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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영화 산업 마케팅 트렌드 결산

정유미(영화저널리스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바뀐 콘텐츠 소비 트렌드는 올해 한국영화 산업에 여러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팬데믹 이후 검증된 작품을 보려는 관객 경향이 강해지면서 배급사와 영화관을 중심으로 재개봉 및 리메이크 작품 개봉, 공연 실황 영화 등 기존 콘텐츠를 강화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숏폼 세대에 맞춘 스낵무비가 극장가에 등장하고, 관객과의 대면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등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한 해였다.

활발해진 재개봉 트렌드

팬데믹 이후에 작품성이 보장된 고전 명작과 대중성을 갖춘 흥행작의 재개봉은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극장의 자구책이 되었다. 최근에는 개봉 시기에 놓치거나 보지 못한 영화를 큰 스크린과 최첨단 음향 시스템을 갖춘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 수요가 안정적인 관객층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흥행 활로가 되고 있다.

재개봉 영화는 2023년 48편에서 올해는 84편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개봉작들이 매달 2~4편 정도였다면, 올해는 매달 평균 7편 이상 개봉한 셈이다. 재개봉작들은 지난해 11월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고,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지난 9월부터 매달 10편 가까이 개봉하고 있다.

지난 4월 재개봉한 일본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기존 관객 수 13만 명보다 많은 재개봉 관객 수 43만 명을 추가해 누적 관객 수 56만 명을 기록했다. 10주년 기념으로 지난 9월에 재개봉한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2014)은 재개봉 관객 수 23만여 명으로 누적 관객 수 371만 명을 기록했다. 8월 재개봉한 <소년시절의 너>(2020)와 10월 재개봉한 <노트북>(2004)은 각각 재개봉 관객 수 20만 명과 17만 명을 돌파하며 재개봉 흥행력을 입증했다.

<남은 인생 10년>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외
<소년시절의 너>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외
<노트북> | 에무 시네마 앤 카페 외

올해는 한국영화들의 재개봉도 눈에 띄었다. 지난 3월에는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이정재의 초기작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9)가 재개봉했고, 6월에는 개봉 20주년을 맞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11월에는 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2006)가 18년 만에 업스케일링 리마스터링 감독판 버전으로 재개봉했다.

재개봉 주기도 짧아졌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재즈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와 지난해 11월 개봉한 일본영화 <괴물>은 ‘개봉 1주년 기념’으로 올해 10월과 11월에 재개봉을 택했고, 지난해 7월 개봉한 외화 <바비>도 11월 아이맥스로 재개봉했다. 최근작들이 재개봉작 대열에 빠르게 합류하면서 재개봉 트렌드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외에도 <태풍클럽>(1985), <복수는 나의 것>(1979),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등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고전영화들도 ‘국내 정식 개봉’ 타이틀을 달고 관객을 찾았다. 대만영화 <밀레니엄 맘보>(2003) 또한 4K 리 마스터링을 거쳐 오는 12월 31일 재개봉한다.

예술영화 전용 극장 아트나인은 기획전 등을 통해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 등 고전영화를 발굴 소개하고 있고, 롯데시네마도 ‘보석발굴 프로젝트’ 기획전 이름으로 <포레스트 검프>(1994) 등 명작들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CGV는 11월부터 ‘명작을 어필하다, CGV 월간 재개봉 어바웃 필름’이라는 정기 재개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메가박스도 2025년 1월 <러브레터>(1995) 30주년 재개봉을 준비하는 등 극장들의 ‘단독 재개봉’은 내년에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외
<태양은 없다> | ㈜싸이더스
<해바라기> | (주)쇼박스 외
리메이크 열풍에 빠진 한국영화

