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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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넷플릭스)

(제공=넷플릭스)

GLOBAL

끝 모를 낙천성으로 예찬한 K-컬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글 _ 김경수(영화평론가)

2025-08-18

K-컬처를 전방위로 녹여 세계를 사로잡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만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6월 20일 넷플릭스 공개 소식이 들렸을 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우선 설정부터 걱정스러웠다. K-팝과 퇴마의 조합은 성공하면 기상천외할 테지만 실패하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무리수 같았다. K-팝 아이돌이 사실은 춤과 노래로 악령을 물리치는 퇴마사라는 설정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영화 제작 소식이 들려온 2021년은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트와이스를 필두로 K-팝 열풍이 불었던 해다. 서브컬처에 가까운 문화였던 K-컬처가 보편적인 문화가 된 시기다.

그만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열풍에 편승한 소재주의라는 오해를 살 만한 기획이었다. 물론 미더운 점도 있었다. 소니 픽처스가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 제작사라는 점이다. 예고편에 나온 영화 속 걸그룹 ‘헌트릭스’와 당산나무와 도깨비를 모티브로 한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캐릭터 디자인, 안무와 의상, 화려한 액션은 ‘비주얼 하나는 믿고 볼 만한 영화’라는 신뢰감을 줬다. 게다가 곳곳에 삽입된 사인검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 루미의 무기와 혼문 등 K-문화가 자세하게 녹아든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디테일이 H.O.T.와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1세대 K-팝 그룹에서 시작된 K-팝에 대한 오랜 애정과 자신의 뿌리에 대한 러브레터라는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의 제작 의도에 진심이 반영되었다는 증거로 보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시청률 1위에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공=넷플릭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조이의 눈에서 팝콘이 나오는 영상은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았다
(제공=넷플릭스 공식 X 계정)



뜻밖의 글로벌 히트 - 커버부터 댄스 챌린지,
밈 생산까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우려와 달리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으며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우선 속편 혹은 유명 원작 지식재산권(IP)에 기반한 작품을 만드는 영화계의 관성을 정면으로 거슬러 제작한 독창적인 오리지널 콘텐츠인 점이 평단의 큰 호감을 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디즈니, 픽사, 일루미네이션, 드림웍스 등에서 수많은 속편이 쏟아진 후,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특히 어린이들이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1는 평을 남겼다. 또한 버라이어티는 디즈니와 픽사, 일루미네이션 등 스튜디오의 관성화된 연출보다 “훨씬 더 유쾌한 접근 방식을 택했고, 한국 웹툰과 만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점”2 을 높게 샀다. 특히 헌트릭스 멤버 조이가 사자보이즈를 마주했을 때 두 눈에서 팝콘이 나오는 등의 연출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면서도 독특함이 엿보인다. 이런 디테일을 제외해도 거의 10년 가까이 구상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신선한 기획과 그것을 마음껏 펼치는 자유로운 작화와 동서양 혼종의 스타일이 업계 전체에 큰 차별점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K-팝의 시장 확대와 아시아 애니메이션 팬들이 서양의 작품에서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스타일에 K-컬처를 명확히 차용한 작품을 즐기려는 수요가 맞물린 결과”3 라는 의견도 있었다.



1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5/jul/31/kpop-demon-hunters-netflix-animation
2 https://variety.com/2025/film/reviews/kpop-demon-hunters-review-1236437235/
3 위와 같은 링크

