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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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지금의 시행착오가 도약의 자산이 되도록”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사진
임익순

지난 6월 취임한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은 기자, 평론가,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집행위원장, 영화과 교수 등 전방위로 활동해 온 영화인이다. 한국영화계가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영진위의 수장을 맡아 영화인들의 절실한 목소리에 응답하고자 정부 부처와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그간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영진위가 꾸준히 발전시키고 노력해 온 정책들은 시대적인 상황 앞에서 더 큰 도약을 위한 변화를 요구받는 중이다. 영진위의 행보가 곧 한국영화의 미래와 긴밀히 연결되기에, 영진위 안팎을 두루 살피는 한상준 위원장의 마음이 바쁘다. 2024년을 통과하며 한국영화계를 위한 비전과 신규 사업 등을 준비하는 영진위의 2025년은 어떨까? 한상준 위원장에게 그 다양한 계획을 물었다.


Q

취임한 이후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영진위를 밖에서 지켜봤을 때와 위원장이 되어 내부에서 일할 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겠다.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무엇인가?

A

가장 큰 차이는 밖에서 볼 때는 몰랐던 영진위 업무의 방대함이다. 영화제 일을 할 때는 영진위 직원들과 함께 ‘한국영화의 밤’ 등의 외부 행사들이 눈에 띄었다. 또한 다양한 제작지원 사업이 영진위의 대표적인 업무로 보였다. 그런데 위원장이 되고 보니, 영진위의 업무가 매우 넓고 깊었다. 어느 세월에 다 습득할까 싶었는데 지난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큰 공부가 되었다.

영진위의 영화 관련 지원 사업은 각 단계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일례로 얼마 전 부산에서 시청자미디어재단과 영진위가 주관하는 가치봄영화제를 통해 영화 <청설>(2024) 상영회를 가졌다. 청각 장애 관련 소재의 영화로,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과 시청각 장애인들이 증강현실(AR) 글라스라는 특수 장비를 쓰고 함께 영화를 봤다. AR 글라스를 쓰면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화면 해설과 한글을 포함한 다양한 언어가 자막으로 제공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 행사를 통해서도 영진위 업무가 이만큼 세밀하고 방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외부에서 볼 때보다 영진위 구성원들의 개별 역량과 개성이 훨씬 뛰어났다.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아서 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조직을 책임지려면 조직 구성원들을 세세히 알아야 하기에, 각 팀별로 직접 만나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평균적인 역량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큰 차이도 있다. 처음에 위원장은 목표를 갖고 한국영화를 지원하는, 비전이 큰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체력이 중요한 직업이었다.(웃음) 예를 들어 서울에 사흘 정도 출장을 와 있는데 부산에서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정이 생긴다. 그럼 바로 부산에 갔다가 다시 급히 서울로 돌아오는 식이다. 이 모든 일이 위원장의 업무임을 깨달았다.


Q

취임 이후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한국영화계의 다양한 현안도 맞닥뜨렸다. 2024년 하반기 영진위가 진행했던 업무 가운데 특히 영화계에 의미가 있다고 느꼈던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한국영화계가 정말 위기이고, 그 위기의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런 상황이니 영진위가 2023년부터 해 온 일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고자 했다. 그때 확인한 게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진행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전 위원장들이 긴 세월 꾸준히 이어온 영진위의 사업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부산기장촬영소다. 부산 기장으로 부지가 결정된 이후 착공까지 9년이 걸렸다. 2024년 7월에 착공식을 열었는데, 새로운 촬영소가 한국영화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제야 비로소 실감했다. 2026년 가을 준공될 것이다. 영진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보더라도 부산기장촬영소는 더없이 중요한 사업이다.

그리고 영진위 내부의 보이지 않는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영진위는 밖에서 보면 ‘영진위’라고 부르는 어떤 대상이지만, 내게는 실체가 있는 조직이다. 사옥도 있고 120여 명의 직원도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할 때도 경험했지만 조직에서는 인사와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 박기용 전 위원장의 임기가 1월 말에 끝나고 위원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2024년 정기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인사와 조직 개편이 제때 안 되면 직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도 인사의 무게감을 느꼈지만 영진위에서는 무게감의 차원이 달랐다. 국가의 영화 정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견디면서 7월 말 8월 초에 조직 개편과 정기 인사를 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영진위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 영진위는 대중상업영화와 관련해 민간 질서가 유지되도록 협조하고 결국은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 지원에도 힘써야 한다. 한국 독립영화에 대한 아이디어와 연구가 많은데, 그것을 실현하려면 조직이 내부 분열 없이 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이 점을 중요하게 신경 쓰려고 한다.


