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더 집요하게 한국 사회를 파고들기를”
2024 한국영화 결산 – 비평
- 참석자
-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철홍 영화평론가,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박꽃 이데일리 문화전문기자(가나다 순)
- 진행
-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이승재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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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영화 결산 – 비평
그렇다면 붕괴되는 시스템 위에서 새로운 것을 구축하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영화 산업의 구조가 무너진 건 새로운 세대의 출연 때문이다. 이 세대는 TV도 안 보고 모든 것을 유튜브로 본다.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시스템은 큐레이션이다. 내가 고르지 않아도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것을 시스템이 추천을 해줘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이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아는 분야에 더 세밀하게 더 깊이 천착한다. 캠핑을 해도 끝까지 판다는 식으로, 자기 취향을 완전히 저격하는 콘텐츠를 더 깊이 있게 보고 있다. 영화가 이런 취향을 저격해서, 장재현 감독처럼 심도 깊은 취재로 그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두루뭉술한 하이 콘셉트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세대에게 먹히지 않는다.
‘취향의 깊이와 다양화’야말로 올해 관객의 트렌드, 확실한 테마로 봐야 한다. 올해 영화 관련 데이터를 쭉 뽑아보면 가장 인상적인 게 일본 애니메이션 <룩백>의 흥행이다. 러닝 타임 57분짜리 이 애니메이션이 누적 관객 수 23만 명을 넘겼다. 나도 개봉관에서 봤는데, 20대와 10대 여성 관객이 엄청나게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이른바 ‘아저씨 세대’에게 <룩백>이 뭔지 아냐고 물어보면 많이들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때문에 누군가는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시장을 크게 흔들지는 못해도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고 그들의 취향을 아주 깊이 있고 다양하게 만족시키는 영화들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올해의 데이터를 보면서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영화가 전반적으로 ‘벌크 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 HOPE>를 주목하고 있다. 일단 제작비 사이즈가 크다. 450억에서 500억 정도라고 알고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월드 와이드 규모로 통하게 된다면, 한국영화는 그 사이즈로 벌크 업이 될 수 있다. 더불어 한국 독립영화도 벌크 업이 되어야 한다. 독립영화도 30억, 40억 규모의 영화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규모의 영화를 하면 결국 상업영화로 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지금 독립영화 인건비를 생각해봐라. 전반적으로 판을 다시 짜서 30억, 40억 대의 독립영화가 나와야 <룩백>처럼 손익분기점을 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금 어떤 관객이 4억짜리, 8억짜리 독립영화에 1만5000원을 내고 보겠나. 일단 영화 미술, 이미지의 퀄리티에서 상업영화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이 장 뤽 고다르처럼 새로운 영화적 형식과 미학으로 판을 뒤집는 것도 아니다. 소재는 늘 비슷비슷하지 않나. 전반적인 벌크 업을 꼭 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받쳐줘서 사이즈를 더 키워야 하는 것이다.
한국영화 산업 내부에서는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좋다. 이럴 때 뭔가 해야 한다. 과거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더글라스가 도쿄에 와서 타카쿠라 켄과 함께 찍었던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랙레인>을 예로 들 수 있다. 톰 크루즈가 한국에 와서 송강호와 영화를 찍는 식으로, 다소 위험이 있더라도 벌크 업을 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예전엔 100억 대, 200억 대 영화가 굉장한 대작이었지만 지금 그 정도로는 고만고만한 영화만 만들어진다. 판을 뒤집으려면 벌크 업을 시켜서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30억·40억·50억 대 영화들을 찍어야 한다. 그게 기본 사이즈가 되어야 새로운 한국영화가 나온다. 정책적인 면에서도 영진위의 제작지원금 4억 원 정도는 너무 작다. 4억으로 찍으면 장편영화 한편을 대략 3일 만에 찍어야 한다. 방에서만 찍고.(웃음) 그렇게는 안 된다. 이젠 바꿔야 한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다 바꿔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지금 한국은 “극장 회복이 왜 이렇게 더디냐”, “미국은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데”라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건 미디어 환경의 차이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미국에서 한 가정이 유료 채널, 유료 TV를 보는 데 쓰는 돈이 한 달에 50달러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미국인들은 그 50달러 시장을 놓고 케이블을 끊고 넷플릭스나 다른 OTT로 넘어갔다. 