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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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❸

한국영화, 우주를 설계하자

세계관 깊은 한국영화 IP가 필요한 이유

SPECIAL ❸

한국영화, 우주를 설계하자

세계관 깊은 한국영화 IP가 필요한 이유

글 _ 김도훈(영화평론가)

2025-08-18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재주는 곰이 넘고 칭찬은 여우가 받는다. 지금 한국영화 콘텐츠 산업 이야기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 6월 20일 공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콘텐츠’ 역사상 가장 폭발력과 확장성이 있는 지식재산권(IP)이 되었다. 잠깐. 이건 정말로 K-콘텐츠인가? <쿵푸팬더>는 중국 IP가 아니다. 드림웍스의 IP다. 할리우드 상품이다. 지난 10년간 할리우드 배를 불린 상품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할리우드의 IP다. 한국은 재주만 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무대 뒤에서 돈을 버는 건 한국의 재주를 토대로 세계관을 창조하는 할리우드라는 여우다. 한국영화도 여우가 될 시간이 왔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1위, 전 세계 여러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제공=넷플릭스)



새로운 챕터를 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솔직히 좀 패배한 기분이 들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나서다.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국뽕’의 맛을 본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말하자면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축포를 쏘아 올려야 마땅하다. 국뽕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모든 국뽕의 요소를 압축해서 제조한 테킬라 샷에 가깝다.

물론 우리에게는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콘텐츠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영화로 따지자면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있다. 음악으로 따지자면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드라마로 따지자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2025) 시리즈가 있다. 다른 건 또 뭐가 있을까?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있다. 매운 걸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근접하기 힘든 음식이지만, 열 살짜리 미국 꼬맹이도 환장하는 걸 보니 내 입맛이 틀린 모양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거론한 리스트는 모두 매운맛이다. 한국은 콘텐츠를 참 맵게 잘 무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매운맛은 아니다. K-팝, K-푸드, K-민속설화 등, 그러니까 한국의 모든 잘되는 요소들을 모조리 가져가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쳐서 마무리한 K-콘텐츠 샐러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콘텐츠가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한국 문화, 특히 K-팝 시장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BTS, 블랙핑크, 뉴진스, 세븐틴, 에이티즈 등 K-팝 그룹의 세계 시장 성공에 환호하면서도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 그들의 앨범은 항상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다. 나오는 순간 밀리언셀러가 된다.

문제는 개별 싱글의 화력은 약하다는 것이다. BTS를 제외하고는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그룹이 거의 없다. 이유가 있다. K-팝은 여전히 팬덤 중심의 상품이다. 팬덤은 발매되는 첫 주에 앨범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앨범 차트 1위가 나오는 이유다. 싱글은 문제가 다르다.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로제의 ‘APT.’가 중독적인 후렴구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의 힘을 얻어 1위를 한 것처럼 말이다. 팬덤이 중심인 문화는 확장력이 좀 떨어진다. 지속력도 떨어질 수 있다. 어제 K-팝을 듣던 아이는 내일 ‘보다 진지한 음악을 듣겠어’라며 인디팝이나 힙합으로 옮겨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 몇 년간 K-팝에 일어난 최고의 사건일 것이다. 수록곡 ‘골든(Golden)’은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 1위(8월 11일 기준)다. ‘유어 아이돌(Your Idol)’은 8위, ‘소다팝(Soda Pop)’은 14위,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은 19위다. 수록곡 전부가 다 상위권을 휩쓸었다. 지금까지 어떤 한국 K-팝 그룹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기생충>과 <부산행>은 한국 사회·문화가 짙게 묻은 이야기로도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온전히 축하할 수 있을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나아가서는 한국 문화 시장을 넓힐 것이다. 틀림없다. 그런데 왜 패배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한국적 콘텐츠지만 한국 콘텐츠가 아닌 탓이다. 한국의 IP가 아니다.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콘텐츠 제국을 건설했다. 어찌나 제국의 파워가 대단한지 거의 모든 국가를 문화적 식민지로 만들었다. 아직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의 파워는 약간 약하다고는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자국 문화의 제국을 건설해 온 동네들이니 이 정도면 선방이다.