Q

외부적으로 영화계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손꼽은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과 부산기장촬영소는 향후 영진위의 핵심 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먼저, 부산기장촬영소의 규모와 용도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A

부산기장촬영소 1단계 사업은 2026년 9월 완공을 목표로 기장군 장안읍 기장도예촌 관광지 내 연면적 1만 2631㎡ 규모로 건립된다. 각각 1000평, 650평, 450평의 ‘실내 스튜디오’ 3개 동과 ‘오픈 스튜디오’, ‘아트워크 시설’, ‘제작지원 시설’ 등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촬영소로 조성될 것이다.

지금 민간에서는 버추얼 스튜디오 등 촬영소 자체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그래서 부산기장촬영소 인근에 짓고 있는 다른 스튜디오(부산시가 추진하는 OTT 플랫폼 거점 부산촬영스튜디오)와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한국영화 재도약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완공 예정인 2026년 9월 후에는 해외의 첨단 기술이나 장비를 소화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올 수 있다. 촬영소가 지어지는 동안에도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6년 이후 부산기장촬영소를 운영하기 위한 2단계 계획을 이미 논의 중이다. 민간에서는 수익을 위해 스튜디오 사업을 하지만 우리는 정책과 연결해서 촬영소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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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장촬영소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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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8일 부산기장촬영소 건립 사업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한상준 위원장
Q

또 다른 중요 화두,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어느 정도 구체화되고 있나?

A

한국영화 산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1년에 50편 정도 제작되어야 한다. 1년이 52주이니, 일주일에 한 편씩 한국영화가 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천만 영화는 천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다. 그런데 같은 예산이 든다고 할 경우, 관객 200만 정도를 모으는 영화 5편을 만들 때 부수적인 효과들이 훨씬 많다. 고용하는 스태프 숫자도 5배로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종의 자산이 되어 다음 영화로 연결된다. 중예산의 규모는 80억 정도인데, 이와 관련해서 여전히 논의 중이다.

내가 중앙대학교 영화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윤종빈 감독과 김용화 감독이 학부생이었다. 그런 이들이 졸업해서 데뷔작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지금은 실패하면 다음 기회 자체가 없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이런 재능들에게 실패하더라도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영화는 한 편을 만들어보는 것과 두 편을 만들어보는 것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중예산 영화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9월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토론토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한국 영진위가 중예산 영화에 투자하다는 소식이 벌써 퍼져 있었다. 자부심을 느꼈다. 질문도 쇄도했다. 투자할 중예산 영화들이 장르영화냐 아트영화냐 등등.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에 투자하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구분은 없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지금 돌이켜보면 중예산 규모의 영화들로 기획되어서 어느 날 한국영화계에 툭 튀어나온 작품들이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원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은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라는 정도로 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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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예산 규모의 영화로 기획되어 성공한 영화들.
<올드보이>|쇼이스트(주), CJ ENM, <살인의 추억>|CJ ENM
중예산 규모의 영화로 기획되어 성공한 영화들. <올드보이>|쇼이스트(주), CJ ENM, <살인의 추억>|CJ ENM
Q

지난 6개월간 영화계 협회·단체, 그 외 유관기관 등과 간담회를 갖고 소통의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었다. 현장 영화인들의 목소리 가운데 가장 와닿았던 것은 무엇인가?

A

영화인들이 영화를 못 찍어서 정말 사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제작되는 한국영화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지금의 지원 방식은 긴급 수혈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신설을 위한 사전 의견수렴 과정에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메인투자펀드 등 주요 창작 단체, 투자 업계와도 대화했다. 영화계도 ‘한국영화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예산 영화제작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 신설을 강력하게 요청해 왔다. 엔데믹 전환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한국영화 산업을 위해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년에 제작되어야 하는 한국영화의 적정 편수가 50편이라고 했을 때, 민간에서 20편 정도가 진행되고 있다. 영진위가 30편 정도의 중예산 영화를 제작 지원한다고 하면 약 280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신설 제작 지원 부분이라서 2025년에는 100억 정도로 꾸려진다. 계속 늘려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 영화를 기획해서 완성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린다. 이 사업의 효과가 1, 2년 안에 가시화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인 토대를 잘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고 그 의미도 크다.

