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전주국제영화제의 높아진 위상과 그의 역사
ALL About 전주국제영화제
- 글
- 김현록(스포티비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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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전주국제영화제
전통을 향한 존중과 미래를 향한 시선이 공존하는 그곳. 예향의 도시, 전북 전주에서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JEONJU IFF)는 완연한 봄을 맞이한 시네필들의 마음을 진정 설레게 하는 축제다. 매년 4~5월, 현대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독창적이고도 실험적인 영화들을 오직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21세기와 함께 시작한 이 고집 있는 혁신의 영화제가 어느덧 25회를 맞았다.
소개하는 대규모 행사로서 아시아 영화의 메카로 성장했다면, 이듬해인 1997년 1회 영화제를 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애니메이션과 판타지 등 개성 강한 장르영화의 축제로 입지를 굳혔다.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에 출발한 후발주자인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과 '독립'을 그 정체성으로 삼았다. 첫 회 21개국에서 온 184편의 영화를 선보였는데,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 개막작으로 그 문을 힘차게 열었다. 산업이 포괄하지 못하는 독립영화와 실험영화를 끌어안는 진정성 있는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에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성장한 독립·예술영화, 그리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그 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전주와 인연이 남다른 대표적 스타가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봉준호다. <기생충>으로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그의 장편 데뷔가 전주에서 이뤄졌다. 그가 연출한 <플란다스의 개>는 1회 영화제 한국경쟁 초청작이다. 봉 감독은 이후 2004년 '디지털 삼인삼색' 지원작 '인플루엔자'에 참여했으며, 심사위원을 거쳐 2010년에는 마스터클래스에 나서 전주를 찾은 시네필을 만났다. 2024년 첫 천만 관객 돌파를 바라보는 <파묘> 장재현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는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로 15회 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감독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세작인 <검은 사제들>의 원안이 된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영화제는 여전히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모토로 한다. 특히 출범부터 새로운 영화를 그저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들을 지원하고 신작을 제작해 소개하는 데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전통 예술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전주의 이 같은 진취적 비전은 지금까지도 고집 있게 이어져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독보적 위상을 만들어냈다.
"미래 영화의 예고편"이라며 1회부터 이어진 '디지털 삼인삼색'(2000~2013)은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 화두를 공유한 세 명의 감독이 만든 세 편의 디지털 단편을 묶어 하나의 옴니버스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형식으로, 2007년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메모리즈>(페드로 코스타, 하룬 파로키, 유진 그린)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의 젊은 감독들을 대상으로 단편영화를 제작 지원하는 '숏!숏!숏!' 프로젝트(2007~2013)도 주목받았다.
돌이켜보면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을 디지털 영화로 전면 제작하며 주목받은 것이 영화제 출범 1년 전인 1999년. 전주국제영화제는 대표 프로그램을 '디지털 삼인삼색'이라 명명했을 만큼,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디지털 영화의 미래를 예견하고 확신했다. '대안' '독립'과 함께 주목한 키워드가 바로 '디지털'이었다. 이후 디지털 영화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대중화를 넘어 어느덧 영화의 보편이 되고 말았다. 시대의 정신이자 혁신의 상징이었던 '디지털'의 의미가 퇴색해가자 전주국제영화제는 2014년부터 '디지털 삼인삼색' '숏!숏!숏!'을 장편영화 프로젝트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전환하고 새롭게 10년을 이어왔다. 혁신의 정신을 계승하는 가운데서도 "영화제의 기능과 미학, 산업의 역학 안에서 프로젝트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분기점으로 기록된다"는 것이 전주의 자평이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 극장의 위기 앞에서도 전주국제영화제는 멈추지 않았다. 여러 영화제가 전염병의 위협 속에 개최를 포기했던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는 그해 5월 28일부터 9월 18일까지 무려 114일에 걸쳐 21회 행사를 치러냈다. 간헐적인 행사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주와 서울을 넘나들며 이어진 덕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계획됐던 장기 상영회가 조기 중단되는 우여곡절에도 초청작 180편 중 175편을 최소 1회 상영할 수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를 위해 찾는 축제이기도 하지만, 이 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과 멋이 함께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필람’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는 한편 짬짬이 들를 맛집 리스트도 함께 정리하기 마련. 전북을 대표하는 미식의 도시답게 이 곳엔 이름에 ‘전주’가 들어간 대표 메뉴만도 여럿이다. 전주비빔밥은 물론이고 전주콩나물국밥, 전주한정식, 전주가맥…. 요즘엔 각종 카페 메뉴와 디저트, 신종 먹거리들이 더해져 관객의 발걸음을 샛길로 유도한다.
어디 전주에 즐길 거리가 이 뿐이랴. 전주는 완산동 영화의 거리에 위치한 영화제 주요 상영관이 도보 10분 이내인 데다, 한옥마을과 전주경기전, 전동성당, 오목대 등 기꺼이 들를 만한 명소들도 지근거리다. 영화제 셔틀을 타고 갈 수 있는 팔복예술공장에선 100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초청작 중 100편의 포스터를 새롭게 선보이는 ‘100 Films 100 Posters’ 전시도 영화제 기간 중 열린다. 이 즈음이면 하얀 꽃이 만개한 근처 이팝나무길을 걸을 수 있다. 올해엔 전주 관광 명소 곳곳에서도 이 작품들이 전시된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전주국제영화제를 향한 관객들의 성원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22년 23회 영화제가 3년 만에 오프라인 정상화가 이뤄낸 데 이어, 지난해 24회 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관객이 늘었다고 한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가운데,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발로 뛰며 2024년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5월 1일부터 열흘 동안 열리는 제25회 영화제에서는 전주시 일대 5개 극장 22개 관에서 세계 43개국에서 온 232편(해외 130편·국내 102편)의 장·단편 영화가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보다 초청작이 15편 줄었지만, 한국경쟁과 국제경쟁 출품작 모두 역대 최다로, 자비로 전주를 찾는 해외 게스트 또한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높아진 위상이 드러나는 한편, 지원금 축소로 빠듯해진 주최 측 사정과 활로를 찾기 힘든 중소영화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단면이다.
엄선된 풍성한 작품들은 여전히 기대를 모은다.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 감독이 <행자 연작> 10편과 함께 전주를 찾고,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는 허진호 감독이 참여해 자신에게 울림을 줬던 영화를 관객과 함께 보며 소통할 예정이다. '코리안시네마: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도 마련돼 그날의 아픔과 희생자들을 다시 기린다. 바로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진구, 공승연, 이유미 등이 관객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 '전주씨네투어X마중'과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와 협업해서 선보이는 <인사이드 아웃 2> 특별 상영회 등도 기대를 모은다.
개막작은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의 차세대 감독 미야케 쇼의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이다. 일본 작가 세오 마이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PMS(월경전증후군)를 겪는 여자와 공황장애를 앓는 남자가 직장 동료로 만나 연인도 친구도 아닌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는 이야기다. 폐막작은 카직 라드완스키 감독의 캐나다 영화 <맷과 마라>(Matt and Mar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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