즉, 미국인들이 유료 채널, 케이블에 쓰던 50달러를 OTT에 쓴다는 것은 극장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닌 거다. 그들은 극장에 쓰던 돈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한국인들은 유료 TV에 그렇게 돈을 쓰지 않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IPTV라든가 케이블 TV에 가입을 하면, 인터넷 결합 가입을 통해서 무료로 몇십 개의 채널을 봤다. 그러다가 지금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의 OTT에 돈을 내게 된 거다. 결국 콘텐츠 소비에 쓰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그 돈이 극장에서 OTT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극장이 버티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기존의 전략으로는 안 된다. 콘텐츠와 플랫폼 모두 혁신해야 한다. 지금처럼 밋밋한 멀티플렉스, 어디 가든 브랜드와 객석 의자만 다른 식인 극장 시스템은 이제 효용성을 다했다. 모든 것을 다 바꿔야 되는 것 같다. 그게 불가능하다 싶으면 정책적인 비전과 실행력을 가진 주체가 확실히 개입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돌 맞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세계 영화 시민으로서 지금 한국영화 때문에 다른 영화들을 다양하게 볼 수가 없다.(웃음) 영화 <아노라>를 보려고 했다가 극장에서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며칠 후 저녁에 시간이 나서 영화를 저녁에 보려고 했는데, 극장 상영 시간표가 언제 그랬는지 아침으로 바뀌어 있는 거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인데도 이렇다. 보기가 어렵고 아예 상영조차 하지 않는 극장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잘되면 뭐하나. 우리는 지금 세계 영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데. 부끄러운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작은 영화들을 다 죽인다는 의견에 제작자인 최용배 청어람 대표가 그건 산업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받아쳤다. 2000년대 중반 다양성 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대두되었을 때 한국영화인들이 역시 산업을 몰라서 그런 얘기를 한다는 식으로 대처했다. 극장을 이렇게 만든 건 사실 한국영화인들이다. 한국영화인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데 지금 이 상황이 실은 자기들이 만든 질서라는 말이다. 1990년대에 왜 영화 잡지가 잘되었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서울에서 7, 8만 관객이 들 정도로 흥행한 이유도 있다.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사실 볼 만한 한국영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영화 이외의 영화들을 다루는 영화 잡지가 잘되고, 좋은 외화들을 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리스펙트도 커졌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영화를 리스펙트하지 않는다.
대내외적으로 영화에 대한 리스펙트가 정말 많이 떨어졌고 대체품도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영화감독이라고 하면 뭔가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그랬는데, 이젠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서 더 리스펙트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쯤에서 성공한 유튜버들을 분석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들이 어떤 콘셉트로 뭘 하고 있는지 그 전략을 분석해서 영화 콘텐츠에 적용한다면 관객들의 호응이 있을 것 같다. 그 예가 <파묘>였다는 생각도 한다. 장재현 감독은 말하자면 엄청나게 자료 조사를 많이 하고 분석한, 일종의 ‘굿 유튜버’였다고도 볼 수 있다.
대중은 시대를 반영하는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한다. 리스펙트가 어디서 나올까? 내가 재미있다고 느껴야 리스펙트가 되는데, 그게 다 OTT에서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피지컬 100>이나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 요리사>) 이 시대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취향과 소득 수준이 과거 세대보다 많이 올라가 있고, 내가 집이 없어도 좋은 식당 가서 밥 사 먹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지 않나. 식문화도 고급으로 발달하고 여가 시간과 저녁이 있는 삶이 유지되면서, 운동해서 내 몸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도 젊은 세대에게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대기업 직장인들을 보면 오전 6시에 집을 나가서 짐에서 운동하고 출근하는 세대가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의 니즈를 건드려주는 기획이 OTT에서 나온다. 이 재미있는 <흑백 요리사> 12부를 연달아서 집에서 보고 있는데, 언제 영화관에 가겠나? 그러니까 새로운 세대의 관심과 취향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리스펙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극장에 가는 게 재미없는 거다.
