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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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

안중근의 내면을 본다는 것
<하얼빈>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장병원 영화평론가 대담

진행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이승재,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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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평론가와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

역사적 TMI를 하나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러시아 재무장관이던 코콥체프가 안중근을 만난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젊고 늘씬하며 키가 상당히 컸다. 일본 사람과 비슷하지 않고 얼굴은 거의 흰색이었다.” 그 묘사에 잘 어울리는 배우 현빈이 연기하는 안중근은 어떤 내면을 지녔을까. 안중근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한 인물이지만, <하얼빈>의 안중근은 캐스팅의 화제성을 넘어선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로 뚜렷한 연출색을 보여 온 우민호 감독이 ‘안중근 서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안중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신선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일치한다. 크리스마스 연휴 개봉 이틀 만에 125만 명을 동원한 <하얼빈>은 이제 우리에게 무엇을 증명할까? 역사적으로 위대하지만 익숙한 인물은 어떻게 시대를 뛰어넘을까?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와 장병원 영화평론가가 그 질문들을 품고 <하얼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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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 연기하는 안중근 장군
Q

영화 <하얼빈>은 대한민국 역사의 거대한 인물 중 한 명인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지금 이 시기에 안중근이라는 소재가 주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그 소재의 무게감을 이 영화가 잘 다루었을까?

profile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장성란)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장성란)

안중근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위인이라 익숙한 인물이다. <하얼빈>의 배급사인 CJ ENM에서 이미 안중근을 다룬 뮤지컬 영화 <영웅>(윤제균 감독)을 개봉한 바 있다. <하얼빈>의 크랭크인 날짜가 2022년인데, <영웅>이 같은 해 연말에 개봉한 것만 봐도 안중근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하얼빈>을 기획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안중근이라는 소재로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방향성을 추구한 것 같다. 그러한 방향성이 <하얼빈>의 만듦새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천만 영화’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족적 주제의식이 남녀노소불문, 관객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로 넘어가면서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같은 소재라도 얼마나 장르적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느냐로 블록버스터의 흐름이 바뀌었다. 300억 원을 들인 <하얼빈>이 ‘천만 영화’를 노리는 영화로서 민족적 주제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궁금했다. 관객들에게 어떤 선택을 받을 것인가를 지켜보고 싶다.

profile 장병원 영화평론가
(이하 장병원)

장병원 영화평론가
(이하 장병원)

안중근이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항일 투쟁은 한국 영화사적으로 오래된 소재다. 2000년 영화 <아나키스트>(유영식 감독)도 있었고 그 후로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다뤘는가다. 영화 <하얼빈>도 우민호 감독의 개성 있는 관점을 기대했다. 그 기대에 부합한 영화였나 생각해보면, 계속 얘기하게 되겠지만 시도는 의미 있었으나 여러 아쉬움이 있다.

profile 장성란
장성란

‘왜 지금 안중근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감독이 영화 안에 송곳같이 들이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현 시국과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언론 시사회 직후 ‘화장실 여론’에서 느낀 기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영화 속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왕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게으르고 어리석지만 의롭게 일어서는 백성들은 무섭다”라고 한다. “끝까지 싸워야만 먼저 간 동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다”라는 안중근의 내레이션도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의도한 바는 아닐 테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2024년 12월 현재 대한민국 국민 정서와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의성 또는 역사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토 히로부미 역의 릴리 프랭키
profile 장병원
장병원

그런 시의성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안중근이 빙판 위를 혼자 걸어가는 엔딩 장면에서 ‘불’과 관련한 내레이션이 그렇다. 영화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사족이라는 느낌이다. 이미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로도 충분히 암시가 되기 때문이다.

Q

영화 <하얼빈>은 막대한 제작비만큼 볼거리에도 상당히 투자했다. 오프닝의 얼어붙은 두만강, 초반의 눈밭 전투 신이나 거대한 사막 등 광활한 로케이션의 이미지가 등장하고, 하얼빈 도심을 비롯해 역사를 고증한 대규모 세트장이 번갈아 나온다. 영화의 이야기와 내외부 이미지들의 어울림을 어떻게 봤나?

