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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의 구조와 가능성을 설계하자
국제공동제작펀드 활용 가이드
협업의 구조와 가능성을 설계하자
국제공동제작펀드 활용 가이드
글 _ 오희정(시소픽쳐스 대표, 프로듀서)
2026-06-08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5개국 공동제작 영화 <안개 속의 코끼리>
(제공=Underground Talkies Nepal)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5개국 공동제작 영화 <안개 속의 코끼리>
(제공=Underground Talkies Nepal)
최근 국제공동제작은 전 세계 영화산업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제작비는 계속 상승하고, 공공 지원은 축소되며, 시장은 더욱 글로벌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국제공동제작이 이미 오래전부터 산업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았고, 아시아와 중동의 영화 펀드들 역시 국경을 넘는 협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더 이상 국제공동제작은 일부 영화의 특수한 방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5월 23일 폐막한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안개 속의 코끼리(Elephants in the Fog)>는 네팔, 독일, 브라질, 프랑스, 노르웨이가 참여한 국제공동제작 작품이다. 2025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쓸모 있는 귀신(A Useful Ghost)> 역시 태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싱가포르, 독일이 함께 참여했다. 최근 ‘A-리스트’(편집자 주 -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새롭게 도입한 인증 체계에서, 전 세계 영화제 중 최상위 등급으로 선정된 영화제 리스트. 영화제의 종합역량을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아시아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국제공동제작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하나의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며, 국제 협력 자체를 산업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제공동제작은 단순히 해외 자금을 유치하는 방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산업과 문화, 관점과 네트워크를 연결하여 이전에는 만들 수 없었던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역시 2026년 상반기 영화 국제공동제작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곧 하반기 공모가 진행될 예정이다. 첫 시범사업 공모에서 베트남, 미국, 인도네시아, 프랑스와 공동제작하는 4개 작품에 총 16억 원이 지원되었다. 사실 영진위의 국제공동제작 지원은 완전히 새로운 사업은 아니다. 로케이션 인센티브 사업은 꾸준히 진행되었으나, 과거(2012~2018년) 운영되던 국제공동제작 인센티브 및 국제공동제작 기획개발 지원사업은 코로나19로 인한 해외교류 단절, 영화발전기금 고갈 등과 맞물려 한동안 중단 혹은 축소되는 공백을 겪었다.
그 공백 기간 동안 한국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게 되었다. <기생충>(2019)이 칸과 오스카를 휩쓸고, <오징어 게임> 시리즈(2021-2015)이 전 세계 넷플릭스를 점령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는 더 이상 한국 가수들로 한정할 수 없는, 글로벌 팝 아이콘에 가깝다. 동남아시아에서, 남미에서, 아랍 세계에서, K-콘텐츠가 일상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세계 영화산업이 한국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한국 제작자들이 해외 파트너를 찾아다녔다면, 이제는 해외에서 먼저 한국과 협업하고 싶어 한다. 한국의 이야기, 한국인의 재능과 감각은 이전 어느 때보다 국제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관객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어 움직이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과 예술은 더 이상 국가 단위로 소비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여전히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산업 구조는 점점 더 국제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는 왜 여전히 영화를 국가 단위로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는 2017년 시소픽쳐스를 설립해 2018년부터 국제공동제작을 진행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 덴마크, 벨기에, 리투아니아, 중국, 인도, 베트남, 네팔 등 다양한 국가의 파트너들과 협업해 왔다. 또한 유럽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교육·네트워크 기관인 EAVE(European Audiovisual Entrepreneurs)의 인종 형평성(Racial Equity) 자문위원회와, 공정한 국제공동제작 모델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활동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제작자, 기관, 영화제들과 국제공동제작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해 왔다. 이 글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서 국제공동제작을 고민하는 창작자와 제작자들을 위한 실무 가이드인 동시에, 한국영화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연결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한 기록이다.
태국 등 4개국 공동제작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쓸모 있는 귀신>
(제공=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캡처)
국제영화펀드에 직접 지원할 때
국제공동제작을 고민하는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제 영화는 어느 펀드에 지원해야 하나요?”