그리고 위원장으로서 영화 현장과 관련해 가장 먼저 보고받았던 이슈가 홀드백과 객단가다. 한국의 여러 단체들이 이 현안을 풀기 위해서 영진위와 함께 논의해 왔다. 이번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홀드백과 객단가 문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개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토론토영화제 때였다. 한국영화인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그중 한 분이 내게 “임기 3년 동안 객단가 문제 하나만 해결하셔도 성공하시는 겁니다. 객단가 하나만 풀어주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사실은 그 전에 어느 모임에서 다른 영화인에게서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었다. 그간 객단가와 연관된 민간 기업들은 영업상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있고, 영진위 입장에서도 조사 권한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여겼다. 영진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면 때문에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고. 하지만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생각이 변했다. 영진위가 직접적인 권한이 없더라도 이 문제의 중심에 서서 계속 논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들과도 계속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Q

영화계 단체들의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은 분명 영진위의 중요한 역할이자 존재 이유일 것이다. 해결 방안이 잘 보이지 않는 객단가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객단가, 왜 여전히 이렇게 어려운가?

A

장 르누아르의 프랑스 영화 <게임의 규칙>이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나온 대사 같은데, “모든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 옳다” 정도 의미의 대사였다. 다시 말해서, 객단가와 관련한 모든 단체들도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옳다. 그래서 충돌한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어쩌면 누구의 잘못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좋은 의미에서의 타협, 협력, 양보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한국영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러다가 공멸하겠다는 인식이 커지면 극적 전환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재도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 영진위는 지난 협의 과정을 통해 이해관계자별 우선순위와 쟁점 사안을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해 왔을 뿐 아니라 해당 쟁점들에 대한 영화계 및 관객 인식 조사도 준비한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국회와 정부 및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해당 이슈들을 제도적으로 풀어 가도록 노력하겠다.

<하얼빈> 2024 TIFF 레드카펫 현장 |하이브미디어코프
Q

2025년 핵심 사업인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외에도 영진위의 2025년도 예산에 대해 영화계의 관심이 뜨겁다. 2024년과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부분을 강조해서 지원하게 될까?

A

영화 분야의 연구개발(R&D)로 불리는 기획개발 지원이 10억 원 증액된 26억 원으로 편성되었다. 빠르게 변하는 관객 수요에 맞게 참신한 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기획개발이 중요하다. 그러나 길어진 시장 침체로 기획개발 투자가 소극적이다.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결국 좋은 콘텐츠이니,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와 기획력 있는 제작사가 시장에 안착해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일종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해외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영화 <하얼빈>이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졌을 때, 현빈과 이동욱 두 배우에 대한 어마어마한 반응을 눈으로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한류의 마지막 단계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해 왔는데 토론토에서 보니 이미 실현되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한국어를 전공한 현지인들이 토론토에서 내 가이드 역할을 했다. 그들은 한국어를 배웠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시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면서 재차 느꼈지만 한국영화가 지금의 위기 상황을 조금만 극복하면 그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해외 관객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해외 영화 아카데미들과 많은 교류를 해 오면서 지난 몇 년간 예산을 배정받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페미스(FEMIS)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과도 연결되어 있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해외 영화인들과의 미팅 스케줄이 가득 했다. 모두 영화진흥공사 시절을 포함해 영진위의 50년 역사 동안 어떻게 해 왔기에 한류가 이렇게 성공했는가를 물었다. 베트남에서는 무려 60여 명의 사단이 방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문화 개방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은데, 현지 영화진흥기구인 사우디필름커미션과 영진위가 협력하고 있다. 이 모든 교류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역할이 크다.

4주간 사우디에서 개최된 2024 KAFA 부트캠프 in 사우디
Q

영진위가 당면한 현안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영화발전기금 문제다. 정부의 영화관 입장료 3% 부과금 폐지 발표 이후 영화발전기금의 유지 가능성과 부과금 폐지 후속 대책에 관해서는 영진위로서도 고민이 많았겠다.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나?

