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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ing

홍콩 FILMART 참관기

이지현(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팀)
사진
영화정책연구팀

매년 3월 홍콩에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 영화·영상 콘텐츠 마켓인 홍콩 필마트(Hong Kong International Film & TV Market, 주최 홍콩무역발전국(HKTDC))가 열린다. 필마트는 글로벌 마켓 속 아시아 콘텐츠 시장의 현황에 대한 직관적 이해와 함께, 각 국가별 전략적 움직임을 보다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이다. 필마트 기간 개최되는 컨퍼런스 프로그램인 엔터테인먼트 펄스(Entertainment Pulse)에서는 미디어·콘텐츠 분야 글로벌 리더들이 스피커로 참여해 최신 산업 트렌드 및 콘텐츠 수급 전략 등 현 시점 업계를 관통하는 테마에 대한 심도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개최를 재개한 지 2년 차에 접어든 홍콩 필마트와 마켓의 완전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현재의 아시아 영화·영상업계에 공유되고 있는 주요 문제의식과 산업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필마트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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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컨벤션센터 전경, 출처 홍콩무역발전국(HKTDC)
50개국,
7500명 이상 찾은 홍콩 필마트
영진위 홍보관에 14개 세일즈사
참여

올해 필마트는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에서 열렸다. 50개 국가에서 약 7500명 이상이 방문하고, 27개 국가에서 760개 이상의 전시업체가 참여해(2023년엔 약 7300명 방문/약 700개 업체 참여), 규모 면에서 전년 대비 활성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참여자들은 콘텐츠 마켓 본연의 목적인 글로벌 세일즈 뿐만 아니라, 중화권 기업과 공적 부문에서 핵심 전략을 공유하고 영향력을 강화하는 플랫폼으로서 필마트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필마트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이벤트에서 알리바바 그룹의 디지털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부문(Alibaba Digital Media and Entertainment Group)은 향후 5년간 6억 4천만 달러 이상을 홍콩영화 및 TV 드라마 등의 제작과 인력 양성에 투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홍콩 문화예술산업 활성화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홍콩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홍콩영화발전국(HKFDC)에서 새롭게 추진 중인 홍콩-유럽-아시아 협력 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Hong Kong-Europe-Asian Film Collaboration Funding Scheme’*의 성과와 향후 계획에 대한 홍보가 필마트 운영 기간 전체에 걸쳐 이뤄졌다. 동 프로그램은 홍콩과의 협력 제작 시 작품당 약 1.1백만 달러를 지원하며, 글로벌 협업을 통한 홍콩 영화산업의 역량 강화를 주목적으로 한다.
*주요 창작직군(감독/프로듀서/각본)의 국적, 참여 인력 구성 및 홍콩 현지 프로덕션 지출 비용 등 상세 자격요건 및 지원절차는 www.fdc.gov.hk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마켓 행사장 중심에 한국영화 및 K-콘텐츠 세일즈 활동을 지원하는 한국 공동관을 조성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한 한국영화 종합홍보관에는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14개의 세일즈사가 참여했으며, 현지 바이어 및 글로벌 플랫폼과의 활발한 미팅을 통해 총 597건 이상의 수출 상담을 진행하고 74건 계약이라는 성과(약 142만 달러)를 달성했다. 또한 세일즈사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영상위원회 등 총 7개의 영화제 및 영상위원회에서 참여해 마켓 및 로케이션 인센티브 등 핵심 업무에 대한 홍보를 이어 나갔다.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지원 및 투자 기회 제공

필마트의 큰 축이자 최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홍콩-아시아 필름 파이낸싱 포럼(Hong Kong-Asia Film Financing Forum, 이하 HAF)을 향한 관심과 열기는 마켓 기간 내내 지속됐다. HAF는 개발 단계(In-development, 이하 IDP)와 제작 진행 중(Work-in-progress, 이하 WIP) 두 분야로 구분해 사전 선정한 총 47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1150회 미팅을 연결했다. 창작자에게는 패키징 또는 완성에 필요한 자금과 협력 파트너를 확보하고, 투자자에게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WIP 오픈 피칭 행사를 참관했는데,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 타깃 콘텐츠라는 지원 요건에 부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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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o kill a mongolian horse>
로컬 홀스쇼라는 참신한 소재와 실제 스테이지 느낌을 구현한 조명 기법(Single source lighting)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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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land is our navel>
아이의 시선으로 본 풍경과 여정을 묘사한 독특한 촬영 기법과 아역배우의 존재감이 주목받았다.

