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더 집요하게 한국 사회를 파고들기를”
2024 한국영화 결산 – 비평
- 참석자
- 김영진 영화평론가, 김철홍 영화평론가,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박꽃 이데일리 문화전문기자(가나다 순)
- 진행
- 김혜선(웹매거진 한국영화 편집장)
- 사진
- 이승재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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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영화 결산 – 비평
올 상반기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23년은 2022년보다 관객 수가 10% 정도 증가했고, 팬데믹 이전의 65%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2024년 상반기는 상당히 뜨거웠다. 2023년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의 효과가 해를 넘어 이어졌고, <파묘>와 <범죄도시4>까지 천만 영화가 무려 2편이나 나왔다. 상반기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도 879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면서 함께 시장의 규모를 키운 면이 있다. 하지만 하반기는 상반기의 뜨거움이 무색하게도 달을 거듭할수록 관객 수가 급감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24년의 전체 결산 수치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결코 2023년보다 낫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묻고 싶다. 올해 한국영화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경향은 무엇일까?
올해 한국영화의 경향을 추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 수 자체는 물론이고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너무 줄어들었다는 것을 명확히 체감한 한 해였다. 키워드를 굳이 꼽자면 ‘침체’라는 단어를 안 쓸 수 없겠다. 확실히 사람들이 극장에 관심이 없다. <파묘> <범죄도시4> <베테랑2> 정도의 흥행으로 경향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다들 비슷하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키워드는 ‘지리멸렬’이다.
가슴 아프다. (웃음)
왜 가슴 아픈가. 망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거 아닌가. 차라리 더 장렬하게 망하는 게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가슴도 안 아파한다는 게 요즘 젊은 관객의 분위기인 것 같다. 30대로서 또래 친구들과 얘기할 때, 어떤 영화를 두고 친구들이 재미있냐고 많이 물어온다. “1만5000원 주고 극장 가서 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영화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미련 없이 바로 안 간다. 그러니까 정말 가슴 아파하지도 않는다. 한국영화가 재미없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2010년대에는 일본영화계가 한국영화계를 부러워했다. 한국영화는 주류영화든 독립영화든 왜 이렇게 잘 되냐면서. 그런데 요즘 뭔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야심은 일본영화 쪽이 훨씬 크다. 한국영화는 그게 없다. 산업적으로는 망할 수 있어도, 회복력이 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젊은 한국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를 보면 과연 새로운 것을 만들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은 이미 하마구치 류스케나 미야케 쇼 같은 감독들이 등장해서 활약하고 있지 않나. 그들은 과거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열심히 챙겨주고 싶은 신인 감독들이었다. 이제는 모시기 힘든 감독들이 되었지만. 그게 불과 7, 8년 전이다. 한국영화는 상업영화뿐 아니라 독립영화 쪽도 지리멸렬이다. 나는 이 점이 심각하다고 본다.
올해의 키워드를 말해보자면 ‘불황의 고착화’, ‘뉴노멀의 노멀화’다. 코로나19 이후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를 통해서 영화판 자체가 새로 포맷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그 점을 부정했던 것 같다. 우리는 2019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포맷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젠 고착화되었다. 앞서 팬데믹 이전으로의 회복률이 65%라고 했는데 그걸 지키는 게 중요하지, 넘어서는 회복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올해 상반기에 <파묘> <범죄도시4> 같은 흥행작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흥행작들의 몰아주기 식 관객 동원이 있을지언정 중박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객의 관람 패턴도 바뀌었고. 중급 영화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투자배급 분야에서 산업적으로 대응을 잘 못하는 부분과 관객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다. 이는 불황의 신호다. 실은 이미 불황의 터널에 들어와 있는데 인정하지 않았을 뿐, 이미 한참 동안 그 터널 안을 달리고 있다.
나는 한국영화가 위기라는 얘기를 이런 좌담에서 대략 3, 4년마다 한 번씩 했던 것 같다. 1990년대부터 한국영화는 5, 6년을 주기로 위기였다. 2007, 2008년에도 한국영화의 거품이 꺼져서 완전히 망했다는 얘기들을 했다. 그러나 한국영화 시장은 작지만 탄력성이 높다. 잘못하고 부진했던 앞 세대는 가고, 뒤 세대가 올라오는 모멘텀은 생길 것이다.
