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Cinema
작지만 단단한 생명력으로
지역 영화 공동체의 힘
- 글
- 강한들(영화진흥위원회 정책개발팀 인턴)
- 사진 제공
- 시네마엠엠, 무명씨네, 작은영화공작소, 원주옥상영화제, 시네마다방
Art Cinema
지역 영화 공동체의 힘
영화라는 콘텐츠를 즐기려면 필연적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극장이라는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과 공동체’라는 인적 자원을 통해 긴 시간 지역의 시민들과 영화로 함께해 온 이들이 있다. 바로 ‘지역 영화 공동체’들이다. 이들은 지역 내에서 다양한 상영 기획 활동을 통해 독립예술영화 향유의 저변을 확대하고, 관련 인력을 재생산하며, 지역 영화 현장과 관객을 연결해 왔다.
지역 영화 공동체들은 무엇보다도 지역의 영화 문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서 관객은 일상에서 쉽게 영화를 접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영화를 능동적으로 소비한다. 영화를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취향과 삶을 공유하는 경험을 얻는 것이다. 일단 영화를 보는 것이 다채롭고 즐겁다고 감각하게 되면 지역 시민들은 다시 영화를 찾기 마련이다. 지역 영화 현장 또한 영화 공동체의 활동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는다. 창작자들은 관객을 대면할 통로를 얻고, 상영 기획에 관심 있는 시민은 프로그래머로 발돋움할 기회를 갖는다. 이런 환경은 영화 창작 현장에 뛰어들고자 하는 신진 창작자들을 키워내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다시 네트워크로 연결되며 지역에서 밖으로 그 외연을 확장한다. 관객이 상영 기획자로, 창작자로, 다시 관객으로 선순환하면서 지역 영화 문화는 점점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많은 지역 영화 공동체들이 사라졌지만 운영 구조와 재원의 변화를 꾀하며 자생에 힘쓴 단체들이 많았다. 커뮤니티 시네마와 영화 공동체, 지역 영화제 관련 공공 지원이 유지되면서 지역 영화 공동체들이 재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4년 관련 정책 환경이 바뀌면서 지역 영화 공동체들에 대한 지원 예산이 대부분 축소되었다.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뎌내고 있는 지역 영화 공동체가 여럿이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국내 영화 문화 관련 인프라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극장이 없거나 영화 문화 관련 인프라가 없는 지방에서는 시민들이 영화를 접하기 힘들다. 지역 영화 공동체의 꾸준한 활동이 상영 기획 프로그램과 작은 영화제 등을 늘려 지방의 영화 인프라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을 제외한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2020년 팬데믹 이전부터 현재까지 7년 이상 활동해 온 지역 영화 공동체들을 주목했다. 목포의 시네마엠엠, 전주의 무명씨네, 부산 수영구의 작은영화공작소, 원주의 원주옥상영화제, 세종 조치원의 시네마다방이 그 대상이다.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해 온 영화인들과 관객들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았던 2024년, 이 공동체들의 부단한 노력을 조명하는 일이야말로 가치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속의 힘은 역시 사람이다지역 영화 공동체를 지속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이다. 영화 공동체의 활동은 지역 영화 문화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공익 활동이다. 수익이 아닌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인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네마엠엠과 무명씨네는 이러한 고민에서 마을 기업과 사회적 기업 육성 과정에 참여하며, 시민들과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공동체의 형태로 지역 내에서 꾸준히 협업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들어 왔다.
○ 시민사회와 함께, 시네마엠엠
시네마엠엠은 2014년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와 함께 시작했다. 목포 국도1호선 독립영화제는 5개 단편을 상영하는 아주 작은 영화제로, 올해 11회를 맞아 1150명의 관객이 찾는 전남 유일의 독립영화제로 성장했다.
시네마엠엠 정성우 대표는 다섯 번의 영화제를 거치면서 영화제 기간 외에도 일상에서 영화를 접하고 싶어 하는 목포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2018년, 시민들의 후원과 응원을 받아 영화제 집행위 6명과 70여 명의 시민 극장주가 함께 목포 목원동에 전남 최초의 독립영화 상영관인 ‘시네마엠엠’을 개관했다. 영화제에서 상영관까지,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영화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시네마엠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영화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했다. 2020년, 시네마엠엠은 협동조합으로 발족해 시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영화 공동체가 되었다.