아무래도 작품 내적인 이야기보다 외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이 또한 올해의 경향이라고 할까. 그렇더라도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들 안으로 조금은 더 들어가 봐야겠다. 한국영화는 늘 장르적으로 강세를 보여 왔는데, 올해 그 활약을 인정해줄 만한 장르 혹은 장르적으로 활약한 영화들이 있을까?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주요한 장르나 새로운 시도까지 한 장르는 없었다고 보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파일럿>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를 다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젠더가 정치보다 더 민감하고 들끓는 에너지인데, <파일럿>이 코미디 장르이자 나름 성수기에 개봉한 영화로서 젠더 스위치를 통한 코미디를 시도했다는 것, 영화 안에 그런 첨예한 이슈를 넣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에 녹였다는 것이 가장 돋보였고 새로운 시도였다. 그 시도가 이 정도로 성공하고 흥행한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나는 지금의 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 특히 할리우드의 PC 주의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경찰이 흑인을 때려죽이는 나라에서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흑인인 게 뭐가 진보적인가. PC 문화 투쟁이 실제 삶과 약간 떠 있는 부분이 많다. 원래의 의도와 달리 정치를 퇴행시킨 면도 있다. 현실은 언(Un) PC한데, 자꾸 PC하게 그리려고 하다 보니 영화의 동력이 약해진다. 한국 독립영화들만 해도 PC 주의 때문에 지나치게 소심하고 착하고 옳은 얘기만 한다.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젊은이들이 만드는 영화들이 이렇게 만들었다가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자기 고민을 엄청 한다. 영화는 사실 살짝 불량식품 같고 도발적인 구석도 있으면서, 기존의 도그마를 공격하는 면이 있어야 한다. PC함이 창작에 있어서 긍정적인 역할만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영화가 밋밋해진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너희들 사는 얘기를 시나리오로 써보라고 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도록 각종 장치를 만들어서 써 온다. 그러니까 영화가 파워풀하지가 않다.
같은 생각이다. <파일럿>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지금 같은 민감한 시대에 젠더를 가져와서 47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것, 그걸 여성 감독이 해냈다는 것 자체는 좋다. 김한결 감독은 상업적 연출 감각이 좋다. 전작인 <가장 보통의 연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선을 잘 안 넘는다. 남자가 봐도 기분이 안 나쁘도록. 그런데 그건 동시에 너무 밋밋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편적인 감수성을 맞추기 위해서 위험을 다 피해 갔다는 것을 알겠고, 그 위험을 피함으로써 그래도 젠더 얘기를 이만큼 했다는 게 대단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나 같은 2030 여성 관객을 극장으로 데려오기에 <파일럿>은 너무 심심한 영화다. 내가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굳이 돈을 내고 보러 갔을까? 김영진 평론가가 말씀하신 것처럼 PC함 때문에 영화가 파워풀하지 않다는 건 이런 측면인 것 같다. 영화가 몸을 많이 사리게 되는. 그 안에서 감독 개인이 어떤 감각이 있어서 조금씩 재미를 구축할 수는 있겠지만 확실하게 논쟁을 일으켜서 더 크게 붐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파일럿>을 보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다.
문학의 경우 한강 작가의 소설이 진짜 선을 많이 넘는다.(웃음)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선을 막 넘지 않나. 굉장히 읽기 힘든 소설이다. 그런데 그 영향이 많이 남는다. 한국영화는 어느 순간 그런 담대함이 없어졌다.
그렇게 둥글둥글해진 게 사회적 분위기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투자배급사들이 안정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그 덕분에 결국 2000년대에 한국영화 산업이 급성장을 한 부분도 있다. 많은 영화 작가들과 좋은 영화들이 나왔고, 산업적으로도 관객이 2억 명에 도달할 정도로. 시장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루틴한 흥행 법칙 같은 것들이 생긴 거고.
100억, 200억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 시장은 미학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별로 실효성이 없다. 오늘 대화의 초반에 올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한 40대들이 젊은 감독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30대 감독이 나와야 한다. 30대 초반의 완전한 ‘똘아이스러움’으로 무장한 감독들이 시장에 어떤 영화를 딱 던졌는데, 그게 잘되면 산업은 또 이게 되나 보다 하면서 없는 용기도 내게 되어 있다. 그런 감독들을 데려가 영화를 만들게 되고. 산업이 바뀌고 ‘NEW’한 시도가 나오려면 30대가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40대만 되어도 여기 차이고 저기 차이다가 모서리가 둥글둥글해져서 “이런 거 원하시죠?” 하면서 미리 맞춰 가게 된다. 그래서 벌크 업을 통해 30억·40억 대 영화를 만드는 게 영진위의 중요 과제라고 본다. 매치 펀드를 만들어서 제작비를 적극 지원하고, 그런 작품이 1년에 10편만 나와도 한국영화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영진위의 내년 신규 사업이 바로 그런 영화들을 키우는 중예산 한국영화제작지원 사업이다. 어떻게 적확하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사실 안전을 추구하고 모나지 않은 영화들이 올해 그나마 관객의 취향의 선을 잘 타서 중간 규모 영화로서 어떤 역할을 한 것도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관객 수로 따지면 예전에는 300만에서 500만 정도의 흥행을 한 영화들을 중간 규모 영화로 봤는데, 올해는 여름 시장에서 선전했다는 영화들도 470만 명을 동원한 <파일럿>을 제외하면 100만, 200만 정도(<핸섬 가이즈> 177만, <탈주> 256만)였다. 한국영화를 위해서는 선을 넘는 발상과 개성이 꼭 필요한데, 시장에서는 선을 타고 만들어야 그나마 <파일럿> 정도까지 갈 수 있다는 것도 아쉽다.
