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3
“독립영화, 힘을 낼 시간”
2024 한국영화 결산 – 독립영화
- 글
- 김형석(영화평론가)
Special 3
2024 한국영화 결산 – 독립영화
2024년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는, 전체적으로는 2023년의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지만,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오히려 2023년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것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영화 산업 전체는 팬데믹 이후 회복되지 않았지만, 독립영화 시장은 정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숫자 뒤에 가려진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4년 한국 독립영화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몇 년 전부터 독립영화를 지탱하던 시스템의 약화가 지속되면서, 독립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되어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2024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적 지원의 축소와 여전히 열악한 배급 구조, 설상가상으로 독립영화의 중요한 플랫폼인 영화제 지원 예산은 절반으로 삭감되었고 지역 영화 예산도 사라졌다. 2025년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발전기금 주요 재원인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가 결정되었으며, 독립영화의 가장 큰 행사인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남궁선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독립영화는 지금 ‘힘을 낼 시간’인 셈이다.
축소 속의 확장구분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
매출액 | 전체 | 1조9,140억 | 5,104억 | 5,845억 | 1조1,602억 | 1조2,164억 | 1조1,458억 |
전체 독립•예술 | 635억 | 377억 | 360억 | 363억 | 1,334억 | 660억 | |
한국 독립•예술 | 226억 | 60억 | 100억 | 108억 | 102억 | 235억 | |
한국 독립•예술 증감률 | 156.9% | -73.3% | 65.4% | 8.6% | -6.4% | 130.4% | |
한국 독립•예술 /전체 | 1.2% | 1.2% | 1.7% | 0.9% | 0.8% | 2.1% | |
한국 독립•예술 /전체 독립•예술 | 35.6% | 16.0% | 27.8% | 30.7% | 7.6% | 35.6% | |
관객 수 | 전체 | 2억2,668만 | 5,952만 | 6,053만 | 1억1,281만 | 1억2,514만 | 1억1,800만 |
전체 독립•예술 | 810만 | 466만 | 423만 | 382만 | 1,349만 | 723만 | |
한국 독립•예술 | 289만 | 76만 | 124만 | 125만 | 114만 | 259만 | |
한국 독립•예술 증감률 | 161.9% | -73.8% | 63.5% | 0.6% | -8.6% | 127.5% | |
한국 독립•예술 /전체 | 1.3% | 1.3% | 2.0% | 1.1% | 0.9% | 2.2% | |
한국 독립•예술 /전체 독립•예술 | 35.7% | 16.3% | 29.3% | 32.6% | 8.4% | 36.8% |
순위 | 영화 제목 | 스크린 수 | 상영 횟수 | 관객 (명) | 매출액 (원) |
---|---|---|---|---|---|
1 | 건국전쟁 | 956 | 49,180 | 1,173,927 | 109억 637만 |
2 | 소풍 | 729 | 24,674 | 363,932 | 32억 772만 |
3 | 길위에 김대중 | 414 | 9,871 | 115,336 | 11억 445만 |
4 | 퍼스트레이디 * | 144 | 2,445 | 66,147 | 6억 4,419만 |
5 | 한국이 싫어서 | 588 | 9,042 | 62,032 | 5억 3,346만 |
6 |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 252 | 4,370 | 50,549 | 5억 1,370만 |
7 | 오후 네시 | 249 | 3,091 | 36,514 | 3억 852만 |
8 | 장손 | 60 | 1,964 | 31,612 | 2억 8,394만 |
9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 | 203 | 3,513 | 29,899 | 2억 5,700만 |
10 | 그녀에게 * | 148 | 1,794 | 25,951 | 2억 1,909만 |
11 | 기적의 시작 | 137 | 1,623 | 25,033 | 2억 1,742만 |
12 | 땅에 쓰는 시 | 50 | 1,709 | 23,981 | 2억 1,365만 |
13 | 딸에 대하여 | 106 | 1,732 | 21,265 | 1억 9,374만 |
14 | 괜찮아, 앨리스 * | 99 | 704 | 19,882 | 1억 7,876만 |
15 | 원정빌라 * | 164 | 1,996 | 17,866 | 1억 4,236만 |
16 | 바람의 세월 | 47 | 927 | 17,821 | 1억 6,307만 |
17 | 박정희: 경제대국을 꿈꾼 남자 | 230 | 2,190 | 16,099 | 1억 3,944만 |
18 |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 75 | 1,035 | 14,914 | 1억 3,797만 |
19 | 하와이 연가 | 52 | 538 | 13,204 | 1억 3,361만 |
20 | 더 킬러스 | 108 | 1,682 | 12,788 | 9,971만 |