압도적 스케일과 리얼리티를 선보인 로케이션 장면들
profile 장병원
장병원

시대를 고증한 웅장한 세트 등은 돋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대규모 액션 장면을 보여주진 않는다. 크게 세 차례의 액션 신이 있는데 첫 번째 전투신을 제외하면 스케일이 크지 않았다. 연출의 방점이 스펙터클한 액션 신이 아니라 극적인 요소에 있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도입부의 그 전투 신을 봤을 때만 해도 ‘이 영화, 재미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영화의 의제를 세팅하기 위한 신이었다.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내면적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장면으로서 화두를 잘 던졌다. 매우 잔혹하게 표현되도록 근접 촬영을 했고,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상태로 독립군과 일본군이 엉기는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이 명확하게 목표를 제시하는 액션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전체적 흐름에서 보자면 그 장면은 오히려 튀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 사건이 어떤 장소에서 벌어지는가는 연출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얼빈>에서 혹한의 동토라는 공간적 배경은 그 자체로도 영화적 메시지다.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안중근과 동지들이 폭약을 구하기 위해 광활한 사막을 건너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계절감을 해치는 동시에 리듬이 깨졌다. 주인공을 신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균질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profile 장성란
장성란

초반 전투 신이 좋았다. 전투의 규모를 강조하는 대신 처절함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와닿았다. 대규모 전투 신인 만큼 스펙터클이나 짜릿함을 강조하고픈 욕심도 있었을 텐데, 안중근과 동지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 죽지 않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는가를 잘 드러냈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지닌 고뇌와 내면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오프닝에서 안중근이 얼어붙은 강 위를 홀로 걷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으로 꼽을 만큼 강력했다. 그 이미지가 주는 이색적인 압도감이 있었다. 극한의 땅의 추위가 느껴질 것 같고.

신아산 전투의 아비규환 현장을 재현한 신.
Q

이 영화는 ‘하얼빈’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안중근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하얼빈’에서 일어나게 될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다. 오프닝을 시작으로, 그런 부분을 지향하는 이 영화의 구조는 어떻게 보았나?

profile 장병원
장병원

우민호 감독은 연출의 방점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 둔다. 하나는 남성 신화를 강조한다. 안중근의 면면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굉장히 신화화된 인물로 묘사한다. 영화적 은유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극 중 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 드러낸다. 안중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에 대해서 증언하고 그의 생각을 반사, 반영하는 식이다. 심지어 안중근이 사형대에 오른 장면에서, 그의 모습은 마치 예수를 연상시킨다.

또 하나는 일종의 숭고한 정신, 안중근이라는 인물이 지닌 어떤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인물 관계, 이야기의 전개 방향으로 봤을 때 이 의도가 명확했다. 대립되는 인물 구도 역시 단순히 항일 무장투쟁을 하는 의병과 일본군의 관계로 묘사하지 않았다. 밀정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애국, 항일, 민족의식 같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 고결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쉽지 않아 보였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지 못했다.

연출적 측면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절제하다 보니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간 측면도 있다. 왜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안중근을 부활시켜야 하는지, 안중근을 다룬 여러 영화를 뒤로 하고 <하얼빈>을 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납득할 만한 드라마가 부족했다.