물론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이 이야기는 왜 국경을 넘어야 하는가. 이 프로젝트를 더 좋은 영화로 만들어줄 파트너는 누구인가. 서로 다른 시선이 만났을 때 무엇이 새롭게 탄생하는가. 국제공동제작 관련 자문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프로젝트가 이 질문들을 먼저 하기보다는, 지원 가능하고 지원금을 많이 주는 펀드를 찾는데 우선순위를 둔다. 그러나 방향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찾은 기회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제공동제작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서로 다른 국가의 제작자들이 하나의 영화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국제공동제작은 한 국가 안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영화를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창작 인력과 기술을 만날 수 있고, 서로 다른 관객과 시장에 접근할 수 있으며, 때로는 특정 국가의 산업적·정치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만큼 복잡해진다. 파이낸싱 기간은 길어지고, 의사결정자는 늘어나며, 각국에서 확보한 재원에는 사용 조건이 따른다. 기회도 많아지지만, 동시에 조율해야 할 변수 역시 많아진다.
국제공동제작은 대체로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는 주로 국제 영화제가 운영하는 지원금(Grant)에 접근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 파트너를 통해 각국에서 운영하는 지원사업(Fund)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경우는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월드 시네마 펀드(World Cinema Fund),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Biennale College Cinema),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IFFR 후버트 발스 펀드(Hubert Bals Fund), 미국의 선댄스 인스티튜트(Sundance Institute),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IDFA 베르타 펀드(IDFA Bertha Fund), 사우디아라비아 레드시국제영화제의 레드시 펀드(Red Sea Fund), 카타르의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Doha Film Institute, DFI) 등이 대표적이다.
지원 규모만 놓고 보면 영화 전체 제작비에 비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 인증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멘토십, 네트워크, 후속 파트너(투자, 배급, 마케팅 등)를 만날 기회까지 따라온다. 국제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인 셈이다.
‘2025-2026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에 선정된 12개 프로젝트팀.
이탈리아, 호주, 멕시코, 중국, 아르헨티나, 남아공 등 여러 대륙의 국가들로 구성됐다
(제공=베니스 비엔날레 홈페이지 캡처)
여기서 한국 프로듀서들이 이해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들 펀드 중 상당수는 영화 제작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국가들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 영화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된 한국은 직접 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지원 대상 국가의 프로젝트에 공동제작 파트너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결국 어떤 펀드가 어떤 구조로 열려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한국 프로젝트로서 지원할 수 있는 펀드는 국적 제한이 없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컬리지, 미국의 선댄스 인스티튜트, 최근 아시아 국가들로 대상을 확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시 펀드,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영화의 후반 작업을 지원하는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 등이다.
시소픽쳐스 작품 중에서는 박세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지느러미>가 도하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후반 제작 지원금을 받았고, 멘토링, 산업 관계자 미팅,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하는 인더스트리 플랫폼인 쿠므라(Qumra)에서도 소개되었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은 물론 전 세계 다양한 산업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이후 영화는 도하 필름 페스티벌의 아즈얄(Ajyal)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고, 한국 개봉 후에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 배급망을 보유한 팔콘 필름(Falcon Films)을 통해 현지 배급으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 과정은 우연이라기보다 DFI가 설계한 생태계의 결과에 가깝다. 많은 국제 펀드들은 좋은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자국 영화산업과 창작자들을 연결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후버트 발스 펀드는 기획개발로 선정된 프로젝트가 네덜란드 제작사와 협업할 경우 추가 제작비 지원 경로를 제공하고, 월드 시네마 펀드는 독일 프로듀서를 지원금 수령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독일 영화산업과의 연결을 장려한다.
국제공동제작의 시작점이 반드시 해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느러미>는 DFI 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Fantastic 7’ 사업에 선정되어 칸국제영화제 기간 중 프로젝트를 소개할 기회와 항공 및 숙소 지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부터 공동제작 논의를 이어오던 ‘Co-production Office’ 팀과 칸에서 직접 만나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고, 이후 실제 공동제작으로 이어졌다.
