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콘서트 필름, 영화인가 아닌가
- 글
- 차우진(음악산업평론가)
Opinion
2024년 7월 31일, 블랙핑크의
세븐틴도 8월 14일 콘서트 필름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시네마스>를 공개했다. 이 영화는 4월 27일과 28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된, 같은 이름의 콘서트를 영상화했다. 특히 이 영상은 360도 카메라와 시네마틱 카메라로 촬영해 전체 무대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270도 파노라마가 가능한 스크린X 혹은 모션 좌석과 효과를 갖춘 4DX와 울트라 4DX 상영관을 통해 관객은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공연을 경험하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또한 콘서트 필름은 단순히 공연을 스크린에 옮기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스크린X 등 체험형 공간에서 관객은 아이돌 그룹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하거나, 영화용 굿즈를 구매하면서 N차 관람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실감은 콘서트 필름에서 중요한 요소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첫 번째 가상현실(VR) 콘서트 필름도 개봉했다. 메타 퀘스트를 착용한 관객은 VR 환경에서 뮤직비디오와 같은 배경 안에 들어가 멤버들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을 체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단독 상영되었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시작으로 휴스턴, 시카고, 뉴욕 등 5개 도시에서 추가 개봉되었다.
영화 팬과 음악 팬의 차이콘서트 필름의 극장 상영이 K-팝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테일러 스위프트다.
비욘세의 <르네상스: 비욘세 무비> 또한 중요한 사례였다. 12개국, 39개 도시, 56회 공연으로 진행된 <르네상스 월드 투어>의 실황을 담은 이 영화 역시 전미 박스오피스 순위 1위에 올랐고, 팝콘 및 콜라 세트 판매량도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콘서트 필름은 음악 팬들에게 공연을 대신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K-팝 팬들은 응원봉을 들고 영화관에 입장하고, 좌석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은 이미 공연장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경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인스타그램과 틱톡에는 아티스트의 응원 도구와 함께 관람 사진을 인증하는 것들이 유행이 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더 크게 흥행하는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팬들 사이의 유대감이 커진다는 점이다.
음악은 애초에 오프라인 경험이 중요한 장르다. 콘서트에서는 아무도 관람하지 않는다. 콘서트는 경험재고, 여기서 음악은 아티스트와 팬을 이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에 이러한 오프라인 경험이 중단되었다. 극장 상영처럼 콘서트는 모두 취소되었지만, 음악 업계에는 넷플릭스가 없었다. 공연뿐 아니라 이벤트, 팝업, 팬미팅과 같은 오프라인 경험이 모두 사라지면서 팬이든 기획사든 이 경험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온라인 콘서트나 메타버스는 좋은 대안처럼 보였지만, 그걸 제작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금방 증명되었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콘서트의 수익화가 더 어렵다는 점이었다. 온라인 콘서트는 오프라인 콘서트를 대체하지 못한다. 오히려 온라인 콘서트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콘텐츠였다.
그리고 팬데믹이 끝나자 콘서트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경쟁적으로 그동안 멈춰 있던 공연이 줄기차게 이어졌고, 티켓 가격도 계속해서 올랐다. 처음엔 팬들도 호응했다. 보복 소비처럼 그동안 못 간 콘서트를 예매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높아진 콘서트 티켓 가격이 문제가 되었다. 팬들의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콘서트가 매진될수록 티켓 가격도 떨어질 줄 몰랐다. 어떤 팬들은 힘겨워했고 어떤 팬들은 슬퍼했으며 어떤 팬들은 분노했다. 아티스트가 나서서 팬들의 마음을 달래줬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이때 콘서트 필름은 적은 비용으로 관객들에게 콘서트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한편 극장의 입장에서도 콘서트 필름은 수익성이 보장된 영화였다. 팬데믹이란 환경적 요인에 더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극장의 경쟁은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극장의 수익을 어렵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려면 당연히 극장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극장에 가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감독이나 배우의 팬들이 극장에 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음악 팬들이 극장에 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음악 팬들이 아티스트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게 음악과 영화의 차이고, 이 차이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영화 팬들과 달리 음악 팬들은 아티스트를 따라 이동한다. 콘서트 필름의 극장 상영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출현했다.
콘서트 필름에 대한 음악계와 영화계의 관점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일단 음악계에선 대규모 팬덤이 없는 아티스트의 경우는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다. 영화적으로 말하자면 ‘블록버스터’만 흥행하는 셈이다. 콘서트 필름을 제작하는 데에는 의외로 비용이 적게 들 수 있다. 그래서 제작의 허들은 낮지만, 정작 흥행의 여부는 팬의 규모에 정비례한다. 영화는 입소문이나 리뷰, 추천 등 여러 요인들이 흥행의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은 다르다. 본인이 팬이 아닌 아티스트의 콘서트 필름이라면 굳이 극장에 가서 볼 이유가 없다.