올해는 외국 작품을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한국영화가 잇따라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6월에 개봉한 코미디영화 <핸섬가이즈>는 미국, 캐나다 합작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2010)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177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7월 개봉한 코미디영화 <파일럿>은 스웨덴영화 <콕핏>(2012)이 원작으로, 471만 명을 모으며 여름 극장가에서 흥행 순항했다. 11월에는 동명의 대만 로맨스영화를 리메이크한 <청설>과 동명의 콜롬비아영화를 원작으로 한 <히든페이스>가 개봉해 각각 79만 명, 89만 명을 기록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리메이크 확대 추세에 대해 쇼박스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과 무관하게 훌륭한 원작들을 리메이크한 성공적인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매력적인 제작 아이템의 감소와 관람료 상승, 영화 외의 볼거리 증대 등 여러 환경 변화와 맞물려 리메이크가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청설>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리메이크 영화는 검증된 원작을 국내 정서에 맞게 재구성하면서 원작 팬들의 선호도를 높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입소문을 담보한다는 이점이 있다. 훌륭한 각색은 필수 조건이다”라고 답했다. <핸섬가이즈>는 국내 관객들이 선호하는 오컬트 요소를 추가해 복합장르의 매력을 키웠고, <청설>은 섬세한 각색과 연출로 로컬라이징에 성공했다. <파일럿>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파일럿>은 스웨덴영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주요 로그라인만 같을 뿐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된 부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마케팅도 원작과의 연결고리 없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보일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2025년에는 대만 작품을 리메이크한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아이슬란드영화를 원작으로 한 <정가네 목장>, 중국영화를 리메이크한 <먼 훗날 우리> 등이 리메이크 열풍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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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영화 <콕핏>(2012)을 리메이크한 <파일럿>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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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 <청설>(2010)을 리메이크한 <청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극장도 관객도 만족하는 공연 실황 영화

코로나19 이후 비중이 늘어난 공연 실황 영화가 올해도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공연 실황 영화는 국내외를 포함해 2023년 20여 편, 올해는 40여 편이 개봉했다. 2배 정도 늘어난 숫자다. 국내 가수들의 공연 실황을 다룬 영화는 지난해 10여 편에서 올해 30편가량으로 대폭 늘었다. 특히 국내 공연 실황 영화는 초호화 라인업이었다. 1월 <지오디 마스터피스 더 무비> 개봉을 시작으로 12월 <김범수 25주년 콘서트 필름: 여행> <엔시티 드림 미스터리 랩: 드림 이스케이프 인 시네마> <정동원 성탄총동원 더 무비>까지 유명 가수와 그룹들의 공연 실황 영화가 적게는 2편에서 많게는 7편까지 매달 꾸준히 개봉했다.

지난 8월 개봉한 <임영웅 |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공연 실황 영화 1위 기록을 세웠다. 같은 8월에 개봉한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시네마>가 누적 관객 수 7만 1000명, <지오디 마스터피스 더 무비>와 9월 개봉한 <정국: 아이엠 스틸>이 각각 4만 1000명을 기록하며 공연 실황 영화 상위에 올랐다.

국내 공연 실황 영화가 대폭 늘어난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깃층이 명확한 ‘팬덤 무비’에 속하기 때문에 충성도 높은 팬덤이 관객 수로 이어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팬들의 단체 대관이 급증하는 등 공연 실황 영화와 특수관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극장들은 관객 니즈에 맞추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특수 상영관에 적합한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 단독 콘텐츠 제작, 개봉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는 아이맥스, 4DX, 스크린 X, 사운드 특화관 등 특수상영관 상영도 늘어나 팬들에게 극대화된 현장감을 제공하는 폭이 넓어졌다. 공연 실황 영화 관람료는 2만~3만 원대로 일반 관람료보다는 비싸지만 20만 원 선까지 오른 콘서트 티켓 가격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고, 콘서트 관람과 또 다른 이색적인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연 실황 영화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짧고 저렴하게, 스낵무비의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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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낚시> | CJ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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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44초>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는 일반 영화보다 러닝타임이 짧은 숏폼 영화 ‘스낵무비’가 잇달아 개봉하며 침체한 극장가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스낵무비’는 스낵처럼 짧은 시간에 가볍게 즐기는 문화를 뜻하는 ‘스낵 컬처’에서 파생한 용어로, 지난 6월 14일 개봉한 손석구 주연의 <밤낚시>가 ‘스낵무비’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렸다. 상영시간 13분에 관람료는 1000원으로 4만 6000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인기를 얻었다. 지난 10월에는 상영시간 8분짜리 애니메이션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이 관람료 1000원, 11월에는 상영시간이 44분인 호러영화 <4분 44초>가 관람료 4000원, 배우 김남길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상영시간 30분인 <문을 여는 법>이 관람료 3000원으로 개봉했다.

