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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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정해진 미래는 없다

한국 극장의 더딘 회복을 바라보며

황동미(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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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DB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은 돌아가신 유현목 감독님 수업 시간이었다. 당시 이미 원로였던 유현목 감독님은 수업 중에 매우 확신에 차서 미래를 예측하셨다.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앞으로 점차 극장은 축소되거나 소멸해 나갈 것이다. 교통 체증에 차를 끌고 나가고 힘들여 주차하고, 다시 이동해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그 과정이 얼마나 번잡하고 귀찮은가? 아마 좀 더 편리하게 가정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극장은 점차 산업 규모가 줄어들 것이다.” 교수님의 미래 예측을 들으며 미욱한 제자였던 필자는 ‘설마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필자가 학교를 졸업한 뒤 영화 업계 언저리에서 일을 하며 보낸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극장은 노장의 예견을 비웃 듯 눈부시게 발전했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했고, 스크린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끌고 나온 동네 주민들을 유인해 고객 수를 늘리겠다는 멀티플렉스의 사업 구상에 맞게 극장은 도심뿐만 아니라 부심지 곳곳에 들어섰고, 극장 사이트와 스크린 수는 계속 늘어났다. 지난 20여 년간의 한국영화 성장은 극장의 성장과 함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한 2020년부터 약 2년여간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엔데믹으로 전환된 이후에 나타난 산업 현황을 보면서, 필자는 노장의 미래 예측을 떠올리며 단지 코로나19 시기라는 특별한 상황의 결과라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인 일련의 과정이 차차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그렇다고 돌아가신 유현목 감독님이 노스트라다무스였다는 신화를 창조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조금이라도 영화 산업에 대해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예측이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 예측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에 서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미래는 정해진 사건이 아니라 지금 행동하는 주체의 행위 결과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 행동이 그 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지금 한국의 극장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의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는 현실은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기이한 현상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미디어 지형 변화라는 사회적 현상의 과정이고, 한국 경제에서 한 산업 섹터가 겪는 상승과 하락 사이클의 과정이며, 따라서 이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따라 영화 산업 전체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데믹 이후 극장 매출 감소와 회복 현황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2023년 한국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극장 매출액과 관객 수, 개봉 영화 편수 추이는 <그림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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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23년 한국영화 산업 결산’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을 살펴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극장 매출은 포화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이 매우 둔하다. 그러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라앉은 매출 규모는 엔데믹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는 2022년 이후에도 코로나19 이전 시기의 규모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극장 매출액은 팬데믹 직전인 2019년도와 비교해 91.2% 회복률을 보였다. 한국은 2019년 대비 2023년 회복률이 86.6%다. 글로벌 기준치를 하회한다. <그림2>와 <표1>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과 팬데믹 이후인 2023년 비교한 결과다. 세계 10대 규모 영화 시장 국가들의 극장 매출이다. 인도, 독일, 프랑스, 중국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에 90% 이상 근접했고, 멕시코는 오히려 성장했다. 이에 반해 미국과 호주, 한국, 일본, 영국 등의 순서로 팬데믹 이전 수준 회복에 실패한 모습이다. 각 나라의 처한 상황과 맥락이 다르기에 이 현상에 대해서 쉽게 비교하며 특정한 결론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글로벌 평균에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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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tatista Market Insights, 2023년 박스오피스 매출 기준 상위 10위 국가

이에 대해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한국은 극장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하지 못했는가? 이와 관련해서 계속 질문을 이어 간다. 한국영화 산업에서 극장은 어떤 지위이고 앞으로 어떤 지위일 것인가?

한국영화 산업에서 극장의 지위

한국에서 영화는 극장영화와 동의어다. 지난 수십 년간, 일상에서 대화할 때 “영화 본다”라는 말을 하면 그 말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말이었다. 법과 제도는 대중의 관습과 사고를 반영한다. 현행 ‘영화와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제2조 1항에서도 영화를 정의하며 극장용 영화로 한정하고 있다.1) 한국영화 산업은 오랫동안 극장 중심의 매출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림3>은 전체 한국영화 산업 매출을 극장과 극장 외 매출, 그리고 해외 매출로 구분해 그 비중을 나타낸 것이고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약 11년간의 자료다. 2023년부터는 통계 기준이 바뀌어서 부득이 2022년까지로 한정했다. <그림3>에서 보듯이 팬데믹 이전까지 한국영화 산업 전체 매출에서 극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을 때는 80%를 넘었고, 낮아도 70% 이상이었다.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에 처음으로 50% 이하로 내려갔으며 이후 회복된 상태에서도 70%에 육박한다.