쉼 없이 이어지는 미팅과 피칭을 지나 마지막 3일 차에는 우수 프로젝트에 대한 시상이 진행됐다. 올해는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 차이나(CAA China)와 협력해 2만 달러의 개발 지원금 및 멘토링을 제공하는 ‘HCG AWARD(HKIFF Industry-CAA CHINA Genre Initiative)’ 부문을 신설하는 등 더욱 강화된 글로벌 스폰서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원금 외에도 칸 영화제와 협력한 ‘HAF Goes to Cannes’, 부천국제영화제와 협력한 ‘NAFF(Network of Asian Fantastic Films)’ 등의 수상작은 해당 영화제의 참가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한국 작품으로는 IDP 분야에서 장건재 감독의 <너의 뒤에서>(Staring at your back)가 ‘La Fonte×INBETWEEN Award’를 수상했다. 첫날 WIP 오픈 피칭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던 장샤오수안 감독의 <몽골 말 죽이기>(To kill a mongolian horse, 제작국가 중국)는 화이트 라이트(White Light)사의 후반작업 지원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sian Cinema Fund)의 인큐베이팅 펀드 지원작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시아 창작자들은 각국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었으며, HAF 관문을 통과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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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onte×INBETWEEN Award를 수상한 장건재 감독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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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F Goes to Cannes 수상작인
<Montages of a modern motherhood>

창작자뿐만 아니라 각 국가별 공적 부문 역시 세일즈사의 주력 라인업 홍보를 방불케 하는 지원 콘텐츠 홍보와 함께 지원제도와 연계된 다양한 이벤트를 추진했는데, 특히 대만과 인도네시아의 활동이 인상적이었다. 대만의 타이카(TAICCA)의 경우 T-콘텐츠 쇼케이스(T-Content Showcase), 글로벌 프로젝트 펀딩 프로그램(Taiwan’s International Co-funding Program(TICP 2.0)) 홍보, HAF 어워드 스폰서 참여 등 필마트의 모든 기능을 활용해 T-콘텐츠 및 대만과의 협력 기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이끌었다. 특히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펀딩을 지원하는 TICP 프로그램*이 전년 대비 지원 방식과 규모 면에서 대폭 강화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도입 4년 차를 맞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에는 지원작 중 세 편()이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요 경쟁 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
*TICP 2.0 에서는 프로젝트 지분 투자 방식을 도입했으며, 선정작은 프로젝트 예산의 최대 49%까지 투자받을 수 있다.(en.taicca.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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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ontent showcase 현장
시리즈 <Hello Marriage, Goodbye Love>,
영화 <Haunted for Rent>,
TV시리즈 ‘Love On a Shoestring’ 글로벌 시장 타깃 핵심 콘텐츠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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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CCA AWARD 현장
HAF와 연계해 국제 공동제작 활성화를 위한 1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

최초로 국가 공동관을 개설한 인도네시아는 ‘Discover Indonesia’라는 확실한 테마를 바탕으로 마켓에 임했다. 부스 규모 면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 홍보관과 비슷한 정도로 총 15개의 제작사 및 영화제가 참여했으며, 필마트 공식 프로그램으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과 풍부한 로케이션 인프라를 소개하는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등 성장하는 시장의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AI 활용과 글로벌 공동제작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진 컨퍼런스