올해 복귀한 한국영화 흥행 감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가운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 안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감독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 <파묘>의 장재현 감독은 80년대생이고, <파일럿>의 김한결 감독도 그렇다. <탈주>의 이종필 감독, <시민덕희>를 만든 박영주 감독도 모두 80년대생이다. 그런 이들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다. 그게 희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이름들의 등장이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
올해 한국영화들의 경향에 대해 떠올려보자면 과거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나 <명량>(2014) 같은 천만 영화들이 등장했을 때 ‘리더십’이 화두였던 것처럼 최근에는 ‘참 직업인’에 대한 영화들이 많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향 때문인 것 같다. <파묘>의 직업 세계도 그렇고, <시민덕희>도 보이스피싱 관련 경찰들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파일럿>이나 <하이재킹>도 결국 승객을 지키기 위해 비행을 하는 파일럿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직업 정신의 필요, 여러 사회적 재난 때문에 항상 부재하다고 느끼는 리더십의 부분을 대신해주는 영화들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다. <서울의 봄>도 군인이라는 직업인에 대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흥행을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그나마 이런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리더십에 책임이 있는 자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만 다하면 영화 안에서 제공되는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방식의 세팅이 되어 있다.
나는 정치적인 상황이 한국영화와 관련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여러 상황이 가장 좋았다. 그때 매우 창의적인 작품들도 많이 나왔다. 그다음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한국영화는 대부분 지난 정부의 영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영화가 많았다. <변호인> 같은. 문재인 정부는 사실 문화적으로는 무능했고, 한국영화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한국영화의 암흑기지만, 이 흐름이 바뀌는 모멘텀이 다시 올 거라고 본다.
지금 한국영화의 개봉 상황을 보면, <서울의 봄>이 2023년 11월에 개봉을 해서 천만 관객을 넘겼고, <파묘>는 2024년 1월에 개봉해서 천만 영화가 되었다. <범죄도시4>는 여름 시장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패턴의 여름 블록버스터라고 하기는 어렵다. 즉, 개봉 시기나 장르에 있어서 예외적인 작품들이 천만 영화가 되었고, 명절 성수기나 여름 성수기의 텐트폴 영화들은 사라졌다. 2023년 여름 텐트폴 영화들의 실패 때문에 더 그렇게 된 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관객 트렌드, 극장의 계절적 흥행 패턴이 사라지고 있다. 이 점을 어떻게 바라보나?
그 역시 불황의 특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름이 성수기인 이유도 결국 여름휴가철에 지갑을 열게 되어 있고 좀 더 즐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즐길 것 중의 하나가 영화였던 건데, 이런 대목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은 영화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많이 식었다는 신호다. 지금 시장이 비수기여서 안 되고 성수기여서 잘되는 게 아니지 않나. 영화 자체가 폭발력이 있으면 보긴 하지만, 추석이나 설에 무조건 영화를 봐야겠다는 인식은 많이 사라졌다. 결국 영화가 대중적인 오락, 핵심적인 유흥거리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느낌이다.
