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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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영화산업의 위기,
젊은 창작자가 필요하다

이지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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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화산업의 전통적인 가치사슬이 상쇄되고 있다. 영화가 돌이킬 수 없는 소멸의 길로 갈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걱정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범죄도시3>(2023)와 <서울의 봄>(2023)이 나란히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 2월에 개봉한 <파묘>(2024) 역시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모처럼 높아진 한국영화의 상승세를 바라보며 여러 상념이 든다. 영화산업이 계속될 것인가? 많은 사람이 현 상황을 비관한다. OTT 플랫폼이 영화계에서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대중들의 문화소비 습관은 이미 크게 바뀌었다.

공룡처럼 예술을 구현하는 영화감독의 시대는 갔다. 영화계는 새로운 트렌드를 리드할 신선한 창작자의 등장을 기다린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여건이 마련되기 어렵다. 되짚어 보면 영화산업이 성장한 지점마다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젊은이들이 존재했다. <살인의 추억>(2003)의 봉준호, <범죄의 재구성>(2004)의 최동훈 등 2000년대 초반 우리 영화계에는 장르적인 분위기를 지향하는 신진 연출자들이 대거 나타났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바로 그 흐름의 복귀인지 모른다.

영화의 역사에서 몇몇 비슷한 장면들을 떠올린다. 먼저 1950년대 라디오 연속극(soap opera)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의 미국이다. 당시 영화계는 TV 시리즈와 경쟁하고 있었다. 커다란 스크린과 비교되는 TV의 작은 화면은 원칙적으로 극장과 지향점이 달랐다. 영화의 수익 모델이 영화관의 티켓판매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면, TV 연속극은 장르의 명칭처럼 ‘시청자가 비누(soap)를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즉, 광고와 연계되어 있었다. 애초에 TV는 대중을 바라봤고, 영화는 미학적인 담론을 성찰했다. 그러니 텔레비전이 등장하던 시기에 영화가 살아남았던 것은 특정 노력의 아이디어와 연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영화감독들은 더 탐미적으로 작업했다.

그리고 195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영화계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나 클로드 오탕 라라 같은 기성세대 감독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젊은 세대가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조감독 생활을 거쳐야 했다. 그렇지만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알랭 레네 같은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20대 비평가들이 나타나 기존 질서에 반항했다. 그들은 새로 생긴 TV 플랫폼이 더 많은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국립영화센터(CNC)가 마련한 보조금 시스템을 이용해 그들 각자는 저예산의 작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앙투안 드 베크의 정리에 따르면 1957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 국내에서 신진 감독들이 만든 장편영화의 수만 250편 이상이었다. 당대 감독의 수가 150명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공 비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치명적인 숭배의 대상이 됐다. 스스로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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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한편, 1970년대 미국에서는 ‘뉴 할리우드 시네마’가 나타났다. 장르적으로 뚜렷한 색채를 지닌 신진 감독들이 당시 대거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25살에 만든 <결투>(1971)를 살필 수 있다. 이 작품은 처음에 저예산의 가벼운 TV 영화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재촬영을 포함해 총 16회의 촬영으로 완성된 스필버그의 이 데뷔작은 크게 성공했다. 1971년 미국의 TV에서 방영된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영화는 1972년에 유럽의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십 대의 스필버그는 이후 <슈가랜드 특급>(1974)과 <죠스>(1978)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인기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조지 루카스 역시 당대의 슈퍼 루키 중 하나였다. 그는 장르적으로 SF시장에 몰두했는데, 그의 데뷔작 (1971)은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영화였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이 흥행했다면 현재 미국의 SF 판도가 달라졌을 거란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려올 정도로 그의 첫 작품은 작풍부터 <스타워즈> 시리즈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실패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목표한 바를 향해 나아갔다. 그가 7년 후에 완성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1978)는 전 세계 대중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향후 미국식 SF 세계관의 기초가 됐다.