올해 필마트 컨퍼런스에서는 현 시점 업계 최대 화두인 AIGC(AI 생성 콘텐츠)를 비롯해 미디어·콘텐츠 환경 변화에 따른 다양한 대응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치이(iQIYI), 화책그룹(Huace Group) 등 중국 최대 미디어·콘텐츠 기업 리더들이 참여한 첫째 날, 첫 번째 세션에서는 콘텐츠 창작 분야에 있어 생성형 AI의 전망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아이치이의 Zhu Liang 부사장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소설 등 오리지널 IP의 영상화 사례를 소개하며 자체 데이터베이스 확보와 모듈 개발을 강화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AIGC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관련 기술 투자를 강화하면서 그룹 전체가 수익 국면에 진입할 수 있었으며, 프로덕션은 물론 프로덕션 매니지먼트, 마켓 프로모션 등 모든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화책그룹의 푸빈싱(Fu Binxing) 대표 또한 콘텐츠와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며 그룹의 AI 연구투자 강화 전략 및 스크립트 에디팅, 번역, 사업성 예측 등 자체 AI 모델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진 세션에서는 뷰(Viu), 크레아시아(CreAsia), 트루 디지털 그룹(True Digital group) 등 스트리밍 플랫폼과 CP기업이 글로벌 스트리밍 시대의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견해를 공유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막대한 콘텐츠 제작비 투입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고, 비용 투입에 있어서는 보다 신중하게, 콘텐츠 수급에 있어서는 훨씬 선별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특히 뷰(Viu)의 경우 K-드라마 등 한국 포맷을 활용해 타깃 국가별로 로컬라이징하는 것을 주요 전략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볼륨보다는 퀄리티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AI와 버추얼 프로덕션 등 다양한 기술 요소를 활용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발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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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의 전망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컨퍼런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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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Viu) 오리지널 시리즈 <Secret Ingredient>
한국배우 이상헌 출연, 한국 로맨스물 포맷을 차용했다고 밝혔다.
출처 Viuphilippines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하는 AIGC의 위협적 발전과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의 최전방에 있는 스피커들조차 결코 빠트리지 않는 당부는 ‘좋은 콘텐츠(quality content)는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이다. 위안이 되면서도 참으로 모호한 이 명제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번 필마트의 주요한 테마로 등장한 ‘협력’을 논하고 실행하는 다양한 시도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날 진행된 유로-아시아 컨퍼런스는 유럽과 아시아의 협력 가능성을 주제로 프랑스(CNC), 독일(Berlin Brandenburg film commission), 오스트리아(Austrian film institute), 홍콩(HKFDC)의 지원기관 중심의 첫 번째 파트와 실제 글로벌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현장 프로듀서 중심의 두 번째 파트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미 공동제작이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은 유럽의 다층적 지원제도와 홍콩의 신규 펀딩 프로그램(Hong Kong-Europe-Asian Film Collaboration Funding Scheme)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빠르고 간략하게 진행됐다. ‘왜 지원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좋은 스토리는 어디에서나 통하며, 공동작업 과정에서의 다양성이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높인다’는 답이 나왔다. 본 행사의 공동 주최 단체인 ‘브릿징 더 드래곤(Bridging the Dragon)’의 크리스티아노 보르토네(Christiano Bortone)는 현실적으로 자국 영화산업 자본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공동 파이낸싱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다양한 프로젝트가 만들어져야 새로운 탤런트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상 아래에서 마주친 여러 사람에게서 다양한 협력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현재는 일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프로듀서 A 씨는 본인의 다국적 베이스를 활용해 대만, 미국 파트너와의 코프로듀싱(Co-producing)과 코파이낸싱(Co-financing)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홍콩에서 약 20년간 활동한 프로듀서 B 씨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작업방식을 이해하려는 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C 국가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제작 지원을 받았으나 해당 국가 요소가 잘 드러나지 않는 프로젝트를 보고 이래도 괜찮은지를 묻는 질문에 기관 담당자는 일단은 연결이 먼저라고 확언하기도 했다.

유로-아시아 컨퍼런스 현장, 출처 홍콩무역발전국(HKTDC)

이처럼 현장의 플레이어들은 영화 시나리오만큼이나 다양한 협력 시나리오를 통해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듯 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작업방식이 만나 어려움과 비효율도 있겠으나 새로운 긴장감과 영감을 주고받으며 결국 더욱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함께하고자 했다. 아직까지는 AI가 창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협력의 경우의 수를 학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현장의 협력 방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선행된다면 그 결과물로서 콘텐츠의 가치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판단된다.

필마트에서 만난 여러 국가로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던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달성했으나 한국 영화산업에 고조된 위기감은 가시지 않고 회복을 말하기엔 이른 듯 하다. 하지만 아시아 콘텐츠 마켓에서는 여전히 K-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수요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 기술, 협력 등을 통한 기회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창작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산업의 변화 속 기회를 포착하고자 하는 한국 창작자들의 적극적 시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