시네마엠엠은 협동조합 발족 이후 ‘식구’가 된 동료들의 인건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공공 지원 사업에 참여했다. 영진위의 지역 영화제 지원 사업과 더불어 전남문화재단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교육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런 활동들은 영상 콘텐츠 교육과 커뮤니티 시네마 등 시네마엠엠의 공공사업에 대한 역량을 축적시켰다. 10년간의 꾸준한 활동은 지역의 공공기관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전남문화재단의 예술 영역 지원 사업은 공예나 무용 등 전통 예술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2024년 최초로 ‘영화’ 관련 영역이 신설된 것이다. 정성우 대표는 이에 대해 함께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큰 성과라고 언급했다.
이들은 순천, 강진 등의 영화 공동체와 협력해 전남 지역 영화 공동체 모임인 ‘시네로드’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기반을 만든 셈이다. 현재 시네마엠엠은 영화제 개최와 더불어 미디어센터가 부재한 전남 서부권에서 영화 기반 문화 교육 사업 등을 운영한다. 공공의 역할을 대신하며 시민사회와의 접점을 넓혀 가고 있다.
○ 이름 없는 모두의 영화를 위해, 무명씨네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무명씨네 이하늘 대표는 현재 사무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셜 캠퍼스 온 전북’의 임대 기간 만료가 임박했다고 답변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짐을 어떻게 뺄지가 걱정이다. 아마 짐 때문에 고민하는 건 다른 공동체 분들도 비슷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이하늘 대표의 웃음 속에 이 공동체의 오랜 역사가 스친다.
2016년, 전주 시민미디어센터의 영화 제작 워크숍을 통해 상영 기획을 해보고 싶은 전주 시민들이 만났다. 지역의 이름 없는 영화들에 상영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이들은 두 번의 상영 기획 활동을 함께하며 2017년 ‘이름 없는 모두의 영화’라는 뜻의 임의단체 무명씨네를 만들게 되었다. 무명씨네는 2021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을 거쳐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이하늘 대표는 동료들과 함께 무명씨네를 지속하기 위해 영화 굿즈 스토어 ‘금지옥엽’을 유치하고 중소기업벤처부의 ‘글로컬 상권 창출 사업’에 참여했다. 공공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재원을 마련하려는 노력이었다.
무명씨네는 더 나아가 전북 지역 청년들이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는 ‘뉴웨이브 영화제’의 집행위원회를 아예 지역 청년들로 꾸리는 ‘물보라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상영 기획에 관심이 있거나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뉴웨이브 영화제’의 기획과 홍보, 작품 수급과 선정, 상영과 정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운영하는 집행위원 ‘물보라’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참여한 청년들은 일회성 스태프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상영 기획자이자 프로그래머로서의 역량을 쌓게 된다. ‘물보라’로 활동한 청년들은 다음 해에 선배 물보라인 ‘다이버’가 되어 다시 영화제에 참여한다.
올해 4회째를 맞은 ‘뉴웨이브 영화제’와 ‘물보라 프로젝트’는 ‘다이버’들이 체득한 워크 플로와 노하우를 신입 ‘물보라’에게 공유하는 멘토-멘티 과정을 운영한다. 청년들에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경험이 아닌, 상영 기획 인력으로 성장하는 양질의 기회를 제공한다. 전북의 청년들이 영화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순환하는 공동체성,
작은영화공작소
부산 수영구에서는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작은영화 영화제’가 열린다. 2017년 3월, 단편영화 제작 과정을 통해 단편영화의 매력을 느낀 지역의 시민들과 영화인들이 모여 ‘작은영화공작소’가 만들어졌다. 주민들이 ‘동네에서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는 영화제를 하더라’라고 느끼는 것을 목표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7년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영화제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부산의 감독들이 제작한 영화와 함께 무려 87회째를 맞았다. 작은영화공작소 김미라 대표는 “아마 ‘87회’를 단 영화제는 국내에서 우리가 처음일 것”이라며 웃었다.