관객 반응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수많은 기록을 경신 중이다. 우선,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인 ‘골든(Golden)’은 빌보드 핫 100 1위(8월 11일 기준)에 올랐다. 나아가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의 유력 후보로 불리고 있다. 인터넷은 더욱 뜨겁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는 이 영화에서 파생된 밈과 사자보이즈의 ‘소다팝(Soda Pop)’ 챌린지, 헌트릭스 ‘골든’ 커버 영상으로 도배되었다. 나아가 루미와 진우, 애비 등 영화 속 캐릭터를 코스프레하고, 헌트릭스의 조이처럼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K-팝 스타일 메이크업인 것처럼 틱톡(TikTok)에서 챌린지 되고 있다. 영화 속 팬처럼 루미와 진우의 커플링을 응원하는 ‘루진우’를 그리는 2차 창작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에스파의 ‘광야’ 세계관 속 멤버들을 돕는 조력자 역할로 등장했던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를 시작으로 버추얼 아이돌이 일상화되고 있는 흐름이 사자보이즈와 헌트릭스에 대한 열광적인 인기를 가능케 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팬은 나아가 제작진 인스타그램이나 감독 인터뷰, 트리비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루미와 진우가 키스하는 장면, 아쿠아리움에서 데이트하는 장면, 귀마가 있는 곳이 궁궐이었다는 점,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첫 만남 장소가 원래 아이돌 육상대회라는 점 등 콘티나 비하인드 장면, 삭제된 장면을 발굴해 작품을 둘러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아가 곳곳의 디테일을 연구하면서 저만의 해석을 펼치기도 한다.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 초기 콘셉트(제공=매기 강 감독, 캐릭터 디자이너 마리옹 보르데네 X 계정)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 요인 1 – 할리우드식 ‘아는 맛’과 ‘K-컬처’ 디테일의 조화 왜 이토록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사실 이야기는 꽤 익숙한 편이다. 특히 헌트릭스의 설정은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1997~2003)라는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를 빌렸다. 이 드라마에는 뱀파이어 사냥꾼이라는 정체를 은폐해야 하는 퀸카 버피 서머즈(사라 미셸 겔러)와 그녀를 도우는 팀이 등장한다. 매기 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7년 전 즈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 문화를 그리는 퇴마 영화로 기획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던 중 루미를 강렬한 여전사로 설정했다. 그리고 다음 나머지 두 멤버 조이와 미라를 더할 때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거기다 루미는 마치 <겨울왕국>(2013) 속 엘사를 보는 듯하다. 악령을 조종하는 귀마는 <드래곤 길들이기>(2010)의 빌런 레드 데스와 닮아 있다. ‘루진우’의 로맨스도 청소년 소설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할리우드에서 흥행한 콘텐츠의 정수를 모아 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아는 맛’이라 할 수 있는 전형성이 독특한 소재와 디테일이 만드는 충격의 완충재가 되는 셈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 단점이 없지 않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7곡의 뮤지컬 시퀀스를 배치하는 타이트한 구성상 전개가 빠르고, 몇몇 장면의 연결이 성기다. 무엇보다 각 캐릭터의 감정이 깊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엔딩 직전 루미가 자신을 키워준 셀린과 다툰 후 콘서트에 설 때 스토리가 뭉개지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력은 가장 할리우드적인 서사와 K-컬처를 깊숙이 반영한 디테일의 이질적 조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문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두드러지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매기 강 감독은 제작진 대부분을 한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고용했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들으며 한국을 오가면서 영화를 제작하는 정성을 보인다. 그 끝에 외국인에게도 익숙한 남산타워 같은 랜드마크나 고궁 데이트부터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약과 전통 민화 <작호도>에서 갓 나온 더피(호랑이)와 서시(까치), 동묘 시장 패션을 입은 중년 여성, 뚝섬유원지역(현재 자양역), 헌트릭스의 개량 한복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펼쳐진 세계관이 완성되었다. 거기에 MBC 에브리원(every1)에서 방영되고 있는 <주간 아이돌>을 보는 듯한 프로그램에 나온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선후배 관계로 얘기되는 것, 숟가락 밑에 휴지를 까는 행동 등의 ‘한국식’ 예의도 구현했다.

무엇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시대별 데몬 헌터들을 소개할 때 1939년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 시스터즈, 1950년대 국제 무대로 진출한 걸그룹 김시스터즈, 1990년대 본격적인 K-팝 아이돌 S.E.S를 오마주한 점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매기 강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 중 하나로 밝힌,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한의원 앞에서 부딪히는 장면은 감독의 K-콘텐츠 사랑을 가장 잘 드러낸다. 두 그룹의 리더 진우와 루미가 부딪치는 순간 슬로모션이 되면서 멜로망스의 노래 ‘사랑인가 봐’가 흘러나오는 것을 볼 때 한국 관객은 손발이 오그라들 것이다. 이 장면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뮤직비디오와 K-아침드라마의 클리셰이기 때문이다. 매기 강 감독은 이런 부끄러운 흑역사마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듯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 커버 영상을 올린 아이브(IVE) 안유진과 S.E.S 바다(제공=아이브, 바다 유튜브 채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안무를 맡은 리정과 루미 목소리 연기를 한 아덴 조의 댄스 콜라보, 차은우의 ‘소다팝’ 챌린지, 엔하이픈 제이의 ‘유어 아이돌(Your Idol)’ 챌린지 영상
(제공=아덴 조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돌이 최고다’ 유튜브 채널,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인기 요인 2 -‘K-팝’을 향한 끝 모를 낙천성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K-팝에 대한 끝 모를 낙천성이다. 물론 K-팝 자체에 대한 구현은 훌륭하다. 헌트릭스는 블랙핑크와 트와이스, 있지(ITZY) 등에 영향을 받아서 제작되었으며 사자보이즈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방탄소년단(BTS),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빅뱅, 몬스타엑스 등에 영향을 받아서 제작되었다. 진우는 차은우와 남주혁을 모티브로 했다. 음악은 국내 연예기획사 더블랙레이블과 협력했고,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 작곡가 이재(EJAE)에게 작곡과 보컬을, 댄서 리정과 잼 리퍼블릭에 안무를 맡겼다. 트와이스가 OST ‘테이크 다운(Take down)’에 참여하는 등 OST 작곡가는 아이돌 타이틀 곡을 제작하듯이 작업했다.