21 | 목화솜 피는 날 | 98 | 948 | 12,773 | 1억 2,217만 |
22 | 1923 간토대학살 | 38 | 677 | 12,734 | 1억 2,291만 |
23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 73 | 1,198 | 12,550 | 1억 1,512만 |
24 | 극장판 고래와 나 | 123 | 1,592 | 12,314 | 9,467만 |
25 | 세기말의 사랑 | 123 | 1,385 | 11,864 | 1억 113만 |
26 |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 | 20 | 481 | 11,041 | 1억 8,459만 |
27 | 판문점 | 82 | 842 | 10,878 | 9,676만 |
28 | 세상 참 예쁜 오드리 | 172 | 1,167 | 10,267 | 9,555만 |
29 | 미망 * | 57 | 855 | 10,038 | 9,148만 |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예술영화로 승인한 한국영화들의 흥행 성적을 보면, 2024년 12월 셋째 주말(12월 21~22일) 현재 매출액은 약 235억 원, 관객 수는 약 259만 명이다(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2024년이 종료되려면 열흘 정도 남았지만, 현재만으로도 2023년의 매출액(102억 원)과 관객 수(114만 명)에 비해 2배 이상의 성적이다. 이것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매출액(226억 원)과 관객 수(289만 명)를 거의 회복한 수준이다. 독립•예술영화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5.6%로 2019년과 동일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신카이 마코토,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미야자키 하야오, 2023)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으로 2023년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일시적으로 급성장했다면(두 영화가 전체의 57.3%를 차지했다), 2024년은 지나친 쏠림현상 없이 알찬 흥행을 거두었다.
하지만 2024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시장엔 특수성이 있었다. 바로 정치(인) 다큐멘터리다. 4•13 총선을 앞두고 <건국전쟁>(김덕영), <기적의 시작>(권순도), <길위에 김대중>(민환기) 등이 있었고, 최근 탄핵 정국엔 <퍼스트레이디>가 개봉되었다. 특히 <건국전쟁>은 2024년 한국 독립•예술영화 총 매출의 46.5%를 차지했고, 정치 다큐를 모두 합하면 55.5%를 차지한다. <그대가 조국>(이승준, 2020), <나의 촛불>(김의성•주진우, 2020) 등이 개봉했던 20대 대선의 2020년, 정치 다큐의 매출 비율은 32.7% 정도였다. 하지만 2024년은 절반 이상으로 커졌고, 이 범주를 걷어낸다면 2024년 한국 독립영화는 약 104억 원 정도의 매출을 거두었다. 동일하게 정치 다큐를 제외한다면 2023년 한국 독립영화 매출은 91억 원 정도였으니, 한국 독립영화는 약 14% 정도 매출 상승이 있었던 셈이다.
개별 작품을 살펴보면 1만 관객 이상을 기록한 작품은 29편이었다. 김용균 감독의 <소풍>이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가운데,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장건재 감독의 <한국이 싫어서>가 6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났다.
2024년 한국 독립영화 박스오피스의 특징이라면 장르영화의 약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릴러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이윤석), 코믹 호러인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김민하), 오컬트 호러인 <원정빌라>(김선국), 장르 혼합의 옴니버스 영화인 <더 킬러스>(이명세 외), 뮤지컬과 SF가 만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김다민), BL 로맨스인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양경희) 등 다양한 장르가 사랑을 받았다. 독립영화 박스오피스에서 빠지지 않았던 애니메이션은 2024년 저조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에서 애니메이션은 2021년에 18%, 2022년에 12%, 2023년에 22%의 매출 지분을 차지했는데, 2024년은 1만 명 넘는 작품이 없었으며 전체 매출에서 1%도 안 되는(0.4%) 비중이었다.
한편, 2024년은 독립영화 흥행 분포 지형도가 변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 독립영화 신에서 ‘대박’의 기준은 ‘전국 관객 3만 명’이 되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벌새>(김보라)와 <윤희에게>(임대형)가 관객 10만 명을, <김복동>(송원근)이 8만 9000명을 넘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은 5만 명 이상의 관객, <메기>(이옥섭)는 3만 9000명의 관객과 만났다. 하지만 2019년과 비교할 때 지금의 영화 시장엔 1억 명의 관객이 사라졌고, 독립영화의 흥행 규모도 점점 축소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3만 1971명의 관객과 만난 <장손>(오정민)의 흥행은 매우 귀하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그녀에게>(이상철), <땅에 쓰는 시>(정다운), <딸에 대하여>(이미랑) 등이 2만 명대 관객을 모으며 그 뒤를 잇고 있다.