profile 장성란
장성란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이 더 용감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감독은 나름대로 용기를 냈다고 본다.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에서 ‘대중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감독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하얼빈>에서 흥미롭게 본 실험적 포인트가 여기 있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대중성’이라고 내밀었던 코드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변하고있다. 한동안 자극적인 감정의 종합세트처럼 웃겼다가 울리는 ‘한국적 신파’가 곧 ‘대중성’이라고 여겨왔다.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일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밀수>나 <베테랑2> 등이 흥행작이긴 하지만 기대했던 스코어에는 미치지 못했다. 젊은 관객들을 중심으로 “촌스럽다”거나 “옛날 영화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런 관객들의 인식 변화가 거대 자본 영화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에 주목해야 할 시기다. 그런데 <하얼빈>은 기존의 낡은 대중성을 버리고 다른 노선을 추구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주제의식, 만듦새를 일관되게 관통한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지만 그 선택을 지지하고 싶다. 300억 원을 들인 영화가 그동안 먹혔던 안전한 선택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과연 대중들이 이 영화에 재미를 느낄 것인가, 느낀다면 어떤 지점에서 느끼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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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타임라인이 왔다 갔다 하지 않나. 계속 그런 구조로 갈 줄 알았다. 시간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진 않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플롯의 형태로. 안중근의 내면적인 갈등이 깊어지게 하려면 그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묘사되고 신념이 훼손되는 사건들이 첨부되어야 하는데, 사실상 묘사되는 것은 초반 전투 신 하나다. 그리고 안중근이 음식을 구하러 마을에 갔다 온 사이에 동지들이 몰살당한 상황은 세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계획의 실패가 안중근을 계속 때리면서 누적되면 바깥의 드라마와 상호작용을 해줄 거라고 봤는데, 그런 구조가 앞에 잠깐 나온 이후부터는 계속 연대기 순으로 간다. 안중근이 죄책감, 좌절, 고통 같은 문제를 내면화하는 모티브를 좀 더 상세히 던져줬다면 어땠을까?

하얼빈에서의 거사 일주일 전, D-7부터 카운팅이 되는 것도 아쉽다. 서스펜스를 고조하기 위한 장치인데, 그게 너무 늘어진다. 하나의 사건 단위가 길다. 중간에 폭약을 구하러 사막에 가는 장면을 너무 길게 가져간다. 카운팅이 드라마가 상향하도록 기능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영화적 전략에 의문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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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히려 설명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초반 전투 신에서 살려준 일본군이 동지들을 다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독립군 안에서 안중근이 받게 되는 의심과 그의 엄청난 죄책감이 전달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안중근이 정신적으로 가장 허약한 상태에서 두만강을 건너오면서 완성되는 결심에 대한 드라마가 더 두터웠으면 했다. 그게 구조적 딜레마를 만들었을 수는 있다.
<하얼빈>은 안중근에 대한 의심, 그리고 안중근 속에서 피어나는 의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극 중 밀정 찾기는 매우 장르적인 서스펜스 장치이자 이런 항일 영화들의 클리셰다. 장르적 재미를 좇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처음에 표방했던 노선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밀정 찾기의 드라마나 일본군과의 추격전도 탄력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밀정>(2016)에서의 기차 신을 떠올리면 <하얼빈>의 기차 신의 만듦새는 확실히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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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행 열차 속을 구현한 세트장
Q

연출을 맡은 우민호 감독은 그간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마약왕> 등으로 한국 사회의 굵직한 역사 안팎을 넘나든 바 있다.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연출적 성향이 <하얼빈>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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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우민호 감독이 추구하는 연출의 특징 중 하나가 캐릭터에 대한 연구다. 그의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인물이 가진 의외성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든 아니든, 일반적인 한국 상업영화에서 그려지는 캐릭터의 전형을 뛰어넘어 어떤 깊이를 보여줬다.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이 그랬다. <하얼빈>은 역사적 인물을 가까이서 다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실존적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그렇더라도 도입부 전투 신의 웅장한 세팅에 비해서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피상적으로 다뤄졌다. 주변 인물의 입을 통해 증언되거나, 대척점에 있는 존재를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라서 인물 자체가 발산하는 힘이 부족했다고 해야 할까.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한 데드라인을 쫓아가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안중근 내면의 드라마를 더 다듬어야 하는 미션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두 가지가 서로 조화롭게 표현되지 않았다.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 <서울의 봄>과 비교해볼 수 있다. 12.12 사태라는 사건 자체는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긴박감 넘치던 그 하룻밤에 대한 재연이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서는 전두광과 하나회에 맞서는 히어로 이태신의 고뇌와 심리 상태가 또 다른 차원으로 발산되었다. 두 개의 플롯이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갔기에 관객들이 이 영화에 반응했다고 생각한다. 서스펜스 강한 서사에 몰입되는 한편, 인물이 보여주는 숭고함에 정화될 수 있었다.