작은영화공작소는 지역 영화 공동체 중에서도 특별한 구조를 지녔다. 특정한 조직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관객과 집행위 인력이 순환된다. 관객이 집행위로, 집행위가 다시 관객으로 돌아가며, 하나의 영화 공동체로서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영화 영화제’의 테마는 ‘지역 영화’와 ‘관객 프로그래밍’이다. 부산과 경남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는 관객은 누구나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영화제다. 이렇게 집행위 활동을 거친 관객들이 지역 내외의 다양한 상영 기획 활동에 참여하며 부산의 영화 문화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미라 대표는 “영화제를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점이 실제로 작은영화공작소의 초기 스태프들이 모두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작은영화 영화제’는 지난 7년간 작은영화공작소 인원들의 사비로 100% 진행되었다. 공동체 상영에 특화된 지원 사업이 없어서 다른 주제의 지원 사업을 신청하기도 했지만, 선정된 경우는 없었다. 작은영화공작소는 지속을 위한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다. 작은 영화를 기다리는 수영구의 시민들을 위해, 공공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역과 영화를 더 가까이지역 영화 공동체의 상영 기획 활동은 지역성에 기반한다. 지역에 대한 고민을 통해 지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런 공감대를 다른 지역으로 연결해 만들어지는 지역 간의 네트워크가 ‘지역 영화 문화’를 만드는 토양이 된다. 지역에 대한 세심한 탐구와 배려를 지니고 활동하는 한편, 지역 밖으로 관심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자생의 디딤돌을 만들어 가는 공동체로 시네마다방과 원주옥상영화제를 꼽을 수 있다.
○ 조치원의 영화 향유를 책임지다, 시네마다방
시네마다방이 위치한 세종시 조치원은 매우 특색 있는 도시다. 조치원 버스터미널 주위에는 ‘탕제원’, ‘전파사’와 같은 오래된 상점들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거리는 1990년대의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어서 ‘레트로’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오래전부터 조치원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자연스럽게 4개의 큰 극장이 조치원 역사 주변에 형성되어 지역 주민들이 영화에 친숙한 곳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오래된 극장들이 하나 둘 폐업하고 주민들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네마다방 시혜지 대표는 조치원의 이런 역사에 주목했다. 폐관한 ‘왕성극장’을 다시 세우겠다는 목표로 2018년부터 활동해 2020년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을 통해 세종 유일의 독립영화 상영관, 시네마다방을 개관했다.
현재 시네마다방은 영화 <빚가리> 종영,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GV)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 <빚가리>는 시네마다방과 고봉수 감독, 조치원 주민 100여 명이 함께 제작한 영화다. <빚가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으며 지난 10월 16일 극장 개봉도 무사히 마쳤다. 날것 그대로의 조치원을 담은 <빚가리>는 실제 지역 주민들이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해 만들어졌다. 주연 3인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조치원의 주민들이며, 로케이션 장소도 모두 조치원의 소박한 모습을 가감 없이 담은 곳들이다.
