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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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Record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시작과 미래

김도훈(칼럼니스트)

History Record는 인물, 배경, 상황 등 다양한 키워드를 주제로 한국영화를
다각도로 조망해 보는 코너다.
이번엔 할리우드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한국영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프랜차이즈 영화를 좋아한다. 진심이다. 사실 오랫동안 프랜차이즈 영화가 지겹다고 노래를 불러 왔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결국 돈을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의 창의성을 파괴하는 장본인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야기이다. 나 역시 속편이 나오는 순간 일찌감치 아이맥스 좌석을 예매하거나 한정판 굿즈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중독자다. 프랜차이즈 영화의 즐거움은 분명하다. 이미 아는 캐릭터가 나와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고 전편과 비슷하거나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 예상하며 극장에 들어가는 건 확실히 다른 경험이다. 익숙함의 쾌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엿본
프랜차이즈 영화의 가능성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와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로 두도록 하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와 조지 루커스의 <스타워즈>(1977)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두 영화가 영화 역사상 기념비적인 흥행 성적을 달성하자 할리우드는 두 편의 속편을 만들었다. <죠스 2>(1978)와 <스타워즈 2: 제국의 역습>(1980)이었다. 스필버그가 빠져나갔음에도 <죠스 2>는 그럭저럭 성공을 거뒀다. <스타워즈 2: 제국의 역습>은 안 그래도 폭발한 팬덤의 규모를 순식간에 확장시켰다. 바로 그 시점에 할리우드는 그 같은 캐릭터를 우려먹는 프랜차이즈 시리즈 시대를 직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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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2>, 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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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썰웨폰4>, 출처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1980년대는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의 본격적인 폭발기였다. <백 투더 퓨쳐>(1985)<그렘린>(1985) 등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대부분이 현대적인 프랜차이즈의 형식을 만들어나갔다. 리들리 스콧의 1979년 작품 <에일리언>을 제임스 카메론이 전편과 전혀 다른 장르의 <에일리언 2>(1986)로 만들어 낸 건 제작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분명한 콘셉트와 매력적인 캐릭터, 세계관을 가진 영화라면 한 명의 감독에게 골치 아프게 얽매일 필요 없이 계속해서 황금알을 토해내는 오리로 사용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1990년대가 되자 모든 것은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다이 하드>도 <리썰 웨폰>도 계속해서 단물이 빠질 때까지 속편을 내놓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프랜차이즈 시대가 열린 것은 1990년대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1980년대 동시 개봉관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동용 프랜차이즈가 몇 편 있다. 심형래의 <영구>와 <에스퍼맨> 시리즈, 혹은 당대의 인기 가수 전영록이 주연한 <돌아이> 시리즈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연 것은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강우석이다. 1993년 <투캅스>가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하자 강 감독은 전편의 콘셉트를 그대로 되살린 <투캅스 2>(1996)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강우석 사단’으로 활동하던 김상진 감독이 연출을 맡은 <투캅스 3>가 개봉했다. 강우석의 프랜차이즈에 대한 사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2002년 연출한 <공공의 적>이 성공하자 2005년 <공공의 적 2>,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연이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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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캅스>, 출처 (주)시네마서비스

왜 1990년대였을까. 왜 강우석이었을까. 1990년대였던 이유는 당연히 할리우드의 영향이었다.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프랜차이즈 열풍이 불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걸쳐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가능성을 실험한 할리우드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속편 양산에 돌입했다. 2020년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몇몇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쥬라기 공원>(1993)<토이 스토리>(1995)<미션 임파서블>(1996)<스크림>(1996)<매트릭스>(1999)<엑스맨>(2000) 등등 모두 1990년대의 선물들이다. 역사상 최초의 프랜차이즈라 할 만한 <스타워즈>와 <에일리언> 시리즈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건하다. 당대의 흥행사, 혹은 승부사라 불렸던 강우석은 할리우드 시스템을 충무로에 도입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이야기만 찾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제작 시스템의 진화와 함께 성장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계속 만나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스타 연기자의 존재다. <투캅스>와 <공공의 적>에는 그게 있었다. 박중훈과 설경구라는 스타 연기자가 적절한 캐릭터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키자 대중은 열광했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형 프랜차이즈의 출발점을 강우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형 프랜차이즈의 본격적인 시대가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는 <타짜: 신의 손>(2014)<타짜: 원 아이드 잭>(2019)으로 이어졌다. 1편이 만들어진 지 무려 10여 년 만에 두 개의 속편이 만들어졌다. <조선 명탐정> 시리즈는 2011·2015·2018년에 각각 만들어졌다. 왜 2010년대였을까. 2010년대에 와서야 한국영화가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세 개의 투자배급사를 중심으로 할리우드 시스템에 가깝게 진화한 덕분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등의 감독들을 중심으로 한국영화의 ‘웰메이드’ 시대가 열렸다. CJ를 비롯한 대형 투자배급사가 관객들의 취향을 바탕으로 한, 보다 과학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웰메이드 감독의 시대가 웰메이드 제작의 시대를 만나 양적, 질적 성장의 결실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2010년대였다. 충무로는 할리우드에 가까워졌다. 프랜차이즈 시리즈 만들기 딱 좋은 때가 온 셈이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출처 (주)쇼박스