profile 장성란
장성란

강한 캐릭터성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영화화해 온 우민호 감독의 또 다른 연출적 특징은 권력이 어떻게 부패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가를 다룬다는 점이다. 우민호 영화에서 권력과 이권을 두고 다투는 인물들이 정확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밀실 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떠보는 장면 같은 경우, 그 안에 어떤 영화적 열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영화 전체를 잘 끌고 간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우민호 영화를 좀 불규칙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우민호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하얼빈>은 “전작들과 달리 의로운 인물이 주인공”이다. 의뭉스러운 인물들끼리 서로의 속내를 탐색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과 열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영화다. 안중근이 얼마나 의로운가 묘사해야 하고, 그 의로움 자체를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의 말을 통해 거울처럼 주인공의 의로움을 비추고 질문하고 도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갈등 구조보다는 독립군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의심과 갈등이 더 부각되면서 수면 아래로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연출력은 다소 아쉽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촬영한 이미지 자체는 감독의 의도에 충분히 부합한다. 오프닝의 빙판 위를 걷는 신, 어두운 방에서 독립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신은 장병원 평론가의 말처럼 예수의 고난이나 고뇌를 보여주는 성화 같은 이미지였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물들의 긴장감과 갈등을 보여준 장면.
profile 장병원
장병원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체포된 이후 교수대에 오르기 전까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수감된 이후 그 유명한 <동양평화론>을 쓰지 않았나. 처절한 전투 후에 동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군 포로들을 놓아주는 결정이라든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밀정이 된 동지에게 기회를 주는 장면들이 이 영화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동양평화론>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안중근이 가진 사상을 추출해 영화 안에 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면 영화 후반부에도 관련 설정이나 이야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2024년에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동양평화론>이 주장하고 있는 사상의 바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전쟁과 폭력과 분쟁의 상황은 여전히 동시대적 상황이다. 그런 의식과 주제를 더 확장시키는 쪽으로 나아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안중근을 완전히 신화화시키든가.

profile 장성란
장성란

적어도 너무 위대해서 오히려 동떨어져 보이는 인물을 어떻게 관객의 피부에 와닿게 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영화의 첫 시작부터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향해 직진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가장 허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얼빈역에서 거사를 치를 수 있었는가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가 내놓은 답은 먼저 간 동지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내 눈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동지들에 대한 마음. 그것이 안중근의 숭고한 정신을 구체화해주는 지점이다. 그 부분에서 물론 연출의 면밀함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구체화 방식은 <하얼빈>의 전략적인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영화 <영웅>의 도입부도
<하얼빈>과 거의 같다. 동지들이 몰살당하고 두만강을 건너고 손가락을 잘라서 피로 태극기를 그리는 단지 맹세 장면까지. 안중근의 일생에서 너무 중요한 신들이다. 그래서 <영웅>은 오프닝을 마치 클라이맥스처럼 열고 강렬한 노래를 부르면서 의로움을 고취시킨다. <하얼빈>은 같은 순간을 가장 비장하고 처절하게 가져간다. 그것이 이 영화가 전략을 갖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Q

이야기는 안중근을 중심으로 하나, 그와 함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동지들과 일본군 모리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각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상현 역의 조우진과 일본군 모리 역을 맡은 박훈
profile 장병원
장병원