시네마다방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제작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지역문화콘텐츠 특성화 사업과 세종 메세나협회의 도움을 받아 <빛가리>의 제작비를 마련했다. 또한 이 영화를 주민들이 직접 배급하기 위해 새로운 독립영화 배급 구조를 계획하기도 했으나, 지역문화콘텐츠 특성화 사업이 3년 차에 돌연 중단되면서 진행하지 못했다. 시네마다방의 활동 가운데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네마다방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지역성을 활용한 상영 기획을 통해 조치원의 독립영화 향유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혜지 대표는 극장, 상영관에서도 지역성을 고려한 적극적인 관객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역 두부와 <장손>을 엮어 상영하기도 하고, 조치원의 특산품인 복숭아를 주제로 <욕망의 복숭아>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를 상영할 때는 부모들이 영화를 관람하며 지역 막걸리를 마셨다. 아이들은 상영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기획 역시 지역 주민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 지역 자원으로 일군 자생력,
원주옥상영화제
원주에 대한 첫인상은 다채로운 도시라는 점이다. ‘강원 감영’이 위치한 원도심은 오래된 거리의 익숙함과 다정함을,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다수 위치해 있는 신도심은 활기찬 젊은 도시의 분위기를 지녔다. 도시 내에 구도심과 신도심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지역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원주옥상영화제는 2017년 원주 영상 미디어센터와의 협업으로 영화제를 시작하여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된 현재까지 다양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 상인회나 기업 등에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제휴해 상권에 도움이 되는 여러 상품들을 관객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 하이트진로 공장과 협력해 맥주와 함께하는 영화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년 창업 단지와 제휴해 다양한 청년 기업의 상품들을 홍보하며 제공하는 식이다. 또한 이들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상지대학교와 같은 지역 대학과 지역 은행인 원주밝음신협 등에 직접 찾아가 적극적으로 영화제의 가치와 목적을 알렸다. 영화제를 통해서 지역 내 기관·기업의 홍보 방안을 담는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하며 지역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후원금으로 재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심지어 ‘강원랜드’에 찾아가 PT를 하기도 했다고. 이효정 프로그램 팀장은 “이러한 적극적인 지역 자원과의 연계가 원주옥상영화제의 힘”이라고 언급했다.
원주옥상영화제의 집행위원회는 상설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 1~2월부터 함께 모여 생업과 영화제 준비를 병행한다. 8월에 영화제를 마치고 나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그럼에도 박주환 집행위원장과 이효정 프로그램 팀장을 비롯한 6인의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7년간 다양한 시민들이 영화제를 위해 한 몸처럼 일하고 있다. 올해 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원주옥상영화제는 독립적인 운영 구조로의 발돋움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25년을 위해 짧은 겨울잠을 자며 힘과 역량을 비축하고 있다.
원주옥상영화제는 역량 강화를 위해 지역 외 자원을 활용한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 강원 영화학교 사업을 통해 지역 내 도시들이 영화 문화를 기반으로 연결되었고, 지역 영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강원도에서 신진 영화 창작자들이 가파르게 증가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원주-강릉-춘천이 협력해 강원 도내 경쟁 영화제인 ‘햇 시네마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각 도시를 넘어서 일종의 ‘영화 문화 협력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강원 지역의 영화 창작과 향유 환경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눈에 띄는 성과도 낳고 있다. 박주환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양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도시 간의 교류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질적 성장을 이룬 것이 지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느리지만 확실한 풀뿌리처럼올해 지역 영화제 및 커뮤니티 시네마 관련 지원 사업의 예산이 대폭 축소된 상황이다. 이에 지역 영화 공동체들은 영화제 등의 출품작과 상영작 감소를 예측했으나, 예산의 축소와 한국영화 산업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 신진 영화 창작자들의 출품작 수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현장의 수요를 외면할 수 없기에 이들은 내부 비용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어 상영작 수를 유지, 확대했다. 관련 예산이 축소되었음에도 신진 창작자들이 늘었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나, 비용을 줄이는 긴축과 출혈 형태로 영화제와 상영 기획 활동을 운영하는 것은 지속하기 어렵다. 창작자들의 작품이 관객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면, 자연스레 신진 창작자도 줄어들 것이다. 공공의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역 영화 공동체들의 상영 기획 활동은 법적 ‘극장’이 아닌 소규모 ‘상영관’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구 규모가 수도권과 다른 만큼, 큰 극장보다 20석 안팎의 소규모 상영관에서 꾸준히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극장’으로 운영하기에는 건축법상 법적 규제를 통과하기 만만치 않고, 지역의 특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규모 상영관’의 공간적 특질을 정의해 이런 공간에서의 활동에 특성화된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 사업 규정을 구체화해 ‘소규모 상영관’과 ‘상영 기획 활동’을 규정할 수 있다면, ‘극장 상영’과 구분되는 상영 기획 활동이 활성화되어 지역 영화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을까. 지역 영화 공동체들은 분명 특유의 생명력으로 이에 답하며 지역 시민들이 영화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은 결국 느리지만 확실한 극장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다. 지역 영화 공동체가 풀뿌리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그 결실은 반드시 극장과 영화 산업 전체에도 활기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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