, 관객 수 929만 명, 2024년 3월 24일 기준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파묘> 흥행은 무속 신앙을 모티브로 기획한 이야기만큼이나 신비롭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비수기로 칭해지는 2월 개봉에, 불과 3개월 전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를 달성했으며 ‘오컬트’ 소재의 영화가 속칭 ‘대박’을 터트린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 그러나 영화에 담긴 이야기의 힘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원론만 되풀이될 뿐이다. 어쩌면 그 옛날 부족의 축제일에 제사장이 전한 하늘의 계시를 쉽게 풀어 우리의 교훈으로 전한 ‘이야기꾼’의 존재가 <파묘> 흥행의 미덕이 아니었을까?

제사장의 계시는 심오하다. 아니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꾼은 계시를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으로 재구성함으로 이해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남긴다. 이를 통해 전승된 ‘신화’는 삶의 양식이자 집단의 규범으로 부족민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한 이야기가 된다. 현재의 커뮤니케이션 용어로 ‘자기 관련성’이라고 할까? 제사장이 신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이야기꾼이 해독한 결과를 쉽게 풀어 전하듯 모든 이야기(story)는 이야기된 사건의 진술을 모방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이차성(second degree)’을 가진다. 북유럽의 끔찍한 이야기를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탄생시킨 ‘안데르센’처럼 말이다. 이차성은 이야기꾼이 부족민의 인식 기반을 이해하고 맞춰나가듯, 이야기 수용자와 상호작용을 통해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우리 삶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브랜드가 상호작용(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 각자의 필요로 만드는 일과도 같다.

이 점에서 <파묘>가 어떻게 대중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는지가 영화의 흥행을 회고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보통의 영화 마케팅이 스펙터클한 영상과 출연 배우, 영화 줄거리가 편집된 이야기의 존재를 알리는 데 그쳤다면 <파묘>의 전략은 대중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실체화된 감각으로 만든 일이다. 실체화(objection, 대상화)되어야 논의할 수 있는 소재가 되고 공유하고 확산할 ‘거리’가 된다.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사실로 전환하는 것이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며 <파묘>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다. 이를 세계관의 재현과 관객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캐스팅 그리고 이야기의 확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화 속 소재를 이용해 화제를 모은 <파묘>의 상영회 마케팅, 출처 CGV·메가박스
세계관의 재현(representation)

세계관이란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되 하나의 원리로 해석될 수 있는 사고의 지평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세계관과 통합하는 감각적 체험으로 구현하는 일이다. 2월 24일 메가박스에서는 팝콘 무덤을 파헤쳐 퍼낸 만큼 팝콘을 가져가는 #팝묘 이벤트와 2월 29일 ‘손 없는 날’(악귀 혹은 액운이 없는 길한 날)에는 CGV와 메가박스에서 특별 상영회를 개최해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체험을 전해주었다. 특히 상영회를 찾은 관객에게는 액운 퇴치용 소금을 나눠주었는데 이 소금과 팝콘을 퍼가는 행위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리츄얼(ritual)이 된다. 그리고 이들 체험은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로 SNS에 올라가 수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영화 소품들을 마치 현대에 발견된 유물처럼 전시한 <킹덤>의 『피로 물든 역사展』, <승리호>의 강남역 우주 쓰레기 폐기물 설치와 용산아이파크몰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인으로 진행하는 우주정거장 체험존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팝업 스토어를 통한 이야기 체험 제공과 관련 굿즈 판매를 통한 영화 IP 확대를 함께 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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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피로 물든 역사展』 중, 출처 Kocis 한국문화홍보서비스

특히 옥외란 광장의 의미를 내포하며 어떤 일을 공공의 사실로 선언하기 좋은 무대이기도 하다. 영화 <댓글부대>는 모 매체사 빌딩의 옥외 전광판이 중학생에게 해킹된 사건을 연상할 수 있는 “손석구도 댓글부대한테 당했다던데 ㅋㅋ”이란 메시지를 같은 매체사 빌딩 옥외 전광판에 올려 대중의 주목과 함께 온라인 여론 조작이라는 영화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으며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 2의 경우 옥외광고의 QR코드로 접근해 고백하고 싶은 문자를 보내면 옆의 디지털 사이니지에서 사연이 소개되는 이벤트를 진행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중 <파묘>의 특별 포스터는 세계관을 공유하며 영화 밑을 흐르는 주제 의식에 관해 폭넓은 공감을 전해주었다. 이는 관객 500만 돌파를 기념하며 제작된 것인데 한 팬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게재한 작품을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저작권자의 승인을 얻어 공식 제작한 것이다. 공식 포스터가 영화의 서사를 의미한다면 특별 포스터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둘이 교차할 때 세계관은 선명해진다.