구간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10만 명 이상 | 5 | 1 | 2 | 1 | 3 | 3 |
5만~10만 명 | 6 | 1 | 3 | 1 | 4 | 3 |
3만~5만 명 | 2 | 2 | 4 | 5 | 1 | 2 |
2만~3만 명 | 6 | 6 | 6 | 6 | 2 | 5 |
1만~2만 명 | 15 | 10 | 15 | 12 | 16 | 16 |
5천~1만 명 | 12 | 11 | 19 | 24 | 14 | 24 |
관객 수 구간별로 분포도를 살펴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경우 1만 명대와 5000~1만 명대를 기반으로, 10만 명 이상에 5편, 5만~10만 명에 6편, 2만~5만 명에 8편 등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고른 흥행 분포를 알 수 있다. 3만 명 이상이 13편이고, 5만 명 이상이 11편이며, 10만 명 이상이 5편인, 이상적인 구조다. 팬데믹을 겪고 난 후의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건, 전체적으로 분포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을 보면 위 구간으로 올라가야 하는 영화들이 힘을 받지 못하고 정체하며, 5000~1만 명대에 25편의 영화가 분투하고 있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관객상, 넷팩상을 수상한 <아침바다 갈매기는>(박이웅), 2022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아네모네>(정하용),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비프메세나상)와 서울독립영화제(독불장군상)에서 수상한 <되살아나는 목소리>(박수남•박마의) 등은 팬데믹 이전이라면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을 법한 영화들이지만, 아쉽게도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아침바다 갈매기는>은 12월 22일 현재 9000명대로 가능성이 있다). 더 아쉬운 영화들도 있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비전상 수상작인 <한 채>(정범•허장),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정순>(정지혜),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배우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을 수상했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독립스타상을 받은 <해야 할 일>(박홍준) 등의 관객 수는 5000명조차 되지 못했다.
이러한 흥행 부진은 근본적으로는 전반적인 관객 감소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의 극장 산업은 팬데믹 이전의 3분의 2 정도밖엔 회복하지 못했다. 가요, 드라마, 예능, 웹툰, 공연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들은 모두 팬데믹 시기의 침체를 만회했고 오히려 팬데믹 이전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 영화는 여전히 혼란과 침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한국 독립영화가 현재 겪고 있는 흥행 부진엔 상영관 문제도 결부되어 있다. <해야 할 일>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2024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610개 극장이 있고 3450개 스크린을 보유 중이다. 그런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스크린 수는 64개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영화계와 비근한 산업 규모를 지닌 프랑스는 6300개의 스크린 중 약 2400개가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고 지적한다. 1
1 정재현, “어떻게 해야 작은 영화를 오래, 자주 볼 수 있을까요? <해야 할 일>을 통해 보는 독립영화의 요즘”, 『씨네21』, 2024년 9월 26일.
팬데믹 시기 ‘극장 폐쇄’라는 극단적인 사건을 겪었고 이후 관객이 급감했지만, 사실 한국의 극장 산업에서 스크린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2023년 현재 극장 수는 573개, 스크린 수는 3371개인데 이것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513개 극장, 3079개 스크린)보다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2019년 76개에서 2023년 69개로 줄어들었다. 독립영화의 상영관 확보는 더욱 힘들어졌으며, 그 결과 독립영화의 제작 편수 대비 개봉 비중은 2023년 기준 67.1%로 2022년의 82.1%에 비해 감소했다.
개봉하더라도 멀티플렉스의 흥행작 집중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선 제대로 된 흥행을 거두기 힘들다. 2024년 독립영화계의 중요한 수확인 <장손>의 상영 1회당 관객 수는 16.1명으로, 관객 1만 명 이상 영화 중 36위였다. <소풍>(김용균, 14.7명), <외계+인> 2부(최동훈, 14.6명), <댓글부대>(안국진, 14.4명), <청설>(조선호, 12.8명), <대도시의 사랑법>(이언희, 11.6명) 같은 영화보다 높은 수준이다. 열악한 마케팅 상황에서도 나름의 경쟁력을 지닌 셈인데, 그럼에도 상영 기회를 충분히 잡지는 못했다. <장손>의 상영 횟수는 1964회로(12월 19일 기준), 상업영화가 적어도 1만 회 정도 상영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횟수다.