김상현(조우진)과 모리(박훈)는 일종의 대리전을 하는 사이다. 안중근이 가진 사상이나 딜레마를 대리하는 투사체들로, 둘 다 안중근의 피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중반부에 모리가 김상현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장면이 약간 인위적이지만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후반부 김상현의 자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리는 대사의 80%가 “안중근은 어디 있느냐”일 정도로 안중근을 집요하게 쫓는 인물이다. 실은 안중근의 존재 자체를 찾는 큰 질문 같은 캐릭터이자 이 영화 전체를 감싸는 대전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안중근과 모리가 중간에 한두 번 더 대면한다든가, 둘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더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profile 장성란
장성란

캐릭터의 개연성만 놓고 보더라도 모리가 안중근을 쫓는다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축이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모리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안중근을 쫓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창섭(이동욱)이 “안중근 같은 고결한 인간한테 목숨을 구걸했기 때문이구나”라고 말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된다. 모리가 안중근에게 갖는 이중적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일본인으로서 너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그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우민호 감독의 특징 중 하나가 장면 자체의 상징성을 이미지화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모리가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너머 김상현에게 스테이크를 던져주는 장면이다. 그런 디테일이 안중근과 모리의 관계에서도 조금만 더 표현되었다면 영화의 힘이 더 살았을 것 같다. 결국 영화가 안중근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에 모리를 강력한 상대역으로 세울 수 없다는 점이 큰 딜레마였을 것이다.

Q

안중근은 결국 하얼빈역으로 간다.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 클라이맥스를 위해서. 그런데 연출된 방식이 특이하다. 역사적 사료와 상상력을 동원해 재현한 그 장면은 어떻게 보았나?

profile 장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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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봤을 때 그 장면이 클라이맥스였나 싶었다. ‘우민호 감독은 처음부터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장면을 대대적인 클라이맥스처럼 다룰 생각이 없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저격 장면에 힘을 쏟지 않았고 이후 연결되는 안중근의 교수형 신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의 고난처럼 성스러운 연출이긴 했으나 애써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 하진 않았다. 오히려 교수형 이후 에필로그 신에서 여운이 생긴다. 이런 엔딩은 영화 <영웅>과도 역시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장면인데, 좋은 선택이었다.

감독 입장에서 어떤 클라이맥스로 관객을 고양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짜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량: 죽음의 바다>(2023)에서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김한민 감독의 숙제였던 것처럼. 마지막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는 것을 관객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힘을 준들 “저럴 줄 알았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간결하게 처리하고 그 이후에 뭔가를 보여주고자 했던 전략이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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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신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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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생각이다. 클라이맥스라고 여겨지는 그 장면이 주제를 승화시키는 형식으로 연출되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보다는 그 이후의 신에서 감독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얼빈역 장면은 물리적 종착점이지만 이야기의 종결점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 신과 에필로그 신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이었다고 할까. 서스펜스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시간을 끌지도 않았다. 모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큰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 저격 신을 담백하게 연출하는 대신 에필로그에 힘을 실었다. 밀정 노릇을 했던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씻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안중근으로 표상되는 어떤 정신이 다른 동지들을 통해 이어진다는 서사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되짚어보면 안중근으로 표상되는 정신은 이창섭, 우덕순(박정민), 김상현 등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과 관계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지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인간적인 딜레마를 돌파하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판단에 머물 것인가. 모든 인물들에게 이 갈등이 주어졌고, 그 위에 안중근이라는 표상이 있다. 궁극적으로 스펙터클한 역사 드라마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얼빈>은 안중근이라는 의로운 남성의 신화가 지닌 정의와 영웅주의를 장르적으로 연결해 대중들이 원하는 부분을 건드려주면서, 연출의 개성도 불어넣으려는 고도의 전략에 도전했다. 그러나 우민호 감독은 그런 신화와 캐릭터를 역으로 깊게 다루는 장기를 지녔기에, 애초에 안중근이라는 소재가 그와 잘 맞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Q

<하얼빈>은 결국 Yes인가, No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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