그럼에도 충무로는 여전히 할리우드는 아니다. 속편이라는 건 까탈스럽다. 전편의 성공 공식을 등에 업고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것은 속편의 오랜 한계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열풍을 보며 배운 것이 몇 개 있다. 전편을 뛰어넘은 속편은 여간해서 없다는 것. 그리고 전편보다 돈이 적게 드는 속편도 여간해서 없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역사상, 이 법칙은 어긋난 적이 별로 없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스타워즈 2: 제국의 역습>(1980)<에일리언 2>(1986) 외에는 도무지 꼽을 만한 속편이 없다. 전편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어들인 속편? 이 역시 생각보다 숫자가 적다. <터미네이터 2>(1991)와 <다크 나이트>(2008) 정도가 예외적이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탑건: 매버릭>(2022)과 <트론: 레거시>(2010) 등은 전통적인 속편의 위치에 두기가 조금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숫자는 더더욱 초라해진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외줄 타기…
<범죄도시>는 성공할까?

속편은 안정적이다. 그건 장점이다. 이미 익숙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드는 프랜차이즈는 어느 정도 든든한 고정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속편은 안정적이다. 그건 단점이기도 하다. 든든한 고정 관객을 확보할 수 있지만 1편이 주는 신선함을 뛰어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관객은 익숙함을 원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원한다. 그렇다면 속편을 잘 만드는 방식은 하나다. 익숙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자본을 투하해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는 점점 규모를 넓혀 가다가 캐릭터와 세계관에 질린 관객들이 “더는 못 보겠다”며 관심을 잃어버릴 때 끝이 난다. 마지막 속편이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프랜차이즈는 거의 없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랜차이즈 <명량>(2014)<한산: 용의 출현>(2022)<노량: 죽음의 바다>(2022)의 점점 줄어든 관객 수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 시리즈는 이미 모두가 아는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와는 조금 다르게 평가받는 것이 옳지만, 어쨌거나 속편이 전편을 넘을 수 없다는 법칙 속에 근사하게 들어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4>,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에서 가장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와 닮은 방식으로 나아가는 시리즈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단연코 <범죄도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범죄도시>가 한국의 첫 번째 할리우드식 프랜차이즈라고 생각한다. 액션 영화만큼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편리한 장르는 없다. 익숙한 캐릭터에 새로운 액션과 악역만 추가하면 되는 덕이다. <범죄도시>는 1980년대 시작되어 1990년대를 강타한 <다이 하드><리썰 웨폰> 시리즈와 매우 닮아 있다. 매번 감독을 바꾸고, 더 강한 악역을 첨가하고,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거대한 스펙터클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2017년에 첫 영화가 나온 <범죄도시>는 <범죄도시2>(2022)와 <범죄도시3>(2023)가 나란히 천만 관객을 달성하며 한국형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자, 여기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조만간 개봉할 <범죄도시4>가 <범죄도시3>의 성공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세상의 어떤 프랜차이즈도 영원하지는 않다. 심지어 20여 년 동안 전 세계 관객의 두뇌를 지배한 마블 유니버스조차 박스오피스에서 꼬꾸라지고 있다. 혹시 우리는 속편이 더는 먹히지 않기 시작한 세계에서 지나치게 옛날 방식으로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마동석이라는 스타파워에 온전히 기대는 <범죄도시>는 익숙한 방식으로 관객의 가슴을 뚫어 주지만, 그 익숙한 방식에 사람들이 슬슬 질려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만 생각해 보시라.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액션 프랜차이즈일 <다이 하드>도 <리썰 웨폰>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범죄도시>는 이미 8편까지 제작이 계획되었다. 4편의 흥행 성적이야말로 한국형 프랜차이즈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어떤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진실의 방으로 들어갈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