일부 작품은 자구책을 강구했다. ‘8주간의 약속’이 대표적이다. 독립영화가 개봉 후 극장에서 버티지 못하고 몇 주 만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부가 판권 시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최소한 8주 동안은 극장에서 버티자는, 홀드백 연장 캠페인이다. 9월 <딸에 대하여> <장손> <그녀에게> <해야 할 일>로 시작해 11월까지 3차에 걸쳐 총 12편의 영화가 참여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한정된 상영관 안에서 운영의 묘를 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편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문병곤 감독, 손석구 주연의 러닝타임 13분짜리 영화 <밤낚시>는 관람료 1000원에 개봉되어 4만 6423명의 관객을 모았다. 낮은 객단가로 매출액은 5078만 원에 그쳤지만, ‘숏폼’ 형태의 극장 개봉이 이 정도의 반응을 얻은 건 의외의 성과였다. 이후 박종균 감독의 <4분 44초>는 44분짜리 호러 옴니버스로 관람료를 4000원으로 책정했는데, 4만 6761명의 관객과 1억 8702만 원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른바 ‘시성비’를 중시하는 트렌드로, 이후 웹툰 원작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과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작된 <나야, 문희> 등의 단편들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CJ문화재단은 CGV아트하우스와 함께 한국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숏츠하우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상업영화가 장르 트렌드에 의해 좌우된다면, 독립영화는 세상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영화의 중심에 세운다. 그것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어떤 경향성을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2024년 한국 독립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테마라면 ‘퀴어’일 것이다. 특히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다양한 관계성을 보여주었다. <딸에 대하여>(이미랑), <폭설>(윤수익),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한제이, 이하 <우.천.사>), <럭키, 아파트>(강유가람)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웹툰 기반의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양경희)는 BL이었고, <공작새>(변성빈)는 트랜스젠더 댄서가 주인공이다.
기존의 퀴어 영화가 정체성의 혼란이나 섹슈얼리티 혹은 사회적 시선 같은 테마를 주로 다루었다면, 2024년 등장한 레즈비어니즘 영화들은 그들이 동성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실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2 그런 면에서 한국 퀴어의 작은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대안적 가족 형태, 노인 문제, 부동산 이슈 등 다양한 사회적 테마를 퀴어와 접합시킨다. 퀴어는 청춘 영화 안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폭설>은 배우 한소희의 초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특히 동해안 지역의 인상적인 자연을 담은 로컬 시네마이기도 하다. <우.천.사>는 10대의 성장 영화이자, 모순적이며 폭력적인 세상에 맞선 두 소녀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2 조현나, “‘스크린 확보라는 오랜 어려움에도’, 2024년 3분기 독립영화의 약진을 분석하다 - <장손> <그녀에게> <딸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씨네21』, 2024년 11월 8일.
독립영화 범주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중요하게 탐구되는 주제였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의 이야기인 <그녀에게>는 김재화의 연기가 압권인 작품. <최소한의 선의>(김현정)는 난임인 교사와 임신한 소녀를, <언니 유정>은 간호사 언니와 영아 유기의 혐의를 받는 동생을 통해 여성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이 영화들은 ‘모성’이라는 주제를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김금순의 연기가 각광을 받았던 <정순>은 피해자임에도 비난받는 상황을 돌파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퀴어 영화와 여성 영화 모두 가족 영화의 범주 안에서 진동한다. <장손>과 <한국이 싫어서>는 여기서 나아간 또 다른 발걸음으로, 청년 세대가 가부장제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낸다. 한편, <해야 할 일>은 투쟁의 현장이 아닌,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노동’의 문제를 담아낸 작품이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결코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전달한다.
2024년 한국 독립영화에서 추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집’이었다. 이것은 ‘가족’과는 다른 의미의, 한국 자본주의에서 신화화된 재산 증식의 수단인 부동산으로서의 ‘집’으로, <원정빌라>는 오컬트 장르 안에서 재개발에 대한 집단적 광기를 담아낸다. <한 채>(허장, 정범)에선 남녀가 아파트 분양을 위한 위장 결혼으로 만나 가족을 이룬다. 돈을 위해 거짓 가정을 꾸리는 아이러니컬한 현실이 담담한 톤에 담긴다. <세입자>(윤은경)는 2024년 한국 독립영화가 보여준 가장 독특한 장르 이미지일 것이다. SF와 스릴러를 흑백 화면 안에 담은 이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게 일상의 디스토피아를 담아내는데, 집과 관련된 욕망과 임대인-임차인의 계급 관계를 기묘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욕망인 ‘집’이 지닌 모순적 측면을 직접적으로 혹은 메타포를 통해 드러낸다.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돋보였던 건 ‘환경’ 테마였다. 2023년 황윤 감독의 <수라>(2023)가 2024년도 이어지며 사랑받은 가운데, 정다운 감독의 <땅에 쓰는 시>는 조경가 정영선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과 자연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동물, 원>(2019)의 연작이라 할 수 있는 왕민철 감독의 <생츄어리>는 전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적극적 입장에서 동물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였고 추모의 영화들이 이어졌다. <바람의 세월>(김환태, 문종택)은 유족들의 삶을 통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그날’을 이야기한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장민경)은 세월호를 중심으로, 희생자의 부모 관점으로 한국 현대사를 다시 바라본다. 극영화에서의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2023년에 개봉된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2024년도 계속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목화솜 피는 날>(신경수), <미지수>(이돈구) 등이 직간접적으로 세월호의 참사를 담아냈다. 세월호라는 테마는 다큐적 기록을 넘어 극영화를 통한 위로와 공감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 영화들이 담고 있는 ‘참사의 서사’는 한국 사회가 잊어선 안 될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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