영화계에서는 콘서트 필름이 극장의 대안 모델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배급사와 극장의 관점일 뿐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선 상영관이 줄어들거나 뜻밖의 경쟁자가 생긴다고 볼 수도 있다. 음악과 영화가 극장이라는 장소를 공유하면서 예상 밖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콘서트 필름의 성공 사례는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와 배우와 감독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질문을 바꾸는 일일 수 있다. 콘서트 필름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이것을 ‘영화’로 보느냐 아니면 영화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판단과 평가의 기준이 달라진다. 나로서는 음악 콘서트 영화를 영화의 형식을 빌린 ‘실감형 콘텐츠’라고 정의하게 된다. 핵심은 실감, 체험, 몰입이다.
인게이지먼트와 인터랙티브누구나 알다시피 지금은 기술의 특이점이 오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지만 그 밖에도 여러 기술들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사운드 시스템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 청각은 가장 속이기 쉬운 감각이다. 예민하다고도 할 수 있다. 소리 감각만 있을 때 우리는 공감각이 왜곡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사운드 효과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파도 소리는 실제 파도가 아니라 넓은 판에 콩을 담아 움직여 내는 소리다. 소리야말로 우리를 순식간에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는 안내자다. 돌비와 소니는 이런 효과를 기술적으로 심화해 애트모스, 360 사운드 등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사운드 효과는 VR 환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이런 기술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몰입형 콘텐츠 환경이다. 극장도 끊임없이 사운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며 발전했다. 음악 콘서트 필름과 극장이 쉽게 결합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몰입형 환경은 미디어의 발전과도 밀접하다. 기술은 미디어를 몇 단계 발전시키고 있다. 매스미디어가 소셜미디어로 분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제는 미디어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은 대표적인 소셜미디어인데, 엄밀히 따져보면 인스타그램은 카메라이기도 하고, 이미지 편집 툴이기도 하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런저런 기능이 결합되면서 단지 하나의 미디어로 정의하기 어렵게 되었다. 페이스북, 틱톡, 인스타그램 등은 모두 비슷한 기능을 가진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미디어 변화는 궁극적으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터랙티브 미디어라는 범주에는 단순히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게임, 영화, 음악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거의 모든 미디어는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인터랙티브는 필연적으로 이머시브, 몰입형 환경을 지향하게 된다. 상호작용을 위해선 사용자가 그 콘텐츠에 다이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콘서트 필름을 다시 보면, 이것은 영화라기보다는 몰입형 콘텐츠의 초기 형태일 수 있다.
블랙핑크든 테일러 스위프트든 결국 그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사람들은 아티스트의 팬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팬은 무조건적으로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팬은 존재가 아니라 상태다. 아티스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콘텐츠에 빠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단순히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응원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그들과 쉽게 동화된다. 좀 더 들어가면, 팬들은 아티스트와 가치관과 태도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들과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걸 위해 필요한 게 뭘까? 바로 인터랙션,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인게이지먼트, 결속력이다. 그리고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결속력이 높이는 수단은 콘텐츠다. 콘서트 필름은 바로 이 관점에서 중요하다. 팬 인게이지먼트를 높이는 데 인터랙션은 필수다. VR 및 360 카메라·사운드 같은 기술은 그래서 중요해진다.
소셜미디어는 스마트폰이란 환경에서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의 판매량은 55억 대를 기록했다. 55억 개의 스마트폰이 작동한다고 했을 때, 그 각각의 스마트폰은 라디오였다가, TV였다가, 극장이었다가, 메신저이자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였다가 경험을 기록하는 메모장이 된다. 그러니까 55억 개의 작은 미디어 혹은 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매스미디어의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모두가 개별적인 미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콘텐츠의 생산자는 프로모션이 아니라 팬덤 전략이 더 중요하고 필요해진다. 개인 미디어 환경에서는 모든 콘텐츠가 개인화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팬을 얻는 것이 누구나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팬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느냐보다 수에 관계없이 얼마나 몰입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콘서트 필름은 바로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래서 여러 기술적 실험이 반영된다. 극장도 팬이 필요하다. 관객들이 그 극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을 때, 그 극장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된다. 지금은 모두가 팬을 필요로 하는 시대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도, 극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콘서트 필름의 극장 개봉은, 관점은 조금 다를지라도, 영화계와 음악계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공연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극장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콘서트 필름을 세부적으로 구분하고, 거기서 영화계가 배워야 할 점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콘서트 필름을 ‘영화’로 정의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팬덤은 단지 K-팝의 동력은 아니다. 콘서트 필름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영화의 어법이나 연출이 아니라, 여러 미디어 환경이 공존하는 혹독한 상황에서 콘텐츠 비즈니스의 비전에 대한 힌트다. 영화 개봉 전 치열하게 예매하는 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콘서트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일, 관련 제품을 사고, 지인들을 데리고 극장에 오고, 똑같은 영화를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극장에 들어가는 일 등…. 팬들의 헌신이야말로 콘서트 필름의 성공 사례를 통해 배워야 할 지점이다. 그래야 관객의 취향, 미디어 기술, 오프라인 공간과 이벤트의 형식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팬과 좀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몇 번을 강조해도 좋다. 이 모든 일의 핵심에는 팬이 존재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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