DFI의 제작 지원을 받고, 팔콘 필름을 통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현지 배급까지 예정된
박세영 감독의 <지느러미>(제공=시소픽쳐스)
펀드 선정 가능성을 높이려면
그렇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젝트들과 경쟁해야 하는 이런 기회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프로젝트를 선정되게 할 수 있을까.
첫째, 너무 이르게 지원하지 않는다. 기획개발 단계라면 충분한 수준의 트리트먼트나 시나리오가 준비되었을 때, 제작 단계라면 파이낸싱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을 때 지원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한국의 맥락을 전혀 모르는 심사위원에게도 작품의 핵심이 명확하게 전달될 만큼 뼈대가 단단해야 한다. 대부분의 펀드는 지원 횟수가 제한되어 있거나, 재지원을 허용하더라도 이전 제출본과 비교해 무엇이 유의미하게 발전했는지를 엄격하게 평가한다. 첫 번째 지원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유명한 펀드보다는 ‘나와 맞는 펀드’를 찾는다. 내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명확해졌다면 이제는 펀드를 분석할 차례다. 이전 선정작들을 살펴보면 각 펀드가 선호하는 결이 보인다. 마치 수능 기출문제를 분석하듯, 어떤 프로젝트들이 선택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내 영화의 레퍼런스가 되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의 오프닝과 엔딩 크레디트에서 어떤 펀드가 참여했는지 추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시아 여성 감독의 데뷔작인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장르영화인지, 혹은 예술영화 성향이 강한 프로젝트인지에 따라 어울리는 펀드는 달라진다.
셋째, 사람을 먼저 만난다. 인더스트리 행사에서 펀드 담당자나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직접 만나 얼굴을 익혀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영진위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해외 마켓 참가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행사들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한다. A-리스트 영화제는 지역별 담당자가 세분화되어 있어 멀리 가서 만난 사람이 정작 내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제 초청 명단을 미리 확인하고, 행사 전에 짧고 명확한 이메일로 미팅을 요청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눈에 띄는 제목과 간결한 본문이 가장 중요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26년 FIAPF 인증 ‘A-리스트’ 17개 중
국내 유일한 영화제다
(제공=부산국제영화제)
해외 파트너를 통한 펀드 접근
두 번째 경로는 해외 파트너를 통해 그 나라의 공공 펀드를 비롯한 다양한 펀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국립영화영상센터(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 CNC), 대만콘텐츠진흥원(Taiwan Creative Content Agency, TAICCA), 아르헨티나의 국립영화 및 시청각예술연구소(Instituto Nacional de Cine y Artes Audiovisuales, INCAA) 등 많은 국가들의 영상 관련 공공 기관에서는 자국이 주도하는(majority)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위한 펀드와, 소수 지분으로(minority) 참여하는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위한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 나라의 제작자와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것은 그 나라의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접근권을 얻는 일에 가깝다. 해당 국가의 펀드에 지원할 수 있고, 그 지역의 피칭 플랫폼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현지 창작자와 인력 네트워크와 연결될 수 있고, 영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현지 개봉과 배급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시소픽쳐스 작품 가운데 프레드릭 쇨베르(Frederik Sølberg) 감독의 <하나 코리아>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하나 코리아>는 북한에서 온 혜선의 새로운 시작을 담은 김민하 배우 주연의 영화로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플래시 포워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2019년에 시작되어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 한국영상위원회, 통일과나눔재단, DMZ 인더스트리 펀드(Industry Fund), 방송전파진흥위원회의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다. 또한 덴마크 제작사인 손탁픽쳐스(Sonntag Pictures)를 통해 덴마크 영화 연구소(Danish Film Institute)의 기획개발, 제작, 영화제 프리미어 지원 사업 혜택을 받고, 덴마크 국영 방송국 DR(Danmarks Radio)의 투자,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CPH:DOX)를 통해 유리마주 국제공동제작상(Eurimage International Co-production Award)까지 받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소픽쳐스와 손탁픽쳐스는 기획개발부터 함께한 파트너로 신뢰를 다지며 각자가 가진 것이 이 영화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뢰 속에서 각자가 기여하는 바에 대한 확실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덴마크 측은 감독과 개발 자금, 유럽 네트워크를 담당했고, 한국 측은 리서치와 현장 접근성, 캐스팅, 한국 영화산업과의 연결을 담당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재원 조달 비율에 따라 한쪽이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기로 했고, 계약서와 재정 구조에서도 기존의 관행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이 프로젝트에 맞는 방식을 찾고자 했다.