어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에 반대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했고, 다른 이들은 더 확실하게 오락적인 기능을 위해 극장을 찾았다. 누벨바그와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흐름은 모두가 전투적이었지만, 그 때문에 결국 승리했다. 많은 신인이 투입되었고, 일부가 크게 성과를 낸 것도 공통점이었다. 언젠가 고다르는 “프로덕션이 배급을 지휘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 있었다. 1970년대 ‘지가 베르토프 그룹’ 시절에 내뱉은 말이었다. 당시 그는 수많은 비디오 작업을 시도했는데, 작업 모두가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만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뿐이다. 넓게 보아 그의 목표는 시장의 규칙이 영화작업을 통제하는 것을 피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상영보다 제작 자체가 그에게 더 중요했다. 수익과 무관한 집단의 자율 생산체제야말로, 영화산업이 위기에서 돌파할 유일한 방책처럼 고다르는 느꼈다. 이 방식은 지금의 우리에게 힌트가 되어준다. 이 시점 영화산업의 위기가 우리의 것만은 아니지만,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면 산업의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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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 <길복순>과 <독전 2>. 출처 넷플릭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는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연간 매출금액 산출방식이 극장 중심이던 기존과 달라졌다. 글로벌마켓 데이터 플랫폼인 Statista의 Market Insights의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글로벌 OTT의 규모가 더이상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 것을 이 내용은 방증한다. 그리고 극장 외 시장의 세부 통계도 대폭 수정되었다. DVD와 블루레이 등의 기존 매출 데이터가 사라졌고, 그 자리가 OTT 영화 및 시리즈물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영화산업을 지배하던 극장 중심의 ‘분배’ 개념이 점차 ‘순환’의 개념으로 용해되고 있다. 영화를 둘러싸고 움직이는 경제적인 생태계는 이미 확고하게 변한 상태다. 새로운 프로덕션 방식이 완전히 시장 내부로 침투했고, 당분간 바뀔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잠시 장치에 대한 논쟁을 멈추고, 지금은 재능의 발굴에 몰두해야 할 시간이다. 이미 영화계의 주류는 하이브리드의 매혹에 중독된 바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장르의 경계는 이제 더 이상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코로나19가 속도를 앞당겼을 뿐, 디지털화된 변화는 이미 업계 일부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2014년 ‘카이에 뒤 시네마’가 최고의 영화로 꼽은 브루노 뒤몽의 <릴 퀸퀸>(2014)이 그런 경우다. Arte TV의 시리즈물인 이 작품은 방영 전에 그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대되었다. 당시 4편의 드라마를 한데 엮어 3시간 20분 버전의 극장판이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4가지 에피소드가 연속 상영되면서 작품의 스토리텔링은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 비견컨대 50분마다 한 번씩 내러티브의 흐름이 요동치도록 구상된 연속극의 방식은 이 작품의 것이 아니었다. <릴 퀸퀸>은 애초에 영화작업에 더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단지 상영 플랫폼이 TV였을 뿐이다. 뒤몽 감독은 극장용인지 TV용인지 질문하는 ‘르몽드’의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는 차이가 없다”라고. 프랑스 국영TV가 하지 못한 제작비 지원을 예술채널 Arte가 결정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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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카이에 뒤 시네마 베스트 10 중 1위에 오른 <릴 퀸퀸>.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DB

만일 상영 플랫폼의 문제를 접어둔다면 디지털이 점유한 현 상황에서 영화의 위기를 바라보는 해결책은 좀 더 명료해질 수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신진 연출자 발굴에 더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프랑스의 경우, 2022년 5월 CNC 주도하에 차세대 인재 발굴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극작 관련 보조금을 지원한다. 둘째, 영화 및 시청각 분야의 대학교 졸업생을 지원한다. 셋째, 숏폼 및 새로운 형식의 웹 비디오 창작물을 지원한다. 넷째, 주요 국립영화학교를 대상으로 e-러닝 솔루션을 지원한다 등이다. 해당 프로젝트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 <영화 및 시청각 부문의 작가와 미래 인재를 지원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이름 붙여졌다. 다만 이 아이디어는 충분한 물적 지원이 이루어졌을 때에만 효과를 발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결국 프랑스의 CNC는 자금의 원천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가져오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 케이블 채널 Canal+가 등장했을 때 수익금 일부를 신인 양성에 지원하도록 제도화시킨 적이 있는데, 이를 변형한 것이다. 정부 주도로 방송사의 수익 일부가 영화창작에 재투자되는 방식으로 자금조달이 시행됐다. 과거에는 프랑스 내에 회사를 둔 방송사만 자금을 부담했지만, 세부내용은 바뀌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스트리밍 플랫폼 모두가 2021년부터 매출의 최소 20%를 프랑스와 유럽의 창작물에 투자해야만 한다는 내용으로 최종 계약이 체결되었다.

모든 상황을 동일하게 바라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젊고 신선한 시네마의 독재자 군단을 양성하기 위해서, 우리 영화계에도 경제적인 동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하고자 한다. 영화관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나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새로운 형태의 시네필리아가 출연할 뿐, 영화를 향한 인류의 사랑이 멈출 리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이왕이면 좀 더 일찍 결단해서 더 이른 수확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낙관적으로 영화의 죽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크린의 끝을 또 다른 시작으로 바꾸어야 한다. 오직 젊은 물결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