A

영화발전기금 관련 문제는 2024년 3월 정부에서 발표했던 큰 정책이었다. 영화발전기금 관련 입장권 3% 부과금이 폐지될 경우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복권기금이나 체육기금 혹은 다른 기금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방식이다. 2023년에는 일반회계 800억, 2024년 체육기금 300억, 복권기금 54억까지 총 354억 원이 전입되었고, 2025년 정부예산안에는 체육기금 600억, 복권기금 45억 총 645억의 전입이 반영되어 있다. 현재까지 총 누적 1799억 원에 달하는 외부 재원이 영화발전기금에 전입되었다. 물론 영화계 입장에서는 외부 재원 전입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어서 불안할 수 있다. 많은 영화인들이 우려하듯이 영화발전기금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재원 다각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영화발전기금은 사실상 지금까지 그 규모가 계속 줄어들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비중이 늘고, 영화관 입장료 수익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 3% 부과금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일반회계, 타 기금 전입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재원 확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어떤 경우라도 영화발전기금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 당국, 주무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Q

영화계 입장에서 볼 때는 확실히 영화발전기금의 전체 규모를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지난 11월에 열렸던 ‘한국영화 활력충전 콘서트’에서는 프랑스처럼 OTT 수익금에서도 영화발전기금을 걷자는 제안이 나왔다.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A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장과 OTT가 공존해야 하는 시대이니까. 영화발전기금 문제는 우리만의 상황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가 해결한 방식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살펴봐야 한다. 프랑스의 CNC 같은 경우 과거에는 국립영화센터로 불렸는데 지금은 공식 명칭이 국립영화영상센터로 바뀌었다. 애니메이티드 이미지, 즉 모든 동영상을 포함해 관련 정책을 펴 나가고, 지원하고 연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심에 놓이는 것은 영화다. 영화의 긴 역사를 통해서 모든 미학적, 형식적 실험들이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되어 왔기 때문에 프랑스가 어떤 정책을 가져가더라도 늘 영화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Q

한국영화 산업과 OTT 플랫폼과의 상생이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025년, 2026년은 한국영화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국내에 진출한 해외 OTT, 국내 토종 OTT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OTT 플랫폼과의 관계에 있어서, 영진위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A

영화를 포함한 영상으로 정책이 확대되어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여러 분야로 뻗어 나가는 영상 문화의 중심에 영화가 있다는 것을 영진위가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120년 동안 쌓아 온 전통과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영진위 입장에서 변함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장 뤽 고다르가 일찍이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를 했다. 당대에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그 변화 속에 있다. 영화에 대한 법적 정의의 한계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무부처 및 유관기관과 협력해 산업 현실에 부합하는 법체계 정비를 위해 노력하겠다.

Q

위원장이기 이전에,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이다. 그런데 요즘 극장에 갈 여력이 있나?

A

자주 못 간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영화를 딱 한 편 봤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에 대한 다큐 <청년 동호>다. 최근에 본 흥미로운 영화는, 최근이라고 하기 그렇지만(웃음),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다. 우리 현실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비극성이 있지 않나. 그런 문제를 초월적이면서도 낙관적으로 표현하고,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언급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 주인공 찬실이의 삶이 다 표현되어 있었다. 이런 독립영화들만 나온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엄청나겠다고 생각했다. 외화는 2023년에 봤던 일본 음악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가 있다. 존 콜트레인 풍의 음악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무튼 현재의 흐름이나 변화하는 추세를 알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 챙겨서 보겠다.

Q

고전영화에 대한 애정도 크다고 알고 있다. 젊은 영화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고전영화가 있을까?

A

1950년대 미국영화들을 좋아한다. 니콜라스 레이나 새뮤얼 퓰러, 돈 시겔 등. 제임스 딘이 주연한 <이유없는 반항>(1955)은 니콜라스 레이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더 깊게 해석된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도 좋아한다.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는 프랑스 문화원에서 본 이후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한다. 일본 고전영화도 좋아한다. 수준이 높다.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의 <들개>(1949)는 그야말로 놀랍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오즈의 세계관과 연결해서 볼 때마다 역시 새로운 감흥을 준다.

한국 작품으로는 이장호·배창호·이명세 감독의 영화들을 꼽을 수 있다. 동시대에 만들어지는 작품들을 보면서 성공과 실패의 체험을 함께 겪어 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체험을 내게 실현시켜준 것이 <바보선언>(1984),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8) 같은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이고,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도 그러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역시 매번 성공작이냐 실패작이냐를 동료들과 논쟁하면서, 동시대인으로서 작품의 탄생을 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전부 언제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기억난다. 순수한 관객이 되어 영화에 나를 일치시키고 때로는 연출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도 했던, 내 성장기의 중요한 영화들이다. 다 추천해 드리고 싶다.

영화는 집단 예술로 시작해서 시스템의 예술이 되었고, 개인의 예술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뒤섞여 풍요로운 텍스트가 되었다. 120년이라는 영화의 역사 속에서 끝없이 거론되어 왔던 문제들이 있지만, 결국 시간이 작용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영진위가 노력함을 외부에 알리는 동시에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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