‘하드 파워’(군사력, 경제력으로 상대 행동을 바꾸거나 막을 수 있는 힘)와 ‘소프트 파워’(문화, 예술, 과학으로 상대 행동을 바꾸거나 막을 수 있는 힘)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21세기 탄생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김구 선생이 꿈꿨던 나라를 드디어 만들었다는 농담은 더는 농담이 아니다. 문제는 미래다. 모든 제국주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무너졌다. 계속 파워를 유지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프트 파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IP다. 지속 가능한 IP다. 계속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IP다. 그런 IP를 창조하는 건 하나다. 세계관이다. 확장 가능한 세계관이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시즌 1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 2, 3으로 확장된 <오징어 게임>(제공=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세계관을 창조했다. 겨우 1시간 30분의 애니메이션을 보자마자 나는 제작자의 마음에 곧바로 빙의했다. 헌트릭스, 사자보이즈 등 모든 캐릭터는 각각 단독 넷플릭스 시리즈를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성이 가득하다. 심지어 잠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만으로도 단독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충분히 창조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속편은 곧 나올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속편 두 편을 포함한 전체 3부작 영화 제작을 검토 중이다. 실사 리메이크와 뮤지컬, 단편 스핀오프 등 형식적 확장도 기획 단계에 있다. 그렇다면 이건 K-콘텐츠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미국 자본과 제작 시스템이 K-콘텐츠의 핵심 요소들을 쏙쏙 뽑아서 만든 상품의 성공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한국은 이름을 빌려줬다. 돈은 미국이 벌었다. 그러니까 이건 뉴욕과 런던, 파리 등 선진국 대도시의 일본 식당 같은 것이다. 그 동네를 가본 사람들은 대부분의 일본 식당 주인과 셰프가 중국인 이민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런 비슷한 고민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정점을 친 것은 결국 내려가기 마련이다. 한국영화는 내려가고 있다. <기생충>이 어쩌면 그 정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K-팝 시장도 지난해쯤 정점을 쳤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를 이어갈 그룹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탓이다. 신인 그룹들 앨범 판매량도 점점 줄고 있다. 드라마? 한국 드라마가 <오징어 게임>의 지구적인 신드롬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제작자들은 더 불안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IP다. 단단한 세계관을 통해 원 소스 멀티 유스(하나의 소재를 여러 장르에 적용해 파급 효과를 얻는 마케팅 전략)를 앞으로 수십 년간 실현할 수 있는 IP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걸 창조해 버렸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과 넷플릭스는 K-콘텐츠 사상 최강의 IP를 만들어 버렸다. 그걸 K-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큰 기대를 받았던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시리즈는 1부(153만 8천504명, 왼쪽)와 2부(143만 121명)를 합쳐도 300만을 돌파하지 못했다 (제공=CJ ENM)



한국영화는 왜 세계관 구축에 약할까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영화는 세계관 구축에 약하다. 다시 말하자. 오래 팔아먹고 살 수 있는 장르적 세계관 구축에 약하다. 물론 우리에게도 세계관은 존재한다. 박찬욱 감독 영화의 세계관도 있고 봉준호 감독 영화의 세계관도 있다. 한국영화의 세계관은 이런 것이다. 최고의 작가들이 창조해낸 개성이 강한 영화들 속의 윤리적·미학적·인문학적 세계관이다. 멋진 세계관이다. 그러나 서로 연결해서 확장할 수 있는 세계관은 아니다. <나이트메어>(1984~) 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와 <13일의 금요일>(1980~) 시리즈의 제이슨이 함께 등장한 <프레디 VS 제이슨>(2003), 혹은 <에이리언>(1979~) 시리즈의 괴물과 <프레데터>(1987~) 시리즈의 괴물이 싸우는 <에이리언 VS. 프레데터>(2004)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친절하고 예쁜 금자 씨와 망치를 든 오대수가 싸우는 영화 같은 걸 망상해본 적은 있다만, 그거야 영화광의 망상일 뿐이다. 한국영화는 지난 20년간 할리우드 같은 제작 시스템을 꿈꾸며 여기까지 왔다. 대기업들이 제작에 뛰어들면서 우리도 할리우드처럼 단단한 영화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졌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그게 무너지고 있다. 어쩌면 한국영화는 개별적인 영화적 대가들, 천재들의 개인플레이에 지나치게 의존한 걸지도 모르겠다. 조지 루카스 감독보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지나치게 많은 영화 산업을 상상한다면 아마도 그건 한국영화 산업과 아주 비슷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쏟아져 나온 몇몇 한국 장르영화들은 꽤 야심적이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2부(2022~2024),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2021), 연상호 감독의 <반도>(2020)는 감독의 예술가적 야심보다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에센스를 한국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야심이 돋보이는 영화들이었다. 기대는 크게 어긋났다. 공통적인 약점이 있었다. 세계관이다. 각각의 영화는 오래 확장 가능한 IP로서 큰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각각의 감독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했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은 무한한 콘텐츠를 낳을 수 있다. 문제는 세계관이 할리우드와 비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더 극적으로 말하자면 뼈에 사무칠 정도로 허술하다는 것이다.