1) 제2조 1항. “영화”라 함은 연속적인 영상이 필름 또는 디스크 등의 디지털 매체에 담긴 저작물로서 영화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公衆)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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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자료 취합 재구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극장 비중은 매우 높은 편이다. 흔히 OSMU(One Source Multi Use) 또는 윈도 이펙트(Window Effect)라는 말로 하나의 영화 작품이 여러 매체나 플랫폼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영화 산업의 특성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그런 원리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등의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 영화 한 작품은 극장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고 그 이후에 IPTV를 비롯한 작은 규모의 후속 플랫폼과 해외 매출로 산업적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극장이 쪼그라들었을 때, 한국영화 산업 전체가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시기에 극장이 내어준 자리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차지했고, 그 이후에도 극장은 다시 이전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OTT의 약진이라고 불렀다. ‘영화’와 중첩되어 있던 ‘극장’이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분리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이 온전히 팬데믹만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극장과 영화는 동의어 상태, 또는 겹쳐진 상태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팬데믹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속도를 높이도록 강제했을 뿐, 실제로 영화는 극장을 나와서 다른 플랫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이 기존의 사고 틀 안에서만 돌았기에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산업 현황을 명징하게 정리된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1958년을 문을 연 대한극장은 9월 25일 상영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엔 내년 4월 새로운 문화예술공연 시설이 문을 열 예정이다.
극장을 떠난 관객은 어디로 갔는가?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한국은 왜 극장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한 것일까? 여러 진단과 설명이 있다. 관객의 영화 소비 방식이 변화했다고 위의 보고서에서는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극장 가격 인상으로 관객이 부담을 느껴 극장을 덜 찾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과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로 인해, 소비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관객들로서는 지출이 커진 만큼 가성비를 더 따지게 되었다. 극장에 비해 저렴하고 편리한 OTT와 비교해서 굳이 찾아갔으니 그만큼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극대화한 작품이어야만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자연스레 관객으로서는 OTT에서 볼 영화와 극장에서 볼 영화를 구분하게 되었고, 검증된 작품이 아니면 쉽게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흥행이 담보된 영화에는 더욱 관객 쏠림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2)

극장을 떠난 관객이 OTT로 옮겨 간 것도 극장 관객 규모가 축소된 하나의 원인이고, 그에 더해서 극장을 대체할 가성비 있는 대안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다른 요소다. OTT가 극장의 대체재인지 보완제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고 연구3) 중이다. 프로 야구, 프로 축구, 캠핑 등의 레저 스포츠 활동이 극장의 대체재일 것이라는 가설은 매우 설득력 있다. 극장 입장권과 비교해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더 긴 시간 동안 생동감 있는 승부를 즐기며, 응원 등 직접 참여도 가능하고, 더불어서 최근 문화 소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덕질’도 가능한 이 새로운 즐거움에 동참하는 20~30대 여성 팬의 가파른 증가가 프로 스포츠 흥행 돌풍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과거 영화 극장의 열기를 넘어서는 열기를 ‘연뮤덕’들이 출몰하는 대학로 일대 공연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극·뮤지컬 애호가들은 앞서 언급했듯 최근 문화 소비 트렌드의 가장 큰 특징인 ‘덕질’에 몰입하며 N차 관람(여러 번 반복 관람), 시체 관람(숨도 쉬지 않고 관람하기) 등의 용어로 대표되는 충성스런 소비 확장에 거침이 없고, 이는 공연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측건대 가성비와 덕질을 중요하게 여기며 극장을 떠난 20~30대가 야구장, 축구장, 공연장으로 몰려가 새로운 문화 활동을 즐기고 있는 동안 영화와 극장은 그들을 유인할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해서 미래 콘텐츠 주요 소비층인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 세대가 롱폼보다 숏폼을 선호하고 롱폼 콘텐츠를 볼 때, 스킵하거나 배속 시청이 만연하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지난 8월 28일 열린 2024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Gen Z 콘텐트 이용 트렌드 연구’ 결과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초 단위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긴 시간 관람해야 하는 영화뿐만 아니라 OTT 시리즈물도 지루하다는 얘기다.4)


2) 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영화 소비자 행태 조사」 238p. 영화 관람 전 입소문을 확인하거나 평점이 높은 작품을 선택하는 등 즉흥적 관람보다는 계획적 관람을 하는 관객이 더 늘어났다.