[좌] <파묘>의 공식 포스터, [가운데] 팬아트 작가(출처 @poncho_anything)가 게재한 작품을 [우] 쇼박스가 특별 포스터로 제작, 출처 (주)쇼박스

1999년 개봉된 저예산 영화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는 불가사의한 전설이 깃든 어느 숲을 촬영하다 실종된 세 명의 영화 학도에 관한 이야기로, 예고편으로 현장에 떨어진 캠코더의 촬영 내용을 공개, 허구인지 실제 촬영된 것인지에 관한 커다란 관심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물론 이야기는 허구이며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예고편은 영화의 주요 줄거리나 스펙타클을 편집한 반복이 아닌 사건의 증거라는 별개의 내용과 기능으로 작용하며 영화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영화 밖 <파묘>에서 재현된 것은 영화가 아닌 <파묘>의 세계관이다.

캐스팅(casting)

배우를 섭외해 역할을 부여하듯 관객의 참여를 통해 영화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영화 속 이야기와의 청중과의 관련성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으로 <파묘> 속 숨겨놓은 코드, 차량번호인 1945·0301 ·0815, 나라를 지키는 절 보국사의 창건한 스님 원봉과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관계 암시 등은 관객의 N차 관람을 유도하는 한편, 코드가 촉발한 다양한 해석은 누군가의 관람 동기이자 관객(Viewer)을 참여자(Doer)로 전환한다. 그리고 SNS와 관련 커뮤니티의 열띤 토론으로 확대되며 토론의 이야기는 다시 <파묘>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된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시작된 ‘심박수 챌린지’는 영화에 몰입하는 수준을 의미하는 실체화된 감각이자 공유할 만한 이야깃거리로 감각의 선명함은 챌린지를 위한 N차 관람은 물론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함께 참여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의례’가 된다.

“강한 선은 더 큰 악을 불러오는가?”에 관한 질문을 세계관으로 가진 영화 <다크 나이크>는 영화홍보를 위한 캠페인으로 “왜 이렇게 심각해?(Why so serious?)”를 전개하며 가상의 도시 고담시티를 배경으로 시의 소식을 알리는 ‘고담 타임스’를 발행하며 배트맨 혹은 조커의 주장에 공감하는 팬덤을 형성했다. 이중 조커를 지지하는 이들을 규합해 극중 경찰이었던 하비 덴트와 베트맨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이들 때문에 길이 막힌 스쿨버스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시위 때문에 뒷골목으로 돌아가는 스쿨버스를 조커가 납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시위에 참가한 군중은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을 연결한 중요한 배우이자 이 체험을 알리고 자신의 해석으로 영화를 알리는 또 다른 이야기꾼이 된다.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히는 <다크 나이트>, 출처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확산(story share)

개봉일인 2월 22일에 E-22 좌석에서 관람한 관객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해주며 <파묘>의 확산 전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팬아트 작품을 특별 포스터로 선정하듯 2차 창작의 존중은 SNS를 통한 확산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는데 이야기의 확산은 재공유와 2차 창작을 통해 이루어지며 재공유는 알지 못했던 사람에게는 인지를, 알고 있던 사람에게는 환기를 전해준다. 2차 창작은 원작의 내용과 창작자 개인의 해석이 융합된 양상으로 원작과 관련된 새로운 관객을 발견하게 한다. 원작에 2차 창작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부분이 투영되고 그 삶과 공감하는 관객과 연결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이중 <파묘>의 ‘용기천만 상영회’와 ‘굿어롱 상영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상영회는 관객 900만 명을 달성 후 천만 관객을 위한 속도가 더뎌질 때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기획되었다. 먼저 ‘용기천만 상영회’는 오컬트 영화라는 공포심으로 영화 관람을 무서워하는 관객을 위해 청각을 둔화시키는 ‘이어플러그’와 저주를 방어하는 ‘축경 타투 스티커’를 선물하며 서로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굿어롱 상영회’는 이미 <파묘>에 푹 빠진 관객들을 대상으로 대살굿 장면에서 경문을 함께 따라 부르거나 추임새, 박수, 응원 등 관객 나름의 다양한 참여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와 함께 아트 포스터를 선물로 주는 ‘디깅 타임’ 등 각종 상영회는 SNS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추가 상영회로 이어지며 천만 관객으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마케팅 관점에서는 결과를 회고하고 지속적인 대안을 실행해 목표와 현재의 간격을 좁히는 현재의 디지털 마케팅 신의 최적화 전략에 해당한다. 신규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비어 있는 관객층을 재치있게 끌어냈고 충성고객의 N차 관람을 위해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 형성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라는 사실로 돌아왔다. 이를 위해 영화가 연 세계(story building)는 스토리두잉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야기를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게 전환함으로써 확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