한국의 시소픽쳐스와 덴마크의 손탁픽쳐스의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
영화 <하나 코리아>(제공=<하나 코리아> 티저 예고편 캡처)
국제공동제작에서 ‘majority’와 ‘minority’는 우열의 개념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차이를 의미한다. 프로젝트의 창작적 기여도와 산업적 가치가 단순히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중심과 주변의 관계로 이해하는 순간 건강한 협업 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프로젝트의 기원(origin)이 어디에 있는지, 작품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투여되었는지, 감독과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촬영감독, 편집자, 음악감독 등 주요 창작 인력이 어느 국가 출신인지도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물론 현실적인 고려도 필요하다.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진위 지원금의 2~3배를 웃도는 규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누구나 공동제작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반드시 해당 국가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국제공동제작펀드는 지원금의 절반 이상을 해당 국가에서 사용하도록 요구하며, 전액 또는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 만큼이나 그 돈을 실제 제작 과정에서 얼마나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계산해야 한다.
캐시플로 역시 중요한 변수다. 한국은 비교적 심사와 집행이 빠른 편이지만, 해외 펀드는 심사 기간이 길고 선정 이후에도 곧바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체 예산의 70% 이상이 확보되거나 배급 계약이 체결되어야, 즉 이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비로소 지원금을 집행한다. 그래서 지원 규모만 보고 계획을 세웠다가 제작 일정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제공동제작을 설계할 때는 ‘얼마’를 받는가와 더불어 ‘언제’ 받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영화 제작의 현실적인 속도와 국제공동제작의 흐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해외 배급사와의 계약을 통해 특정 국가나 지역의 배급권을 선판매하고 이를 파이낸싱에 활용하는 방식이나, 리메이크 판권 판매를 통한 국제공동제작의 케이스도 생겨나고 있다. 펀드보다 시장이 먼저인 방식으로, 특히 상업영화에서 유효하다.
2025년 아시아영화펀드 공동제작지원펀드 선정작 <반월>의 정영홍 프로듀서(오른쪽)가
선정작 증서를 받고 있다(제공=부산국제영화제)
차이와 균형을 조율하는 프로듀서의 힘
국제공동제작 현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은 ‘차이’다. 일하는 속도도 다르고, 의사결정의 방식도 다르고,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국제공동제작은 서로 다른 시선이 공존할 수 있도록 두면서도, 그 긴장과 충돌을 창작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이 균형은 단순히 투자 비율이나 크레디트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공동제작 현장에서는 각자의 역량과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어떤 국가는 훨씬 큰 공적 지원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 접근하기가 더 쉽다. 어떤 프로듀서는 여권 하나만으로 수십 개 국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비자 발급 자체가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프로듀서로서 나의 영역이 전 세계로 넓어질수록 구조적 불평등과 특권에 대한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다양한 역학관계가 결국 영화가 가진 비전을 더 잘 실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혹은 내가 무심코 기존의 차별과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국제공동제작은 서로 다른 배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제공동제작이 모든 영화의 정답은 아니다. 어떤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어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여러 나라가 함께할 때 더 좋은 영화가 된다. 국제공동제작도 결국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 영화산업의 지형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자본의 흐름도, 관객의 취향도,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그런 변화 속에서 프로듀서는 단순히 예산을 관리하거나 제작을 진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과 제도, 문화와 산업을 연결하고, 협업의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국영화의 다음 장면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제작 모델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누군가 상상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공해야 한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장을 넓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가 닿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범위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