3) 이 내용은 영화진흥위원회, 「OTT 산업 활성화가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함의」 참조

4) 김성훈, ‘드라마, 영화, OTT 시리즈의 위기’ 잡지 코스모폴리탄 2024년 10월호

물론 극장은 극장대로 떠나간 관객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특수관이나 고급화 전략이 가장 대표적이다. 환경을 개선해 고가 전략으로 매출을 높이려는 것이다. 매년 전체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극장 좌석은 최근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더해, 극장은 ‘영화’ 관객이 아니라 다른 관객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콘서트 등의 공연 녹화 영상, 스포츠 중계, 드라마 시리즈 상영 등 영화 이외의 프로그램이라도 극장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라면 다양하게 시도 중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와 ‘극장’이 갈라서는 중이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이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 밖에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경제 성장의 부진은 관객들을 소비에 신중하도록 했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숏폼을 즐기며 팬덤에 소속되어 ‘덕질’을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와 공연으로 극장 관객이 떠나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미래 관객은 긴 이야기를 짧게 소비하는 트렌드를 즐기고 있다. 이런 관객들을 잡기 위해서 극장이 잡은 대안은 ‘영화’만이 아니라 그 외의 것이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극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급한 지위의 문화 소비재로 남을 것이다. OTT나 개인용 디바이스를 통한 영상 소비가 해소하지 못하는 고급스럽고 특별한 관람 경험(문화 소비)을 제공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것은 3D나 돌비 애트모스처럼 시각, 청각의 특화이거나 함께 영화를 보며 지적 만족을 채워내는 고급 소비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 산업적 규모의 과소에 대한 예측은 쉽지 않겠지만, 극장 관람의 사회적 의미가 이전과 다른 형태가 될 것임은 예견 가능하다.

극장과 영화가 서로의 손을 놓은 지금, 관객이 극장을 떠난 지금, 그렇다고 약진했던 OTT가 극장을 대체한 것도 아니다. 줄어든 극장 매출을 OTT 납품으로 메워내지도 못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들을 창고 대방출하듯 극장 개봉을 해낸 것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극장이 생기를 잃었듯이, 잠깐 동안 화색이 도는 듯했던 OTT도 최근에는 오리지널이나 시리즈 투자를 줄이고 가성비 좋은 예능이나 스포츠 중계로 방향을 틀었다. 토종 OTT는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 허덕이고, 글로벌 OTT들 역시 성장세 둔화로 인해 쉽게 투자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영화 현장에서는 제작 편수가 줄었고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투자를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현장 스태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영화 산업의 앞날은?

앞서의 질문에서 더 이어 간다면, 한국영화 산업이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쾌도난마의 해법이 필자에겐 없다. 아쉽지만 고백컨대 30여 년 전 노장의 미래 예측을 들을 때의 그 미욱함에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산발적인 아이디어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영화 산업이 겪는 고난의 시기는 반갑지 않지만 겪어야 하는 산업의 재편기다. 이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장기간의 저금리가 불러온 유동성의 축복이 지난 20여 년간 한국영화 산업의 성장을 견인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장은 불가피하게 버블도 함께 가져온다. 최근 일부 배우들을 중심으로 출연료 조정 등의 움직임이 보인다. 투자사들이 투자를 머뭇거리는 행태만이 아니라 구조를 스튜디오 시스템, 산하 레이블 형태 전환 등으로 바꾸어 가는 현실이 보여주듯이 이제 극장을 전제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개념이 기획과 투자 단계에서부터 사라지고 있다. 여러 지식재산권(IP)을 유동적으로 운용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웹소설, 웹툰, 극장용 영화, 시리즈물로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변주되어 제작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한다. 제작과 소비에서 여러 플랫폼을 넘나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영상 콘텐츠의 핵심적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IP 콘텐츠 중 하나다. 가장 핵심적 존재에서 ‘원 오브 뎀’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당도해있고, 현실을 인정해야 지금의 산업 재편기에 제대로 적응해내서 이후 살아남은 콘텐츠, 살아남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현장의 영화인들은 최선의 대응책을 찾아내고 있다. 오히려 과제는 이런 현장의 생존 노력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책과 제도의 미비다. 현장 영화인들은 방송과 OTT, 극장용 영화와 웹 드라마, 숏폼 콘텐츠까지 가리지 않고 기획하고 제작하고 관객과 만나려고 노력하며 지금의 산업 재편기를 살아남으려 발버둥인데, 방송법과 영비법으로 나뉘고 정책 기구마저 나뉘어서 서로 업무 영역도 정리하지 못한 정책 당국은 이 시기를 태평스레 보내고 있다. 극장에서 분리되어, 여러 플랫폼으로 확장한 영화의 새로운 개념을 정리하고 이를 법적, 제도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 현실에 맞춘 새로운 지원 정책, 지원 기구와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한다. 춘궁기에 현장 영화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보리 석 되’는 무엇일지 궁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