4편의 스낵무비는 저마다 뚜렷한 특색으로 단편영화로서의 차별화를 꾀했다. <밤낚시>는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제작한 단편영화로 브랜디드 콘텐츠에 속하지만, 주연배우 손석구의 제작 참여와 자동차 시점의 영화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작품성까지 인정받아 28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선정 국제 단편 경쟁 부문 ‘최고 편집상’을 받았고, 올해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은 총 8화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1화로 와난 작가의 네이버 인기 웹툰 <집이 없어>를 원작으로 한다.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첫 화를 2주간 한정 상영하고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오후 7시대에 편성하는 전략을 취했다. 호러영화 <4분 44초>는 편당 4분 44초, 총 8개의 에피소드를 합친 상영시간을 강조해 누적 관객 수 4만 6000명을 기록했다. <문을 여는 법>은 문화예술 비정부기구(NGO) 대표인 김남길이 자립 준비 청년들을 위해 제작한 사회공헌 활동 성격을 띤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계에서는 스낵무비가 숏폼 콘텐츠를 즐기는 데 익숙한 관객층의 관람 욕구를 자극하고, 평균 영화관람료 1만 5000원과 비교하면 1000~4000원으로 형성된 저렴한 관람료가 관객 유입 효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4분 44초>의 경우 10대, 20대 관객 예매율이 60%를 넘을 만큼 젊은 관객층의 집중적인 선택을 받으며 극장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스낵무비 관람료가 워낙 낮기 때문에 극장 매출액이 적어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극장 업계에서는 짧은 스낵무비를 보러 극장에 왔다가 다른 영화까지 관람하게 만드는 ‘복수 관람’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스낵무비가 올해처럼 특성화 아이템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면 지속적인 영화 마케팅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관객과 눈 맞추는 ‘스킨십 마케팅’ 활발

올해는 엔데믹 이후 다시 활발해진 상영관 무대 인사가 영화의 주요한 홍보 마케팅 방식이었다. <파묘> <베테랑2> <파일럿> <핸섬가이즈> 등 흥행작들이 확실한 팬서비스를 제공하며 흥행 분위기를 돋웠다. 최민식 배우는 <파묘> 무대 인사에서 관객들이 건네는 다양한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착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화제를 모았고, <베테랑2>는 330회 이상의 무대 인사로 한국영화 최다 무대 인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개봉 후에도 KBS 아침 프로그램 <아침마당> 출연 등 중장년층 대상 영화 인지도를 높이는 이색 홍보를 이어갔다.

관객 체험 행사인 팝업스토어도 영화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강동원 주연의 <설계자>는 개봉을 앞두고 팝업스토어를 열어 영화 공간을 구현한 디오라마 전시, 영화를 위해 특별 제작한 디저트 등을 마련해 관심을 모았다. 천만 영화 <파묘>는 영화 개봉 이후에 관객 보답 차원에서 미공개 영상과 영화 소품 등을 관람할 수 있는 ‘파묘: 그 곳의 뒤편’ 팝업스토어 등 전시회를 개최해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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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 팝업 매장에 영화 속 한 장면을 재현한 디마리오

<파묘>의 마케팅은 특히 올해의 가장 강력한 영화 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손없는날 미드나잇 상영회’, ‘겁쟁이 상영회’, ‘굿어롱 상영회’ 등 이색 상영회와 팬아트를 응용한 500만 돌파 기념 포스터 제작 등 관객의 관심을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흥행 열풍을 이끌었다. <파묘> 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개봉 시즌 관객의 반응에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실무자들이 빠르게 아이디어를 나누고,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관객의 신규 유입은 물론, N차 관람까지 유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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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에서 진행된 겁쟁이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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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회 이상으로 한국영화 사상 최다 무대 인사 기록을 세운
<베테랑2>의 무대 인사 일정표 일부

<파묘> 사례처럼 영화와 관객의 소통이 보다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트렌드로 꼽을 만하다. CJ ENM 관계자는 “<서울의 봄> <파묘>가 영화 자체의 톤과 별개로 관객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입소문을 통해 흥행을 견인했던 것처럼 영화 마케팅 콘텐츠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에 맞는 문구와 방식으로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330회 이상의 무대 인사를 통해 생산된 <베테랑2>의 SNS 콘텐츠들이 10대, 20대들에게도 장기적으로 바이럴이 되며 흥행을 이끌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2025년 한국영화 산업 마케팅은 올해의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NEW 관계자는 “신작 라인업이 평년보다 다소 줄어들 수 있겠으나, 다시 봐도 좋을 명작을 중심으로 재개봉작 공급이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기보다는 최근 변화된 관람객의 소비 양상에 맞춰 개봉 및 마케팅 전략을 수립, 실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트렌드에 부합하며 20~30대의 젊은 세대를 영화관으로 이끌 수 있는 시나리오 및 신진 창작 인력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