극장이 강력한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 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더 많이 보니까. 개인적으로 우리 집도 각자 취향이 달라서 넷플릭스를 봐도 나, 아내, 딸 다 각자 방에서 본다. 옛날처럼 가족 중 한 명이 채널 독점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텐트폴 영화의 위력 자체도 과거에 비해 약해질 수밖에 없고. 할리우드조차 마찬가지다. 마블 영화들이 관람료가 아깝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퀄리티가 하락했다. 한국영화는 2022년부터 여름 시즌을 장악하려고 나왔던 몇몇 영화들이 계속 실패했다. 이건 틀림없이 된다고 했던 최동훈의 <외계+인> 1편도 여름 시장에 나와서 참패했다. 이미 기획과 퀄리티에 문제가 있는 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시기적으로도 안 좋고 극장이라는 플랫폼의 상태도 안 좋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다. 옛날처럼 추석 때 온 가족이 모여서 “오늘 그 영화 보러 가자” 하는 식의 관람 행태는 유지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정말로 명절 시장이 완전히 사라졌냐면 그렇지는 않다. <베테랑2>가 어찌되었든 전형적으로 추석 때 버프를 받은 작품이지 않나. 관객 수가 팬데믹 이전에 비해 60% 정도 회복했다고 볼 때 1100만 정도를 최고치로 보면 (<베테랑2>가 동원한) 700만 정도, 즉 60% 정도까지의 시장은 아직 있다. “볼 만 하대”라는 입소문이 돌면 그 정도는 관객이 든다는 얘기다. 60%까지는 해줄 수 있는 작품이 때에 맞춰서 나올 수 있다고 보고, 그 정도 시즌은 살아 있다고 보나,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즐기는 문화의 우선순위에서 영화가 후방으로 밀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극장의 문제와 콘텐츠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OTT가 뜨면서 극장도 타격을 입었지만 방송국도 신뢰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방송국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재미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영화관에 걸리는 콘텐츠가 요즘 많이 쓰는 말로 가성비가 떨어지니까 관객이 그 리스크를 안으려고 하지 않고, 일단 OTT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많아졌다. 사실 그게 산업적으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불안하겠지만, 콘텐츠 입장에서 봤을 때는 더 건강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수기이기 때문에 좋은 성적표를 받으면, 비수기에 나온 영화는 당연히 안 될 거라는, 뭔가 이미 공부 못하는 애를 키우는 느낌이지 않나. 그렇다면 그건 해당 영화 입장에서는 상당히 섭섭한 일이다. 얘는 천만 영화로 키우고 얘는 떼우기용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면 그건 건강한 게 아니다.
나는 항상 20대 대학생인 딸을 바로미터로 삼는다. 딸이 영화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파묘>를 봤다고 해서 뭔가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나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일반적인 기획 루트를 따라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들은 각자 기획의 고유성이 있었다. 한국영화 산업에서 늘 찍어내는 스타일로 만든 영화가 아닌데 터졌다. 대체로 천만 영화들이 그렇기는 하다. 반면에 “이건 천만이 될 거야”라고 했던 영화들은 여지없이 실패했다. 기획에서 문제가 있고 요즘 관객의 니즈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관성대로 가는 부분이 많았다.
<파묘> 촬영 전에 장재현 감독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파묘>의 흥행 결과까지 본 후 든 생각은 프로페셔널리즘으로 표현된 것과 거의 동일한 니즈가 있다. 즉, ‘찐’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르포 정도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정말 찐으로 구현해주는 사람과 이야기에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보러 가는 것으로 반응했다. 장재현 감독을 만났을 때 온 동네 무당과 묫자리 보는 분들을 다 만나고 다녔고, 선릉에 있다는 역관으로서 가장 유명한 분과의 만남이 어땠는지 정말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기자보다 더 취재를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관객은 이제 그 정도 데이터가 쌓여서 나온, 고유성이 있는 영화에만 반응한다. 그게 최근 관객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2010년대 천만 영화들은 독특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서 유명 흥행 감독과 유명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마케팅비를 쏟아 부어서 제작비가 100억 원대에서 200억 대가 되는 전형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국형 텐트폴 영화들이 되어 주로 성수기 때 개봉을 해서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식이었다. 그러면 관객 수는 천만을 넘어가고, 그게 아니어도 최소한 손익분기점은 넘어갈 수 있었다. 안일한 기획이었다. 그런 식의 한국형 하이 콘셉트 무비들이 여러 편 나왔는데, 그 정점이 <신과 함께>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팬데믹을 겪으면서 관객이 변했고 관람 패턴도 변했다. 코로나19 이전에 기획되어서 코로나19 이후에 개봉을 한 영화들은 더 이상 관객들이 원하는 류의 영화들이 아니다. 그런 영화들이 흥행할 수 있는 시장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영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올해 관객에게 외면을 받은 기성 감독들이 최동훈·김태용·추창민·오승욱·허진호 감독 등이다. 허진호 감독은 다소 예외라고 보지만 <외계+인> 시리즈의 최동훈 감독이나 2023년 여름 개봉한 <더 문>의 김용화 감독처럼 처음부터 천만 영화를 예상했던 감독들이 특히나 엄청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형 ‘하이 콘셉트 무비’, ‘한국형 텐트폴’을 만들 수 있었던 상업 작가들이 한국영화 산업을 키우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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