<반도>(왼쪽)와 <승리호>는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했지만, 무한 확장이 가능한 콘텐츠를 생성하기엔 부족했다



왜냐고? 한국 감독과 제작자들이 할리우드로부터 장르는 가져왔지만 장르적 세계관을 꼼꼼하게 창조하고 그걸 운영하는 기술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할리우드를 학습 중이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학습 중 과감하게 실패해도 괜찮을 정도로 단단한 산업적 규모도 없다. 세 영화의 상업적 실패 이후 비슷한 시도를 하는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실패를 하는 순간 비슷한 프로젝트의 투자가 끊기는 시장에서는 누구도 도전하고 시도하고 실험하려 들지 않는다. 가장 최근의 실패 사례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이러니 한국영화의 유일한 IP는 마동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영화는 왜 세계관을 잘 빚지 못할까. 왜 헐거울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장르영화가 세계관과 배경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계+인> 세계관은 시놉시스에서는 마블 영화처럼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각각의 재미있는 요소가 정서적으로 연결되질 않는다. 지나치게 많은 아이디어와 지나치게 많은 세계관이 비빔밥처럼 마구 비벼져 있다. <반도>는 <부산행> 이후 좀비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한국이라는 설정은 있지만, 도무지 그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왜? 왜?’라는 의문을 계속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부산행>의 속편으로 <반도>를 내놓은 연상호와 제작사의 도전 의식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내가 제작자였다면 “일단 부산을 무대로 하고 어디 제주도나 일본까지 배경이 확장되는 <부산행 2>부터 만듭시다. 페리 위에서 좀비 액션 연출하면 아이디어도 많이 쏟아질 테고 재미있지 않겠어요? 그런 다음에 <반도> 같은 영화로 확장하면 어때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영화평론가의 망상이다.

개인적으로 <승리호>는 더 아쉽다. 할리우드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를 만들 때 일단은 규칙부터 만든다. ‘우리가 창조할 우주는 어떤 규칙으로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승리호>는 ‘우리가 창조할 우주는 얼마나 멋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그 우주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는다.

마동석 유니버스의 시작이라 할 <범죄도시> 시리즈.
일관적 캐릭터 영향으로 스틸만 봐도 <범죄도시> 몇 편인지 알아맞히기 쉽지 않다



한국영화의 장점은 곧 한국영화의 단점 한국영화의 단점인 세계관의 헐거움은 한국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점 때문일 수도 있다. 감정의 서사다. 한국영화는 작은 독립영화도 거대한 상업영화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캐릭터의 감정이다. <승리호>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구원 서사다. <외계+인>은 과거의 죄책감을 털어내려는 용서의 서사다. 대부분의 한국 장르영화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이걸 완전히 해체할 수는 없다. 한국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은 이유가 바로 이 감정의 서사에 있기 때문이다. 해외 시청자들이 <오징어 게임>의 몇몇 에피소드를 보며 “셰익스피어 비극을 떠올리게 만든다”며 우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해외 관객들이 <부산행> 마지막 ‘부정의 신파’에 “좀비 장르가 나를 울렸다”며 찬사를 보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관객을 울리고 싶어 한다. 한국 관객은 이야기의 정합성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선과 그것이 안겨주는 정서적 몰입감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의 장점이었다. 계속 한국영화의 장점이 될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감정의 서사와 세계관 구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스타워즈>(1977)나 <아바타>(2009) 같은 할리우드 장르영화는 세계관을 먼저 구축한 뒤 그에 맞는 캐릭터의 행위를 고안한다. <스타워즈> 최고의 감정 서사 두 개를 한번 생각해보자. 다스 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를 보며 “내가 네 아빠다”라고 말할 때, 관객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잡혀가는 한 솔로가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레아 공주의 말을 듣고 “나도 알아”라고 할 때, 관객은 둘의 희로애락에 깊이 감응한다. 그것 말고는 캐릭터들이 딱히 깊은 감정을 나누는 장면은 없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단 두 장면으로 캐릭터의 특징뿐 아니라 시리즈의 과거와 미래를 구축해낸다. 감정선과 세계관이 일시에 통합되는 것이다. 감정의 서사가 곧 세계관이 된다. 구조가 된다. 시리즈의 확장성을 담보한다. 이건 결국 기획의 문제로 연결된다. 할리우드는 IP를 기획할 때부터 “이걸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세계관을 꼼꼼하게 설계한 뒤 캐릭터와 이야기를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 장르영화는 “일단 이걸 먼저 성공시키자”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 편의 영화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서야 속편이나 프리퀄이 나올 여지가 없다.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캐릭터 감정을 중심으로 구축한 세계관은 세계관이 아니다. 그저 배경일 뿐이다.