얘기 중에 돌출적이라서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 생각난다. <건국전쟁>이다. 다들 보셨나? 그 다큐멘터리는 내가 올해 쓴 영화 칼럼들 가운데 블로그 유입이 가장 높았던 영화다. 거의 모든 영화인이 리뷰도 안 써주고 관심도 안 가졌는데 관객이 117만 명 들었다. 나는 극장에 가서 봤다. 평일 낮 압구정의 상영관에서 머리 뒤통수가 희끗한, 보수를 자처하는 약간 부유한 노년층이 이 영화를 많이 보러 왔다. 원래 영화관에 안 오던 사람들이다. 그 얘기는 작품의 만듦새를 떠나서 이 정도의 도발성이 있어야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이 정도의 도발성이 아니고서는 관객을 극장으로 데려오기 너무 힘들다. <건국전쟁> 상영관 안의 뜨거운 열기를 보면서, 그 희끗희끗한 뒤통수의 무리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영화들이 이걸 이길 수 있나?
결국은 다큐멘터리도 유튜브화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다큐멘터리의 접근 방법이 어쨌든 공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제는 그런 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오히려 공정한 척, 객관적인 척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튜브하고 똑같은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다큐멘터리가 정치적 팬덤과 결합되면서 편향성이 커지고,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담게 되었다.
<건국전쟁> 때문에 다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올해 한국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생각해보면 약 2년 전부터 얘기되었던 게 관객들의 안전 구매 성향이다. 물론 <파묘>나 <서울의 봄>을 보면 시리즈가 아니어서 성공한 전편이 있는 게 아니지만, <범죄도시4>라든가 <베테랑2>를 보면 관객들의 안전 구매 성향이 확실히 강하다.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는 도전적이거나 새로운 작품들보다는 검증된 작품들로 향한다. 그래서 후속편이 잘되는 것 같고. <서울의 봄> <파묘>의 경우는 빠르게 인터넷상에서 바이럴이 되었다. 그렇게 입소문을 탄 영화들을 관람하는 성향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결국 올해 한국영화 시장의 성격이고, 어떤 장르가 가장 눈에 띄었나를 규정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어느 한 장르로 몰려가기보다는 안전 구매 성향에 따라서 영화를 관람하고 선택하는 시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장르적인 특징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올해 새로운 장르적 시도는 그나마 영화 <탈주>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관객들의 성향에 잘 맞게 설계되어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마치 게임을 클리어하듯이 단계별로 난관을 뚫고 직진한다는 테마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비주얼적으로 잘 구현했다. 그런데 여기서 ‘설명하지 않는다’,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의 한국영화는 투자배급사든 감독이든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건 관객들이 싫어할 거라는 전제하에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거두절미하고 직진하는 이야기를 꽤 잘 포맷화해서 만든 영화로서 <탈주>의 시도를 눈여겨봤다. 그 외에는 오랜만에 오컬트 코미디라는 장르의 생존을 증명해낸 <핸섬가이즈> 정도가 손에 꼽힌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영화를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데, 요즘 그런 이야기를 관객이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 영화 가운데 속편들이 많다. <베테랑2>나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과 비슷한 느낌이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커: 폴리 아 되>는 너무 구구절절해서 관객들이 싫어한다고 느꼈다. 관객들은 이미 영화의 세팅을 이해하고 있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안전한 콘텐츠인 거 다 아니까 끝까지 가보는 걸 원한다. 그런데 <베테랑2>를 보면 영화가 계속 빌런을 때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알겠으니까 그냥 때려”라는 거다, 관객은. <베테랑2>에서 우리가 지금 악인을 때리지 못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지점, <조커: 폴리 아 되>에서 조커가 뭔가 행동하지 못하는 걸 구구절절 설명하는 지점들이 관객의 외면을 많이 받았다.
관성적으로 젊은 관객에 대해서만 얘기하는데, 폭을 넓혀야 할 것 같다. 일단 인구 분포가 바뀌고 있지 않나. 실질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이게 대박이 나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가? “중장년층이 많네” 이럴 때 대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항상 관성적으로 극장에 끌어들여야 하는 관객을 젊은 세대로만 생각하는데, <건국전쟁> 얘기도 했지만, 볼 만한 영화를 기다리는 중장년층도 상당히 많다. 실제 대한민국 인구 분포를 보면 이제 그들이 가장 많다. 선거할 때 보면 선거인단에서 4050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 관객 트렌드를 얘기할 때 계속 20대 초반, 초중반에만 치우치지 말고 그들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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