그러나 다만 K-팝을 밝게만 다루어도 되는 것일까. 이미 우리는 K-팝 시스템의 심연과 그 폐해를 익히 체험했다. 아이돌은 ‘흠집과 두려움을 보이면 안 되는’ 통제된 환경 아래서 고통받는다. “아이돌 아티스트들의 성적 대상화, 그와 결부되는 건강 문제, 아티스트 및 스태프 모두의 열악한 노동 조건, 소속사와 아티스트 사이의 위계 관계, 감정적으로 아티스트를 착취하는 팬들과 그러한 착취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소속사들,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 데뷔하더라도 종종 제 몫을 제대로 정산 받지 못하는 산업 구조”4 에 더해 감정 노동 등이 그 문제일 것이다. 이런 환경 가운데 생긴 아이돌들의 여러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매기 강 감독도 같은 고민을 한 듯하다. 그는 어느 한국 작가가 “음악 산업의 어둠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 혼란스럽다”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왜 이렇게까지 낙천적으로 그리느냐는 질문에 대한 매기 강의 답은 “한국 문화를 다루는 첫 번째 영화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5 는 것이다. 이 낙천성이 K-팝에 대한 관심을 올려주었으니 다행이긴 하다. 더불어 이미 속편도 제작될 분위기일 터이니 K-팝의 명암을 후속편에 다루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K-팝을 힙한 이미지로 소비하고, 이를 안전한 상품으로만 소비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생긴다. 8월 29일 공개될 애플TV+의 K-팝 경연 서바이벌 <케이팝드(KPOPPED)>를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4 안희제, 망설이는사랑, 오월의봄, p.15-16
5 https://mashable.com/article/k-pop-demon-hunters-maggie-kang-chris-appelhans-interview

넷플릭스 프로필 관리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캐릭터로 프로필 사진을 바꿀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굿즈를 판매하는 넷플릭스(제공=넷플릭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온라인 숍 홈페이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정확하고 놀라운 ‘K-컬처’의 증거 누군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인의 눈으로 외국인이 촬영한 브이로그(Vlog), K-컬처에 대한 먹방과 리액션 영상, 인터넷 밈에서 드러나는 K-컬처에 대한 피상적 이미지를 재현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꽤 합리적인 비판일 것이다. 여기에 반론을 더하고 싶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민자 서사다. 매기 강의 연출은 한국적인 것(미장센)과 미국적인 것(이야기) 사이의 갈등을 설정한 후, 한국인의 정체성과 K-컬처가 자신의 뿌리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이런 안간힘이 없었더라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많은 장면들은 인터넷 밈이 되어서 두고두고 놀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2004~2010)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이 “왜 나 꽈찌주는 햄보칼 수가 없어!(왜 나 곽진수는 행복할 수가 없어!)”나 “페이퍼타올이 요기잉네(페이퍼타월이 여기 있네)”, “논 자유의 모미 아냐(넌 자유의 몸이 아냐)” 등 어설프게 뱉었던 한국어 대사는 이미 오래전 인터넷상에 밈으로 박제되었다. 이 밈 너머에는 할리우드의 몰이해에 대한 조롱과 한국이 선진국임에도 글로벌 문화의 구석으로 머물러 있다는 열등감과 콤플렉스, 그에 대한 부끄러움과 비판 등 여러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제 그런 콤플렉스는 없다. 다행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놀림거리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그 놀라운 디테일 덕에 ‘K-컬처가 이제야 제대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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