세계관을 확장해 후속편마다 새로운 스토리를 내놓고 있는 <아바타> 시리즈(왼쪽부터 순서대로 <아바타> 1~3편)



<전지적 독자 시점>의 실패 지점도 여기에 있다. 원작은 ‘시나리오’, ‘도깨비’, ‘성좌’나 ‘후원’ 같은 개념을 천천히 쌓아 나가며 독자에게 세계관을 제시한다. 영화는 그 모든 개념을 겨우 몇몇 장면과 자막에 쑤셔 넣어 버린다. 원작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강제로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갈 수밖에 없다. RPG 게임 튜토리얼을 10초 만에 끝내고 곧바로 게이머를 보스전에 투입하는 격이다. 장기적인 시리즈로 미리 기획한 작품이라면 이런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 영화 한 편의 성공에 향후 시리즈의 향방까지 달려 있는 탓에 어떻게든 모든 것을 쏟아붓다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작진 스스로도 알았을 헐거움을 보완하는 방식은 역시나 ‘감정의 서사’다. 원작 웹소설의 즐거움은 세계관에서 나온다. 멸망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세계관의 법칙을 익혀 가며 정해진 결말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온다. 캐릭터는 일종의 장기말이다. 바로 그 덕분에 원작을 읽는 독자는 주인공 ‘김독자’가 된다. 영화는 세계관을 쌓는 것보다는 감정의 드라마에 올인한다. 주요 캐릭터인 김독자와 우중혁의 브로맨스와 갈등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다. 물론 이런 각색은 ‘영화적인 방식’이라고 변호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관객은 어쨌든 캐릭터 중심의 정서적 몰입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은 이제 무너지고 있다. 한국 관객들 역시 감정의 서사와 세계관 사이의 균형을 원한다.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섬세하게 구축한 세계관의 즐거움을 원한다. 우리는 <승리호> <반도> <외계+인>에 이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비평적, 상업적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세계관을 쌓는 것보다 감정의 드라마에 올인해 감정의 서사와 세계관 사이에 불균형을 이뤘다



한국영화 산업이 이미 위에서 언급한 조지 루카스 감독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지나치게 많은 영화 산업이라는 얘기를 다시 불러오자. 한국영화는 전통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권한에 의존해 왔다. 우리에게는 천재가 많다. 천재적 가능성을 가진 이야기꾼이 많다. 비주얼리스트가 많다. 감독이 곧 브랜드가 된다. 할리우드도 감독이 곧 브랜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감독이 브랜드인 것은 아니다. 모두가 박찬욱 감독이 될 수 없듯이 모두가 놀란 감독이 될 수도 없다. 한 편의 영화로 시작해 수십 년을 버티며 먹고 살 수 있는 장르영화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면 한 명의 천재로는 부족하다. 다수의 작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설정 담당자들이 함께 구축하는 집단 창작 시스템이 필요하다. 할리우드는 아예 ‘IP 매니저’와 ‘세계관 설계팀’, ‘굿즈 담당팀’ 등이 따로 있다. 그들은 천재적인 작가와 감독이 창안한 이야기로부터 ‘유니버스’를 설계하는 일을 맡아서 한다.

한국영화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몇 명이 창안한 세계관에만 온전히 기대는 것으로는 일시적 흥행작은 만들 수 있지만 오래가는 IP를 만들 수는 없다. 지금 한국영화에 필요한 건 한 편의 영화를 잘 만드는 천재가 아니다. 기억되는 캐릭터, 지속 가능한 이야기, 그 모든 것을 오랫동안 운용할 IP 설계자다. <범죄도시>(2017)와 <부산행>으로부터 시작해 최근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2025)까지 이어진 마동석 유니버스 역시 이대로는 금방 닫힐 것이다. 배우 한 명이 IP여서도 곤란하다. 마동석이라는 액션 캐릭터만 존재하는 유니버스는 점점 끝나가는 중인 드웨인 존슨 유니버스와 다를 것이 없다. 배우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일관적 캐릭터가 질릴 시점이 되면 배우라는 IP도 결국 끝이 나기 마련이다.

한국영화는 이제 우주를 만들어야 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과 한국으로 우주를 만들었다. 우리는 향후 몇 년간 끝없이 생산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칭찬은 여우가 받는다. 한국영화는 지금 지구에서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재주 많고 미련한 곰이다. 약삭빠른 할리우드 여우는 그 이야기로부터 세계관을 만들어 IP를 창조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자꾸 돈 이야기만 한다고 불편해하지 말아주시라. 결국 중요한 건 돈이다. 하나의 산업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하나의 우주를 만들면 수많은 행성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각각의 행성은 모두 하나의 세계가 된다. 각각의 세계는 돈이 된다. 그러니 우주를 설계하자. 신이 되자. 새로운 한국영화 세계관과 IP에 빛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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